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해설서 중)
경.서도 소리 유성기 음반
해설 및 노랫말 채록:배연형(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
유성기 음반은 기악보다는 성악이, 합창,합주보다는 독창,독주가 녹음도 수월하고 재생에서도 유리하다. 유성기는 그만큼 재생음역이 좁기 때문이다. 초창기에 녹음된 음악이 성악 위주인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음악의 경우도 초기에는 민요와 판소리 위주로 녹음되었다. 이런 것은 유성기 녹음에 비교적 잘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당시 대중들은 정악이나 기악보다는 민요와 판소리를 더욱 즐겼으므로 상품적 가치가 높았던 것이 더 중요한 이유가 된다.
1910~1920년대에 발매된 대부분의 음반이 경.서도 민요와 판소리였으며, 기악이나 양악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북이나 장고와 같은 간단한 반주만으로 녹음하였다. 그러나 1929년 전기녹음 음반이 발매되기 시작되면서 합주형식의 음악이나 여러 악기가 반주하는 음악도 두루 녹음되기 시작한다. 또한 전기녹음 음반의 발매와 비슷한 시기에 새로운 형식의 대중음악-일본식 유행가가 급속히 퍼지면서 전통음악 시장을 크게 잠식하기 시작했다. 이제 유성기 음반에 단긴 경.서도 민요의 흐름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초창기 나팔통식 음반(1907-1927)은 거의 서울소리 위주로 녹음되었다. 당시 원각사나 광무대 등 근대식 극장에서 가장 인기를 끌던 것이 바로 서울소리였기 때문이다. 당시 음반에는 한인오.박춘재.홍도 등 전설적인 서울 명창들의 소리가 많이 담겨있다.
한편 구한말 서울의 극장식 공연에 진출하여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킨 것이 ‘날탕패’와 같은 평양의 소리패들이었다. 이들은 서울 소리패와 더불어 큰 인기를 누렸으며, 서로 음악적인 교류를 활발히 하여 다양한 소리가 새로 만들어지는 등 가히 경.서도 소리의 전성기를 구가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음반에는 문영수.이정화.최섬홍.이진봉.백모란.길진홍.김패수 등 이들 서도명창의 소리가 다수 남아있다.
1929년에는 전기녹음 음반이 발매되고, 이어 1930년대로 접어들면서 유성기 보급이 크게 늘었다. 이때까지 가장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었던 음악이 경.서도 소리였으므로 전기녹음 초기에는 역시 이런 것이 많이 녹음되었다. 조모란.김연옥.이영산홍.백운선.표연월.신해중월.이진봉.김옥엽 등이 음반을 많이 남겼으며, 거의 모든 곡의 경.서도 소리가 풍부하게 녹음되어 있다. 이들은 1910-20년대에 활동하던 선배 명창에게 소리를 배웠는데, 당시 경.서도 명창들은 극장식 공연에서 함께 활동했다. 따라서 1920-30초반에 활동하던 명창들은 경.서도 소리를 함께 배웠으므로 이들은 경기명창이니 서도명창이니 하는 구분을 뚜렷하게 내리기는 어렵다. 또한 수많은 명창들이 경쟁적으로 활동함으로써 소리기량도 매운 높았고, 속조에도 물들지 않은 경.서도 소리의 특성을 잘 지니고 있었다.
30년대까지 활동하던 원로 대명창으로는 경기소라의 박춘재, 서도소리의 김종조.최순경을 꼽을 수가 있는데, 이들은 당대 최고봉의 명창으로 판소리로 치자면 5명창의 기량에 비견할 수 있다.
193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유성기음반, 신파극의 막간 무대,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일본식 유행가각 널리 퍼지게 되자 대중들의 기호도 급격히 바뀌어 경.서도 소리도 그 기반을 잃기 시작한다. 따라서 음반의 취입이 크게 줄어드는 것은 물론 역량있는 신인의 배출도 여의치 못해 전반적으로 경.서도 소리의 수준이 점차 낮아진다. 이점은 식민 치하의 우리 전통음악에 있어 일반적인 현상이다.
1930년대 중.후반에 활동한 경.서도 명창으로는 박부용.홍소월.김진며.김란홍.장학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의 소리는 앞 세대보다 더욱 대중화. 통속화 되는 경향이 두드러지며, 국악기와 양악기가 함께 반주하는 이른반 선양악반주나 양악기로 반주하는 민요의 녹음이 많이 있다. 또한 전통민요를 대중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단순하게 편곡한 신민요를 녹음하기도 했다. 이런 곳을 많이 부른 소리꾼으로는 김갑자를 꼽을 수 있다. 또한 민요풍의 유행가를 불러 크게 인기를 끌었던 가수로는 이화자를 들 수가 있다.
이번에 복각된 이 음반에는 전기녹음 초반의 백운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30년대 중.후반에 활동하던 경.서도 명창들의 소리가 담겨있다. 이 음반을 통해 전통민요가 시대적인 조류에 따라 변모해가는 모습을 잘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즉 초창기 녹음이 간단한 장고반주 위주인데 비해 여기에서는 새로운 유행가처럼 선율악기의 기악반주나 혹은 양악반주가 얹어지는 변화과정이 잘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성악이 기악에 구속되는 부자유함도 느껴지는 한편, 새로운 흐름과 변화하는 대중들의 기호에 적응하려는 일면도 느낄 수 있다. 이 음반을 통해 전통음악이 걸어왔던 길과 나아갈 길을 함께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