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설서에서 :
강민정 약력
강 민정(옥임)은 임인(1962)년 4월 5일생으로 서광사라는 사찰의 주지의 둘째 딸로 태어나 전형적인 농촌에서 살다가 14세 무렵 신이 왔지만 좌정을 시켜놓고 결혼 후 무불통신을 하여 운명으로 알고 있던 중 1985년 음력 5월 30일 내림굿을 하여 인간의 세계에서 신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1992년 10월 무렵 현 보유자인 중요무형문화재 제 104호 서울 새남굿 보유자인 이상순 선생을 신어머니로 모시고 장고,제금, 춤사위, 진설상 등 기초부터 학습을 하여 천신굿, 진오귀굿, 서울 새남굿, 황제풀이(성주굿) 등 전 과정을 이수하고 1996년부텨 서울 새남굿 활동을 하게 되었다.
2003년 8월 1일부터는 이수자로서 현재 활동 중이며 사설이 길고 청을 내기가 어렵다는 황제풀이- 서울 지역에서는 성주굿을 황제풀이라고 한다 - 를 이상순 선생으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아 2010년도 1월에 출반했다.
▶ 국내 공연 내역
- 2003. 7, 서울 새남굿 (주최; 한양대인류학과), (국립박물관 학교; 주관)
- 2003, 5, 서울 새남굿, 주최; 민간인학살 범국민위원회, “찾아가는 전통문화”
(장소; 국회의사당 당사 앞)
- 2004. 7, 서울 새남굿, (주최; 성동문화원)
- 2005. 7, 서울 새남굿, (주최; 국립민속박물관)
- 2008. 5, 서울 새남굿, (주최; 성동문화원), “ 서울 숲 공원”
- 2008. 5, 서울 새남굿, (주최; 김유정기념사업회), “작가 김유정 원한굿”
- 2008. 6, 홍지문 애국지사위령제 (주최; 동두천시)
- 2009. 4, 인왕산 산신제
- 2009.4.3 강민정서울새남굿 제1회 개인발표회(장소: 국사당)
- 2009. 5.5 서울천신굿 (주최: 목아박물관)
- 2009. 7. 서울새남굿 - 홍지문애국지사 위령제: 소요산광장(주최: 동두천시)
- 2009. 9, 바댕이 축제 (주최; 남양주시)
- 2009. 11. 김포 민간인 학살 위령제 (주최; 김포시)
- 2009. 11.11.-12., 서울 새남굿 정기발표회 참가 (바리공주 구송)
(서울 풍류극장 ,선릉 소재)
▶ 해외 공연
- 일본 공연
2001. 관동 대지진 80주년 추모제
- 베트남 공연
2009. 서울 새남굿 공연 (주최; 유네스코 베트남 동북아 지부)
강민정 황제풀이
이자균(한국민속연구소 선임연구원)
우리나라의 신격 중에서 각기 맡은 신격이 있다.
여기에서 서울, 경기 강신무 들이 하는 굿 중에서 신격에 대해서 잠시 알아 보도록 하자
이미 극소수 연구자들이 언급을 한 사항이라 장황하게 언급을 하지는 않지만 일부의 논자들이 특히 신격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거나 오해를 일으킨다거나 하는 경우를 들어서 언급을 해 보겠다.
여기에서 우선 서울 지역의 굿에 대해서 정확한 것을 알아야 되는데 그 사항을 언급해보겠다. 우선 굿의 규모나 집안 굿, 대동굿 그리고 굿의 종류에 따라서 그 순서가 바뀌는 수도 있고 안 하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에서는 재수굿에 한해서 다루려고 한다.
초부정은 글자 그대로 굿을 하기 전에 굿청에 신들을 모시기 위해 깨끗이 정화하기 위해서 초부정을 친다.
열두거리 신들을 쳐들어 가면서 주워 섬기는데 경기도 강신무들도 앉아서 평상복 차림으로 하며 나중에는 잿물로 부정을 가시고 여민다.
고추 가루를 타서 가시는 것은 고춧가루가 임진왜란 이후로 들어 온 것이라 옛 방식이 아니다. 그러나 소지에 불을 붙여서 부정을 가시는 것은 다른 지방도 있다.
가망 청배에서 “가망” 이라는 용어는 본디 중국의 종교인 도교의 “감응”에서 나온 것이다.
이 신격을 정확하게 무격(巫覡) 들은 이름을 대지 못하고 있는데 더 고찰이 필요하다.
본향산은 어느 곳에서 하든지 산을 쳐들면서 하는 것인데 황해도 지역에서는 “산거리” 라고 하며 “산천거리” 라고도 하는데 같은 뜻이며 각도 명산을 쳐들면서 하는 것이다.
이를 “ 산을 헤친다” 고 한다. 산을 헤쳐야 신들을 초청을 하기 때문이다.
불사거리는 아기를 점지하고 수명 장수하라고 하는 굿이며 그 뒤에 따라 하는 호구아가씨 굿은 천연두를 앓은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아니면 이를 앓은 이들을 고치기 위해서 하는 굿이다. 전통 사회에서는 마마가 돌림병이라서 무척 고치기 힘든 병이었고 호랑이 보다도 더 무서워했다.
본디 신을 즐겁게 놀게 하고 기쁘게 하는 거리는 “불사거리”에서 바라를 양손에 들고서 바라를 팔며 “중 타령” 을 하면서 목청 좋은 무녀가 소리를 멋있게 하는 게 본디 모습이었는데 변질되어 버렸고 아직도 옛 방식을 고집하는 무녀들은 이렇게 한다.
상산마누라거리는 개성에서 억울한 죽임을 당한 여말선초(麗末鮮初) 최영 장군을 기리기 위한 굿이다. 여기에서 상산은 개성의 덕물산을 이른다. 서울의 노(老) 무녀(巫女)들은 - 물론 지금도 일반적인 용어는 아니나 일명 “댄주드린다” 고 - 한다.
별상은 다른 별칭으로 별성 마마라고도 하기도 하는데 일부 용어에서는 정조의 아버지 “ 뒤주 대왕 사도세자” 를 위하는 굿이라고 하지만 아직 정설은 아니며 이 역시 고구(考究)가 필요하다. 사슬을 세우고 명잔 복잔을 주고 나서 바로 “별상 노랫가락” 을 한다
신장은 불교가 무속과 결합을 하면서 생긴 용어인데 불교의 신중단과 깊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불교의 색채가 짙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나 이는 큰 오해이며 사실은 오방기를 뽑고 신장타령 하고 기돌림을 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이 신장거리는 일천구백 삼십년도 후반에 생겨서 지금에 이르렀는데 그 전에는 전내(전내고지)들이 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으며 지금까지 하고 있는 우스꽝스런 거리이다.
대감은 본디 서울, 경기 지역은 터(址;지)를 주관하는 신격을 말하는데 지금은 앞의 부분과 뒷부분을 바뀌어서 하고 있다.
이 대감놀이는 일제 시대 즉 일천구백 삼십년 이후로 만들어진 거리이며 나중에는 유흥적인 거리로 전락을 한 대표적인 거리가 되어버렸다.
터주가리가 있는 집은 이 앞에서 만수받이를 하고 이 터주가리는 새 것으로 간다.
텃 대감을 하기 위해서 시루떡을 머리에 이고 남쾌자를 입고서 막걸리를 뿌리고 집안 곳곳에 뿌리며 다니는데 텃 대감을 위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즐겁고 흥겹게 “노는 거리” 는 불사거리에서 하는 것이며 대감거리에서 하는 것이 아니며 세월이 변하여 불사거리에서 대감거리로 옮겨져버렸다.
안당제석은 그 집안의 안방에서 불사 상을 차린 것과 같이 진설을 하고서 하는데 성격은 불사거리와 대동소이 하다.
조상거리는 글자 그대로 그 집안의 조상님들을 청해서 굿을 하는 것이며 못 다한 말이나 원한을 풀어드리는 거리이다.
말명 조상은 집안 굿이나 대동 굿에서 하는 것과는 그 신격이 다르며 대상도 다르다.
따라서 말명거리는 따로 한 거리가 독립적으로 있으며 지금은 말명 조상과 같이 하는 것은 옛 방식이 아니다.
군웅 굿은 군웅 신을 위한 것인데 서울,경기도 지방은 군웅거리를 그렇게 유별나게 다루지 않고 성주 굿 끝에 잠깐 쳐들고 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경북, 강원도, 황해도나 평안도 등지는 독립하여 한 거리를 엮어낸다.
특히 산악 지방인 황해도나 평안도는 신격은 장군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군웅신과 사냥을 하는 의식을 혼합하여 사설을 엮어 나가며 신격 역시 마찬가지이다.
서울의 경우 작자 미상의 <무당 내력>이라는 영인본을 보면 중국의 사신들이 왔다가 구릉(丘陵)에서 즉 고개를 넘는다거나 호란, 호환(호랑이한테 물려간 집이나 그런 혼령)을 당하거나 무슨 사고를 당하여 이를 기리기 위해서 굿을 한다고 기록을 했는데 이 사람이 누군지도 아직 밝혀 진 바도 없을 뿐더러 두 가지 견해가 있어서 혼동만 줄 뿐이며 일견 타당성도 있어 보이지만 다른 지방의 사설이나 의식을 보면 군웅 장수가 훨씬 설득력 있어 보인다.
서낭 굿은 성황당을 들추지만 서낭 신을 위한 굿이며 몽골의 <오보>와 같은 것이며 일부 지방에서는 와음이 되어 서낭이 <선황> 즉 배에서 하는 굿을 서낭이라고 잘못 발음을 하여 부르기도 하는데 배에서 하는 굿은 선왕굿(船王 굿)이며 주로 바다나 갯가에서 하는 것이며 사설도 주로 생선 이름, 배 이름 등을 쳐들며 육지의 서낭 굿과는 전혀 다르다.
창부 신은 악기를 다루고 노래를 부르는 신을 위하는 것이며 국사당의 무신도에도 창부가 패랭이를 쓰고 피리 부는 그림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하여 서울의 창부 거리는 머리에 패랭이를 쓰고 쾌자를 입고 굿을 하는데 사설에도 있듯이 시골의 광대가 서울로 올라 오는 장면을 묘사하는 대목이 나오며 뒤에는 일년 열두달 도액풀이라고 풀어내는 대목이 있다.
제면거리는 제면각시를 위하는 거리인데 지방마다 그 신격이 조금 다르다.
지금 제면 굿을 하는 지방은 경상도, 서울, 경기, 제주도에서 하고 있다.
서울, 경기는 제면 떡을 팔면서 떡 타령을 하는데 별별 떡 이름을 재미있게 사설을 지어서 하며 제주도는 제면각시가 조밥을 흩뿌리면 그 모여 있는 정도나 방향을 보아서 바다 생선의 종자나 해조류 풍년을 기원하는 하는 것이며 경상남북도 해안가 역시 바닷가라서 그 성격이 같다.
뒤전은 본청에 못 들어 온 잡귀잡신들을 잘 먹고 가라고 풀어먹이는 것이며 간혹 집굿에서 “ 맹인굿” 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그 집안에 맹인이 된 조상이 있을 경우에만 하는 것이며 대동 굿에서 하는 것은 예전 전통 사회에서는 맹인(盲人)이 많아서 이런 이들이 세상을 뜨면 잘 대접해 보낸다는 뜻에서 하는 것이다.
그럼 주된 내용인 성주굿에 대해서 알아 보기로 하자
성주는 어느 집안의 집을 관장하는 신을 성주라고 한다.
서울에서 성주풀이는 “황제풀이” 라고 하며 다른 지방은 안 쓰는 용어이다.
성주풀이를 언급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 갈 것이 있다.
황제풀이는 본디는 무녀가 한 게 아니고 “기대” 라고 하는 이들이 담당을 했다.
기대는 무녀는 아닌데 - 더러 신이 내린 이들도 있으나 대체로 신이 내리지 않은 이들이다- 사설이 좋고 즉 문서가 좋으며 이들이 하는 구실은 초부정, 가망, 당금애기 타령, 바리공주, 성주굿(갖은 성주), 황제풀이, 도령(밧도령, 안도령) 을 하는데 악사와 같이 초청을 하여서 이런 굿을 하였고 이들이 세상을 뜨자 무녀들이 장고나 이런 사설들을 배워서 굿을 하는 것으로 변하였다.
서울의 사대문 밖이나 안에는 이런 이들이 많이 살았는데 이들이 전해 준 문서들이 많이 전하며 경기도 일원에서도 가끔 보이며 경기도 남부의 세습적으로 하는 이들은 아예 이런 문서로 학습을 한다.
그렇다면 대관절 성주굿은 언제 하나?
성주굿은 굿을 의뢰한 재가집에서 그 해에 간지와 그 집의 남자 주인과 오행을 짚어 봐서 성주굿을 할 해이면 하는 것이며 성주굿을 할 해가 아니면 안 하게 되는 것이다.
덧붙여서 황제풀이는 집을 짓고 나서 하거나 헌 집을 헐고 신축을 한다거나 할 적에도 황제풀이를 한다.
보통 재수굿에서 성주굿은 앞서 이야기한 성주굿을 받을 운이(시기가) 아니면 “흘림성주” 로 한다.
진설상은 황제풀이나 흘림성주나 대동소이하며 반드시 소나무를 꺾어다가 하는데 이 소나무는 동쪽으로 벋은 상순을 꺾어서 가져 오며 “참나무가 살랑거려서 성주가 산란하면 대주가 산란하다”고 하여 참나무는 사용 안 하며 요즈음 참나무를 사용하는 것은 옛 방식이 아니며
또 하나 성주굿은 반드시 그 굿을 맡은 당주가 하는 것이며 뒤에 황제풀이는 기대가 하며 가세가 넉넉한 집안은 비단도 한 필 올려놓고 쌀도 상미 쌀을 가려서 한 가마씩을 놓는데 이는 당주가 모두 가져 가는 게 관행이다.
일일이 그 집안에 식구대로 대를 가려서 공수나 덕담을 주는데 이는 시간이 촉박하여 이렇게 하는 집은 지금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대를 잡는 대잡이가 오거나 해서 대를 내리면 가고 싶은대로 가서 지적을 하기도 한다.
서울의 성주굿에서는 나중에는 성주대를 말아 올려서 성주대를 붙이고 전 해에 붙였던 것은 떼어내고 새로 새 것으로 붙이며 “ 천석이냐 만석이야” 하며 외치며 쌀을 뿌리며 붙인 곳에다 흩부린다.
성주붙이기는 미지근한 막걸리에다 한지를 담갔다가 그 한지 속에 동전 세 잎을 넣어서 싸고 - 어느 집은 안 싸는 집도 있다 - 이를 성주 붙이는 자리에 붙이는 것이다.
경기도에서도 비슷하며 충청도 중부 지역은 안방에다가 붙이며 황해도는 오곡을 단지에다 담아 진설을 하고 성주 상을 따로 차리고 난 다음 단지 속에다 삼베를 서른 세 치를 담아서 항아리에다 서려 담은 다음 - 이것은 나중에 성주 항아리로 안친다 - 만수받이 청배를 하며 - 이는 개인적인 진적을 할 적에 하며 하는 것이다 - 새 성주굿은 성주 상을 차려놓은 다음 한 사람이 만수받이를 한 다음 밑에서 한 사람이 수수반데기 떡을 지붕 위에 던지면서 “새 올립니다” 하며 던지면 지붕 위의 사람은 수수반데기 떡을 받으며 반데기 떡을 쌓아놓는다. 강원도 경상남북도에서는 성주굿을 별신굿에서 하는 데 경북 울진군 후포 5리에서 있었던 성주굿 본 것을 간략하게나마 언급한다면 마을의 경로당에 상을 진설해놓고 청배 하고 명잔 복잔 주고 나서 홍두깨를 가지고 성주 쌀 위에서 사슬을 세우는데 이들은 강신무가 아니라서 잠깐 세웠다가 내려놓고 바로 성주 붙이기를 하였다.
성주붙이기는 한지로 사람 모양을 오려서 집의 모서리에 붙이는데 붙을 때까지 하며 붙이면 온 동리 사람들이 성주 신이 잘 받았다고 흥분의 도가니로 변하며 이 지역도 안 하는 동네는 안하기도 하며 개인 집에서는 성주굿을 하기도 한다.
전라도 역시 비슷하며 소리는 판패개 소리로 하며 늦은 중모리, 중모리, 빠른 중모리로 나가다가 여민다.
충청도 중부 지역에서도 이와 비슷하며 다만 성주 붙이는 것이 다른데 안방에다 붙이며 제주도는 성주 상을 차려놓고 맨 나중에는 도끼를 들고서 “강태공” 을 위한다고 하면서 그 집에 곳곳에 다니면서 나무를 찍는 시늉을 내며 집안 구석 구석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에는 굿청 앞에다 집을 조그맣게 기와집을 지어 놓고서 명도를 가지고 “산를 가리고” 대신 칼을 가지고서 강태공 성주신이 잘 받았는지 보기 위해서 던져 보며 “패를 가리고” 여민다.
제주도는 성주신이 강태공으로 나오며 제주도 전역이 같으며 입춘이 지나고 영등 굿이 끝나면 집집마다 반드시 하는 게 이 굿인데 벌써 안 한 지가 십년이(09년 기준)된다고 한다.
그러면 황제풀이 내용이 무엇인가?
이 씨디에 들어 있는 황제풀이 내용은 집 터를 닦고 고사를 지낸 후 온갖 재목을 들여다놓고 부엌 치레, 찬장, 살강, 중방, 안방을 거쳐서 벽장, 안벽 밧벽, 지붕, 온갖 문, 대문 등 집을 짓는 것을 긴 사설로 엮어 나가는데 집 짓는 과정을 실감나게 사설에 얹어서 하는 게 황제풀이다. 황제풀이는 집을 지켜주는 신에서는 성주본가(일명 성주 받이)와 같은 성격이나 성주를 받을 집에 대주를 위해서 하는 사설인데 그 내용이 많이 다르다.
지금은 성주 받을 집에서는 무녀가 이런 사설을 몰라서 아예 생략을 하고 있는 형편이며 지금 하고 있는 대개의 성주굿은 황제풀이를 하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경기도나 다른 지방에서도 “황우양씨와 막막 부인” 이야기가 어느 정도 구전으로 내려 오는데 서울에서도 이런 신화가 일제 시대에만 하여도 전승이 되었는데 지금은 황우양씨와 막막 부인 그리고 소진랑 이야기는 안 하고 보통 새 집 짓는 사설만 구송하는 것인데 그만큼 성주 받을 집이 드믈다는 뜻이며 유장하고 긴 사설을 주워 섬길만한 “기대”가 세상을 뜨다보니 결국 황제풀이만 지금까지 전승된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