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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명[부제포함] 김문성의 토크와 음악이 있는 고음반감상회 부록음반 <반세기>-백년의 음악을 풀다-
음반 번호 emu-0730 , CD 1 매
제작 / 기획사 Heritage Gramophone
발매 연도 2016
구 분 사가반
분 류 민요
업데이트 일시 2017-09-24
비 고



 
김문성의 토크와 음악이 있는 고음반감상회 부록음반 <반세기>-백년의 음악을 풀다-

◇ 인트로
1. 신민요 경북선산애원성 김옥심 작사 미상 작곡 미상 1963 KMS릴18 / 3:16

◇ 세기의 추억, 명기(名技)가 남긴 소리
2. 俗謠 오봉산타령 장학선(張鶴仙) 伴奏 오케管絃樂團 1938 오케레코드 12182 / 3:01
3. 短歌 대관강산 박록주(朴綠珠) 鼓 한성준 1937 스타레코드 KS 2005 / 2:58
4. 雜歌 범벅타령 이진봉(李眞鳳) 1931 콜럼비아레코드 40246 上 / 3:20
5. 京畿雜歌 아리랑 김옥엽(金玉葉) 朝和樂반주 1935 리갈레코드 C254 / 3:08
6. 民謠 密陽아리랑 이진홍(李眞紅) 태평레코드 1937 C8319-A(K933) / 2:54

◇ 세기의 소리꾼, 김옥심을 듣다
7. 民謠 한五百年 金玉心 편곡 김병수 伴奏 도미도國樂團 1956 도미도레코드 D1022 / 3:09
8. 民謠 新高山打令 金玉心 편곡 이봉룡 伴奏 新蓄國樂團 1956 신세기레코드 N170 / 3:08
9. 民謠 뱃노래(BOAT SONG) 김옥심 伴奏 유니버어샬韓洋合奏團 1955 유니버셜레코드 F1017 / 2:58
10. 海外紹介盤 궁초댕기(A Fair ribbon) 唱 金玉心 반주 킹스타民俗合奏團 1959 킹스타레코드 K6610(15-A) / 2:57
11. 大衆民謠 夢金浦打鈴 노래 金玉心 指揮 李昌培 1958 오아시스레코드 A5510 / 2:59

◇ 세기의 물결, 결에 새긴 신 민요
12. 新民謠 布穀聲 王壽福 作詞 秋夜月 作曲 李冕想 伴奏 포리도루管絃樂團 1936 폴리돌레코드 19320 / 2:48
13. 新民謠 遠浦歸帆 鮮于一扇 金周鎬 1934 폴리돌레코드 19143-B / 3:03
14. 新民謠 왜그렁打鈴 李花子 作詞 孔子曰 作曲 金駿泳 伴奏 포리도루管絃樂團 1937 폴리돌레코드 19453 / 2:18
15. 新民謠 五大江打鈴 李蘭影 作詞 金陵人 作曲 文湖月 伴奏 오케管絃樂團 1934 오케레코드 1681(K1241) / 3:23
16. 新民謠 福실너간다 金時勳 詞 草山人 曲 文湖月 伴奏 朝鮮밀리온오케스튜라團 1936 밀리온레코드 CM803-A / 3:20
17. 流行歌 浦口의 달빗 崔香花 作詩 金曙汀 作曲 金曙汀 伴奏 시에론管絃樂團 1933 시에론레코드135-A / 3:03

◇ 릴테잎에 숨은 반세기 명곡들
18. 短歌 운담풍경 金楚香 북 미상 1963 KMS릴 21 / 4:44
19. 휘몰이잡가 곰보타령 李飛鳳 鄭鳳仙 1958 KMS릴 15 / 2:37
20. 민요 풍년가-쾌지나칭칭나네 성금연 이은주 1961 KMS릴 12 호적 피리 이충선 꽹가리 해금 이정업 징 젓대 한주환 장고 김윤덕 / 4:52
21. 신민요 임전화풀이 묵계월 1965 KMS릴 30 / 2:39 총 67:36

* 이 음반은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에술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 개인 김문성씨가 자기의 고음반감상회 자료로 제작한 음반이다. SP음반, 릴테이프에서 발췌한 귀한 음원들이다. 음질은 고르지 못하지만, 처음 소개되는 음원들도 많은 것 같다. 해설서서 자세하다.(2017.9.24)
 
* 제작자가 보내준 해설서 내용 :

경북선산 애원성
(노래 : 김옥심 작사 미상 작곡 미상. 1963년)
후렴) 여호 여호 여호오 여호
스물 여덟 유대군아 인제 가면 언제 올고/내년 봄에 잎이 피고 꽃 피거든 오실려나
동솥에다 삶은 암탉 알놓거든 오실련가/진흙단지 삶은 밤이 싹돟거든 오실련가

병풍에다 그린 학이 홰놓거든 오실련가/동지섣달 긴긴밤에 앉었으니 님이 올까
임도 잠도 아니 오고 이내 간장 다 녹는다/죽자하니 청춘이요 사자하니 고생일세

◇ 세기의 추억, 명기(名技)가 남긴 소리

장학선(1905~1970)
1905년 평양에서 태어난 장학선은 남도의 박록주와 더불어 지난 20세기 최고의 절창으로 손꼽히는 소리꾼으로 평양 기성권번에서 밀화주를 사사받았으며 1929,30년 2년 연속으로 팔도명창대회를 석권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빅타레코드, 콜럼비아레코드, 오케레코드외에 해방 후 오아시스레코드에 ‘수심가’를 녹음할 정도로 수심가 및 시창 ‘관산융마’의 독복적인 소리꾼이었으며, 문명옥과 함께 다리굿을 처음으로 무대화한 소리꾼이기도 했다.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보유자로 인정되었으나 이듬해인 1970년 9월 제자를 한명도 남기지 못한채 타계했다. ‘오봉산타령’은 오케레코드에서 발매한 경기민요로 광고발매기록에는 ‘영산홍로에 봄바람’으로 함께 부기되어 있다. 장학선 특유의 ‘라’음을 높고 깊게 떠는 시김새가 경기민요에도 잘 반영된 특징이 있다.

박록주(1905~1979)
1905년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박기홍의 문하에서 춘향가, 심청가 및 단가 ‘대관강산’을 배웠다. 달성권번 소속으로 활동하다 이후 상경해 한남권번에 적을 두었으며, 일동레코드, 일축레코드 등에서 음반을 내며 유명세를 타났다. 조선성악연구회 소속으로 있으면서 송만갑, 정정열, 김창환 등을 사사했으며, 김정문에게서 동편소리 ‘흥보가’를 배웠다. 김정문 계통의 흥보가는 박초선, 박송희 등에게 이어졌으며,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인간문화재로 인정되었다가 이후 흥보가 보유자로 조정되었다. 소설가 김유정이 짝사랑한 여인으로, 그의 집요한 구애를 뿌리치고 호통을 친 일은 매우 잘 알려진 일화이다. ‘대관강산’은 박기홍제로 널리 알려진 단가로 장단은 중모리에 맞으며, 빅타의 스타레이블 발매 녹음으로 박록주의 전매특허로 알려졌다.

이진봉(1897 ~?)
이진봉은 1897년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대정권번, 대동권번 소속으로 있으면서 김산월과 호흡을 맞춰 빈번하게 방송출연과 음반취입을 하였으며, 이후 이영산홍, 김옥엽과 함께 활동을 했다. 타고난 미성은 아니지만 목쓰는 기교만큼은 김옥엽과 이영산홍 못지 않게 뛰어났다. 비행기 조종사 이기연과의 로맨스로 장안의 화제를 모았으며, 이기연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이듬해 기적을 떠나 비구니가 되었다고 하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1930년대 후반까지 활동했다. 신해중월은 이진봉의 단단한 소리를 ‘나박김치 먹는 듯 산뜻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진봉의 범벅타령은 일제강점기 외설적인 내용 때문에 금지처분을 받기도 했는데, 창부타령조의 경기 잡잡가로 서사성이 매우 뛰어난 곡이다.

김옥엽(1901~?)
1901년 황해도 출신인 김옥엽은 기성권번에서 소리수업을 받은 후 어린 나이에 상경해, 조선권번에서 적을 두며 학습한 소리꾼으로, 대구 출신 현매홍과는 단짝이었다. 일제강점기 경서도 소리꾼으로는 가장 많은 유성기 음반을 취입했으며, 가창 범위도, 가곡, 가사, 시조부터 잡잡가, 재담 등에 이르기 까지 폭넓게 취입했다. ‘옥엽의 수심가를 들으려면 상토 한 마지기 소출을 행하(팁)로 따로 얹어야 들을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수심가에 뛰어났다. 대문호로 평양 대부호의 아들인 김동인과의 염문으로도 유명했다. 김옥엽의 아리랑은 오늘날 ‘해주아리랑’으로 알려진 ‘아리랑타령’ 계통의 노래로 세마치 장단에 부르며, 관현악에 맞춰 흥겹게 편곡되었다.

이진홍(1907~1994)
이진홍은 1907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유년을 전의와 오산에서 보낸후 서울로 상경해 장계춘, 김윤태 및 조선권번의 주수봉에게서 사계축 계통의 가사, 시조, 잡가 등을 사사받았으며 일제강점기 ‘대감놀이’로 한시대를 풍미했다. 해방후에는 KBS전신인 서울중앙방송국 민요부원으로 활동했으며 1960년대에는 중요무형문화재종목발표회 및 동아일보 명인명창대회에 경기민요계 대표로 나아가 공연했다. 1974년 국립극장에서 열린 명인명창의 향연에서 지연화, 박채선과 함께 노랫가락, 창부타령 등을 부른 것을 마지막으로 공식무대에서 은퇴했으며 80년대 초까지 종로구 권농동에 살다가 1994년쯤 하남에서 타계했다. 이진홍의 밀양아리랑은 태평레코드에 녹음된 것으로 이진홍 특유의 우조 느낌로 부르는 흥겨움이 돋보이는 곡이다.

오봉산타령
(노래 : 장학선/오케레코드. 1938년)
후렴)에헤야 데야 영산 홍로에 봄바람
오봉산 꼭대기 에루화 봄이 왔는데 우리나 청춘 에루화 다 늙어 간다
바람이 불고 에루화 비올줄 알면서 어떤 사람이 에루화 마전질 갈 소냐
꽃이 피고 에루화 새가 울어도 한번간 사람은 에루화 무소식이로다
달은 밝고 에루화 바람 찬데 외기러기 슬픈 소리 에루화 산란도 하구나

대관강산
(노래 : 박록주 북 한성준/스타레코드. 1937년)
이몸이 재조없어 성상이 바렸으매 공명이 부운이라.
죽장망혜(竹杖芒鞋) 단표자로 대관강산(大觀江山)허잤어라.
봉래산(蓬萊山)을 가자 하니 약수(弱水)가 둘러있고 남(낙)포운(洛浦雲)이 멀구멀다.
우흐로 천상선경(天上仙境)는 앙망불급(仰望不及) 무가내하(無可奈何),
인간의 만고경치(萬古景致) 차례로 찾으리라
봉황대(鳳凰臺)를 찾아가니 봉황은 간 곳 없고 강 물길만 흘러 있다
황학루(黃鶴樓)를 찾아가니 학선은 어디가고 백운만 유유허구나.
등왕각(등王閣) 비 갠 후 하목(霞鶩)이 날단 말아냐.
관와궁중 미록유요 월왕대(鉞王臺)에 자고로다.
멱라수를 속히 건너 굴삼려(屈三閭)를 조상(吊喪)하고
절강(浙江)의 급한 조수(潮水) 서산사가 처량허다.
이적선(李謫仙) 기경(騎鯨)후에 채석강이 기약없고,
소동파(蘇東坡) 임술(壬戌)놀음 적벽강만 남았구나.
일락장사(日落長沙) 추색원(秋色遠)은 가태부(賈太傅)의 설움이라
악양루(岳陽樓)를 썩 뛰어올라 팔경(八景)을 돌아보니
소소(簫簫)한 밤비 소리 반죽(班竹)이 다 젖는다.
적막(寂寞)한 황릉묘(黃陵廟) 이십오현(二十五鉉) 타는 소리
창오산(蒼悟山)이 무너질 듯 상강수(湘江水) 끊어질 듯.
이내 두 기러기는 옛적 일을 못 잊어서...

범벅타령
(노래 : 이진봉/콜럼비아레코드. 1931년)
어리야 둥글 범벅이야 둥글둥글 범벅이야
누구 잡수실 범벅이요 이도령 잡수실 범벅이요 김도령 잡수실 범벅이요
이도령은 멥쌀 범벅 김도령은 찹쌀 범벅
이도령은 본낭군이요 김도령은 훗낭군
이도령이 계집년에두 행실을 알고 외방장사 나간다고
금빛참빛 쪽집게를 사가지고서 뒷동산으로 올라가서 엿만보고 나아든다
게집년에두 거동을 보소 이도령없는 싹을 알고 김도령 오기를 기다린다

김도령의 거동을 보소 이도령 없는 눈치를 채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이도령집으로 다다랐네 문열어라 문열으오 여보 벗님네 문을 열오
계집년의 거동을 보소 김도령 목소리를 알아듣고 대문을 열러 나간다
육간대청 비단치마를 잘잘 끌면서 나간다
중문열고 대문을 열고 얼싸안고서 들어간다
대문 걸고 중문을 걸고 분납문 걸고 방문 걸고
치어다 보느냐 소라반자 내려 살피니 각장장판
샛별같은 놋요강을 발치발치 몰아놓고
자개함롱에 반닫이는 이리저리 늘어놓고 마루 솥에 불밝히고
홍공단 이불을 뷔여놓고 창포밭에 금잉어놀듯 금실금실 잘도논다(생략)

아리랑
(노래 : 김옥엽/리갈레코드. 1935년)
후렴)아롱 아롱 아라리요 아리롱 얼씨구 넘겨다오
아주까리 동백아 열리지 마라 산골의 큰애기 난봉이난다
간데족족 정들여 놓고 이별이 잦아서 못살겠네
콩타작 팥타작 저콩타작은 해도 정든님 타작은 못하겠네
전보줄 끊어진 건 납줄로나 잇지 정든님 끊어진 건 무얼로 잇나

밀양아리랑
(노래 : 이진홍/태평레코드. 1937년)
후렴)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얼씨구 아라리요
날좀보소 날좀보소 구름속에 달본듯이 날좀보소
야속해요 야속해요 야속도해요 한번보고 가신 님이 야속해요
내말 듣소 내말 듣소 내말좀 듣소 그뭄날에 오신 임을 괄세를 마소

◇ 세기의 소리꾼, 김옥심을 듣다

김옥심
1925년 6월 경기도 양주군 은현면 태생인 김옥심은 본명이 김애희로 8세에 동기로 조선권번에 입번했다. 주수봉에게서 시조와 가사, 12잡가를 사사받았으며 1944년 경성방송국에 방송출연하면서 데뷔했다. 해방후 대한국악원 및 서울중앙방송 민요부원 소속으로 활동했다. 이후 김춘홍에게서 서도잡가, 이창배에게서 산타령을, 부산국악원 피난시절에는 김영윤에게서 양금을 사사받았으며 1958년 제1회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유산가를 불러 성악부1등상을 수상했다. 1968년에는 세종국악대상 1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196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 후보로 올랐으나 1975년 지정시 탈락했으며 1982년 한국국악협회의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88년 1월 용두동 자택에서 지병으로 타계했다.
김옥심은 1950년대 집중적으로 킹스타, 신세기, 유니버셜, 도미도, 오아시스 등 대표적인 음반사에 모두 민요를 녹음했으며, 가수 모란봉의 노래인 ‘궁초댕기’는 해방후 첫녹음이며, ‘뱃노래’는 ‘에야노야노’라는 민요계가 ‘어기야디야’로 개사하기 전 녹음이며, ‘몽금포타령’은 후렴구가 고제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귀한 녹음이라고 할 수 있다. 오프닝 곡인 ‘선산애원성’은 이전에 공개한 솔로곡 ‘선산애원성’이 아니라 합창단과 함께한 희귀녹음이다.

한오백년
(노래 : 김옥심 편곡 김병수/도미도레코드. 1956년)
후렴)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고 한오백년 사자는데 왠 성환가
백사장 세모래밭에 칠성단을 모고 님생겨 달라고 비나이다
한많은 이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나리는 눈이 산천을 뒤덮듯 당신의 사랑으로 이 몸을 덮으리

신고산타령
(노래 : 김옥심 편곡 이봉룡/신세기레코드. 1956년)
후렴)어랑 어랑 어허야 어야 더야 내 사랑아
신고산이 우루루루 함흥차 가는 소리에 구고산 큰애기 반봇짐만 쌉니다
구부라진 노송남긔는 바람에 건들거리고 허공중천 뜬 달은 사해를 비춰만 주노라
치마폭 잡은 손 인정없이 떼치고 갑사댕기 팔라당 후치령 고개로 넘어간다
바람아 봄 바람아 네가 부지를 말어라 머리단장 곱게한 것 모두다 풀린다

뱃노래
(노래 : 김옥심/유니버셜레코드. 1955년)
후렴)에야노야노야 에야노야노 어기여차 뱃놀이가잔다
부딪히는 파도소리 잠을 깨우니 들려오는 노소리 처량도 하구나
창해 만리 먼 바다에 외로운 등불만 반짝거린다
모래나 샘물은 파도새 나지만 정든임 생각은 하두새 나누나

궁초댕기
(노래 : 김옥심/킹스타레코드. 1958년)
후렴)무슨짝에 무슨짝에 부령 청진 간 임아 신고산 열두고개 단숨에 올랐네
궁초댕기 단장하고 신고산에 뵈올때는 한아름 꽃을 안고 웃으면 오리다
장근 십년 상사로 보내니 두눈만 가까이 주름 잡혔네
궁초댕기 풀어지고 신고산 열두고개 단숨에 올랐네
백년 궁합 못믿겠소 옷가락지 죽절비녀 노각이 났네

몽금포타령
(노래 : 김옥심 지휘 이창배/오아시스레코드. 1958년)
후렴)에헤요 에헤요 에헤 에헤요 님만나보겠네
장산곶 마루에 북소리 나더니 금일도 상봉에 님만나 보겠네
갈길은 멀구요 행선은 더디니 늦바람 불라고 성황님 조른다
님도 보구요 술도 마시고 몽금이 개암포 들렸다 가게나

◇ 세기의 물결, 결에 새긴 신 민요

왕수복(1917~2003)
평남 강동출신으로 명륜여자공립보통학교를 다니다가 학업을 중단하고 12세에 평양기성권번에 들어간다. 1933년 콜럼비아에서 ‘울지말아요’로 데뷔한 직후 폴리돌레코드사 전속으로 있으면서 ‘고도의 정한’, ‘청춘의 봄’ 등으로 유명세를 타났다.
인기절정기에 소리를 중단하고 일본 벨칸토성악연구원에 들어가 이탈리아의 벨트라멜리 요시코로부터 정통 성악을 공부한다. 소설가 왕수복의 연인으로 유명했으며, 노천명의 연인이기도 했던 김광진과 결혼 후 북한에 정착하면서 1953년에 중앙라디오 방송위원회 전속가수로 활동을 재개하한다. 이후 북한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으며, 김일성 김정일의 총애를 받아 환갑 및 팔순 생일 잔치를 치르기도 했다. 평양의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포곡성은 왕수복이 팔순잔치때 ‘포곡새’라는 이름으로 부른 바 있고, 현재 북한에서는 대표적인 민요로 알려진 ‘포곡새’의 원곡이다.

선우일선(1918~1989)
선우일선은 1918년 평안남도 대동 출신으로, 집안이 어려워 양말공장에 다니넌 중 기생 이화선의 가무에 반해 1930년 13세에 기성권번에 들어간다. 권번 동기로는 김복희가 있다. 3년 과정을 마친 직후인 1934년에 폴리돌 레코드에 스카우트 된다. 이후 폴리돌에서 빅타로, 1939년 10월에는 태평레코드로 소속을 옮기며 한성권번에 적을 두고 활동한다. 해방후 북한으로 돌아간 선우일선은 1953년부터 조선 중앙 방송예술단 독창가수로 발탁되어 활동하였으며 1954년부터 평양음악대학 민족음악학부 민족 성악교원으로 재직하였다. 1958년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으며, 1989년 평양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조선민족음악가사전(상), 연변대학출판사, 1998년 308,309쪽
‘원포귀범’은 오늘날 경기민요로 알려진 ‘자진뱃노래’의 원곡인데, 후렴 부분이 어려워 이후 편곡된 것으로 보인다. 작사, 작곡가가 표기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김주호와 선우일선이 엮은 것으로 보이며, 김주호는 평양출신의 대표적인 서도소리 명창으로 선우일선과 함께 많은 경서도민요를 음반으로 취입했다.

이화자(1917~1949)
이화자는 1917년 부평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1935년 인천권번 소속으로 있을 당시 작곡가 김용환의 눈에 띄어 발탁된 것을 계기로 가요계에 데뷔한다. 뉴코리아레코드에서 데뷔한 이후 오케레코드와 폴리돌레코드사 소속으로 있으면서, ‘임전화풀이’, ‘꼴망테목동’, ‘미녀도’ 같은 신민요를 비롯해, 많은 가요와 민요를 녹음했다. 선우일선과 함께 신민요를 양분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조선악극단 소속으로 있으면서,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기도 했다. 아편중독으로 고생하다가 1949년 작고했다. 이화자의 ‘왜그렁타령’은 오케레코드가 아닌 폴리돌레코드에서 활동할 당시 녹음된 몇 안되는 신민요로 이화자 특유의 자조적이면서 체념하는 듯한 혹은 달관하는 듯한 창법이 도드라진 곡이다.

이난영(1916~1965)
본명이 이옥례인 이난영은 전남 목포 출신으로 목포공립여자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15세에 여배우가 되려고 태양극단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처음에는 막간극장이 가수로 활동했으나, 1935년 목포의 눈물이 대히트를 치면서 대표적인 유행가수로 등극한다. 이옥례라는 이름으로 묵상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1936년부터는 오카란코(岡蘭子)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도 활동하며 10여곡의 노래를 발표한다. 작곡가인 김해송과 결혼한 후 김해송의 KPK 악극단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1965년 심장마비(혹은 자살)로 작고했다. 이난영은 데뷔초기 가요만큼 신민요 취입도 많이 했으며, ‘오대강타령’ 역시 비교적 이난영 활동 초기에 발표된 작품으로, 특유의 비음과 민요적 리듬감이 잘 드러난 곡이다.

김시훈
생몰연대 미상.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성악가로 채규엽과 함께 활동한 기록이 동아일보에 보이며, 밀리온 레코드에서 ‘복실러간다’ 외에 이은파와 함께 ‘경성사시타령’을 녹음했다. 36년에 발매한 ‘복실러간다’는 당시 유행한 전형적인 신민요 계통의 노래로 3/4박자이면서 세마치 장단형을 가지고 있다.

최향화(1916~1934)
본명은 최순덕으로 1915년 서울에서 6남매중 셋째로 태어났으며,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자 가족 생계를 위해 기생이 되었으며, 동기 문금자 등과 함께 조선권번 댄스 4인방을 구성해 사교계에서 출 잘추는 무희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1933년 작곡가 김서정을 통해 시에론레코드에서 ‘포구의 달빛’으로 데뷔하며 일약 스타가 되지만, 이듬해인 1934년 폐병을 얻어 치료를 받던 중 5월 19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가슴에 피는꽃’, ‘님찾아 가는길’, ‘열여섯살풋사랑’, ‘반기자새아침’, ‘정붙일곳 없어’ 등 솔로곡 외에 김창배, 남궁선과 함께 ‘서울타령’, ‘대동강타령’, ‘신농부가’ 및 ‘금강산타령’ 등 민요조의 노래를 많이 녹음했다. ‘포구의 달빛’은 민요 ‘아리랑’이 확장된 가요로 민요적인 선율선을 가진 3/4박자의 노래이다.

포곡성
(노래 : 왕수복 작사 추야월 작곡 이면상/폴리돌레코드. 1936년)
봄바람이 가벼웁게 불고요 붉은꽃이 아릿다이 피는데
이산에 가도 뻐꾹 뻐꾹 저산에 가도 뻐꾹 뻐꾹 뻐꾹새가 날아든다
이산에 가도 뻐꾹 뻐꾹 저산에 가도 뻐꾹 뻐꾹
이강산에 풍년이 드나요 이강산에 풍년이 드나요

봄바람이 버들잎을 날리면 이화도화 빵긋이 웃는 봄
이산에서도 뻐꾹 뻐꾹 저산에서도 뻐꾹 뻐꾹 금수강산 좋을씨고
봄노래하며 뻐국 뻐꾹 짝을 지어서 뻐꾹 뻐꾹
이강산에 풍년이 드나요 이강산에 풍년이 드나요

봄바람이 산들산들 불며는 아지랑이 동산에 오르는데
봄이 왔노라 뻐꾹 뻐꾹 진달래 폈네 뻐꾹 뻐꾹 아름다운 목소리는
언덕에서도 뻐꾹 뻐꾹 산골에서도 뻐꾹 뻐꾹
이강산에 풍년이 드나요 이강산에 풍년이 드나요

원포귀범
(노래 : 선우일선 김주호/폴리돌레코드. 1934년)
어야디야 에헤에헤 어야디여 어허허 어허어허 어야디야 라아 어야 디여라 자차
달은 밝고 명랑한데 어야디여 고향생각 절로난다 어야디여
만경창파 일엽편주 어야디여 순풍에다 돛달어라 어야디여
청천에뜬 기러기난 어야디여 짝을불러 떼떼운다 어야디여
원포귀범에 상고선은 어야디여 북소래만 두리둥둥 어야디여

왜그렁타령
(노래 : 이화자 작사 공자왈 작곡 김준영/폴리돌레코드. 1937년)
후렴)왜그렁 왜그렁 왜그렁 야 왜그렁 성화에 나 못살갔네

1.산천 초목은 청초만한데요 우리나 세상은 요래만 가네
2.사랑아 네 살면 나도 살련만 정들고 못살어 지랄이라네
3.인생백년이 왜그리 길랴만 날마다 해마다 속아서 사네

오대강타령
(노래 : 이난영 작사 김능인 작곡 문호월/오케레코드. 1934년)
북쪽은 압록강 뗏목실어 오는 물 물우에 자고일고 몇밤이러냐
동쪽은 두만강 간도살이 가는 물 고향을 떠나갈 때 눈물은 깊이
서쪽은 대동강 여울경치 좋은 물 모란봉 돌아올 때 갈매기 너울
중앙은 노들강 역사자취 깊은 물 한양성 오백년에 몇 구비졌나
남쪽은 낙동강 곡식 실러 가는 물 이 쌀을 실어다가 님께 드리리

복실러간다
(노래 : 김시훈 작사 야산인 작곡 문호월/밀리온레코드. 1934년)
에야 데야 어여차 두둥 두둥실 배떠나간다
순풍에 날이 맑네 구름이 많아도 어그야 간다
에헤야 어허야 어야 더허야 복실러간다
2.구름에 흘러 흘러 정든땅으로 어그야 간다
3.원포귀범이더니 노를 저어서 어그야 간다

포구의 달빛
(노래 : 최향화 작사 김서정 작곡 김서정/시에론레코드. 1933년)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1. ooo 엥간이 얼마나 멀어 나와 보는 얼굴을 모르나 에헤야 내사랑아
2.포구에 달빛이 자자드는데 우리님 탄배는 안오네 에헤야 내사랑아
3.흐르는 냇물이 희망지으며 우리님 가는곳 간다니 에헤야 내사랑아
4.버들잎 우리님 넘어 흐를까 그리운 임 옆에 가보자 에헤야 내사랑아

◇ 릴테잎에 숨은 반세기 명곡들

김초향(1900~1983)
은 일제강점기 박록주, 이화중선과 함께 정통 동편소리 맥을 잇는 대표적인 여류명창이다. 1900년 대구 성내에서 태어난 김초향은 16세에 대구권번에 들어가 박기홍에게서 판소리를 사사받았으며 후에 송만갑, 이동백, 김창환, 정정열에게서도 판소리를 사사받았다. 20세에 대정권번에 있으면서 대구 남녀명창대회에 참여, 김록주와 자웅을 겨루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고 1933년부터는 조선성악연구회에서 활동하였다. 해방을 전후로 대전으로 이사한 후 평생을 대전에 살면서 사업에 힘쓰면서 함동정월처럼 소리소문으로 찾아온 소리꾼들에게 판소리를 틈틈이 가르치기도 했다. 1983년 대전 대흥동 자택에서 타계했다. 단가 운담풍경은 1963년 대전국악원 성악사범으로 잠깐 소리를 가르칠 때 녹음한 것이다.

이비봉(1917 ~ ?)
이비봉은 일제강점기에 왕성하게 활동했던 서울 출신의 대표적인 경·서도 명창으로, 한성권번에서 유개동을 사사했다. 일제강점기 박부용, 이진홍 등과 함께 남한 출신의 대표적인 경서도 명창으로 특히 이진홍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유행한 사계축 계통의 고제 잡가와 민요를 해방 후 소리꾼들에게 전수한 대표적인 명창이다. 1958년 KBS의 팔도민요녹음을 끝으로 더 이상의 활동기록은 보이지 않으며, 이 휘몰이잡가 ‘곰보타령’은 정봉선과 함께 1958년 팔도민요녹음에 참여해 부른 잡가·민요곡 중 한곡으로 현재 이창배에 의해 표준화된 ‘곰보타령’과는 사설구성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김옥심 명창 유품 릴테잎에 녹음된 곡이다.

성금연(1923~1986)과 이은주(1922~생존)
1923년 광주에서 태어난 성금연은 조명수에게서 풍류와 판소리를 안기옥에게서 가야금산조를 사사받았다. 박상근 산조와 안기옥 산조를 바탕으로 성금연류 가야금 산조를 짠 것으로 알려졌으며 1956년 킹스타레코드사에 가야금산조 한바탕을, 오아시스레코드사에 소년가 등 가야금병창을 녹음하기도 했다.
1922년 경기도 양주 장항면에서 태어난 이은주는 원경태에게 잡가와 시조, 가사 등을 사사한 후 193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한 명창으로 현재 생존해 있으며,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명예보유자이다. 1948년 고려레코드를 시작으로 1950년대에 킹스타, 유니버셜, 오아시스, 도미도, 신세기 등에 많은 경기민요와 잡가를 녹음했다.
성금연과 이은주가 함께 부른 ‘풍년가’와 ‘쾌지나칭칭나네’는 1961년 녹음으로 한주환, 이충선, 이정업, 김윤덕 등 기악 명인들의 반주에 맞춰 부른 것으로 가야금병창이 아닌 기악반주로 부르는 성금연의 유일한 민요 음원이자 경기명창과 함께 한 초유의 녹음이라고 할 수 있다.

묵계월(1921~2014)
경서도명창 묵계월(1921~2014)은 경서도소리의 대표적인 명창으로 최정식, 주수봉을 수학했다. 일제강점기 빅타레코드에 묵계옥이란 이름으로 음반취입을 하기도 했으며, 12세에 소녀명창으로 경성방송국에서 잡가와 민요를 여러차례 방송하기도 했다. 경서도잡가 외에도 삼설기, 추풍감별곡 등 송서 및 시조 등에도 독보적인 능력을 보였으며,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인간문화재로 인정되었다. 2014년 작고했다. 임전화풀이는 원래 신민요가수 이화자의 대표적인 곡으로, 이후 많은 대중가수들이 리메이크했는데, 80년대 이전 경서도소리꾼이 리메이크한 곡으로는 유일하다. 관현악 반주에 맞춘 것으로, 1965년 안비취, 이소향 등과 함께 참여한 신민요 공연실황 녹음 일부로 보인다.

단가 운담풍경
(노래 : 김초향/KMS릴21. 1963년)
운담풍경 근오천(雲淡風景近午天) 소거(小車)에 술을 싣고 방화수류과전천(訪花隧柳過前川) 십리사장 내려가니 넘노나니 황봉백접(黃蜂白蝶) 주루룩 풍덩 옥태창랑 떠오나니 도화로다. 붉은 꽃 푸른 잎은 산영향수를 그림하고 나는 나비 우는 새는 춘광춘색을 자랑한다. 어데로 가자서랴. 한 곳을 점점 내려가니 언덕 위에 초동(樵童)이요 석벽하(石壁下)에 어옹(漁翁)이라. 새벽별 가을 달빛 강심은 꺼꾸러져 수중산천을 이엇난디 편편(翩翩) 나는 저 백구(白鷗)는 한가함을 자랑허고, 은린옥척(銀鱗玉尺) 펄펄뛰고 쌍쌍원앙(雙雙鴛鴦)이 높이 떠 청풍은 서래하고 수파는 불흥(不興)이라.
종일위지소여(終日葦之所如)하여 능만경지망연(凌萬頃之茫然) 이라. 살같이 닿는 배는 양진(陽津) 포진(浦津) 배회로다. 남해팔경 소상동정(瀟湘洞庭) 청풍적벽이 예 아니냐. 구월강산 구경하고 동해로 건너가니 아동방 금수강산 동금강 서구월 남지리 북향산 가야산 속리산을 편답(遍踏)하고, 삼각산을 올라서니 금부용(金芙蓉) 만장봉으 서색(瑞色)은 반공(蟠空)이라. 남산송백은 울울창창 한강유수 호호양양(浩浩洋洋) 춘대일월(春臺日月) 태평기색 만만세지 금탕(金蕩)이라. 주상전하(主上殿下)는 차산수(此山水) 같이 산붕수갈(山崩水渴)토록 성수무강(聖壽無疆)하사 천천만세를 누릴 것이리라 거들거리고 놀아보자

곰보타령
(노래 : 이비봉, 정봉선/KMS릴15. 1958년)
육칠월 청명일에 얽은 중이 시냇가로 내려 온다
그 중이 얽어 찌고 매고 푸르고 찡그리는 바둑판 장기판 고누판 같고 멍석 덕석 방석 같고 어래미 시루밑 분틀밑 같고 청동적철 고석매 같고
땜쟁이 발등같고 진사전 기둥 같고 신전마루 연죽전 좌판 같고 우박맞은 잿더미 쇠똥 같고 눈올 적 가을적 갈 미전 방석같고
활량의 포대 과녁남게 앉은 매미 잔등이 같고 경상도 진상 대굿바리 꿀병 촉궤 격자바탕 근정전 철망같고 변굼보 태굼보같고 문하장전 부지같고 경무청 차관이면 도대방같이 아주 무척 얽은 중놈아 네 무삼 어여쁘고 얌전하고 똑똑한 얼굴이라고 시냇가로 내리지 마라(생략)

풍년가-쾌지나칭칭나네
(노래 : 성금연, 이은주 피리 이충선 해금 이정업 젓대 한주환 장고 김윤덕/KMS릴12. 1961년)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네 금수강산으로 풍년이 왔네
지화 좋다 얼씨구나 좀도 좋냐 명년 춘삼월에 화류놀이 가자
올해도 풍년 내년에도 풍년 연년 연년이 풍년이로구나
지화 좋다 얼씨구나 좀도 좋냐 명년 하사월에 관등놀이 가자
천하지 대본은 농사밖에 또 있는가 놀지 말고서 농사에 힘 씁시다
지화 좋다 얼씨구나 좀도 좋냐 명년 오뉴월에 탁족놀이 가자
저건너 김풍헌 거동을 보아라 노적가리 쳐다보며 춤만 덩실 춘다
지화 좋다 얼씨구나 좀도 좋냐 명년 구시월에 단풍놀이 가자
만경들 너른 들 씨암닭 걸음으로 아기장 아기장 걸어 광한루로 나간다
지화 좋다 얼씨구나 좀도 좋냐 명년 동지섣달에 설경놀이를 가자
봄이왔네 봄이왔네 이강산 삼천리 강산에 새봄이 돌아 왔네
지화 좋다 얼시구나 좀도 좋냐 명년 봄돌아오면 화전놀이 가자
쾌지나 칭칭 나네 노자 노자 젊어 노자
쾌지나 칭칭 나네 어화 청춘 소년들아 백발보고 웃들마라
쾌지나 칭칭 나네 청천 하늘에 잔별도 많다

임전화풀이
(노래 : 묵계월/KMS릴30. 1965년/원곡 이화자)
야 네로구나 응 네로구나 일년은 열 두달 삼백은 예순날
다달이 기다린 네로구나 네로구나 음 네가 바로 네로구나
네가 네가 네가 네로구나 남의 속 지긋지긋이 태워주던 응 네로구나

야 네로구나 응 네로구나 달래면 뽐내고 성내면 토라져
말썽을 부리던 네로구나 네로구나 음 네가 바로 네로구나
네가 네가 네가 네로구나 남의 속 구석구석이 태워주던 응 네로구나

야 네로구나 응 네로구나 올때는 웃기고 갈때는 울리며
성화를 부리던 네로구나 네로구나 흥 네가 바로 네로구나
네가 네가 네가 네로구나 남의 속 바삭바삭이 태워주든 응 네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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