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목해설
한국음악은 자연스럽다고 한다. 그 이유는 율(律)의 생성과정에서 살펴볼 수 있다. 둘레가 9분인 대(竹)가 고른 율관(律管)에 1200알의 기장 알을 채워 자르니 그 길이가 9촌으로 12율의 첫 번째 음인 양률(陽律)의 황종(黃鍾)을 삼았다고 한다. 黃鍾의 黃은 누런 중앙의 빛을 나타내며 鍾은 씨앗인 종자(種子)를 가리킨다. 이 율관의 길이를 3등분하여 하나를 버리고 취한 음은 8율 높은 음율(陰律)인 임종(林鍾)이 나오고 이를 3등분하여 하나를 더해 얻은 음은 6율 아래의 양률인 태주(太簇)가 되고 이렇게 반복적으로 2/3와 4/3을 취하는 식의 삼분손익법(三分損益法)에 의해 陽과 陰을 교대로 12율명을 얻었다. 12율은 12지지(地支)와 12절후(節侯)에 해당한다. 이렇듯 자연의 그릇인 천연의 율관에 자연에서 얻은 곡식을 채워 律을 만들었으니 여기에서 나오는 소리는 당연히 자연적인 음이다.
또한 속도를 나타내는 척도는 메트로놈과 같은 과학적인 방법과 다른 小宇宙라고 하는 인간의 맥박을 기준으로 하여 헤아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가곡(歌曲) 중 이삭대엽(二數大葉)의 속도를 건장한 장부의 맥박 6회를 일식(一息)으로 삼았다고 한다. 여기에서 一息은 두 박을 가리키고 한 박은 맥박 3회의 속도를 나타내었다. 만약 건장한 장부의 맥박이 1분에 60회라고 가정하면 한 박의 속도가 3초로서 현재 이삭대엽의 속도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맥박을 기준으로 속도를 헤아린 조상들의 슬기는 과학을 뛰어넘는 자연적인 방법이라고 본다. 또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의하면 악기의 재료는 팔음(八音) 즉 金(쇠), 石(돌), 絲(실), 竹(대나무), 匏(바가지), 土(흙), 革(가죽), 木(나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팔괘(八卦)-건(乾), 태(兌), 이(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과 팔풍(八風), 그리고 팔절후(八節候)에 부합된다.
정악(正樂)은 현재에도 세종대왕이 창안한 정간보(井間譜)를 사용한다. 이 정간보는 동양최초의 유량악보이다. 井間譜의 井은 우물의 모양인 정사각형을 상징하는데 여기에서 우물이 마을의 한 복판에 위치하는 것처럼 井은 八方 또는 八卦의 중앙에 위치하여 五行 중의 土에 해당하고 德의 地 즉 덕의 바탕으로 생명수를 끊임없이 내주는 생명의 원천을 이룬다고 하는 심오한 뜻이 정간보에 담겨져 있다. 정간보는 정사각형모양의 정간 안에 黃, 大, 太, 夾, 姑, 仲, 표, 林, 夷, 南, 無, 應 등의 12律名으로 음의 높이를 나타내고, 한 정간을 한 박 단위로 음의 길이를 표시하고, 전성표(轉聲表)이나 퇴성표(退聲表), 추성표(推聲表) 등으로 음을 표현하는 기호를 사용한다. 그리고 세종 때에는 모든 곡을 한 행에 32井間을, 세조 때에는 한 행에 16井間을 사용하였는데 여기에서 16과 32라는 숫자는 태극(太極)에서 음양(陰陽), 음양에서 사상(四象), 사상에서 팔괘(八卦) 등으로 즉 1→2→4→8→16→32→64로 변하는 일생이법(一生二法)에 의한 것으로 이것은 우리 생명체를 이루는 유전자 암호문과 우주자연의 이치를 그 속에 담고 있다. 세조 때 16井間? ?6개의 벼리(綱)로 나눈 것은 卦를 이루는 육효(六爻)의 숫자와 일치하는데 六爻는 天, 地, 人의 삼재(三才)를 담고 있다. 또한 가야금몸통의 위부분은 하늘을 상징하여 둥글어 陽을 나타내고, 밑부분은 땅을 본떠서 평평하여 陰을 상징하고 사람이 陰陽의 이치를 담은 天地의 음악을 연주한다.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은 정악(正樂)과 민속악(民俗樂)으로 나뉘어진다. 민속악은 민간인들에 의하여 발생되어 口音에 의존하여 구전심수되고 있어 발생연대가 19세기로 오래되지 않았다. 이에 반하여 정악은 발생연대가 오래된 음악이고 고문헌이나 고악보에 의해 전해지고 있으며 궁정이나 상류 지식층의 계급에서 즐기던 아정(雅正)한 음악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우륵이 가야국이 망하자 신라 진흥왕 12년 가야금을 들고 신라로 망명하여 계고, 법지, 만덕에게 각각 가야금, 노래, 춤을 가르쳤다. 이 때 가르친 우륵의 12곡은 상가라도(上加羅都), 하가라도(下加羅都), 보기(寶伎), 달기(達己), 사물(思勿), 물혜(勿慧), 상기물(上奇物), 하기물(下奇物), 사자기(獅子伎), 거열(居烈), 사팔혜(沙八兮), 이사(爾赦) 등으로 대부분 그 당시 아라가야군, 대가야군, 거열군, 달기현, 사물현, 마리현, 함안군, 초혜현 등 가야국의 군이나 현의 지방이름을 곡명으로 사용하여 지방색이 짙은 음악으로 사료된다. 그런데 우륵의 제자들이 우륵에게서 이 곡들을 다 배우고 나서 우륵의 12곡이 雅正하지 못하다고 하여 5곡으로 줄여 진흥왕 앞에서 연주하였! 는데 이것이 신라의 대악(大樂)으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이 기록에서 ‘雅正’하다는 용어가 후대에 雅正한 음악이란 뜻의 ‘正樂’ 또는 ‘雅樂’의 명칭에서 사용되었다고 본다.
正樂은 대부분 합주음악으로 되어 있다. 즉 어느 한 악기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기보다는 다른 악기들과 호흡을 서로 맞추어 가는 음악이고 ‘낙이불류(樂而不流) 애이불비(哀而不悲)’ 즉 즐거우면서도 넘치지 않고, 슬프면서도 비통하지 않은 절제된 감정을 표현하는 음악으로 음을 장식하는 농현(弄絃)이 매우 느린 듯 절제된 표현을 하여 긴장과 이완의 조화 속에 장엄하고 우아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正樂에는 영산회상(靈山會上), 평조회상(平調會上), 보허사(步虛詞), 보허자(步虛子), 취타(吹打),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 도드리(還入), 여민락(與民樂), 수제천(壽齊天), 가곡(歌曲), 가사(歌詞), 시조(時調) 등이 있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 조상의 얼이 듬뿍 배인 가곡을 듣게 되면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고 여유와 넉넉함, 세속에서 벗어난 무아의 경지를 명상하면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가곡(歌曲)
가곡의 연원은 고려시대로부터 비롯된다. 가곡의 원형은 만대엽(慢大葉)·중대엽(中大葉)·삭대엽(數大葉)으로 慢·中·數은 느린-중간- 빠른 속도의 틀로서 만대엽은 조선조 英祖 이전에 없어지고, 중대엽은 고종 때 가곡원류(歌曲源流)시절에 없어지고, 지금은 삭대엽만 남아 있다. 현금신증가령(1680)과 신작금보(1725-1776)에는 중대엽과 삭대엽이 각각 一, 二, 三으로 증가되고, 청구영언에는 롱(弄), 락(樂), 편(編)이 새로 첨가되고, 가곡원류에 이르러 이삭대엽(二數大葉)에서 중거(中擧), 평거(平擧), 두거(頭擧)가 파생되고 언롱(言弄)에서 언편(言編)이 파생되어 가곡 한바탕의 기틀이 완성되었다. 지금 연주되고 있는 가곡은 모두 41곡으로 남창(男唱)에 25곡, 그리고 여창(女唱)에 16곡이 있고 각각 우조(羽調)와 계면조(界面調)로 나뉘어 진다. 이 중에서 남창은 우조와 계면조, 반우반계(半羽半界)로 나뉘어 지는데 이 중 우조에는 초삭대엽(初數大葉), 이삭대엽(二數大葉), 중거(中擧), 평거(平擧), 두거(頭擧), 삼삭대엽(三數大葉), 소용(搔聳), 우롱(羽弄), 우락(羽弄), 언락(言樂), 우편(羽編)의 11곡으로 구성되어 있고 계면조(界面調)에! 는 초삭대엽(初數大葉), 이삭대엽(二數大葉), 중거(中擧), 평거(平擧), 두거(頭擧), 삼삭대엽(三數大葉), 소용(搔聳), 언롱(言弄), 평롱(平弄), 계락(界樂), 언편(言編), 편삭대엽(編數大葉), 태평가(太平歌)의 13곡, 그리고 반우반계(半羽半界)에는 반엽(半葉)과 편락(編樂)의 2곡으로 총 26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각각 둘째바탕이하까지 합하면 166곡이 된다.
이 중에서 가곡의 우조는 황(黃), 태(太), 중(仲), 임(林), 남(南)의 5음음계 황종평조(黃鍾平調)로 구성되어 있고, 계면조는 황(黃), 중(仲), 임(林), 무(無)의 4음음계 황종계면조(黃鍾界面調)로 구성되어 있다.
가곡은 시조시(時調詩)를 관현악반주 즉 가야금, 거문고, 해금, 대금, 세피리, 장고 등에 맞추어 5장을 노래하는데 대여음(前奏), 초장, 제2장, 제3장, 중여음(間奏), 제4장, 제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남창 계면조의 첫 곡에 해당하는 초삭대엽에서 대여음 대신에 다스름이 연주된다. 다스름은 본곡을 시작하기 전에 장단없이 즉흥적이고 무질서한 듯하면서 호흡을 서로 조절하여 조화를 이루는 부분이다. 남창 계면조는 초삭대엽에서 1분에 40井으로 시작하여 이삭대엽에서는 가장 느린 1분에 20井의 속도로 진행하여 점차 빨라져 편삭대엽, 언편에 이르면 1분에 70井으로 절정을 이루게 된다. 그 다음에 태평가는 1분에 30井으로 느리게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래서 가곡은 이삭대엽에서 시작하여 이삭대엽으로 마친다고 하고 바로 여기에서 가곡의 멋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음반에는 노래 없이 가야금만의 특유한 음색으로 가곡의 멋을 살렸다. 남창가곡 중 계면조의 곡을 실었는데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이 중에서 남창 계면조는 황(黃), 중(仲), 임(林), 무(無)의 4음음계+ 배임(任), 배무(듣) 황(黃), 태(太), 중(仲)의 황종계면조와 임종계면조의 복합음계로 구성되어 있다.
가곡은 원래 관현악반주 즉 가야금, 거문고, 해금, 대금, 세피리, 장고 등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데 이번 음반에서는 노래 없이 가야금만의 특유한 음색으로 가곡의 멋을 살렸다.
남창가곡 계면조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초삭대엽(初數大葉)
청석령(靑石嶺) 지내거다 초하구(草河溝) 어디메오
호풍(胡風)도 차도찰사 구진 비는 무엄일고
뉘라서 내 행색(行色) 그려내어 님 계신데 드리리
■이삭대엽(二數大葉)
잘새는 날아들고 새 달이 돋아온다.
외나무 다리로 홀로 가는 저 선사(禪師)야
네 절이 얼마나 허관대 원종성(遠鍾聲)이 들리느니
■삼삭대엽(三數大葉)
석양(夕陽)에 취흥(醉興)을 겨워 나귀 등에 실렸으니
십리(十里) 계산(溪山)이 몽리(夢裡)에 지나거다
어디서 수성(數聲) 어적이 잠든 나를 깨오느니
■소용(騷聳)
어흐마 긔 뉘 오신고 건너 불당(佛堂)의 동녕 중이 올러니
홀 거사(居士)의 홀로 자시는 방안에 무시것 허려 와 계신고
홀 거사(居士)님의 노감타기 벗어거는 말곁에 내 곳갈 벗어걸러 왔음네
■언롱(言弄)
이태백(李太白)의 주량(酒量)은 긔 어떠허여
일일(一日) 수경(須傾) 삼백배(三百盃)허고
두목지풍채(杜牧之風采)는 긔 어떠허여 취과양주귤만거(醉過楊州橘漫車)런고
아마도 이 둘의 풍도(風度)는 못 미츨가 하노라
■평롱(平弄)
남훈전(南薰殿) 순제금(舜帝琴)을 하은주(夏殷周)에 전(傳)하오서
진한당(秦漢唐) 자패(自覇) 간과(干戈)와 송제(宋齊) 양풍우건곤(梁風雨乾坤)에
왕풍(王風)이 위지(委地)허여 정성(正聲)이 긋처 젓드니
동방(東方)에 성인(聖人)이 나오사 탄오현가남풍(彈五絃歌南風)을 이어본가 하노라
■계락(界樂)
철총마(鐵?馬)타고 보라(甫羅) 매 받고
백우장전천근각궁(白羽長箭千斤角弓) 허리에 띠고
산(山) 넘어 구름 지나 꿩 사냥하는 저 한가(閑暇)한 사람
우리도 성은(聖恩) 갚은 후(後)에 너를 조차 놀리라
■편삭대엽(編數大葉)
진국명산(鎭國名山) 만장봉(萬丈峰)이 청천삭출(靑天削出) 금부용(金芙蓉)이라
거벽(巨壁)은 흘립(屹立)허여 북주(北主) 삼각(三角)이요
기암(奇岩)은 두기(斗起)하여 남안잠두(南案蠶頭)로다
좌룡낙산(左龍駱山) 우호인왕서색(右虎仁旺瑞色)은 반공의상궐(盤空疑象闕)이요
숙기(淑氣)는 종영출인걸(鍾英出人傑)허니 미재(美哉)라
아동산하지고(我東山河之固)여
성대의관태평문물(聖代衣冠太平文物)이 만만세지(萬萬世之) 금탕(金湯)이로다
연풍(年豊)코 국태민안(國泰民安)하여
구추황국단풍절(九秋黃菊丹楓節)에 인유이봉무(麟遊而鳳舞)커늘
면악등림(緬岳登臨)허여 취포반환(醉飽盤桓)허오면서 감격군은(感激君恩)이삿다
■언편(言編)
한송정(寒松亭) 자긴 솔 뷔어 조고마치 배 무어 타고 술이라 안주
거문고 가얏고 해금 비파(琵琶) 저 피리 장고(杖鼓) 무고 공인(工人)과
안암산(安岩山) 차돌 일본(日本)부쇠 노구산수로(老狗山垂露)취며
라전(螺鈿)대 궤지삼이 강릉여기(江陵女妓) 삼척주탕(三陟酒湯)년 다 모아 실고
달 밝은 밤에 경포대(鏡浦臺)로 가서 대취(大醉)코 고예승류하여
총석정(叢石亭) 금란굴(金蘭窟)과 영랑호(永郞湖) 선유담(仙遊潭)으로
임거래(任去來)를 하리라
■태평가(太平歌)
(이랴도) 태평성대(太平聖代) 저랴도 (태평)성대(聖代)로다
요지일월(堯之日月)이요 순지건곤(舜之乾坤)이로다
우리도 태평성대(太平聖代)니 놀고 놀녀 하노라
* 연주자:
정해임은 국악중학교의 전신인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에서 가야금을 접하게 되었고 국립국악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그리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악과를 졸업하였다.
가야금독주회를 다수 개최하였고 국립국악고등학교 개교 40돌 기념 가야금유파발표회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창설 30주년 기념연주회, 효산 강태홍 탄생100주년 기념연주회, ‘97가야금역사축제, 대구음악제, 대구 MBC 국악한마당, 대구시립국악단 송년음악회에서 협연, 그리고 미국, 캐나다, 중국, 러시아, 영국 등 해외에서도 연주활동을 하였다. ‘장진주 선률형에 관한 연구’, ‘장진주고’, ‘신관용류 가야금산조에 관한 연구’, ‘강태홍류 가야금산조에 관한 연구’, ‘평조영산회상 중 하현환입에 관한 선율연구’, ‘오음육률과 음양오행’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강태홍류 가야금산조와 영산회상, 평조회상, 가곡을 가야금CD음반으로 출반하였고 강태홍류 가야금산조악보와 신관용류 가야금산조악보를 낸 바 있다.
현재 경북대학교 예술대학 국악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대가야가야금연주단 단장, 아시아금교류회 회원, 부산시 문화재 제8호 강태홍류 가야금산조 이수자, 21세기 경북발전위원회 문화관광위원, 경상북도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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