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설서에서 :
●초콜릿-현악앙상블
2005년 가을, "초콜릿"이 거리를 물들인다.
가야금의 은은한 선율위에 달콤함이 있다.
아련히 파고드는 해금소리 끝에는 쌉쌀함이 있다.
웅장한 아쟁에는 감싸 안는 부드러움이 있다.
"초콜릿"은 전통국악현악기를 연주하는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그룹이다.
새로이 시도되는 국악현악앙상블로서, 가느다랗지만 결코 약하지 않은 '현'의 힘과 매력을 하나씩 하나씩 발산시키려 한다.
달콤함 끝에는 쌉쌀함이, 쌉쌀함 끝에는 부드러움이, 그리고 그 부드러움의 끝에조차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남아 다시금 찾게 되는 초콜릿처럼, 우리 음악이 여러분의 귀를 취하게 할 것이다.
●곡목해설
1. 목각인형의 춤 06:14
작곡 최지혜
가야금1:민소연, 가야금2:김혜원, 가야금3:김유선
촛불 하나를 두고 목각으로 만들어진 인형이 어색한 듯, 부자연스러운 듯 추는 춤의 모습을 형상화시킨 곡이다. 이 곡에는 가야금이 낼 수 있는 다양한 소리들이 있다. 1테마는 다소 국악적이지 않은 7음 음계를 사용하였고 2테마는 잘 알려진 민요 선율을 이용하여 귀에 익숙하다.
2. 가야금 4중주곡 “Habitus(일상)” 09:16
작곡 변계원
가야금1:장원희, 가야금2:김혜진, 가야금3:김유선, 가야금4:김혜원
이 곡은 각 악기간의 종적 진행보다는 횡적 진행에 좀 더 관심을 갖고 만든 곡이다.
1악장은 최소한의 음악적 단위를 계속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음악 전체를 이끌어 나간다.
2악장에서는 메나리 토리를 바탕으로 하여 짧은 주제 선율을 계속적으로 변주시키는데 여기에 전조와 변박을 가미하여 음악을 상승시켜 주며 절정으로 몰아간다. 또한 여기에 최소한의 음악적 단위를 계속적으로 반복시킴으로써 1악장과의 연계성과 통일성을 보여준다. 가야금은 원래 여러 번의 전조가 용이한 악기가 아니지만 4중주라는 특성을 살려 연주하는 사이사이에 4명의 주자가 돌아가며 상대방에게 안족을 옮길 시간적 여유를 주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3악장에서는 응축되어 있던 화성을 직접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곡의 대미를 장식한다. 이 곡은 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 속에 항상 변화와 새로움이 존재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선율과 리듬 형태의 반복과 변화, 발전을 가미하였다.
3. 금을 위한 중주곡 “청산에서 살리” 09:28
작곡 박위철
가야금1:김유선 김혜진, 가야금2:김혜원 장원희, 해금1:박진아, 해금2:김지은, 아쟁:김선영 김참다운
본 중주곡은 고려가요 “청산별곡”을 주제로, 현대적인 수법을 도입하여 발전시킨 곡이다. 1악장과 3악장은 고려가요 “청산별곡”을 주제로 그리움과 아쉬움, 현실을 떠나 속세에서 살지만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생각들을 표현하려고 시도하였고 2악장은 그리움과 아쉬움 속에서도 속세를 떠난 선비들의 또 다른 즐거움을 표현하려고 시도하였다.
4. 해금 중주곡 “그들의 이야기” 11:41
작곡 조원행
해금1:박진아, 해금2:송영선, 해금3:김지은
장구:연제호
각기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다르듯이 해금의 음색 또한 연주자에 의해 다양한 느낌으로 전해진다. 이 곡은 세 명의 해금 연주자를 위해 만들었다. 서로의 감성과 느낌을 이야기 하듯이 풀어나가고 전체적으로 조화롭고 아름답게 때론 불협적으로 다양한 리듬을 통해 발전 되어진다.
5. 3대의 가야금을 위한 “가을 Sonnet” 07:05
작곡 오의혜
가야금1:당화정, 가야금2: 민소연, 가야금3:김혜진
이 곡은 고음, 중음, 저음의 3대의 가야금 3중주를 위해 작곡된 곡으로, 스산한 바람이 감도는 산기슭과 투명한 햇살 속으로 사라져가는 안개, 숲을 차고 오르는 새 떼, 그리고 무덤가에 핀 진보랏빛 들꽃과 빛 바랜 잎새, 겨울을 재촉하는 차가운 바람 등을 간결하게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묘사하였다. 각 부분별로 Sonnet를 붙이고 변박과 전조로 변화를 주었으며, 25현 가야금이 지니고 있는 장점을 적극 활용하였다.
6. 아리랑 주제에 의한 “도드리” 08:36
작곡 오의혜
가야금1:김혜진, 가야금2:김유선, 가야금3:김혜원 장원희, 해금1:김지은, 해금2:박진아
아쟁:김선영 김참다운, 장구:연제호
“도드리” 란 우리 전통 음악 보허자에서 나타난 형식으로, 이는 같은 가락이 되돌아 든다, 즉 ‘반복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리랑 주제에 의한 “도드리”는 가야금과 비파, 해금, 아쟁 등의 현악 합주를 위해 작곡된 것으로 우리에게 친근한 경기민요 “아리랑”을 주제로 삼았으며, 이 가락은 ‘되돌아 들 때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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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2005.11.4)에서 :
사람이 음악보다 아름다워! 국악현악앙상블 초콜릿 첫 연주회 이야기
김기(mylove991) 기자
군사부일체란 말은 어언 옛 말이 되어버린 지 오래. 학습은 있어도 교육은 없고, 교사나 교수는 있어도 진정 스승이라 우러러 볼 대상이 없다. 스승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입시에 멍든 탓이고, 시대의 경박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병들어 곧 멸망할 것만 같은 인류가 그래도 근근이 버티는 것은 정말 드물어도 반드시 존재하는 의인의 덕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우리 사회에는 어린 제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참다운 스승도 있다. 막연히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꼭꼭 숨겨 놓아도 결국은 드러나게 되는, 그런 쪽물 우러나듯 마음 푸른 일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팍팍한 현대를 겨우 견디게 된다. 이화여대 음악대학 곽은아 교수(국악과)와 그 제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이화여대대학원 출신이거나 재학중인 학생들이 작년 현악앙상블 '초콜릿'을 만들었다. 그들이 11월 2일 삼성동 코우스(문화재보호재단 상설공연장)에서 첫 음악회를 가졌다. 하필 오랫동안 준비해온 연주회건만 이날은 이화여대 국악과의 정기연주회와 겹쳐서 아무래도 관심을 크게 끌지 못할 형편이었다. 그러나 첫 공연 전에 이미 음반을 만들 정도로 다부지게 준비한 그들의 작은 음악회는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었다.
첫 무대. 그 설렘은 비단 프로무대가 아니라도 누구에게나 가슴 떨리고 가장 소중한 순간이 된다. 어디 대학원까지 진학하면서 무대에 몇 번 서지 않았을까마는 '초콜릿' 그들만의 무대이기에 처음 아닌 처음의 심정으로 누구 하나 온전한 정신인 사람이 없었다.
'초콜릿'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도해 온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가야금 연주자 김희정씨도 덩달아 긴장했는지 '아이고, 차라리 내가 연주하고 말지...'하며 후배들의 첫 음악회에 들뜬 심정을 누구 들으라고 할 것도 없이 토해낸다. 게다가 모교의 정기연주 때문에 기존 멤버가 2명이나 빠졌으니 그 심정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게다가 데뷔 무대라고 기자까지 불렀으니 걱정은 태산이다. 차라리 부르지나 말 걸 하며 애써 후회도 하는 듯한 눈치.
당사자는 죽을 맛이겠으나 강 건너 불 구경인 사람은 오히려 흥미롭다. 능숙한 프로들의 무대와는 달리 풋풋하고 정말로 죽을 힘 다해 준비하는 음악회를 대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짐짓 모른 체 리허설부터 그들의 사소한 말과 몸짓 하나 하나를 추적한다. 초콜릿이 워낙 그렇지 않은가. 달콤한 듯하면서도 어쩐지 떨떠름한 맛이 입에 남아 다시 또 남은 조각에 손이 가게 한다. 그저 달기만 해서는 사탕이지 초콜릿은 아닐 것이다.
현악앙상블 '초콜릿'도 그와 같다. 맑고 순수한 처녀들이 파스텔톤의 드레스를 입고 하늘거리며 무대에 등장하는데, 그 광경에 가슴 뜨끔하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다. 그런데 뜨끔이 있는가 하면 '아차!'도 있다. 평소에는 그리 걸으라 해도 안 할 것이다.
그러나 무대에 등장하는 선녀들의 걸음이 어찌나 긴장했는지 장정들처럼 쿵쾅거리고 나온다. 풋! 웃음이 나올 것만 같지만 리허설부터 그들의 긴장을 익히 아는지라 모른 체 박수를 보낸다. 이것이 초콜릿의 떫은 맛 하나.
그럼 달콤한 맛도 있어야 초콜릿이다. 그 달콤함은 그들의 연주에 있다. 요즘 국악하는 젊은이들이 열병처럼 앓고 있는 퓨전음악이 아니었다. 초콜릿의 음악은 정말 화이트 초콜릿 마냥 투명하고 달콤함을 담고 있었다. 조금 놀라운 일이었다. 창작곡을 연주한다기에 흔히 듣던 서양 클래식 편곡이거나 그도 아니면 대중음악식의 음악일거라 미리 짐작한 것이 큰 오산이었다.
얼핏 들으면 25현 가야금이 주가 되는 그들의 음악이 요즘 퓨전국악의 경향인 것 같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초콜릿의 음악은 분명히 구분되는 것이 있다. 비록 개량 가야금을 사용하지만 국악의 서정적 원형이라고 할 수도 있을 내용을 담고 있다. 어떤 곡에서는 '옹헤야'나 '아리랑' 등의 익숙한 선율도 슬쩍 내비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음악 문장은 국악보다는 그저 편히 감상할 수 있는 뉴에이지 어법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들이 가장 먼저 녹음하고도 결국 마지막에 가서 재녹음을 하는 등 가장 힘겨워 했다는 변계원 작곡의 '일상'은 더욱 그랬다. 25현 가야금이 가지고 있는 맑은 음색의 장점을 잘 아는 작곡가의 솜씨도 돋보였고, 그것을 연주하는 조심스럽고 진지한 4명의 연주자들의 손놀림도 잘 조화를 이루었다. 그야말로 특별히 마음 먹지 않고 일상의 소품처럼 우리 곁에 두면 좋을 음악이다.
'일상'으로 시작한 그들의 연주는 오의혜 작곡의 '3대의 가야금을 위한 가을sonnet', 조원행 작곡의 해금 중주곡 '그들의 이야기', 최지혜 작곡의 '목각인형의 춤', 박위철 작곡의 '금을 위한 중주곡 청산에서 살리'로 이어져 마지막으로 오의혜 작곡의 '아리랑 주제에 의한 도드리'로 끝났다. 이중 끝의 3곡이 이날 초연된 것들이다.
초콜릿의 알콩달콩한 첫 음악회는 작지만 올해 가장 큰 의미로 다가왔다.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워"란 노래도 있지만, 굳이 당연한 듯한 것을 노래로 부르는 까닭은 진정 꽃보다 아름답기 어려운 것이 또한 사람이기에 그럴 것이다. 마찬가지로 초콜릿의 음악회가 아름다운 배경에는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이들을 지도하고 이끄는 사람이 둘 있다. 물론 초콜릿의 리더는 이미 대학원을 졸업한 장원희씨지만, 단원이 아닌 선배로서, 스승으로서 함께 하는 두 사람 이야기가 참 흐뭇하다. 3년 전쯤 선후배 사이인 이화여대 곽은아 교수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김희정씨가 여러 차례 만나 후배들을 위한 일을 고민하였다고 한다. 그 고민의 결론은 자유롭고 진지하게 연주에 임할 수 있는 앙상블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당시 대학원 1학기에 다니던 초콜릿 리더 장원희씨에게 말을 건넸고 3년이 지난 올 11월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들은 연주회에 앞서 음반을 먼저 출반했다. 한 명이라도 그들의 연주에 만족한 사람이 있다면 절대 빈 손으로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야무진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음악회가 끝난 후 손에 초콜릿 하나와 초콜릿 음반을 들고 가는 사람은 하나가 아니라 무척 많았다.
음반을 위해 연습하고 녹음한 시간이 무려 10개월. 3곡은 이미 나와 있던 것이라 남의 연주가 참고도 되지만, 초연곡 3곡은 무조건 그들 스스로 해석하고 음악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작곡 위촉에도, 음반 녹음과 제작에도 당연히 돈이 들어간다. 이 정도면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이 소요됐을 것이다.
대중가요계가 아니라면 대부분 음반은 연주자 개인의 부담으로 만든다. 그것이 하도 일상화되어서 이제는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초콜릿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이들을 시간 내서 지도하는 김희정씨도 보수는커녕 자기 주머니 털어 후배들을 가르쳤지만, 음반과 음악회에 들어가는 비용 모두 곽은아
교수가 부담한 것이다.
이쯤 되면 정말 "사람이 음악보다 아름다워!"를 소리 높여 외쳐도 좋을 일이다. 그렇게 어진 스승을 만났으니 제자들이야 아름다워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스승이면 다 그래야지 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만약 있다면 그 사람은 한국의 실정에 정말 까막눈인 사람이다. 즐거운 이야기에 그렇지 않은 사례를 들어 기운을 떨어뜨릴 필요는 없기에 이 정도로 넘어가자.
그런 스승이 마련해준 음악회니 그 제자들의 연주는 혼신을 다한 것이 아닐 수 없다. 11명의 초콜릿 단원들은 연주를 마치고 다음날 대부분 앓아누웠다.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할 정도로 긴장한데다, 연주가 끝나고는 권하는 술잔을 뿌리치지 못하고 사양 끝에 몇 잔 받았을 테니, 몸살이 나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
현악앙상블 초콜릿은 매해 하나의 음반과 정기음악회를 반드시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올해는 가야금과 아쟁 그리고 해금이 어우러지는 곡들로 꾸몄고 차차 거문고, 양금 등 국악 현악기를 껴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준비를 거쳐 동서양 악기의 구분 없이 차분하고 감상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 계획이다.
지금까지 현악앙상블 초콜릿은 음악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었지만 내일부터는 사람만큼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것이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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