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명 글에서 :
보은의 민요 제작자 노한나는 2003년 <옥천의 소리를 찾아서>음반과 책자, 2005년 <영동의 민요> 시디 5장 해설집 세트를 제작하였고 그동안 민요에 대한 기초자료가 매우 부족한 충북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민요조사자이다.
이 음반은 제작 및 조사는 노한나, 발간은 보은문화원이 담당하였다.
이번 4장으로 출반된 보은의 민요는 충북 남부권에서 전승되고 있으나 기록된 적이 없는 논농사 일노래가 마을별로 폭넓게 조사되었으며, 남도의 강강술래와 견줄 만한 여성들의 대동놀이로서 '너리기펀지기'가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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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서에서: 지면 관계로 일부만 실었습니다.
발간사
보은군은 오랜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충절의 고장이요, 청정지역으로 잘 보전된 아름다운 고장이다.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법주사, 삼년산성 등 찬란한 문화유산과 근대 시민운동의 모태인 동학운동의 본거지로 역사의 현장이 느껴지는 곳이며,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보고(寶庫)와 같은 지역이다. 보은문화원은 이러한 물려받은 유산을 잘 보존할 뿐만 아니라 오늘에 맞게 계승 발전하려는 사명감을 가지고 꾸준히 각종 주민 사업과 민속 자료 발굴 및 출판, 다양한 공연 문화 활동을 펼쳐 오고 있다.
문화원이 추구하는 이러한 지역 문화 보존 및 연구활동의 하나로, 멀티미디어 시대로 급변하고 있는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에게 좀더 가깝게 민속문화에 접근할 길을 열기 위하여 이 음반이 기획되었다. 서양의 음악문화가 들어오기 이전에 산과 들에서 옛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들이 들어 있는 이 음반이 자라나는 세대에게 지역적 전통을 전수하며, 지역문화 연구자들에게 소중하게 쓰이길 바란다.
민요는 한정된 시공간 안에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온 소중한 생활문화 및 국문학적, 음악적 자료이다. 이 안에는 계절의 흐름에 따라 자연과 화합하고 또 투쟁하며 일의 효율을 위해, 삶의 즐거움을 위해, 일하고 노래하며 살았던 삶들이 오롯이 들어 있다. 여러 가지 조사 및 기록의 어려운 점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귀중한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쏟아 지역 문화에 헌신해주신 노한나․노미란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다양한 지역적 전통이 주목받고 있는 시기에 자긍심을 가지고 우리 자신이 가진 것을 보듬어야 할 때이다. 이 음반이 지역 전통문화의 지난 날을 기록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지역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자양분이 될 것을 진심으로 바라 마지 않는다.
보은문화원장
김 건 식
보은군 보은민요 개관
노 한 나
보은군
보은군은 충청북도의 남동부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영토확장을 위한 신라의 전략적 거점이었으므로 보은에는 이 시기 축조된 산성과 관련 유적지와 전설, 연관된 마을 이름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근세에는 동학의 마지막 전쟁이 옥천 청산을 거쳐 보은읍 종곡리 북실에서 마감되었던 과거가 있다. 이후 교통이 발달하고 산업화가 이루어지며 행정구역이 여러 차례 변화했지만 보은군을 포함한 충청북도 남부 지역은 현재까지도 비교적 동일한 문화권으로 파악되고 있다. 보은군은 동으로는 경북 상주시, 서쪽은 청원군, 남쪽은 대전시와 옥천군, 북은 상주시와 괴산군, 청원군과 닿는데, 고려 시대까지 경상도 상주목에 소속되었던 사실에서 보듯이 인접 지역 중 경상도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보은군은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온 높은 준령 사이에 자리한 분지 지형이며, 금강의 갈래인 보청천(報靑川)이 군의 중심부인 보은읍을 가로질러 흐르는데 이 주변이 이름난 최대 곡창지대를 이루며 인구밀도도 보은읍내 형성된 시가지와 함께 높은 편이다. 벼농사로 인한 수익이 줄어든 지금은 속리산 문장대(1,033m), 천황봉(1,057m) 등 잘 보전된 국립공원이 관광지로 이름나 있으며 보은군의 경제활동은 속리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의 전체 면적은 584.47㎢이며 경지면적은 임야의 4분의 1에 불과하고 경지 중 논이 52.51㎢, 밭이 63.12㎢로 논농사가 좀 적은 편이나, 세종실록(1454년)에서 논이 밭의 3분의 1을 넘는 정도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논을 계속 확장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높은 산지가 많아 보은군은 산악지역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지만, 보청천이 흐르는 보은읍은 군내 논면적의 21%를 차지할 정도로 평야가 넓어 충북 남부권에서는 경제적으로 그동안 가장 윤택한 지역이었다. 이 넓은 들을 중심으로 하여 두레가 성하였으며 각종 민속문화가 활발하게 전승되었다. 이에 비해 내속리면과 회남면 등은 산지가 많아 총면적에 비해 경지면적이 매우 좁은데, 1975년 대청댐 수몰 이후에는 과거 회인현이었던 회남 회북 인구 감소폭이 크다.
보은군의 인구는 1454년 간행된 세종실록에 보은현이 327호 1,457명, 회인현이 146호에 633명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근대적 인구조사가 실시된 이후 파악된 바로는 1968년 113,709명으로 최고치를 이루다가 2007년 현재 36,068명으로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인구 이동의 충격으로 자연 마을들이 해체와 통합을 이루고 있으며, 주민의 고령화라는 사회 변동을 맞고 있다. 이로 인한 세대간의 단절과 마을 문화의 쇠퇴로 인하여 가치있는 지역 문화 자산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보은군의 이름은 신라시대에는 삼년산성이 있어 삼년산군(三年山郡)으로 불렸으며, 고려시대에는 경상도 상주목에 소속된 보령군(保齡郡)이 되었고, 서울이 개성에서 한양(漢陽)으로 옮겨지면서 서울 주변인 경기 지역이 확장된 조선초부터 충청도에 속하였다. 이후 1416(태종 16년)년에 보은(報恩)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906년에 청산현 주성면(朱城面)을 편입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회인(懷仁)을 편입하여 1읍 10면이 된 오늘에 이른다.
보은민요
보은군의 민요는 보청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넓은 평야 인근 마을의 논농사 일노래가 가장 풍부하게 전승되고 있으며 이 마을들의 노래는 사설과 가락에서 많은 공통점을 보인다. 전형적인 선후창 방식으로, 이른바 경상도 정자소리 계통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지역에서 가장 풍부한 일노래의 기반인 논농사의 순서를 살펴보면, 기계화 이전 시대는 지금보다 대체로 한달쯤 늦어서, 설이 지나고 춘분(양력 3월 21일경) 전후 해동이 돼 땅이 물러지면, 봄보리 파종과 논갈기로 농사를 시작한다. 논은 한 번 갈고 나서는 흙을 햇볕에 태워 땅이 썩도록 하고 덩어리가 물러지라고 열흘쯤 두었다가 다시 간다. 처음 가는 것을 ‘아시 간다’고 하고 보통 세 번을 가는데 논 한 번 가는 것이 요즘 비료 한 번 주는 것이나 같으므로 인력이 있으면 그 이상 갈 수도 있다. 논을 갈 때는 부르는 소리가 따로 있지 않고, 소를 몰면서 소모는 간단한 구호를 외친다.
논에는 거름으로 산에서 ‘갈비’라고 부르는 가랑잎을 긁어오거나 낫으로 쳐서 닿을 만한 거리에 있는 새파란 참나무 순, 냇가 버드나무 순 등을 꺾어 넣는데 이를 ‘참풀 꺾는다’, ‘모풀한다’고 한다. 갈비를 겨우내 땔감으로 모두 긁어다 써 버린 경우에는 양이 부족해서 주로 나무순을 넣게 된다. 모풀할 때와 가을에 나무하러 가서 하는 소리로 ‘산타령’, ‘지게 목발 두드리는 소리’가 있는데 대개 자기 신세타령하는 처량한 내용으로 부른다.
그 다음으로 논에 물을 대고 써레로 논을 삶는, ‘건삶이’를 한다. 볍씨 담그기는 청명(양력 4월 5일경)쯤 하게 되어 곡우(양력 4월 20일경) 전에 못자리가 끝나고 소만(양력 5월 21일경) 때 모심기를 시작해서 망종(양력 6월 6일) 전에 끝낸다. 같은 지역 내에서도 산골은 평야보다 모심기가 늦어지기 때문에 평야 지역 사람들은 ‘산골 농사는 망종에 바가지 띄우고 모심는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물이 부족하면 하지(양력 6월 22일경) 즈음에도 모를 심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늦모라고 하며, 늦모는 벼가 자랄 시간이 짧아 소출이 적어진다.
모심기 철이 돌아오면 두레를 구성하여 일을 시작하게 되는데, 아침에 마을 둥구나무께로 모여서 풍장을 치고 기를 앞세우고 들로 나가서 모찌기를 하고, 찐 모를 가지고 모를 심으러 간다. 두레가 움직이는 길에서 다른 패를 만나게 되면 형님 아우를 따져서 서로 기를 숙여 인사하는 기세배를 요구하고 상대가 이에 응하지 않으면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도 흔했다. 아침과 새참, 점심과 새참, 늦는 경우는 저녁까지 논주인이 끼니를 대어주며 일을 마치는데 참이 오고 가는 과정이 노래에 자주 등장한다. 모를 찔 때와 모를 심을 때 소리를 하는데, 큰 마을은 일꾼이 많으므로 북을 치고 선소리를 하는 사람이 하나씩 있어서 패를 끌고 가지만, 작은 마을은 수가 적어 선소리꾼도 같이 모를 심으면서 소리를 하게 된다.
모찌는 소리는 하루중 일을 시작하는 일부 시간만 부르기 때문에 소리 자체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지 않고 있더라도 짧고 가사가 단순하며, 모심는 소리와 같은 방식으로 앞사람의 사설과 가락을 그대로 뒷사람이 따라 부른다. 보은읍 풍취리 마룻들, 산성2구 잣미에서 채록된 모심는 소리는 모두 앞 사람이 부른 사설과 가락을 그대로 반복하여 부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모심는 소리는 아침, 점심, 저녁에 따른 전형적인 사설이 발달해 있는데 보은읍 풍취리 마룻들의 노래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마을에 따라 들어올 때는 칭칭이를 부르는 경우, 풍장을 치는 경우가 있다. 칭칭이는 백중 무렵 물가로 천렵가서도 많이 불렀다는 예에서 보듯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잔치나 흥겨운 판에서는 어디서나 많이 불렀다.
모를 심고 나서 스무날에서 한 달 가량 지나면 논에서 자란 풀을 솎기 위해 호미로 초벌매기를 하는데 ‘아시매기’라 부른다. 아시매기를 마치고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두었다가 물에 뜬 풀을 걷어내기 위해 손으로 두 벌을 매는데 이를 ‘이듬매기’라 한다. 용어의 표준화를 위해 이 음반에서는 이 두 가지 논매는 소리를 ‘초벌매는 소리’, ‘두벌매는 소리’로 이름하였다. 논매는 소리는 초벌매는 소리와 두벌매는 소리가 분화된 지역도 있으나 두 번 다 같은 노래를 불렀다고 하는 마을도 많다. 많은 마을에서 줄모를 심으면서도 노래를 불렀다고 하나 산외면 장갑리 최재수(2000년 당시 81세)의 말처럼 줄모는 ‘일절 말이 없이’ 줄을 띄우고 빨리 심어야 하기 때문에 산식(줄없이 마구 심는 모)으로 모를 심을 때만 소리를 할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는 왜정 때 산식으로 모를 심어 놓으면 왜경이 와서 모를 마구 뽑고 엉덩이를 걷어차고 하여서 줄모로 바꾸게 되었다고 하였다. 줄모는 일제 시대 때 수확의 증대와 효율를 위해서 일괄적으로 강요되었는데, 획일적인 줄모의 도입은 기계화 이전부터 모심는 소리가 약화된 이유 중 하나로 짐작된다.
두벌매기가 끝나면 일주일 정도 물을 빼서 논을 말리고 또 다시 물을 대기를 반복해서 풀이 자라지 않게 하고 벼가 자라 이삭패기를 기다린다. 늦게 심었다고 해도 백로(양력 9월 8일경) 때까지 이삭이 패지 않으면 그 뒤로는 추워서 더 이상 이삭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그해 농사는 헛일이 된다. 한로, 상강에 추수를 시작해서, 볏단을 20일 이상 세워 이삭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마당에서 멍석을 깔고 탈곡을 했다. 탈곡은 나무를 엮어 만든 개상에 볏단을 두드리는 개상질, 발로 돌리는 탈곡기를 함께 썼는데 탈곡기가 일반화되면서 점차 효율이 낮은 개상은 안 쓰게 되었다.
논농사 외 일노래로는 집을 짓기 위해 땅을 평평하게 고르고 들독이라 부르는 큰 돌을 줄에 묶어 내려치면서 땅을 다지는 집터 다지는 소리가 있는데, 중장비를 동원하기 전 건물의 집터를 다질 때 해 봤거나 들었던 기억을 살려서 불렀다. 보청천 제방의 둑을 쌓는 등의 큰 공사가 있었던 지역에서는 목도소리가 채록되었다. 가장 최근까지도 현장에서 연행되는 장례의식요 상여소리와 관을 내리고 회를 뿌린 후 무덤을 다지는 소리 달기호 역시 다수 채록하였다.
충북 지역은 조선 후기 유교 문화가 성하였던 이유로 국내 다른 지역에 비해 남녀간의 내외와 같은 유교적 전통이 뚜렷이 살아 있는 편인데,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보은군에서는 여성의 일노래가 다양하지 않다. 다기능요로 볼 수 있는 방아타령과 시집살이의 설움을 노래한 시집살이 노래가 가장 많이 나타나며, 베틀가 2곡, 물레를 돌리면서 부르는 명잣는 노래가 한 곡 채록되었다.
아이들 노래는 여러 마을에서 다양한 노래를 채록하여 음반 말미에 수록하였는데, 인근 옥천과 영동군, 충남 금산과, 전북 무주에서도 나타나는 ‘너리기펀지기’가 특기할 만 하다. 이 지역에서는 강강술래가 제창의 형태로 더러 나타나기도 하는데, 너리기펀지기라는 이름의 군무가 좀더 일반적으로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어린 아이들의 놀이이기도 하나, 혼인 전의 처녀들이 중심이 되어 많이 놀았다는 것을 볼 때 남도의 ‘강강술래’와 비슷한 점이 많아 상당히 주목된다. ‘너리기펀지기’는 놀이이자 노래로서 단독으로 행해지기도 하나, 동애따기 등의 다른 놀이들과 함께 하는 경우가 좀더 많다. 이 노래를 기억하고 연행할 수 있는 가창자가 너무 연로하여, 온전한 노래를 부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매우 아쉬웠다.
아이어르는 노래로는 자장가, 도리 도리, 불무 불무, 달강 달강 등을, 아이들 노래로는 다양한 놀이 노래, 곤충과 식물 노래를 채록하였다. 별헤는 노래 중 내북면 동산리 새터에서 나온 ‘빌하나 따서 종지 담아 솥에 넣고 열고 닫고’, 보은읍 종곡리 안북실의 ‘달두 달두 밝다’의 경우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가사가 주목될 만 하다.
채록된 자료를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보은군 민요 분류>
논농사 노래
1. 모찌는 소리
2. 모심는 소리
3. 논매는 소리-초벌매는 소리
4. 논매는 소리-두벌매는 소리
기타 일노래
1. 집터다지는 소리
2. 목도소리
서사 노래
1. 베틀노래, 명잣기
의식노래
1. 장례의식 노래-상여소리, 달기호
놀이노래
1. 집단가무 - 칭칭이
2. 잡기(雜技) - 화투
3. 시집살이노래 - "성님 성님 사촌성님" 등
4. 각종 타령 - 방아타령, 범벅타령, 산타령 등
5. 기타 - 정선아라리, 환갑노래 등
아이어르는 노래
1. 자장가
2. "둥기 둥기"
3. "쥐암 쥐암"
4. "불무 불무"
5. "달강 달강"
6. 배아플때 - "에미 손이 약손이다"
아이들노래
1.놀이를 하면서-소집단놀이, 그네뛰기, 다리세기, 물놀이, 주술놀이, 말놀이 기타
1) 소집단놀이 - 너리기 펀지기, 동애따기
2) 그네뛰기- 그네를 뛰면서 부르는 노래
2) 다리세기 - "이거리 저거리"
3) 물놀이 - 몸의 물기를 털면서 부르는 노래, 귀에 물빼면서 부르는 노래 등
4) 주술놀이 - "춘향아 춘향아"
5) 말놀이 - “질루 질루 가다가”, “또랑골 양반이”
6) 기타 - 모래집짓기, 숨바꼭질, 황새씨름, 어깨동무
2. 곤충과 식물
1) 곤충 - 방아깨비, 잠자리, 풍뎅이
2) 식물 - 나물 노래, 고사리, 감나무, 콩볶기, 대추
3. 동물
1) 조류-새쫓는 소리, "새야 새야", 꿩, 황새, 부엉이, 산비둘기, 제비
2) 기타-뱀쫓는 소리, 이빠졌을 때 하는 소리
4. 천체, 날씨-별, 해, 달, 비오지 말라고 부르는 노래
5. 놀리기 - 이 빠진 아이 놀리는 노래
6. 기타 - 이 빠졌을 때 하는 소리, 눈에 티 들어 갔을 때 하는 소리
<조사와 편집 개관>
이 음반의 현장조사는 2003년 <옥천의 소리를 찾아서>와 2005년 <영동의 민요>를 출반한 옥천 군남초등학교 교사 노한나와 영동 양강초등학교 교사 노미란이 맡았다. 민요조사와 관계된 자문과 지도는 충북 청주에 있는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 문재현 소장이, 재정은 보은문화원이 지원하였다.
이 음반에는 마땅한 제보자를 찾을 수 없었던 외속리면과 회북면을 제외한 보은군내 9개 읍면 14개 마을에서 민요 114곡이 채록, 녹음되었다. 민요 가창자를 찾기 위한 기초 자료로는 1994년 출판된 충북민요집과 1995년 출반된 한국민요대전, 보은군지와 각종 향토자료를 주로 참고하였다. 그러나 기존 자료는 가창자 소재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읍면사무소를 방문하여 마을의 민요 문화가 아직 남아있는 곳을 탐문하였고 마을별로 전화조사를 통하여 우선적으로 가창자를 섭외하였다. 마땅한 지역이 드러나지 않은 경우에는 읍면 중심지역에 형성된 마을을 직접 방문하였으나 찾아간 마을 수와 발품에 비해 노래가 나온 경우는 많지 않다.
민요조사의 현장에서는 이제 몇 남지 않은 가창자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여러 가지 노래를 한꺼번에 풀어놓기 마련인데, 그것을 온전히 형체를 갖춰 세상에 내놓는 것은 전적으로 조사자의 몫이다. 조사자의 부족함으로 음악과 글로 제대로 끌어내놓지 못해 지금을 사는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사라져가는 소중한 옛 노래들이 더 있을 듯하여 늘 안타깝다.
채록된 주요 마을과 조사 날짜는 다음과 같다.
■2000년 5월 7일 내속리면 상판리
■2000년 5월 27일 삼승면 달산리 달미, 우진리 우진부리
■2000년 7월 30일 산외면 장갑1구 안나맥이
■2003년 1월 7일 내북면 동산리 새터, 수한면 묘서리 물안이, 보은읍 풍취리 마룻들
■2006년 3월 26일 보은읍 종곡리 안북실
■2007년 1월 22일 마로면 기대리 기대, 세중리 안골
■2007년 1월 24일 탄부면 성지리 망지
■2007년 1월 25일 회남면 금곡리 세실
■2007년 1월 26일 보은읍 산성2구 잣미
■2007년 1월 27일 보은읍 신함2구 감동리
곡 편집과 표기에 대한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선곡 기준
같은 종류의 노래라도 지역과 가창자에 따라 조금이라도 다르게 부른 것은 모두 수록하였다.
가사가 옛 것으로 가치있다고 짐작되면 가락이 오래된 것이 아니어도 수록하였다.
가창자가 여러 번 부른 곡은 녹음 상태가 좋은 것을 골랐다.
2. 곡 편집
노래 중간과 끝에 현장 소음이 맞물린 것은 현장 분위기를 고려하여 그대로 둔 것도 있다.
분명히 잘못 부른 것은 잘라냈다.
3. 곡명 표기
한 지역에서 같은 제목의 노래가 두 곡이상 수록될 때는 1, 2, 3 순으로 구분하였다
(예 : 칭칭이 1, 칭칭이 2)
같은 곡명으로 수록되는 노래는 혼동이 없도록 부제목을 달았다
(예 : 논매는 소리-초벌매는 소리)
흔히 부르는 곡명이 있을 때는 그것을 우선으로 하고, 곡명이 뚜렷하지 않을 때는 현지에서 쓰는 곡명을 썼다. 그 밖의 노래는 첫 소절의 가사를 “ ”속에 표기했다.
4. 가창자 표기
가창자는 이름, 성별, 나이를 표기하되 나이는 녹음일 당시 기준이다.
한사람이 앞소리를 메기고 여러 사람이 뒷소리를 받는 경우는 앞소리꾼을 중심으로 했다.
5. 사설 표기
사설은 들리는 대로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서 될 수 있는 대로 어법에 맞게 적었다.
띄어쓰기는 일반적인 표준말 어법에 맞추었다.
앞뒷소리가 구분되는 소리는 뒷소리의 첫부분을 일정 정도 들여썼다.
후렴없이 혼자 부르는 노래라도 절이 구분되는 것은 절과 절 사이를 한 줄씩 떼었다.
충청도 지역은 기존의 양반 고을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민중문화유산의 전승이 매우 미미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 지역으로 민요는 존재 유무조차 학계에서 무관심했던 지역이다. 하지만 최근 충북 옥천, 영동, 보은의 현존 민요가 속속 출반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지역 민요에 대한 기초자료를 기반으로 한 연구와 전통의 재생산이 기대되고 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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