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코리아가 찾은 한국의 ‘소리’
이제 OST음반에 담아 다시 시작합니다.
여기 소리가 있다.
이 땅의 소리결을 지키는 사람들.
그들의 품에 담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소리들,
제대로 존대 받지 못했지만 누구도 도달할 수 없는 대물림의 소리가 있었다.
그들을 만난다. 거기에 소리가 있다.
작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HDTV용 영상콘텐츠 기획안 공모가 있었다. 수 백 편의 작품 가운데 ‘소리’가 선정됐고,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이 땅 우리의 마지막 소리를 잇는 소리꾼을 위한 프로그램 ‘소리’의 시작이었다. 이 ‘소리’는 2003년 3월 5일 부터 KBS 76주년 공사창립 3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로 방송되고 이제 이 소중한 소리가 작은 음반에 담겨 보존된다.
제작기간 8개월. 그들의 고집스런 삶과 예술에 혹 누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큰 두려움을 안은 채 김일중, 김양래, 진옥섭, 곽윤일 PD 등 KBS 굿모닝 코리아 가족들 모두가 한 마음으로 매달린 시간이었다. 그때 우리는 진정한 ‘소리’를 아는 명인 다섯을 만났다.
고집스런 소리만큼 어려웠던 기록들
그들의 고집스런 인생만큼이나 어려운 순간들도 많았다. 사전답사와 조사, 구성안을 위한 릴레이 회의를 거쳐 본격적인 기록의 작업이 작년 날씨조차 추운 11월에야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HDTV용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HD중계차 등의 전문 장비를 동원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여타 프로그램보다 손이 가는 부분이 많다. 대부분 현장을 연출 없이 그대로 담아야 하기 때문에 조명이나 음향문제는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HDTV 중계차로 굿을 녹화할 때 모두들 진저리를 쳤다. 굿의 속성상 한 두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장장 열두 시간이상이 걸리니 스텝들의 고통은 말이 아니었다. 한낮에 시작한 녹화가 다음날 새벽 5시가 넘어서 까지 진행되었다. 11월의 밤, 남해 바다 섬에 불어오는 바람에 살이 에이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어려운 점은 우리의 주인공들이 모두 7,80을 바라보는 고령이라 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송구스런 일이다. 맨 얼굴이었던 김수악 선생을 촬영하려다가 쫒겨 나기도 하고, 화장을 하는데 두 세시간이 족히 걸리니 얼마나 조급증이 났든지....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촬영 막바지에 한승호 선생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버린 것이다. 거의 한 달 이상 걸리는 촬영 때문이 아닌가 하는 걱정으로 한 PD는 자책감으로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주인공은 그들의 격동적인 삶 만큼이나 꿋꿋한 모습으로 제작팀을 만났고, 혈기방장한 젊은 스텝들을 도리어 부끄럽게 하였다.
진정한 ‘소리’를 아는 명인 다섯
늘 “내 굿은 멋이 없어라우.”라고 말하는 죽은 자를 위한 산 자의 어머니, 채정례(79세). 서편제의 마지막 거두, 화려한 시절의 고독한 광대, 한승호(81세).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청송 심씨 일가의 마지막 예인, 잊혀진 가문의 마지막 중고제, 심화영(91세). 그 구순의 나이에 쑥대머리를 부르던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진작 좀 오지.”
그의 구음이면 ‘헛간의 도리깨도 춤을 춘다’ 는 춤을 부르는 소리꾼 김수악(80세). 남해안 별신굿의 마지막 피리잡이 정영만(48세).
그러나 이번 음반에는 다섯 분 모두의 소리를 다시 담을 수 없어 매우 송구스럽다. 후일 김수악 선생의 전모를 알 수 있는 독집앨범으로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고 있다.
이 다섯 사람의 숨은 명인들을 위한 작은 노력이 있었다. 2002년 국악대상 작곡상을 수상한 작곡가 김대성의 노력이다. 우리들의 소중한 명인들을 위한 헌정곡 열두 곡을 새로이 만들어 이 뜻깊은 행보를 담아내고자 했다. 이 다섯 사람의 질박한 삶과 예술을 진솔하게 다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도리어 이런 작업들이 도리어 그 분들이 평생 쌓아온 예술세계에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안고서....
이제 두 살배기 KBS사내기업 굿모닝코리아. ‘소리’는 대한민국 유일의 전통문화 전문 프로덕션 ‘굿모닝코리아’의 첫 기록물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가감 없는 우리 문화 현장을 기록할 것이다. 3월 5일 첫 편으로 채정례 선생 편이 방송되자마자 새벽 한시가 넘는 시간에 울려오는 전화벨 소리에 깜짝 놀랐다. 격려가 담긴 충언과 애정이었다. 박수를 받을 분은 분명, 올곧게 우리 것을 지켜온 분들이다. 우리 문화의 원형을 지켜오신 분들에 대한 박수. 그들에 대한 찬사가 도리어 우리의 첫발에 보내주는 아낌없는 박수가 된 것이 황송하고 무감할 뿐이다. 그리고 이번 음반이 이 다섯 분을 언제까지나 기억하고자 하는 기록이고, 그 분들의 삶에 대한 헌정이다.
2003년 6월
KBS 굿모닝코리아 대표
프로듀서 최공섭
작곡가의 辯
KBS 다큐멘터리 ‘소리’의 음악을 만들면서
김대성(작곡가)*
이 곡들은 2003년 1월초 KBS 다큐멘터리 제작팀으로부터 한국의 명인들을 위한 방송음악 위촉을 받고 작곡・편곡한 곡들이다. 새로 작곡한 곡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동안 발표하지 않았던 곡과 발표했던 곡을 새롭게 편곡하기도 하였다.
이 음반 전반에 깔려 있는 정서는 명인과 이 땅을 사는 민초들의 한(限)이다. 굴절된 역사 안에서 깊은 한을 쌓아온 명인들의 삶은 나의 1991년부터 시작된 민요현장연구(땅밟기)를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했던 바이며 나의 음악을 그리는 심정적인 모태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한이 한에서만 머문다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그들의 한속에 숨어있는 희망, 고귀한 신명, 현실을 넘어 설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향수 등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정서를 표현함에 있어 나는 음악적으로 전통적인 국악어법을 넘어 직접적인 감흥을 위한 대중적인 음악어법과 양악과 한국음악의 2분법적인 도식이 아닌 우리음악과 양악의 장점이 서로 용해되는 형태의 음악을 지향하였다.
나는 이 음반의 곡들이 매우 솔직하게 나를 표현한 것 같아 기쁘다. 일반적으로 현대의
예술음악 창작이 자신을 과장하거나 미지의 어떤 것을 탐구하는 작위적인 자세로 작업을
하게 하는데 비해 이 곡들은 나를 과장함 없이 쉬운 음악어법으로 표현하고 있어 어쩌면
이 음반의 곡들이 가장 나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음반을 듣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여유 있게 이 음반의 ‘한’과 ‘느림’과 ‘여림’을 감상해 준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
*김대성(1967 ~ )
- 이건용(1947~)으로부터 작곡 사사(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작곡과 대학원 졸업)
- ’99 교향악 축제에서 ‘사물놀이와 관현악을 위한 터벌림’ 발표(1999)
- 제6회 뮤지컬 대상 시상식에서 작곡부문 대상 수상(스포츠 조선 주최)(2000)
- KBS 국악관현악단 주최 국악관현악 작곡 공모 관현악곡 ‘열반’으로 대상 받음(2001)
- 2002년 KBS 국악대상 작곡상 수상
현 서울대, 중앙대 강사, 민족음악 연구회 회원
프로그램 해설
삶을 다 바쳐 소리를 지켜온 다섯 예인
채정례, 죽은 자를 위한 산 자의 어머니
진도의 단골 뼈대의 마지막 마디
"내 굿은 멋이 없어라우"
진도대교를 넘어온 씻김굿은 춤으로 음악으로 또한 연희로서 하나 빠짐없이 잘 갖추어져 이제 우리 예술을 대표격이 되었으며 각종 공연에 참가하고 있다. 진도의 씻김굿은 확실히 우리 전통예술에 기폭제가 되었고, 학술적으로는 굿 속에서 가무악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것을 실증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진도 현장에는 씻김굿이 달라져 가고 있다. 예전 씻김굿 판이 사라지는 것이다. 우선은 세월이 변하여 사람이 죽어도 씻김굿을 벌이지 않는 것이 원인이지만, 설령 벌인다 하더라도 지금은 씻김을 제대로 할 단골(무녀)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진도 굿을 찾는 이들은 채정례의 굿판을 기다린다. 유일하게 예전 같은 굿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늘 "내 굿은 멋이 없어라이"라고 말하지만 그녀의 굿은 옛 영화롭던 진도굿을 그대로 전하는 유일한 단골이다. 1925년 하의도에서 나서 할머니의 고향 진도로 이주하여 진도의 영향력있는 무가로 성장한 채씨 가문에서 굿을 익혀 지금가지 진도굿을 지켜오고 있는 분이다.
단골이기에 앞서 열 두 남매를 키워온 어머니로서의 풍채가 빛나는 단골인데, 그녀의 굿판에는 그 모성이 두드러진다. 저승사자를 달래는 사자상의 떡들을 떼어 구경꾼을 먹이는 정성도 좋고 긴 제석굿을 풀어놓는 성음이 일품이다.
사실 오늘날 진도 씻김굿의 상징이 된 흰 고깔은 원래 제석굿에만 쓰던 것이었다. 제석의 출처가 불가의 기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제석은 불교의 신으로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이 땅에서 호국신으로 섬겨지다 12세기 무렵에는 무속화 되며 수명장수 부귀공명을 주는 현세 구복적인 신으로 변모하였다.
이 오랫동안 구송되어 음악적인 짜임새도 가장 완벽한데 채정례 선생의 제석굿은 80세 노 단골의 곰삭은 수리성으로 천하일품이다. 남편 함인천의 징과 조카 강정태의 장고로 단촐한 구성이지만 이 세분의 굿이 벌어지면 죽은 자의 잔치에서 산 자를 달래는 음악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소리로 유명했던 진도 삼례(조공례, 채정례, 김대례)가 모두 소리를 잃었고 이제 유일한 진도 옛 소리꾼이 되었다.(조공례 사망, 김대례 선생은 목이 가라앉음)
한승호, 화려한 시절의 고독한 광대
서편소리의 마지막 거두 한승호
"나 적벽강에 불지르러 가네"
상성으로 노는 소리는 송만갑이 으뜸이고 엄격하고 용서 없기로는 김창환이 으뜸이고 목청 크고 호령 잘 하기로는 이동백이 으뜸이요 오장육부 긁어내리기는 김채만이 제일이라. 김채만의 소리를 흔히 '광주판 서편제'라 하는데, 역사에서 그 소리를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제자들인 박동실, 공기남, 조상선, 임소향, 그리고 가야금의 정남이가 월북 때문이었다.
한승호는 일생을 여행하여 김채만의 소리를 찾아낸 사람이었다. 서울 정릉에 변변한 제자를 두지 않고 은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는 한승호, "캄캄한 밤 혼자서 산길을 가는 심정"으로 노독이 가득 찰 때까지 소리를 찾았다. 그리고 지금 치밀한 목구성과 탁월한 엇붙임, 아귀성 살쇄성, 각구녁질, 오로지 한승호를 설명하는 데에만 쓰이는 말품이 생겼다.
그러나 그가 간 길이 너무나 멀었기에, 그가 이룩한 소리가 너무나 어려운지라, 정릉에 자리한 그의 전수소에는 드나드는 사람이 없다. 특히 오늘날 판소리가 류파를 강조하고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변하여 보다 쉽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소리가 그나마 음지에서도 양지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소리는 음지 속의 그늘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소리에 열중하는 메니아들은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한승호의 소리가 진정한 소리라고.
예전 임금님들이 소리 광대를 찾던 시절, 소리꾼에게 관직을 하사하던 시절, 손가락질 당하는 광대의 꿈은 신분을 변화시키는 국창의 꿈이었다. 그러나 그 길은 양반가에 정승판서 나기보다 더 힘든 길이었다. 신분을 바꿀 수 잇는 유일한 길, 하여 일생을 바쳐 소리를 터득해 나갔던 꾼들, 그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언제부터 소리의 제작은 끝이 나고 오로지 전수와 답습만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 길목에서 한승호는 자기만의 소리를 개발했다. 그러나 선배 시절에 비하여 귀명창이 사라진 시대에 득음에 도달한 비운의 소리꾼이지 모른다. 그런 연유로 변변한 제자 하나 따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의 공연을 보면 정녕 소리의 이상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해 준다. 그의 적벽가는 정말 적벽강에 불이 나는 것 같다. 공연 갈 때는 "적벽강에 불지르러" 간단다.
심화영, 잊혀진 가문의 마지막 중고제
내포 땅 최고의 예맥 청송 심씨일가의 마지막 예인
"진작 좀 오지"
심화영(沈嬅英, 1913- )선생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청송 심씨 일가의 예맥을 잇는 마지막 사람이다. 아버지 심정순(沈正淳, 1873-1940?)은 소리꾼이며 율객으로 1910년대의 장안사의 간판 스타였고 일찌기 신소설을 쓴 이해조는 아버지의 판소리를 각색하여 강상련(심청가), 연의 각(흥보가), 토의 간(수궁가)을 썼다. 이런 아버지의 예술은 가야금산조와 병창에 탁월한 명인이었던 사촌오빠 심상건(沈相健, 1894-1965)에게 이어졌다. 오빠 심재덕(沈載德, 1899- )도 중학교를 나온 후 음악에 빠져들어 사촌형인 심상건을 통해 아버지의 예술을 배워 일가를 이루었고 언니 심매향(沈梅香, 1907-1027) 또한 가야금산조와 소리로 이름이 났었다. 이 가족의 마지막 예인이 심화영 선생인데, 그녀에게서 충청도의 춤과 중고제 소리의 마지막이 있는 것이다.
선생은 열여덟에 어머니를 호강시키고자 기녀의 길을 선택했다. 문턱이 닳게 집안을 드나들던 떠도는 율객들이 스승이 되었다. 옛 아전출신인 김모 할아버지에게 수덕사의 말사인
뒷절에서 한 일주일 정도 평조를 배웠고, 방모 씨에게 심청가를 배웠다.
20세 때 큰오빠 심재덕의 소개로 청진에서 소리 선생을 했다. 서도민요도 했고, 방송국에도 출연하였다. 때때로 권번에서 주최하는 '수재구호 기금마련' 공연 등 권번에서 주최하는 공연에 참가해 승무도 추고 이도령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일제가 패색이 완연해지자 총대도 잡고 등짐을 매고 토굴공사에 동원되기도 했다.
가족들의 권유로 서산에 내려와 33살에 동갑내기 서산에서 농악대의 상쇠를 하는 동갑내기 송운석과 결혼하여 가정을 가진 후 식당을 경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후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이들에게 춤이나 가야금을 가르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뒤늦게 역사를 뒤적인, 고음반을 들춘 학자들에 의해서 발굴되어 뒤늦은 존대로 2000년 1월 11일 충남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이제 아흔이다. 취재 중 그랬다. "진작 좀 오지"
강산제일의 구음, 김수악
춤을 부르는 소리꾼 김수악
"김수악의 구음이면 헛간에 도리깨도 춤을 춘다"
우리의 전통예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가무악(歌舞樂)이 한데 어우러진 형태이다. 그리고 이 가무악의 어우러짐은 오늘날의 공연예술의 목표가 되기도 했다. 가무악, 현재 이 가무악 일체의 최고의 예인을 꼽으려하면 단연 첫 손가락이 진주(晉州)의 김수악 선생일 것이다.
김수악은 열 살에 진주 권번(券番)에 들어가 판소리는 유성준, 정정렬, 이선유, 김준섭 등의 쟁쟁한 명인들에게 다섯 바탕을 모두 떼었고 기악은 김종기, 강태홍, 이순근, 박상근 등으로부터 가야금, 아쟁을 배웠고, 춤은 김옥민을 통하여 발걸음을 뗀 후, 한성준에게 승무를,
김해의 김녹주에게 소고무를 물려받았다. 그리고 구한말 관기출신인 최완자에게 굿거리춤, 입춤, 검무를 배웠으니 아마 고금의 국악사를 통해 김수악처럼 완벽한 스승을 모신 이도 없을 것이다.
현재 김수악은 진주검무로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그리고 교방굿거리춤으로 경남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춤이 두 종류나 지정된 것은 무척 다행한 일이나 어떤 이들은 김수악의 춤이 '진주 검무'보다 먼저 '교방굿거리춤'으로 중앙문화재가 되었다면 보다 나았을 거라며 아쉬워한다. 같은 무형문화재라도 군무인 '진주검무'나 '승전무'보다는 '승무' '살풀이춤' '태평무' 등 독무(獨舞)가 선호되기 때문이리라. 또 독무로 '교방굿거리춤'이 지정되었을지라도 실속이 적은 지방문화재라는 점 때문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다한들 어디 구음(口音)만 할 것인가. 구음이란 악기를 가르칠 때 악보 격으로 그 소리를 입으로 내는 것인데 구음 자체만으로 더할 나위 없는 곡이 된다. 이 구음이 특히 위력을 발휘하는 곳이 춤판인데, 꾼들은 모두 김수악의 구음을 제일로 친다. 원래는 전두영이라는 전라도 사람에게 배웠다고 하는데 이제는 천상 김수악의 소리가 되었다. 피리나 대금 없이 자신의 장구 장단에 맞추어 갖은 곡조를 얹으면, 그저 춤이 저절로 불려나왔다.
국창이라 불리던 만정 김소희도 구음만큼은 김수악이 강산의 제일이라 했었고 그 소리에 놀던 춤꾼들은 그 소리가 오죽이 좋았던지 "김수악의 구음이면 헛간에 도리깨도 춤을 춘다"고 했었다.
정영만, 다도해의 제사장
통영 시나우의 마지막 피리잡이 정영만
"무당 밥은 이빨이 아파 못 씹는다."
손가락질의 끝에서 사는 삶, 집안 사람 누구나 할 것 없이 누대로 내려온 무업(巫業)을 접으려 했다. 그러나 조상들의 탁월했던 음악이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스무 가지가 넘는 직업을 전전하다. 결국 굿판에 돌아온 사람 통영세습무의 마지막 대사산이 정영만.
그는 이제 오십 줄에 들어서는 젊은 명인이다. 그러나 그의 뒤에 담긴 예술은 남해안 지역의 모든 예능이 한곳에 몰려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방이후 점점 굿들이 사라지고 무업에 종사하는 이들도 점차 다른 길을 선택할 즈음, 마산, 거제 지역, 한산도 욕지도 일대, 남해도 일대의 무가(巫家)들이 통영 신청에 모여 문서를 통일하고 춤을 정리하였다. 남해안 무가들이 구조조정을 한 것인데, 그 예술을 잇는 후예들이 1986년부터 해 마다 몇 사람씩 모두 서둘러 이 땅을 떠났다. 그리고 그 종손가문의 유일한 지킴이 정영만이 남은 것이다.
그러나 굿이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하여 낮에는 버스운전을 하고 밤에는 무당 선생을 하였다. 그에게 배운 무녀도 낮에는 보험회사 외판원, 과외선생을 하다 밤이 되면 통영의 남망산 기슭 전수회관에서 라면을 먹으며 굿을 연습했다. 대전 엑스포 개막 때 남해안 별신굿의 이름이 나자 통영사람 모두 라면 먹고 뛴 ‘통영의 임춘애'들이라 했다.
그들이 찾았던 것 그것은 통영의 '시나우'였다. 옛부터 군영(軍營)의 중심이었던 통영은 남해안 문화의 총본산으로 이름이 높았다. 수많은 악공들이 다져놓은 음악적 터전, 그것은 '산수회'란 이름으로 내려 왔고, 그 산수회의 흥이 승전무 반주와 이순신 장군 제례악에 쓰였는데, 그들 모두는 남해안 별신굿을 하는 악사들이었다. 이 통영 땅 먼 바다와 그에 부속된 섬을 제도하던 음악 남해안 별신굿 음악, 그 사라진 것을 복원해 내는 사람이 바로 피리잽이 정영만이다.
(글/진옥섭・KBS 굿모닝코리아 PD)
음악 해설
CD-Ⅰ
KBS 공사창립 30주년 HDTV 특별기획 5부작 ‘소리’
명인들의 소리Ⅰ
1. 단가 편시춘(片時春)
(소리/한승호, 북/정철호)
2002년 8월 KBS 1TV「국악한마당」‘단가의 멋’편에 출연하여 부른 단가이다.
소리꾼들은 본격적으로 소리를 시작하기 전 목을 풀기 위해 단가를 부르는데 많이 알려진
‘사철가’, ‘호남가’, ‘운담풍경’ 같은 곡과 달리 ‘편시춘(片時春)’은 근래 들어 그다지 많이 불려지지 않는다. 지나온 삶을 회상하는 이 노래는 곡조와 가사 모두 풍류남아의 기백과
풍모가 느껴진다. 팔십 노객 한승호 명창이 자신의 이야기인 양 부르는 이 노래는 단정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세상사 이렇구나 군불견(君不見) 동원도리편시춘(東園桃李片時春)
창가소부(娼家小婦)야 말을 들어 대장부 평생 사업 건연히 넘어가니
동류수(東流水) 굽이 굽이 물결은 바삐 바삐
백천(百川)은 동도해(東到海)라 하시(何時)에 부서귀(復西歸)아
우산(牛山)에 지는 해는 제경공(齊景公)의 눈물이라
분수(汾水) 추풍곡(秋風曲)은 한무제의 설움이라
피 죽죽 저 두견아 성성제혈(聲聲啼血)을 자랑마라
기천년(幾千年) 미귀혼(未歸魂)이 너도 또한 슬프련만은
천고상심(千古傷心)은 우리 인생으로 봄이 돌아오면 수심이라
낙양성도 낙화(落花) 소식 공자 왕손이 처량하고
청춘몽은 겨우 깨워 놓으니 백발 설움이 더욱 깊어간다
오릉금시 은안백마(銀鞍白馬) 당시 행락이 내건만은
장안청루(長安靑樓) 소년들은 저 혼자만 자랑한다
창강(滄江)에 배를 띄워 풍월을 가득 실고
범범중류(泛泛中流) 떠나갈 적 백구(白鷗) 비거비래(飛去飛來) 뿐이로구나
퉁소 소리가 오호하니 소자천 적벽인가
어데서 비파 곡조 인불견(人不見) 수봉청(數峯靑)하니
소상고적(瀟湘古蹟)이 방불(彷佛)하구나
음풍(陰風)이 노호(怒號)하니 창강은 배공(排空)이라
잔나비 우는 소리에 만인상사 잠을 깨니
저 건너 성낸 여수 절강 일시가 분명하고
은은한 옛 사당아 상산사 형적인가
일호주(一壺酒) 술이다 진(盡)토록 만고사(萬古事)가 암암(暗暗)하네
유영이 기주(嗜酒)한들 분상토(墳上土) 술이 오랴
아마도 우리 인생 충효 밖에는 또 있느냐
2. 적벽가 中 ‘공명 동남풍 바람 비는 대목’
(소리/한승호, 북/정철호)
2002년 4월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에서 판소리의 원형을 찾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유네스코 지정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에 판소리를 지정 신청하기 위한 영상자료 녹화를 위해 KBS 국악한마당 제작진과 문화재청, 전라북도, 전라남도가 공동을 주최한 이날 공연은 말 그대로 ‘소리판’이 되었다. 마이크와 스피커, 인공조명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관객도 추임새를 넣을 수 있는 귀명창들 50여 명으로 제한하였다. 널찍한 대청마루를 무대 삼아 오른 소리꾼들의 면면을 보자. 남자로는 정광수, 한승호, 송순섭, 조상현 여자로는 박송희, 성우향, 오정숙, 안숙선. 게다가 고수는 김성권, 정철호, 김청만, 정화영이 나섰다. 그 이름만으로도 판소리 애호가들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제대로 된 ‘판’이 벌어진 것이다. 한 사람 앞에 주어진 시간은 20분. 그야말로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자리였다.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연로한 광대들 사이에는 은근한 경쟁이 붙었다.
이 날의 소리는 그 어떤 판소리 공연이나 음반과 비교할 수 없는 살아있는 현장의 기록이다. 여든을 바라보는 노 명창 한승호와 정철호 고수의 불꽃 튀는 기량과 한없이 쏟아질 것 같은 소리의 폭포수에 귀를 씻은 ‘행복한 관객’들의 흥겨운 추임새가 어우러진 멋진 판이었다.
(아니리)이때 오나라 주유는 일반문무와 장대상에 높이 앉어 군병 조발 예비할 제 이날 간간 근야에 천색은 청명하고 미풍이 부동커늘 주유 노숙다려, 공명이 날 속였도다. 지금이 융동인데 동남풍이 있을 손가. 노숙이 허는 말이 공명을 지내보니 재주는 영웅이요 사람 또한 군잡데다. 군자 영웅이 이런 대사에 있어서 어찌 남을 그리 속일 리가 있소. 잠깐만 더 기다려 보사이다.
말이 맞지 못하야 장근 삼경시분에 홀연 풍성이 들리면서 기각이 움죽 움죽 움-죽
기폭 판도가 떼그르르- 천둥같이 일어나는디 주유가 이 모양을 보고 간담이 떨어지는 지라
이 사람은 유달천지 조화라 귀신도 난적이요 만일 오래 두다가 동오에 화근이니 명심불망하라 서성은 배 타고 정봉은 말을 놓아 남병산 높은 봉을 나는 듯 올라가서 사면을 살펴보니
집기 장반은 당풍입하고 지제 공명은 지거이거로다 끈 떨어진 채일 장막 바람결에 펄렁
이 놈 군사야 공명이 어디로 가더냐 저 군사 여짜오되 공명이 바람을 얻은 후에
머리 풀고 발 벗고 이 너머로 가더이다 옳다 그게 바로 공명이다
지재차산 중이여든 종천강하며 종지출하랴 지가 어디로 간단 말이냐
단하로 좇아가니 만경창파 너른 길 물결 흉흉헌디 공명은 내거종적 이무처여늘
이 놈 수졸아 공명이 어디로 가는고 저 군사 여짜오되 공명이 바람을 얻은 후에
머리 풀고 발 벗고 이 너머로 가더이다 옳다 그게 바로 공명이다
이 놈 수졸아 예 공명이 어디로 가는고 아니 수졸들은 공명을 모르오나
작일 일모시 장안의 메인 배 양양강수 맑은 물에 고기 낚는 어선 배
십리장강 벽파상 왕래하던 거룻배 동강의 칠리탄 엄자룡 낚시 배 만단 의심을 허였더니
뜻밖에 어떤 사람 일원대장이 우뚝 나서는디 한 번 보면 두 번 보기 엄숙한 장수가
둘이 서로 만나 무엇이라고 소곤소곤 귀를 쫑긋 고개를 까딱 상류로 가더니다-
옳다 그것이 바로 공명이다 날랜 배 잡아타고 이 놈 사공아 네 배를 빨리 저어 공명 탄 배를 잡아야지 만일에 못 잡으면 이내 장창으로 네 목을 뎅그렁 베어 이 물에 풍덩 드리치면 니 백골을 뉘 찾는단 말이냐 사공들이 황급하야 여봐라 친구야 우리가 까딱 하다가는 오강의 고기밥이 아니냐 열두 친구야 우겨라 치다리 들어라 어-기야 상류를 바라보니 오강 여울에 뜬 배 흰 부채 뒤적뒤적 공명일시가 분명타 서성이 크게 외쳐 저기 가는 공명 선생-
가지 말고 게 머물러 내 한 말 듣고 가오 공명이 허허 대소허되 너의 도독 삿된 마음
내 이미 아는 바라 후일 보자고 회보하라- 그래도 못 듣는 체 빨리 쫓아가며
긴히 헐 말이 있사오니 게 잠깐 머무소서- 자룡이 화를 내어 선생님은 어찌하여 저러한 무험한 놈들을 목전에 두오니까 소장의 화살 끝으로 저 놈의 배아지를 산적 꿰듯 하오리다
공명이 만류하되 아니 그는 양국화친을 생각할 제 죽이지는 마옵시고 놀래어서나 보내소서
자룡이 화를 내어 선두에 우뚝서 이놈 서성 정봉아 상산 조자룡을 아느냐 모르느냐
우리 선생 높은 재주 너희 나라 들어가 큰 공을 세웠거늘 은혜는 생각지 않고 해코지 하러 나오느냐 너를 죽여서 마땅하나 양국화친을 생각함이니 죽이지는 아니 할 테로되 수단이나 네 보아라 가는 배 머무르고 오는 배 바라볼 적 백보 안에 가 드듯 마듯- 흉허복실허여 대투를 먹여 좀통이 터지거라 하삼지를 꼭 쥐고 뒷손을 끌어당겨 귀밑에다가 붙이고 깍지 손 똑 떼니 번개같이 빠른 살이 해상으로 피르르- 서성 탄 배 돛대마저 절컥 부러져 물에 풍- 또 한 발 걷어 쏘니 오던 배 가로 접쳐 물결이 뒤치여 소슬광풍에 뱃머리 뱅- 뱅 -
어리렁 출렁 전선이 뒤뚱그러져 떠나가는구나
3. 심청가 中 '곽씨부인 아이 낳는데 ~
곽씨 부인 죽고 심봉사 발광하는 데’
(소리/한승호, 북/ 정철호)
한승호 명창은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의 보유자이고, 스스로도 문화재 지정 이후에는 ‘적벽가’를 많이 부르고 있으나 사실은 ‘심청가’에도 장기를 가지고 있다. 1974년 명동 국립극장에서 처음 판소리 발표회를 열었을 때에 ‘심청가’ 완창을 하였고, 얼마 되지 않는 녹음 자료 가운데에도 KBS 음악자료실이 소장하고 있는 『판소리 순례』테잎에도 1980년 김명환의 장단에 부른 심청가 완창이 남아있는 것을 보아 그가 심청가를 자신의 특기로 삼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승호의 심청가는 짜임새나 사설 면에서 많이 알려진 강산제 심청가와 다른 부분이 있어서 심청가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이 트랙에 실린 대목은 2002년 8월 KBS 1TV 「국악한마당」에 출연하여 부른 것으로 근래 드물게 목이 잘 나오고 정철호 고수와도 호흡이 잘 맞았는데 한승호 소리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탁월한 장단 운용, 엇붙임 뿐 아니라 빼어난 아니리와 발림을 보여주었다. 정철호 고수의 말에 따르면 한승호는 아니리 마저도 장단에 얹어 부르기 때문에 북채를 놓을 수 없으며 언제 바로 소리로 들어갈지 알 수 없어서 계속 긴장해야 한다고 한다. 곽씨부인이 산통이 시작되자 심봉사가 귀덕이네를 불러
방에 들어가보라고 하는 부분이나 아이 어르는 부분에서 ‘어 이놈이 날 보고 방긋방긋 웃는단 말이다’ 같이 툭 던지는 말은 관객의 긴장을 풀지 못하게 하려는 한승호 만의 소리를 짜나가는 기술이라 할 수 있겠다. 한승호가의 심청가는 계면조 위주의 강산제 심청가와는 또 다른 고졸하고 시원한 맛이 느껴진다.
[아니리]양주 몽사 의논하니 내외 꿈이 꼭 같은지라 그 날 부터 태기가 있어
십삭을 배설하는데 본디 곽씨 부인 천성이 얌전한 분이라 행을 하는데
석부정부좌 화부정불식 이불청음성 목불시사색 좌불중석 십삭이 점점 차더니
하로난 해복기미가 있구나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 봉사님- 내가 지금 배가 아프고
아이고 못살겄소 그 배가 아프면 밖에 나가보시오.(탈이 났으면 측간에 가라는 뜻)
그 배가 아니오. 심봉사 손을 꼽아 이윽히 생각허니 일편은 반갑고 일편은 놀래어
밖으로 더듬더듬 더듬더듬 나간다. 귀덕이네 부르는데 귀덕이네-
(아니리)
아 이 사람아 뭣 하고 있는가
방에 들어가봐 방에 들어가봐
귀덕이네 거동봐라 방으로 들어가서 짚 한 속 새 소반에 정안수 떠 받쳐놓고
단정히 꿇어앉아 순산하기를 기다릴 제 이행이 만실허고 채색안개 두루더니 혼미중의 탄생허니 선인옥녀 딸이라
(아니리)
아이고 아기 났소 아기 났어 심봉사 하는 말이 났어? 뭣인가?
앞으로 보면 아버지 닮았고 뒤로 보면 어머니 닮았소 어? 만득으로 낳은 자식 딸이라 하니 그도 반갑다 심봉사가 반갑고 즐거운 마음으로 며칠을 지내더니 내가 그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는디 삼신께 빌어야지 빌어야지 삼신께 내가 빌어야 돼 심봉사가 삼신께 빌기로 드는데
삼십 삼천 도솔천 석가세존 미륵님네 화이동심하여 다 굽어보옵소서
사십에 점지한 딸 한 두 달 이슬 맺고 석 달 피 흐르고 넉 달에
인형이 생겨 다섯 달 오포 나고 여섯 달 육척 생겨 일곱 달 칠규 열려
여덟 달 사만 팔천 털이 나고 아홉 달 구규 열려 열 달 찬 김 받아
금강문 하달문 뼈문 살문 고이 열어 순산으로 시켜주니 삼신 덕택
넓으신 은덕 백골난망 잊으리까 다만 독녀 딸이오나 명은 동방삭의
명을 주고 복은 석숭 가진 복을 주고 태임의 덕행이며 반희의 재질이며
대순 증자 효행이며 촉부단의 복 주어 외 붓듯 달 붓듯 잔병 없이
자라나서 일취월장을 시켜주오
(아니리)
그 담뱃대 심부름이라도 막 할 만 하면 데려가지 마시오.
거 귀한 딸이요. 이거 천만 만만 귀한 딸이오
심봉사가 그날 그날을 보내다가 어린 아이를 뉘여 놓고 좋아서 어르는디
둥둥둥 내 딸이야 둥둥둥 내 딸이야
어허 둥둥 내 딸이야
둥둥 내 딸이야 어허 둥둥 내 딸이로다
어허 둥둥 내 딸이야
(아니리)
어허 아 이놈이 날 보고 방긋방긋 웃는단 말이다.
날아가는 학선이 얼음 궁기 수달피 백미 닷 섬의 뉘 하나
어허 둥둥 내 딸이야 어허 둥둥 내 딸이야
어허 둥둥 내 딸이야
(아니리)이 덕으로 길러다 놓으니 곽씨 부인 손대 없어
아 이날 사흘도 못되어 찬물 다려 밥도 짓고 빨래도 하니
산후 별증이 일어났구나 정처 없이 떨며 아이고 배야 아이고 허리야
가군의 손길을 부여잡고 아이고 영감 우리 둘이 서로 만나 해로백년을 살까 하고
남촌 북촌 품을 팔아 극진 공대를 하쟀더니 천명이 이 뿐이던가 인연이 끊겼는지
하릴없이 죽게 되니 눈을 어이 감고 가며 애통함을 어이 할 리가 있소 저 애 이름은
심청이라 불러주오 차생의 미진한 모자지정 후생에나 다시 만나 이별 없이 삽시다
할 말은 무궁하나 숨이 가빠서 못 하겠소 잡았던 손길을 스르르르 놓고 아가
내 젖 많이 먹어라 아가 아가 잘 살아라 어어어허 폭각질 두세 번에 숨이 졌구나
(아니리)심봉사는 아무런 줄도 모르고 여보 마누라 아기 낳고 병든다고 사람이 다 죽간디
그런 말 말고 누워 있으면 내 의가에 나가서 문의하여 약 지어올 테니 그런 말 말고 누워 있으시오 심봉사가 의가를 찾아가 문의하여 약을 지어 가지고 들어와 귀덕이네를 불러 수일 승전반으로 약을 짜들고 방으로 들어가 여보 마누라 이 약을 먹읍시다. 이 약을 먹으면 병이 곧 즉효한답디다. 어서 일어나 약을 먹읍시다. 아무리 물러본 즉 죽은 곽씨 부인이 대답할 리가 있나 심봉사 의심이 나 맥을 짚어 보니 사지에 맥이 딱 굳고 콧 궁기를 만져보니 찬바람이 도니 그제야 죽은 줄을 알고
허허 이거 웬 말이냐 허허- 워따 동네 사람들 우리 마누라가 죽었어 참으로 죽었냐
죽을 줄 알았으면 약 지으러 가지 말고 머리 맡에 앉았다가 극락세계 가라고
염불이나 외울 것을 약능활인이요 병불능살이라더니 약이 모두 원수로구나
약 그릇을 번쩍 들어 방바닥에 부딪치고 떴다 꺼꾸러져 떼그르르르
어허- 어허-
4. 춘향가 中 기산영수 ~ 추천대목
(소리/심화영, 북/최우칠)
비동비서(非東非西), 동편제도 서편제도 아닌 경제(京制)에 가까운 맑고 깨끗한 소리.
양금을 두드리는 듯 또랑또랑한 소리. 아흔 둘 심화영 명인이 부르는 춘향가다.
진작에 발굴해 기록을 남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으나 ‘아흔 둘 노인의 노익장‘으로
접고 들어갈 수만은 없는 빼어난 부분이 있다. 열 여섯 소녀처럼 수줍은 얼굴로 부르는
이 노래들을 통해 100년 전 이 땅의 판소리가 다양한 모습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니리)이 때 서울에 이한림이 계시되 명문거족이요 누대 충효대가로서 상이 낙점하사
남원부사 제수하니 도임한지 일삼간에 백성에게 선치하니 거리거리 선정비요 골골마다
환호로다 사또 자제 도련님이 계시는데 이름은 몽룡이요 풍채는 두목지요 얼굴은 관옥이라
하루는 방자 불러 너희 고을에 좋은 승지강산이 어디가 제일이냐? 공부하시는 도련님이
승지는 찾아 무엇하시랴오 네 모르는 말이로다 내 이를게 들어봐라
기산영수 별건곤 소부 허유가 놀았고 적벽강 추야월의 소자첨이가 놀았으니
내 또한 호협사로 동원도리 편시춘을 낸들 어이 허송하랴 잔말 말고 아뢰어라
방자 분부 듣고 예 하고 나가더니 서산 나귀 솔질하여 호피 안장 짓는다
홍영자공 산호편 옥안금천 황금륵 청홍사 좋은 굴레 앞뒤 걸쳐 잡아매고
층층다래 은엽등자 호피도듬의 맵시난다 이랴 툭쳐 나귀 대령하였소
도련님 수수하게 잘 차리고 거드렁거려 나갈 적에
광풍조차 펄펄 서부렁 석적 광한루에 올라가 이리저리 살핀 후에 한 마디 하는디
적성의 저문 봄은 늦은 안개는 띄어있고 녹수의 저문 봄은 화류동풍 둘렀는듸 요헌기구
하최외난 임고대로 일렀도다 광한루도 좋거니와 오작교가 분명쿠나 오작교가 분명허면
견우직녀가 없을쏘냐?
(아니리) 얘 방자야 이 좋은 자리에 술이 없어 쓰겠느냐 술상 가져오너라
방자가 술상을 가져오니 일이삼배 자신 후에 취흥이 도도하여
앉았다 일어나 두루두루 거닐며 남방을 바라봐 주렴취각은 벽공에 늘어져 수호문창에
덩실 솟아 앞으로 보면은 영주각 뒤으로는 무릉도원 흰 백 자 붉을 홍 자 송이송이 꽃이 피고 붉을 단 푸른 청은 고물고물이 단청이라 유모황앵 환우성 나의 취흥을 돋우는 듯
화초백접 쌍쌍무는 향기 찾는 거동이라 백백홍홍이 난만중 백백홍홍이 난만중 선녀미색이 노는구나 춘향의 거동 보소 추천을 하려할 제 장장채승 그네줄 양손의 갈라 쥐고 선뜻
올라 발굴러 한 번 굴러 앞이 높고 두 번 굴러 뒤가 솟아 연비어천에 소리개 뜨듯
난만도화 높은 가지 소소리 쳐 툭툭차 송이송이 맺힌 꽃 휘늘어져 떨어져 송이송이
낙화로다
5. 춘향가 中 쑥대머리
(소리/심화영, 북/최우칠)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에 찬자리에 생각난 것이 임 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낭군 보고지고 오리정 정별 후로 일장서를 내가 못 보았으니
부모봉양 글 공부에 겨를이 없어서 이러는가 막왕막래 막혔으니 앵무서를 내가 어이
보며 전전반측 잠 못 이루어 호접몽을 내가 꿀 수가 있나 손가락의 피를 내어 사정으로
편지헐까
이화일지춘대우는 내 눈물을 뿌렸으니 야우문령 단장성한 비 비만 많이 와도 님의 생각
추월오동 엽락시에 잎만 떨어져도 임의 생각 녹수부용의 연 캐는 채련녀와 제롱망채에
뽕따는 여인네도 낭군생각은 일반이라 날보다는 좋은 팔자 옥문 밖을 못나가고 뽕을
따고 연 캐거니 내가 만일 님을 못 보고 옥중고혼이 되게 되면 무덤 앞의 섰는 돌은
망부석이 될 것이요 무덤 근처 섰는 나무 상사목이 될 것이니 생전사후 이 원통을 알아줄 이가 뉘 있드란 말이냐 아무도 모르게 슬피 운다.
6. 심청가 中 추월만정
(소리/심화영, 북/최우칠)
추월(秋月)은 만정(滿庭)하여 산호주렴을 비쳐들 제 청천의 외기러기난 월하(月下)의 높이 떠서 뚜루루루루루 낄-룩 울음을 울고 가니 심황후 기가 막혀 기러기 불러 말을 헐제.
오느냐 저기럭아 소중랑(蘇中郞) 북해상의 소식을 전턴 기러기냐 도화동을 가거들랑
불쌍허신 우리 부친 전에 편지 일장 전하여다오 편지를 쓰랴헐 적 한자 쓰고 눈물 짓고 두 자 쓰고 한숨을 쉬니 눈물이 떨어져서 글자가 수묵(水墨)이 되니 언어가 도착(倒錯)이로구나. 편지를 써서 들고 문을 열고 내다 보니 기럭기는 간 곳 없고 망망헌 창해중의 별과 달만 밝았구나.
CD-Ⅱ
KBS 공사창립 30주년 HDTV 특별기획 5부작 ‘소리’
명인들의 소리 Ⅱ
1. 진도씻김굿 中 제석굿 ‘명당터 잡기 ~ 당산’
(소리/채정례 징/함인천, 장구/강정태)
* 농악명인 날받이 씻김굿(한국민속촌 현장실황녹음) 2002년 10월 30일
죽은 이의 넋을 달래고 생왕극락으로 가기를 비는 진도씻김굿 가운데 유일하게 산 사람들을 위한 거리가 제석굿이다. 오늘날 진도 씻김굿의 상징이 된 흰 고깔은 원래 제석굿에만 쓰던 것이었다. 제석의 출처가 불가의 기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제석은 불교의 신으로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이 땅에서 호국신으로 섬겨지다 12세기 무렵에 무속화 되어 수명장수 부귀공명을 주는 현세구복적인 신으로 변모하였다. 제석굿의 줄거리는 대체로 이렇다. 옛날 어느 명문가에 어여쁜 무남독녀가 있었는데 어느 날 가족들이 모두 집을 비우고 그녀 혼자 집을 지키게 된다. 이때 그녀의 미모를 소문으로 듣고 기회를 엿보던 젊은 중이 나타나 시주를 청하는 체하면서 그녀를 유혹하여 정을 통한다. 이 때문에 임신을 하게 된 그녀는 가족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쫓겨나 그 중을 찾아가 해산하며, 아이가 자란 뒤 그녀 자신은 삼신이 되고 아이는 제석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음반에 실린 음원은 KBS의 특집 다큐멘터리「소리」 채정례 편의 제작을 위해 벌어진 날받이 씻김굿 현장에서 따온 것이다. 한국민속촌 농악단 정인삼 단장은 해마다 자신의 스승이 되는 농악명인 55위에 대한 제사를 모시는데 특별히 채정례 단골 일행을 초청해 날받이 씻김굿(제주에게 좋은 날을 잡아 여는 굿)을 열었다. 굿에서 중요한 구경꾼들 역시 농악단 단원 뿐 아니라 진도 현지에서 40여 명의 강강술래 보존회 회원들이 올라와 자리를 함께 해 흥과 분위기를 돋우었다. KBS는 첨단 영상, 음향 장비가 탑재된 HDTV 중계차를 동원해 이 날 굿의 전 과정을 기록했다. 굿을 기록한 음반이 없는 것은 아니나 대체로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것이라 현장감이 떨어지고 의뢰인(고객)이 없기 때문에 단골과 의뢰인, 마을 주민들 사이의 교감이 없기 때문에 긴장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녹음은 진도 현지에서 이루어진 굿은 아닐지라도 현장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려 했고 굿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정확한 음을 잡아내기 위해 첨단의 장비들을 사용했기 때문에 기록 면에서나
음질면에서 모두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굿의 사설은 기록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단골의 집안 대대로 구전되어온 것일뿐더러 단골 자신도 그 뜻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있으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굳어진 민속의례이기 때문에 소리나는 대로 적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러나, 문맥으로 보아 관용어나 고전에서 인용한 것이 분명한 경우는 최대한 원래의 단어나 문장을 살려 썼다.
(예 : 입춘대길 거냥낙엽 => 입춘대길 건양다경(建陽多慶)
수족을 다 끊으듯 첩부의 설움 => 수족을 다 끊은 척부인의 설움)
<명당터 잡기>
상좌씨! 시주를 딱 하고 좌우를 살펴보니 분명히 명당이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이라 목마른 말이 물 먹은 형국이요
노서하전(老鼠下田) 늙은 쥐가 만곡을 내려다 보고 웃고 내려오는 형국이요
동남간을 바라보니 문장성이 비쳤으니 대대문장이 나겄소 그려
서남간을 바라다보니 노적봉이 비쳤으니 당년에 부자가 되겄소
앞산을 건너다 보니 옥녀 탄금석이라 아름다운 미녀가 칠보단장에 거문고 앞에 놓고
희롱하는 형국 이런 좋은 형국 명당을 찾아서 그냥 가서 쓰겄소.
집도 좋읍디다만 더 좋게 지경 탁 닦어서 집 한 채 짓고 가는데
이거 진 일이라 해도 날받이 굿이라 명당경을 한 번 탁 닦아가지고 지경을 닦읍시다.
천왕대지 수명당 지왕대지 만부귀 사천천왕 공개명 대범천왕 자오남
동방세왕 양견지 남방화성 멸하지 서방금성 부귀지 북방수성 목이지
중앙진성 장음지 계두남우 벌견지 일성월성 여의지 담만경문 장자손
목존문공 흥이군 영종무공 송서원 팔군대제 만여지 구성구애 각이모
이수팔수 하이지 일백일흔 만세지 삼백산록 루복지 오행육백 천제물
칠척팔백 진제물 구자지신 덕구마 오방장군 녹우지 팔대신왕 상수오
오악산악 조모애 사면주작 주식붕 명당구지 복덕지 옥당현무 수명당
청용백호 득귀인 천애전래 녹태산 공조태촌 의복지 천귀천명 만복지
승광자구 의방지 만세만세 수만세라
<지경다굴기>
지경을 한 번 다궈볼 꺼이라?
지경성국을 다굴라 지경성국을 다굴라 어기영차 지경이야 어기영차 지경이야
지경성국을 다굴라
동편지경을 다굴라 동편지경을 다굴라
청룡 한 쌍이 묻혔으니 화기어라 다치잖게 가만히 살짝 다굴라
어기영차 지경이야 어기영차 지경이야 지경성국을 다굴라
남편지경을 다굴라 남편지경을 다굴라
청룡 한 쌍이 묻혔으니 용의 머리 다치잖게 가만히 살짝 다굴라
어기영차 지경이야 어기영차 지경이야 지경성국을 다굴라
서편 지경을 다굴라 서편 지경을 다굴라
백룡 한 쌍이 묻혔으니 화기어라 다치잖게 가만히 살짝 다굴라
어기영차 지경이야 어기영차 지경이야 지경지경지경을 다굴자
북편지경을 다구르자 북편지경을 다굴자
흑룡 한 쌍이 묻혔으니 용의 머리 다치잖게 가만히 살짝 다굴라
어기영차 지경이야 어기영차 지경이야 지경성국을 다굴라
중앙지경을 다굴라 중앙지경을 다굴라
황룡한쌍이 묻혔으니 화기어라 다치잖게 가만히 살짝 다굴라
어기영차 지경이야 어기영차 지경이야 지경성국을 다구르자
<집짓기>
상좌씨! 지경을 닦아 놓고 보니 참 네 귀 반듯하니 잘 닦아졌소
그라믄 집을 한 번 지어볼 꺼이라?
주공의 장한 도덕 큰 터를 널리 닦아 효자충신 주초 놓고 인의예지 기둥을 걸어
삼강오륜 벽을 걸어 팔중모 도리 얹어 팔팔은 육십사 차례로 연자 걸어
일육수는 북문이요 이칠화는 남문이요 사오금은 서문이라 구십토로 알매하야
일월성신 창에 걸어 각기간을 정마 각기간을 정마
명당방에 방을 놓고 복덕방에다 마루 놓고 대덕방에는 정재 놓고 칙신방에 칙간을 짓고
청용방에는 담을 쌓고 대로방에 길을 내고 월덕방에다 샘을 팠으니 어찌 아니가 좋을쏘냐
상좌씨, 용의 머리터를 닦아 학의 등에 집을 지어 호박주초에 유리기둥 산 위에 걸었으니
진짜 요새 집을 좋게 지어다가 뼁끼 까정 딱 칠해놓고 봐도 그럴 듯 하게 입춘을 써 붙여놓아야만 멋이 잘잘 흐르지
(너무 멋이 흘러도 미끄러져)
입춘을 안 써 붙이면 멋이 안 흐르니 좋고도 멋이 흐르라고 입춘 한 번 써 붙여봅시다.
(아, 영감님 눈 뽈캉 뜨고 대답하시오. 할머니하고 같이 하시고
눈을 감고 대답을 안 하신당께..)
<입춘 붙이기>
입춘대길 건양다경 천증세월인증수 춘만건곤복만가라 뚜렷이 붙여있고
상기둥에 붙인 입춘 춘광선도길인가 화기자생 군자댁이라 뚜렷이 붙여있고
큰문 위에 붙인 입춘 당상학발천년수요 슬하자손 만세영이라 뚜렷이 붙여있고
마루문에 붙인 입춘 일일소지에 황금출이요 시시개문에 만복래라 뚜렷이 붙어있고
정지문에 붙인 입춘 반출고물에 행백옥이요 채전섬수 송천사라고 뚜렷이 붙어있고
외양간에 붙인 입춘 우경에 벽파정 마천리행이라고 뚜렷이 붙어있고
대문간에 붙인 입춘 시화연풍하고 국태민안하느니라 뚜렷이 붙어있네
상좌씨!
(집을 이러코롬 지어서) 입춘을 딱 써 붙여놓고 보니 서울시내 할 것 없이 대한민국에 정씨 아저씨 집 위에 더 좋은 집이 없겄소
(집 무지하게 좋으요)
집만 좋으면 뭣하겄소 대한민국 노적을 다 끄집어 들여야 금년에 새 장가 가서 아들 낳지
(웃음)
(소원대로 되시라고 노적 막 끌어들여 봅시다)
그렇지!!
<노적청>
여여여여로 어기야 청청 노적이로구나
일만장안에 억만격인 노적 억만장안에 팔만격인 노적도
이 댁으로 다 다 실어들이세-
에에 에에햐
안아 들여 끄집어 당겨라 노적이로구나
서울 장안에 곳곳에 쌓인 노적 자동차야 짐차야 붓고붓고 다 실어다
이 댁으로만 다다 실어들이세
어여여여로 어기야 청청 노적이로구나
징게맹게 오이밋들에 다물다물 쌓인 노적도 이 댁으로 다 다 실어들이세-
에에 에에햐
안아 들여 끄집어 당겨라 노적이로구나
풍년에 풍년에 다물다물 쌓인 노적도 이 댁으로 다 다 실어들이세-
어여여여로 어기야 청청 노적이로구나
동서남북 방방곡곡 곳곳에 쌓인 노적도 이 댁으로만 다 다 실어들이세
에에 에에햐 어기야 청청 노적이로구나
상좌씨!
노적을 이렇게 많이 끄집어 들여놓고 보니 앞에 누른 앞 노적은 대주님네 노적이요
뒤에 누른 뒷 노적은 궁주님네 노적이요 봉오리가 천이라도 위지지 하나가 으뜸이더라고
아무리 노적이 많아 업이 없으면 무단시 나갑니다.
(시루에 물주기요)
그러니 지킬 복 있게 대대전손하고 잘 살으시라고 업을 불러들이는디
정씨 아저씨 보고 백미로 업쳐가지고 와서 업 받아 가라고 하시오
(백미 없으면 쌀도 좋으니 조금 가져와서 업 받아 가시오)
<업청>
술베술베 진당사 쇠줄 매어 안아들이자 업이야
(후렴)허이허이허이여로 업이야 청청 업이야로구나
일월성신이 밝았으니 해달 업도 들오고
(후렴)
닭이 울어 자축시하니 인간의 업도 들오고
(후렴)
만수청산이 어석석하니 뚜껍비 업도 들어오소
(후렴)
업아!업아! 업아!이리오라면 이리와-!
(후렴)
인간의 업은 들어오거든 방안으로 지수하고
(후렴)
재물의 업은 들어오거든 금고 안으로 지수하고
(후렴)
부엉이 업은 들어오거든 노적봉으로 지수하고소
(후렴)
두꺼비 업은 들어오거든 사랑 밑으로 지수하소
(후렴)
업아!업아! 업아!이리오라면 이리와-!
(후렴)
상좌씨,
오늘 차를 타고 여기 온께 누가 옆굴치를 쿡 찔러 깜짝 놀라 돌아다 본께
흐건 할마니가 너 뉘댁 오냐 하시기에 이 서울시 민속촌 정씨 가문 안에서
불쌍하신 양반들 씻기신다 해갈 천도시킨다고 오라오라고 영계 받아놨길래 온다고 했더니
당신을 앞도 당산 뒤도 당산 당할마니라고 합디다.
(생략)
당할마니를 잘 놀아주믄 오늘 저녁에 여기오신 분들 뉘댁 없이 빠짐없이
인간에 따라 들고 음식에 묻어 들고 생미에 접어들던 열두부정 열두희살
우환잡작 감기고뿔 행불소불은 일실소멸 시키시고 백사만사가 맘과 뜻과 같이
다 잘 된답니다.
그라니 당산을 한 번 해봅시다마는 이 걸궁(농악) 잘치는 어른 앞에서
오갈 들어서 잘 쳐질라나 모르겄네
<당산>
군웅을 모십시다 군웅을 모십시다 경상도 황제군웅 우리나라 이씨군웅
군웅님네 아버지는 갯고기는 비리다고 안 자시니 군웅님네 딸애기 꽃바구리 옆에 끼고
앞동산에 고사리요 뒷동산에 도라지캐서 산채로 대접하고
승상 거북 승지는 도미 한림 박대 준어 고등어 꽁치 삼치 광어 잉어 등진 갈치 눈 큰 민어
넓적 가오리로 걸게 한 번 놀아봅시다.
2. 진도씻김굿 中 ‘넋올리기’
(소리/채정례, 징/함인천, 장구/강정태)
진도씻김굿에서는 망자(씻김을 받은 대상)를 상징하는 넋을 종이로 정교하게 오려 만든다.
넋을 땅에 놓은 채 단골은 신칼을 어깨에 메고 넋을 위로하는 무가(巫歌)를 부른다. 그리고 나서 신칼을 흔들며 땅에 놓인 넋을 올린다. 땅에서 바로 넋이 오르지 않으면 맏상주를 시작으로 가까운 유족의 머리 위에 넋을 올려놓고 다시 넋올리기를 시도하는데 넋이 신칼에 붙은 지전(紙錢)에 달려 올라오면 드디어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편안한 영혼이 되어 씻김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씻김굿 가운데 이 부분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절차를 소중히 여기는 채정례의 굿에서도 단골의 능력과 권위를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부분이기도 하다.
넋이로세 넋이로세 넋인 줄을 몰랐더니 오늘 보니 넋이로세 신이로세~
신인줄을 몰랐더니 오늘 보니 신이로세 넋일랑은 오시거든 넋당삭에 모셔오고
신일랑은 오시거든 신상에다 모셔오고 신넋이 오시거든 화기사단에 모십시다
이 넋이 오실 적에 소문로 지키다가 은장도 드는 가새 어어석석 비어내어
넋당석 몰아올 때 앞 어두워 오실까봐 연지등 자래등 초롱등 불 밝히고
대마정 소마정 당삭 맞아 오시더라
공도라니 백발이오 면치 못 할 죽음이라 천왕지왕 인왕씨는 신농황제 복희씨요
요수노탕 문무주공 도덕이 관천하사 한 번 초한을 못 면하고
어리도다 진시황은 아방궁 높이 앉아 만리장성 쌓은 연후에 그러한 영웅들은
사적이나 있건마는 우리 같은 초로인생 한번 아차 죽어지면 죽진장포 일곱 마디
상하로 질끈 묶어 소방산 대뜰 위에 덩시렇게 올려매고 북망산을 향할 적에
산토로 집을 짓고 송죽으로 울을 싸고 득연전통 벗이 되어 산은 첩첩 밤 깊은데
처량한 건 넋이더라
두견새 밤에 울고 뻐꾹이 낮에 울고 듣기 싫은 저 새는 가지마다 울고 있고
보기 싫은 저 물은 골골이 흘러있네 천왕씨 인왕씨는 만팔천 해 살았어도
염라대왕을 못 달래고
우리나라 이씨 왕은 춘추명절 달랬어도 염라대왕을 못 달래고
화타와 편작은 약이 없어 죽었으며 공자씨 맹자씨는 글을 몰라 죽었던가
어와 청춘 소년들아 홍안백발 웃지 말고 어제 청춘 오늘 백발 그 아니 가련하며
당대의 일등미색 곱다고 자랑마소 서산의 지는 해는 뉘라서 금지하며
창해유수 흐르는 물 다시 보기가 어려웁데
불쌍하신 망자씨들 삼신산 불사약을 구하라고 보냈건만 아차 한 번 가게되면
소식도 돈절하고 사우평상 저문 날에 여사망초 뿐이더라
불쌍하신 망자씨들 아차 한 번 가게되어 백골난망 넋이 되어
혼이 슬피 울음 울면 비도 좇아 슬피 우네
넋이야-
이 넋이 뉘 넋인가 홍북한을 지어 내던 왕소군의 넋이던가
공양미 삼백석에 어둔 눈을 뜨게 하던 심낭자 넋이던가
불쌍하고 가련하신 박씨 망자 넋이더라
오르소사-
오르소사 오르소사 오르소사 신의 칼에 오르소사
넋이라도 오르소사
오르소사-
오르소사 오르소사 오르소사 신의 칼에 오르시면
씻기시어 해갈시켜 염불로 길을 닦아 극락세왕 옥경연화당 수구밑의
일심성불 되옵시고 설워 말고 오르시오 신의 칼에 오르시오
얘- 박씨 망자씨
제자를 잘 두고 KBS가 후원해서 이런 좋은 일을 하요
신의 칼에 설워 말고 오르시오 설워 말고 오르시면
십대지옥도 면하시고 천근도 여의시고 중복도 가시옵고
생왕극락 가옵네다
(오르나봐 안 올랐어)
설움이야 설움이야 설움이야
마역차 저문 날에 부모양친 이별하던 숙낭자 설움인들 망자같이 설울쏘며
수족을 다 끊은 척부인의 설움인들 망자같이 설울쏘며
왜장청정 목을 안고 진주남강 빠져죽던 아야미의 설움인들 망자같이 설울손가
(제자 머리끝에 올라 제자 머리끝에 설워 말고 오르시오)
넋이야-
이 넋이 뉘 넋인가 왕소군의 넋이던가 심낭자 넋이던가
불쌍하고 가련하신 이씨 망자 넋이더라
얘- 이씨 망자씨
이런 일을 남이 헌께 쉬운 것 같아도 자식들도 못하는 일이요
신의 칼에 오르시오 신의 칼에 설워 말고 오르시고
이 일 성사시킨 사장님 저 정씨 대주도 백사만사가 맘과 뜻과 같이
잘 되게 해 주시오
* 미리 오려둔 넋이 바닥에서 한 번에 바로 신칼에 따라 붙었다
아따! 이 양반 안 씻겼으면 큰 일 나겄네!
넋이야-
4. 남해안별신굿 中 ‘애장거리’ 10:00
(징,구음/정영만, 대금/조철현, 장구/공성재)
5. 통영시나위 8:30
(징,구음/정영만, 대금/조철현, 장구/공성재)
(해설 및 정리 : 김일중 ・ KBS 굿모닝코리아 PD)
CD - Ⅲ
KBS 공사창립 30주년 HDTV 특별기획 5부작 ‘소리’
헌정, 명인들에게 드리는 소리
작곡 : 김대성, 지휘 : 김진형
1. 잃어버린 소리
해금 : 정수년, 25현금 : 김문주, 타악 : 김혜진, 김기철
클라리넷 : 신광식, 오보에 : 전문식, 호른 : 백승일
KBS 관현악단
나는 우리의 소리를 찾아 열심히 헤매었고 지금도 헤매고 있다. 즉 우리에겐
잃어버린 소리가 있다고 나는 믿고 있고, 이 잃어버린 소리 속에 우리의 미래,
음악의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나는 잃어버린 소리를 접할 때 이 곡의
해금 가락과 같은 깊은 한이 배어 있음을 느낀다. ‘기다림의 한’이 느껴진다.
그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을 기다리는 역사의 깊은 고독이 느껴진다.
* 채정례 명인을 위하여
2. 씻김, 죽은 자를 위한 산 자의 노래
대금 : 신주희, 타악 : 김혜진, 클라리넷 : 신광식, 호른 : 백승일
KBS 관현악단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산 자는 죽은 이에 대한 노래가 있고 흐느낌이
있다. 이 곡은 대금이 중심이 되어 산 자가 죽 은자를 회상하며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였다. 나이를 먹으면서 수도 없이 전해오는 죽음의 비보들
정말 괴로운 일이다.
3. 단골 이야기
25현금 : 김문주, 타악 : 김혜진, 클라리넷 : 신광식, 오보에 : 전문식,
호른 : 백승일
KBS 관현악단
1992년과 1997년에 진도를 찾아갔다. 민요와 풍물을 듣기 위해서. 1992년 2월
조공례 님을 뵈었다. 이 곡은 그때 불러주신 ‘들노래’를 바탕으로 작곡한
곡이다. 당시 나는 채정례 님도 만났다. 채정례 님을 만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고 진도의 인상적인 들판도 바라보았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조공례 님이
불러 주신 ‘들노래’가 무척 슬프게 느껴진다.
신명 없이 허공을 떠도는 ‘들노래’의 조용한 ‘흐느낌’을 듣는다.
* 한승호 명창을 위하여
4. 고독한 광대
대금 : 신주희, 25현금 : 김문주, 클라리넷 : 신광식, 호른 : 백승일
KBS 관현악단
클라리넷과 대금이 중심이 된 곡으로 남도의 ‘계면조 선율’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계면조 선율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서양의 ‘
에올리아 모드’에 가깝다.
화성의 색깔을 변화시키면서 다양한 감정을 일으키도록 하였다. 나는
전통악기가 서양악기를 만나면 음악 더욱 더 풍부해 지는 것 같다. 대금이
서양의 어쿠스틱한 현을 타고 노래할 때 대금 속에 숨은 또 다른 대금의
모습을 발견한다.
5. 소릿길
해금 : 정수년, 클라리넷 : 신광식
소리는 소리이되 소리가 아니다. 이것이 이 곡의 주제이다. 전통적인 가락을
해금과 클라리넷이 끝없이 찾는다. 그러나 두 소리는 융합하지 못하고 갈등만
할 뿐이다. 이것은 이 시대를 사는 나에게 주어진 ‘음악적 딜레마의 한 단면’
이다.
* 심화영 명인을 위하여
6. 방황
대금 : 신주희, 타악 : 김기철, 김혜진
클라리넷 : 신광식, 오보에 : 전문식, 호른 : 백승일
KBS 관현악단
이 곡은 나의 낭만적인 심정을 숨김없이 드러낸 작품이다. 지난 날의 사랑이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민족음악이란 이름 아래 살아온 지난 날들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오랜 방황이었던 것 같다. 오늘 나는 계속되는 방황 안에서도 지워
지지 않는 뜨거움이 살아 있음이 느낀다.
7. 철새 무리
소금 : 한충은, 대금 : 신주희, 피리 : 김효도, 해금 : 정수년, 25현금 : 김문주,
타악 : 김혜진, 김기철
KBS 관현악단
이 곡은 어린이 창극 ‘효녀 심청’에 사용되었던 배경음악을 편곡한
음악이다. 아련한 허공의 변화무쌍한 영상을 음악적으로 표현하였다.
* 김수악 명인을 위하여
8. 사랑
오보에 : 전문식, 25현금 : 김문주, 호른 : 백승일, 타악 : 김혜진
KBS 관현악단
故 김남주 시인을 위해 작곡한 곡이다. 나는 90년대 초반 그의 시를 자주
읽었 다. 그는 암울한 시대에 가장 직설적으로 시대에 항변하였던 양심 있는
시인이 었다.
나는 그의 솔직함과 용기를 부러워했고 또한 흠모했었다. 이 곡은 그의
거칠음 속에 숨어 있는 맑고 맑은 사랑을 표현한 곡이다.
9. 숨기고 싶은 이야기
피리 : 김효도, 소금 : 한충은, 대금 : 신주희, 해금 : 정수년, 25현금 : 김문주
타악 : 김혜진, 김기철
KBS 관현악단
어린이 창극 ‘효녀 심청’에 사용했던 노래를 기악으로 편곡한 곡이다. 남도
‘진계면’적인 가락을 통해 명인들의 한을 표현하고자 했다. 답답한 오랜 세월
동안 너무나 많은 명인들이 작고하셨다. 소리 하나 남기시지 못하고 작고하신
명인들을 위로하고픈 마음이 이 곡엔 있다.
* 정영만 명인을 위하여
10. 다도해의 제사장
KBS 관현악단
이 곡은 나의 친구 원 일(한국 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의 영화음악
‘아름다운 시절' 에 사용되었던 단선율을 차용하여 작곡한 곡으로 그의
선율에 변화를 주었고 서양적인 대위법을 사용하여 음악적인 색깔을 다양하게
표현하였다.
마치 바다 앞에서 경건한 의식을 하듯 ‘5음 음계’의 선율을 조용히 음미
한다.
11. 바다의 전설
대금 : 신주희, 25현금 : 김문주, 클라리넷 : 신광식
KBS 관현악단
이 곡은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을이라는 계절에 맞이했던 추억들을 담아
작곡한 곡이다. 가을이 되면 자연의 화려한 변화가 나를 흥분시키고 약간
서늘한 바람은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내 귓속에 풀어놓는다. 그 이야기 중에는 나의
때묻지 않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도 있고 20대의 열정도 있고 오래된 나의
‘바다’의 이야기도 있다.
12.청산
해금 : 정수년 소금: 한충은, 대금 : 신주희, 피리 :김효도, 태평소 : 나원일
25현금 : 김문주, 거문고 : 김동원, 김기철, 김혜진
KBS 관현악단
2000년 나의 가무악 ‘청산별곡’ 중 ‘새춤’을 다시 편곡한 음악으로 민중의
한과 끝없는 고난을 표현한 곡으로 가락은 시용향악보의 ‘청산별곡’ 가락과
남도 계면조적인 선율을 사용하고 있다.
수많은 외세의 침략으로 국토가 유린당해도 우리는 우리의 소리를
잊은 적이 없었다. 우리 음악의 본질은 같고 다음
세대로 음악을 유전할 수 있었으나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풍족한 이 때 우리의
신명은 영양 실조로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있다.
(해설 : 김대성/작곡가)
<공사창립 HDTV 특별기획 5부작 ‘소리’>
프로듀서 최공섭
글・구성 문예원
중계음향 조진익, 이상태
촬영감독 김승연, 지한규, 정희천, 최찬영
편집감독 이정훈, 이종연
제작편집 김효찬, 최승필, 박경현, 정혜원
더빙감독 이상봉
내레이터 김세원
음악효과 이남홍, 오미자
타이틀 디자인 이일구
특수영상 이두환, 공유표
컴퓨터그래픽 김현성
제작지원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자료조사 김보길
조연출 홍원식
연 출 김일중, 김양래, 진옥섭, 곽윤일
제 작 KBS 굿모닝코리아
* 다섯 편을 녹음하면서 몇 번을 울었다. 하나같이 배고프고 고단한
삶이었지만 오로지 예술을 위하여 묵묵히 받아들이는 그 정신이
너무나 순수해서...목이 메었다. 그래서 나는 NG를 여러 번 냈다.
그들은 아름다운 분들이었다.
(김세원・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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