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SITEMAP  
  운영자게시판 질문게시판(국악음반) 방명록 광고게시판

/

쉼터  
국악음반-업데이트 기준 | 출반현황 음반 구입처 안내 나의글들 정창관
2023년신보 | 2022 | 2021 | 2020이전 | 모든음반
음반 관련정보 외
국악음반 | 고전음악 | 별에 관한글 | 기타
운영자소개 | 나에 관한 기사들
 
 

음반명[부제포함] <서봉 허순구 선생의 풍류>
음반 번호 TOPCD-159 , CD 1 매
제작 / 기획사 예술기획탑
발매 연도 2014
구 분 사가반
분 류 영산회상
업데이트 일시 2014-11-23
비 고
* 2014년 11월 17 일 미의회도서관 기증.



 
<서봉 허순구 선생의 풍류>

1. 거문고 독주 (一) : 잔풍류 17:22
Geomungo Solo I: Janpungryu
세영산(잔영산), 가락제지, 상현환입 및 돌가락, 세환입 돌장 및 돌가락,
하현환입 해탄, 염불환입 및 돌가락

2. 거문고 독주 (二) : 잔풍류 01:34
Geomungo Solo II: Janpungryu
하현환입 해탄

3. 거문고 독주 (三) : 뒷풍류 02:50
Geomungo Solo III: Dwetpungryu
군악 계면환입 양청환입

4. 세악 합주 : 잔풍류 25:56
Seak Hapju: Janpungryu
세영산(잔영산), 가락제지, 상현환입 및 돌가락, 세환입 돌장 및 돌가락,
하현환입 해탄, 염불환입 및 돌가락, 타령, 군악

5. 단소 독주 : 청성곡 03:45
Danso Solo: Cheongseonggok

6. 거문고 독주와 여창 가곡 : 편수대엽 모시를..... 02:01 총 53:29
Geomungo Solo & Gagok for Female Voice: Pyeonsudaeyeop
여창 향란(香蘭)

* 연주:허순구.

------------------------------

•녹음 : 1960년경 릴테입 모노 트랙

•원고해설: 이보형 (한국고음반연구회 회장)

•음원보정, 편집 및 마스터링: 양정환

•Director / 양정환 TOP ARTS (음제1442호) / P&C Yang Jeong-hwan, www.gugakcd.com

•Jacket Design / MUSONG

•TOPCD-159 • Manufactured by HWAEUM. 2014.7. Seoul, Korea www.gugakcd.com

•이 음반에 수록된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무단 복사·복제 사용하는 것은 법률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 대구 풍류의 전승자인 허순구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비매품으로 출반되었다. 이번에 대구향제 줄풍류보존회도 창단되었다. 음질은 양호하지 못하다. 해설서는 아래 내용이다.(2014.11.23)
 
* 해설서에서 :

서봉(曙峯) 허순구(許珣九) 선생의 풍류와 인생

이보형(한국고음반연구회 회장)

一. 서설(序說)

서봉 허순구(許珣九 1903~1978) 선생이 생전에 즐겨 타시던 거문고 녹음자료를 50여년간 후손이 고이 간직하고 있더니 세월이 흘러 이를 음반으로 펴내 빛을 보게 되었다. 한국고음반연구회에서 이를 엮어 음반을 내는 작업에 일조를 하였으니 영광스럽기 그지 없다.

서봉선생의 생전 업적을 아시는 분들이야 이 음반을 대하게 되면 그 감회야 어찌 우리와 비길 수 있으랴? 서봉선생이 누구신가? 선생의 장년시절을 아시는 많은 분들은 선생이 호암 이병철 선생과 더불어 삼성상회를 창립하였고 계속 호암선생과 함께 기업 활동을 하면서 오늘날 삼성 대기업의 초석을 다지는데 큰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이 나라 산업경제의 황무지를 개척한 큰 기업인이시라 한다.

그런가 하면 서봉선생이 만년에 대구에서 거문고로 풍류활동을 하시던 시절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이 음반을 대하면 더욱 가슴이 울릴 것이다. 선생이 대구 정악회에서 거문고 풍류객으로 활동하시며 거문고의 탁월한 연주 기량을 발휘하시던 일도 위대하지만, 당시에 쇠퇴해가던 대구의 국악을 중흥하기 위하여 여러 국악 명인들을 초청하여 대구에서 국악 활동을 하게 밀어준 위대한 음악 후원자로 기억하시는 국악인들은 이 음반을 대하게 되면 눈시울이 뜨거울 것이다.

더러는 서봉선생과 같은 대 기업인이 만년에 거문고 음악에 몰입한 데 대하여 기이한 일로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로부터 거문고 풍류(風流)에 심취하는 것이 선비들의 문기 있는 예도(藝道)의 하나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결코 기이한 일이 아니라 할 것이다.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가 삼절(三絶)이라 하여 서화, 시문과 함께 금(琴)에도 절륜(絶倫)하였다 하지 않았던가? 왕유가 누구인가? 시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태백과 두보에 내리지 않았고, 서화로 말할 것 같으면 남종화(南宗畵)가 그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이를 만큼 대단한 화가인 왕유가 금에도 천하 명인으로 꼽히었다 하지 않는가? 금이라는 악기는 우리나라로 치면 거문고와 같은 악기이다.

중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거문고를 다스리며 마음을 닦던 선비는 적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경주 최 부자 집 풍류객들이다. 대대로 경주에서 첫 손 꼽는 부자로 살면서 수많은 적선을 하였기로 유명한 집안에서 풍류객을 많이 배출한 것이다. 종손인 최윤(崔潤)은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에 참가한 명사로 거문고 풍류에 대가였고, 그 집안의 최창로(崔昌老)는 거문고 기량이 대단하여 경주 뿐 아니라 대구에서 풍류방 사범으로 일하였고, 서울까지도 이름이 알려졌다. 이 밖에도 담양의 국 참봉, 구례의 절골 김씨 일가, 등등 그 예는 참으로 많다.

그러고 보면 서봉선생은 우리 민족이 먼 뒷날 경제가 피어 날 것이고 문화가 창달되어 세계로 펴나갈 것임을 믿고 이를 위하여 헌신하신 선각자가 아니신가?

서광(曙光)이 이 땅에 비칠 줄을 어이 미리 아셨을꼬?
봉봉(峯峯)이 나무마다, 곡곡(谷谷)이 풀잎마다
순옥(珣玉) 같이 영롱한 이 땅의 열매들이
구주(九洲)로 퍼져나가 이 나라의 빛이 될 것임을...

二. 서봉선생의 기업 경영인으로써 생애와 활동

서봉 허순구 선생은 1903년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서 허만형 공과 창녕 조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나셨다. 대를 이은 부농의 집안에 태어났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드물게 연희전문학교 수물과(數物科)를 수료하였다 한다. 서봉선생은 1927년 25세 젊은 나이로 일찍 부터 경남 진주에서 “문성당”이라는 백화점을 설립하여 기업경영에 나섰다. 이는 나라가 깨진 마당에 민족이 부강하여야 국권을 회복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라 하는데 서봉선생이 태어난 지역이 두루 근대 한국의 거대 기업인들이 많이 태어난 고장인데다 삼성 기업을 창업하신 호암 이병철 회장이 서봉선생의 처남이라 하니 선생은 천생 기업인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출발한 서봉선생의 기업인생은 1938년에 호암 이병철 회장과 삼성상회를 창립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삼성그룹의 초석이 되었다 한다. 서봉선생은 삼성그룹의 막대한 자금 지원자로 또 삼성계열 기업의 주요 경영인으로 참가하며 오늘날과 같은 거대기업으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라 한다. 서봉선생의 1950년대 이후로는 대구에서 만년을 보내셨는데 거문고 풍류에 마음을 두시고 1960년 후반에는 대구 정악회를 주도하며 풍류활동과 국악인을 돕는 일에 헌신하시다가 1978년 향년 76세로 타계하셨다.

<서봉선생의 기업 활동에 관하여서는 국립국악원 연구실의 이숙희 박사가 자세히 기록을 남기었기로 여기에서는 이렇게 약술하기로 한다.>

三. 서봉선생의 거문고 풍류객으로써 활동

서봉선생이 어느 때 어떤 계기로 거문고 풍류에 마음을 두셨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집히는 것은 선생의 고향이 예도(藝都) 진주 근방이라서 젊어서부터 거문고 풍류의 아정한 취향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같은 고장 출신 호암 이병철 회장의 형제분들도 전통 예술에 일가견이 있으셨고 이 형제분들과 같은 고향 출신이며 친구 사이이신 기산 박헌봉 선생은 가야금 풍류 명인일 뿐만 아니라 국악계를 경영하셔서 뒤에 국악예술학교를 창립하여 국악계의 지도자가 되기까지 하였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서봉선생은 이미 거문고 풍류의 아취에 대하여 알고 계시었지만 청장년 시절에는 기업 경영에 헌신하여 풍류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던 것 같고, 만년에 기업 일선에 은퇴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되자 곧 거문고 풍류를 닦을 마음을 두신 것으로 보인다.

그때가 1950년대 말 무렵일 것으로 추측된다. 선생은 대구에서 권학영(權鶴泳)이 회장으로 활동하던 대구 정악회(正樂會)에 참가하여 거문고를 배운 것 같다. 선생의 거문고 스승에 대하여는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에 대구 정악회에서 거문고 스승으로 있던 명인으로는 언양 출신 신은휴(申恩休)와 경주 출신의 최창로(崔昌老)가 있었는데 이들에게서 서봉선생이 거문고를 배운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권학영이 회장으로 있던 대구 정악회는 대구 덕산동에 있던 권회장의 순흥약국에 있었고 회원은 권학영 외에 그의 동생 권익영, 손풍, 약국을 하던 윤창수(允昌洙), 대법관을 지낸 김연수(金然洙), 신문사 주필 서씨 등 많은 인물이 참가 하였고, 사범으로 방준호, 심창휴, 최창로, 채맹인이 있었다 한다. 당시에 서봉선생의 업적이 드러나지 않은 것은 거문고를 배우는 중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윽고 서봉선생이 거문고에 일가를 이룰 무렵에는 회원들이 노쇠하여 풍류회가 해산되고 말았다.

대구 정악회가 해산되자 서봉선생이 일선에 나서서 동호인들을 다시 모아 풍류회를 이끌어 갔는데 금호강 절벽 위에 있던 서봉선생의 별장 금호정에서 풍류회를 열었다고 한다. 195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초까지 대구에 남아 있던 풍류회원들 뿐만 아니라 전라도에서 온 시조의 명인 정경태 및 유종구, 단소의 명인 전추산, 판소리 명창 정권진이 참가 하였다고 한다. 많은 국악 명인들이 서봉선생의 후원에 힘입어 활동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선생의 풍류회 활동은 1970년대 초까지 지속된 것 같다.

선생의 유품으로 거문고 및 양금과 같은 악기와 손수 편집한 3권의 악보, 그리고 선생의 음악을 녹음한 릴 테입 음향자료가 남아 있다. 악보는 국립국악원장을 역임한 이동복 교수의 해제를 함께 실어서 서봉국악보(曙峯國樂譜)로 이미 출판되었다. 이번에 선생의 거문고 음악을 녹음한 테입 자료는 복각하여 본 음반에 담은 것이다.

四. 서봉선생의 음반 내력과 내용

서봉선생이 음악 전문가가 아니고 아취 있는 선비의 풍도로 거문고 풍류활동을 한 것이라 상업적인 음반을 내는 일은 마음에 두시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평소에 연마하던 거문고 기량을 가늠하기 위하여 틈틈이 녹음해 둔 것과 대구 정악회에서 개최하는 매월 열리는 삭회나 춘추회 대회에서 여러 풍류객과 갖는 풍류회에서 연주한 것을 기념으로 녹음해 둔 것이라 생각된다.

1960년 경에 녹음기가 귀하던 시절 릴 녹음기에 녹음한 것이라 참 귀한 자료라 생각된다. 서봉선생의 차남인 허병천이 소중히 보관하고 있던 것을 서봉선생을 기리는 마음을 지닌 분들의 도움으로 이를 음반에 담아 공개하는 것이다.

이 음반에 실린 자료는 모두 6종인데 3종은 서봉선생이 손수 거문고로 탄 현악영산회상 중에 몇 곡씩을 녹음해 둔 것이고, 1종은 서봉선생이 단소로 청성곡을 연주한 것을 녹음기에 담은 것이고, 2종은 대구정악회에서 삭회나 춘추회에서 회원들과 영산회상 및 가곡을 합주한 것을 녹음한 것으로 보인다.

1. 거문고 독주 (一) : 잔풍류

서봉선생이 거문고로 잔풍류를 독주한 것을 녹음한 것이다. 자료에는 이를 “본풍류”라 기록하였지만 내용은 잔풍류이다. 본풍류라는 것은 여기에서 현악영산회상을 상영산(본영산)에서 시작하는 줄풍류를 가리키는 것이고 잔풍류란 세영산(잔영산)에서 부터 시작하는 줄풍류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자료는 세영산(잔영산), 가락제지, 상현환입 및 돌가락, 세환입 돌장 및 돌가락, 하현환입 해탄, 염불환입 및 돌가락으로 구성되었고 18분 정도 걸렸다.

흔히 정악원에서 행하는 일회(日會)에서는 잔풍류를 연주하며, 삭회(朔會 월례회)나 춘추회(春秋會)에서는 본풍류를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선비들이 거문고로 마음을 다스리던 아정한 음악이라 듣는 이로 하여금 선경(仙境)에 들게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2. 거문고 독주 (二) : 하현 해탄

서봉선생이 홀로 거문고 풍류 하현환입 해탄을 연주한 것이다. 해탄이라는 말은 쉬운 말로 이르자면 “흩트려 탄다”는 뜻인데 특별한 연주법으로 개인적인 흥취가 드러나게 타는 음악이다. 1분 반 쯤 걸린다. 짐작컨대 서봉선생이 거문고로 해탄을 타면서 스스로의 개성적 기법을 담고자 녹음한 것이 아닌가 싶어 주목되는 대목이다.

3. 거문고 독주 (三) : 뒷풍류

서봉선생이 홀로 거문고로 뒷풍류를 연주한 것이다. 영산회상에서 군악까지를 본풍류라 이르고 뒤를 이어서 연주하는 계면환입, 양청, 우조환입을 뒷풍류라 이른다. 이 자료에서는 본풍류 끝 곡인 군악에 이어서 계면환입, 양청을 담았다. 3분 쯤 걸린다. 본풍류가 화평정대(和平正大)한 기품을 갖는 음악이라 한다면 뒷풍류는 화기애애(和氣靄靄)한 멋을 부리는 음악이라 할 것이다.

4. 세악 합주 : 잔풍류

짐작컨대 서봉선생이 대구 정악회 회원들과 잔풍류를 합주한 것을 녹음한 것 같다. 연주된 곡목은 세영산(잔영산), 가락제지, 상현환입 및 돌가락, 세환입 돌장 돌가락, 하현환입 해탄, 염불환입 및 돌가락, 타령, 군악으로 구성되었다. 혹시 대구 정악회 회원들과 금호정 절경 속에서 연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1960년대 대구 풍류객들의 진멋을 가늠하는 재미있는 자료일 것이다.

5. 단소 독주 : 청성곡

서봉선생이 단소로 청성곡을 독주한 것을 녹음한 자료이다. 서봉선생이 거문고 뿐만 아니라 단소에도 능하였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풍류하는 선비들은 거문고는 물론, 가야금, 단소, 양금, 장고와 같은 여러 악기를 고루 익혀 줄풍류 합주에 그때그때 악기를 맡아 합주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춘추회와 같은 대회에서는 세피리, 대금(젓대), 해금과 같은 연주하기 까다로운 악기도 참가하는데 이때는 풍류객이 아닌 음악 전문가를 초빙하여 합주에 특수 악기의 도움을 받는다.

청성곡이란 “청성삭대엽, 청성자진한입”을 한문으로 적은 것인데 일제 강점기에 김계선이 삼현육각으로 연주하던 가곡 청성자진한입을 대금 독주로 편곡하고 다시 높은 음으로 변주한 곡이라 한다. 이것을 풍류객들이 단소로 편곡하여 연주하는 것인데 그윽하기 이를 데 없어 풍류객이라면 한번쯤은 도전해 보고 싶은 음악이다. 이런 음악은 연주하기 지난(知難)한 음악인데 서봉선생이 이를 잘 극복하여 솜씨를 보이는 것은 선생이 예사로운 풍류객이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6. 거문고독주 와 여창가곡 : 편수대엽 “모시를...”

서봉선생의 거문고 반주로 여창 가객 향란(香蘭) 선생이 가곡 한 잎으로 편수대업 “모시를...”을 불렀다. 거문고 명인은 가곡 반주에도 일가를 이뤄야 진정한 풍류객의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서봉선생이 “향란” 선생과 가곡 편수대엽 “모시를...”을 담은 이 음반은 선생이 거문고 거장이라는 것을 길이 증거하는 자료가 될 것이다. 그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모시를 이리저리 삼아 두루 삼아 감삼다가
가다가 한 가운데 뚝 끊쳐지옵거든
단순호치로 흠빨며 감빨아 섬섬옥수로 마조 잡아
배붙여 이르리라 저 모시를
우리도, 사랑 그쳐 갈 제 저 모시 같이 이으리라
Best viewed with MS Explorer 5 at 1024x768 * Copyright ⓒ 2000 Changkwan Jun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