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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명[부제포함] 아라이 에이이치 <청하의 길>
음반 번호 SDCD-2003 , CD 1 매
제작 / 기획사 서울음반
발매 연도 2000
구 분 기타반
분 류 CD
업데이트 일시 2010-05-16
비 고



 
아라이 에이이치 <청하의 길>

1. 제1장 여행길 5:19

2. 제2장 고향 5:28

3. 제3장 추억 7:35

4. 제4장 청춘 5:22

5. 제5장 미국 4:57

6. 제6장 가족 7:50 총 36:31

* 작사.작곡.노래.기타.하프:아라이 에이이치. 기타. 드럼. 피아노. 시노부. 핸드드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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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음반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음반이다. 2000년에 구한 음반인데 이번에 음반을 정리하면서 내홈피에 올리지 않은 것을 알고 올리게 되었다. 노래도 좋지만, 가사를 새겨들으면 가슴이 찡한 노래이다. 재일교포를 아버지를 둔 연주자가 아버지 고향을 찾으면서, 자기 인생살이를 들려주는 감동적인 노래소설이다. 일청을 강권하고 싶지만, 음반을 구할 수 없으니 난감한 일이다. 처음부터 다 들어야 하는 음반인데....(2010.5.16)

* 운영자가 추천하는 최고의 음반평은 '이 음반 마음에 들지않으면 필자가 환불해준다.'는 표현이다. 국악음반은 아니지만, 이 음반 여기에 속한다. 중고시장이라도 다니면서 구해 듣기를 권한다.(2010.5.16)

* 연주자의 홈피는 www.e-arai.com 이다.

* 2번 곡 :

 
* 인터넷에서 찾은 글 :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린게 몇 해 만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일 전에 처음으로 <청하로 가는 길>이라는 노래를 듣던 40 여분동안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 노래는 신정영일이라는 재일교포 가수가 작사, 작곡한 것을 기타를 치며 부른 것이었다. 사람은 슬플 때만 울지를 않는다. 즐거울 때에도 외로울 때에도 괴로울 때나 몹시 감동했을 때에도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아리랑 타령과 판소리와 발라드조가 뒤섞인듯한 그 노래를 들으면서 왜 내가 눈물을 흘렸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인이다. 그의 어머니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여성 사이에서 나온 절반 한국인이다.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 결핵요양소에 격리 수용되고 죽는 날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따라서 죽은 아버지의 얼굴을 드려다 보면서도 눈물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였는데도 어느 날 불현듯이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가 봐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청하로 가는 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세아의 대지가 보고싶어서 난 홀로 나그네길로 떠났다/ 현해탄 을 배로 건너 부산의 항구를 앞에 두고/ 밤이 밝아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의 거리에서 버스를 타고 해운대의 바다를 봤다/ 여기가 아버지의 고향이라 생각하니 길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왠지 반 가워진다.....]

버스를 몇번인가 갈아타고 간신히 경주에 도착한 다 음 눈에 띄는 식당에 들어간 그는 한국말을 몰라 덮어놓고 옆자리에서 사람들이 먹고 있는 음식을 가리키며 똑같은 것을 달라고 주문할 때 뭔가 죄스러움을 느낀다.

[아버지의 고향은 청하로 아직도 여기서부터 멀고 먼곳...... 어디까지나 이어지는 긴 길 저 넘어에 산이 있다/ 아버지도 옛날에 이 길을 걸어서왔는가 생각하니/ 마음이 차츰 뜨거워진다./ 이제야 왔느 냐고 고향이 두손을 펴서 반기고/ 맞아주고 있는듯한 사랑스런 대지의 바람이 분다/ 나 홀로걷는 청하로 가는 길./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나는 간다......]

그는 마을 사무소에 가서 아버지의 호적을 찾아내고 아버지가 태어났던 냇가의 외딴 옛집에 간다. [아버지가 태어났던 그 자리에 나는 드디어 왔다/ 밤새도록 그 자리에 혼자 쭉 있고 싶었다/ 산에는 눈이 남아있었다...... 마을을 나오자 눈앞에 푸르게 펼쳐지는 바다를 봤다/ 내 이름은 영일이며 그 바다의 이름도 영일만이라/ 똑같은 이름이라고 비로소 알았다....... 슬픈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내가 잊지는 않았지 만/과거를 보면서 사느니 내일을 향해 사는게/ 사람의 길이라고 깨달았다......]

포항에서 부산으로 돌아가는 밤 열차안에서 그는 어머니와 함께 가난하게 살던 옛 시절을 회상한다. [우리집은 폐품 회수업 고철 넝마를 주어서 살았다/ 나도 학교 갈 때에는 자조 노끈에 자석을 달고/ 쇠못들 을 주우며 걸었다./ 가장 슬픈 일은 소학교 때였다/ 어느 날 갑자기 경찰이 어머니를 끌고간 채 / 1년동안 돌려 보내주지 않았다......] 어머니가 장물전선을 잘못 산 죄로 형무소에 들어갔다는 기사가 지방신문 에 나오자 그때부터 그는 학교에서 ’조센진’이라며 따돌림을 당한다. 이때부터 그는 매일같이 일본아이들과 주먹 싸움을 했다.

[어머니가 보 석으로 나온 날 형과 같이 형무소로 마중을 갔다/ 철조망의 저편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을 때/ 소리치며 문위로 기어올라갔다......]

그는 15살 때 집에 있던 흑백 텔레비젼을 전당포에 몰래 판 돈을 가지고 가출을 한다. 그는 나이를 속이고 다방의 접시닦이도 하고 미군기지의 술집에서 막일을 해가며 살다 21세때 배를 타고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간다. [ 넌 누구냐는 물음에 나는 코리안 제패니즈/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아세아의 피를 받은 인간이라고/ 처음으로 이국에서 그렇게 말했다......]

4년동안 미국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다 일본에 돌아온 것은 25세 때였다. 그의 가수생활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기타를 메고 동경의 뒷골목 술집을 떠돌아다니며 노래를 팔고 살다 만난 일본여인과 그는 가정을 꾸리는 가운데 비로소 그 동안 잊었던 인간의 온기를 되찾는다.

48절로 된 <청하로 가는 길>은 아버지의 고향에서 돌아온 다음으로 끝난다.

[나그네 길에서 내 집으로 돌아와서 반겨주는 가족을 보고/ 모두의 웃는 얼굴이 반가워서 가족이 바로 내 나라라며/ 아내와 자식을 끌어안았다. /나의 뿌리는 대륙이며 조선반도라는 곳/ 나의 아버지 는 그 옛날 바다를 건너서 왔다고/ 증손자의 대까지 말하고 싶다. 아리 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나는 간다.]

자칭 코리안 제패니즈라는 아라이 에이이찌는 오늘도 일본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95년도 일본 레코오드 대상을 받은 이 <청하로 가는 길> 을 노래하면서 청중을 울리고 있다. "

[조선일보 98년 3월 9일, 홍사중 칼럼]....

* 음반 Credits

프로듀서 :

아라이 에이치

Produced by : 新井英一 (Eiichi Arai)
Sound Produced by : 星川京貝 (K.Hoshikawa)
Engineered by : 川口 聡 (S.Kawaguchi)

Recored & Mixed at Meldac Studio SEOUL Studio

Managing Producer : 永瀧達治 (T.Nagataki)

Art Direction : 長友啓典 (Y.Nagatomo)
Illustration : 黑田征太郞 (S.Kuroda)
Design : 伊東浩司 (K.Ito)(K2)
Photograph : 柴崎 茂 (S.Shibasaki)

Special Thanks To : 康 貞子 / 高 直滿 / 金 平洙

Executive Engineer : 伊膝 勇 (Isamu Itoh)(Meldac)

新井英一 (E.Arai) : Vocal, Guitar, Harp,
高橋 望 (N.Takahasi) : Guitar
金 成電 : Wood Base
正淸 泉 (I.Masakiyo) : Drum
板倉克行 (K.Itakura) : Piano
村山二朗 (J.Murayama) : 篠笛(Shinobue)
鳴島英治 (E.Narushima) : Hand D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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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대학교 김희선 교수가 보내준 자료입니다.


박영일, 아라이 에이치 홈페이지

新井英一 한국명 박영일 淸河(チョンハー)への 道 청하로 가는 길

http://blog.naver.com/myid386c/50016048662

아라이 에이치는 누구인가?

일본에서 당당히 부르는 “뿌리와 자유”

아시아의 싱어송 라이터 아라이에이치

(글 배지원)

“아시아의 대지가 보고싶어...동이 트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청하로 가는길 중에서..


험난한 식민지 시대를 산 조선 출신의 아버지와 조선인과 일본인의 피를 잇는 어머니를 둔 그는 스스로를 코리안 재패니즈 (한국계 일본인)이라고 소개한다. 한국 이름 박영일. 아라이씨는 일본에서 자라, 5년전 까지 한국국적을 갖고 있었던 재일교호 2세다. 그의 일본이름은 아리랑의 한 대목인 ‘아라리요’에서 딴 성 아리아, 이름은 아버지의 고향에서 가까운 영일만을 따 영일이라고 아버지가 지으셨다고 한다.

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95년 그의 50여년 간의 삶을 담담하고 농축적으로 술회한 곡 “청하로 가는 길”이 발표되면서였다. 일본의 가장 권위있는 TV 뉴스 프로그램의 엔딩 테마곡으로 “청하로 가는 길”이 채택되고 같은 해 레코드 앨범 상 대상이 그에게 돌아갔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후렴구를 일본의 TV에서 듣는 느낌이s 매우 묘하다. 통쾌하면서도 애틋한, 전대미문의 가사와 리듬으로 48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곡은 끝까지 듣는데 약 50분이 소요되 이 한곡만을 위해 콘서트를 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본 음악계에서 귀중한 존재로 평가되고 있는 그의 존재가치는 독특한 창법과 혼신을 다해 노래부르는 모습 뿐 아니라 그 저변에 깔려있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통해 비롯되는 굵은 곤마디와 까칠한 손바닥. 반항적이면서도 깊은 눈매, 압도당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라이씨의 그 엄청난 파워는 어디에서 쏟아져 나온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선조한테서 물려받았지. 뭐라 잘 표현할 수 없는 힘..노래하는 힘, 살아가는 힘, 너무나 좋아하는 노래를 통해 그 파워를 표현하고 있는 거지”

그의 음악 장르는 재즈, 블루스이지만 어디엔가 판소리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다. 특히 그의 삶을 엮은 이 노래는 그가 말한 조상으로부터의 내려받은 힘이 모자람 없이 표현되어 있다.

“판소리? 배운적 없어요...배우지 않아도 내 핏줄의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는 걸. 단지 그걸 끌어내는데 시간이 걸렸어. 한번 끌어낸 후엔 그 피의 기억에 쫒아 부르기만 하면 되.

1950년 2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이미 결핵으로 요양소 신세를 지고 있었던 아버지와 격리되 아버지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 채 홀로 생계를 꾸려가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고향은 경상북도 청하. 그는 서른 여섯에 청하를 찾아나선다. 그때까지 그가 걸어온 길은 여느 재일교포도 그랬던 것처럼 빈곤과 차별과의 싸움. 어머니가 도적물인지 모르고 산 전깃줄 때문에 어머니의 신분이 신문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후 그 역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후로부터 학교에 가면 모두가 나를 보고 도망갔다. 같이 놀려해도 따돌림만 당할 뿐. 처음으로 불려진 이름, 조센징(조선인).“

-청하로 가는길 중에서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할 때 표정은 그리움에 가득하다.

“어렸을 때, 어머니 옆에 붙어다니면서 곁을 떠난 적이 없었어. 학교공부도 받아 본적이 없는데 희한할 정도의 감이 정확한 분이었지”

어머니는 어릴때부터 가수가 되겠다는 그의 말을 웃는 기색하나 없이 듣곤 했다고 한다. 대신 에이치는 마흔이 넘어야 출세할 수 있다는 말씀까지 덧붙이면서. 유달리도 소중했던 어머니가 영원히 그의 곁을 떠난 것은 그가 청하로 떠나기 얼마전의 일이었다. 그는 화장된 어머니의 유골 한 줌을 입에 넣어 삼켰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분한 마음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고 한다. 유명한 가수가 돼서 반드시 호강시켜드릴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어머니의 타계로 그는 무엇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야 하는지 깊은 허망감에 빠졌었다고 한다. 조선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유로, 어머니는 재일교포에게도 일본인에게도 차별을 받았으리라고 그는 추측한다.

폐품회수업으로 연명하는 궁핍한 생활이 싫어지고 차별받는 학교생활도 다 싫어서 집을 나온게 열다섯. 무작정 길을 떠난 그때부터 그의 긴 여정은 시작되었다. 그 해 앍호 계시던 아버지가 hf아가셨다. 안면마비되 누워있는 노옹의 모습 이외에 아무런 기억도 그에게 남기지 못한 채로.

“대단히 완고한 양반이었다고 어머니가 그러시더군. 지금 살아계신다면 euems 여섯이 되실꺼야. 살아계신다면 꼭 술한잔 나누고 싶지. 정말로 강제연행으로 일본에 왔는지도 묻고 싶고”

아버지의 존재가 그리워질때마다 한마디의 대화라도 기억해보려고 해 보았지만 아무 기억도 없다고 한다. 집을 나와 미군 기지의 바에서 나이를 속이고 일하기 시작했다.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던 이 소년은 그곳에서 재즈, 블루스를 처음 접했다. 여러 인종이 뒤섰겨 있는 풍경도 보았다. 백인, 인디언, 멕시컨, 흑인이 함께 어우려져 있는 모습은 그에게는 튼 충격이었다. 민족과 인종에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할 수 있는 곳에서 마음껏 음악을 해 보고 싶다는 열망과 함께 그는 또 한번 길을 떠날 결심을 한다.

“실은 미국에 가기전에 프랑스에 가 보는게 내 첫 꿈이었어. 열여덟살 때였는데 그꿈을 이루려고 밤에는 바에서, 낮에도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열심히 배삯을 벌었지. 가장 싸게 갈수 있는 방법은 배를 타는 거였거든. 그런데 한국여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거야. 소련을 경유해야 되는데 통과못한다는 거야.”

일본을 떠나 차별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음악에 젖는 생활을 꿈꾸었던 소년의 마음은 크게 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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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사 -

제1장 <여행길>
1. 아시아의 넓은 땅 보고 싶어서 나는 혼자서 길 나섰네
현해탄을 배로 건너 부산 항구를 바라보면서
날이 새는 것을 기다렸었네

2. 부산의 부두에서 버스를 타고 해운대 바다 보았네
이곳이 아버지의 고향이라니 생각하고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어쩐지 그리웠던 기분이 든다

3. 우리 말을 못하는 슬픔에 손짓 발짓으로 얘기했지
나는 이곳에 가고 싶다고 한반도 지도를 펴놓고
경상북도를 가리켰었네

4.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서 겨우 경주로 왔었지
짐을 등에 메고 사람 파도 속을 우왕좌왕 헤맸었네
가슴에는 아득한 노스탤지어

5. 하도 배가 고파서 뛰어 들어간 한글 간판의 식당에서
남들이 맛있게 먹고 있던 저것하고 같은걸 주이소 라고
뭔지 미안한 마음으로 살펴보았네

6. 아버지의 태생은 청하라서 아직도 여기서는 먼 동네
또다시 버스를 올라타고 산을 몇 갠가 넘어섰을 때
드디어 청하를 내려섰다

7. 하염없이 이어진 기나긴 길 저기 저 멀리 산이 보이네
아버지도 그 옛날 이 길을 걸어서 오셨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서서히 뜨거워지네

8. 이제사 왔냐고 내 고향이 두 손 벌려서 기뻐하며
반가이 맞아주는 기분이 나는 사랑스런 대지에 바람이 불어
혼자서 걸어가는 청하의 길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나는 간다

제2장 <고향>
9. 면사무소로 달려가서 아버지의 호적을 찾았지
일본말이 통하는 아주머니가 친절히 통역을 해주어서
아버지 호적을 찾아내었소

10. 그 속엔 내 이름도 적혀져 있어 어쩐지 반갑고 흐믓한 기분
아버지 태어난 곳 가고프다고 한번만 그 마을 보고 싶다고
아줌마께 졸라서 함께 가봤소

11. 마을에서 떨어진 강기슭에 외로이 서있는 집 한 채
그 집에 살고 있는 주인을 찾아 옛날이야길 물어봤더니
예가 바로 박 씨네 집이었다오

12. 아버지 태어난 이 땅에 마침내 나는야 돌아왔구나
걸음을 멈추고 온종일을 여기서 묵묵히 있고 싶었지
산에는 아직 눈이 남아 있었네

13. 친절히 대해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면서
방금 오던 길 다시 되돌아 홀로 천천히 걸어갔다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돌아보면서

14. 마을을 나서니 나의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푸르른 바다
저 바다 이름은 영일만이래 나의 이름도 영일이라
같은 이름이란 걸 처음 알았네

15. 나라에 국경이 있다 하여도 부자간엔 그런 것 있을 수 없지
이제까지 흐려서 보이지 않던 눈앞이 트이고 맘은 환해져
안개개인 하늘처럼 맑아졌다오

16. 슬픈 시대가 있었음을 나는 잊지 않고 있지만
과거에 매달려 사느니보다 내일 바라보며 살아가는 게
인생의 길 인줄 알았다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나는 간다

제3장 <추억>
17. 포항에서 부산까지 돌아오는 길엔 그곳의 열차에 올라타서
여기 사는 사람들과 똑같이 역에서 도시락을 사먹으며
차창 밖 어둠을 바라보았네

18. 돌이켜 생각하니 지금까지 아버지를 모르고 자라왔네
고생 속에 키워준 우리 어머니 언제나 언제나 애를 태우며
근심걱정만 끼쳐왔다네

19. 우리 집 장사는 고물상 였소 쇠 조각 모아서 살아왔는데
나도야 학교로 오가는 길에 자석에 끈을 매달고서
철 못을 주우면서 걸어 다녔소

20. 가장 슬펐던 나의 추억은 초등학교 다니던 때의 일이야
어느 날 경찰이 집에 와서 어머니를 느닷없이 끌고 가서
1년이 지나도록 못 돌아왔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나는 간다

21. 전깃줄 도둑의 물건을 어머니가 몰라서 사버렸지
장물아비란 죄명으로 내 고향 신문에 이름이 실려
어머니는 형무소로 끌려갔다오

22. 그때부터 학교에 가기만 하면 모두들 날보고 따돌림 하여
함께 노는 친구도 없이 언제나 쓸쓸한 외톨이
난생처음 들어본 [조센징]

23. 내 어린 마음은 멸시 속에서 점점 비뚤어지기만 하고
복수를 하겠다고 주먹을 들고 분풀이 싸움으로 지내는 나날
어느새 불량배로 되어버렸네

24. 어머니가 보석으로 풀려 나온 날 형과 함께 형무소로 마중 갔지
철조망 너머로 멀리에서 어머니 모습이 바라보이자
나도 몰래 외치면서 문에 올랐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나는 간다

제4장 <청춘>
25. 학교 가는 것도 싫어져서 열다섯 살 나이에 집을 나왔지
어딘가 멀리 가고 싶어서 밤차에 뛰어올라 타고서
혼자서 흔들리어 가고 있었지

26. 고베 역에 다다라서 산노미야 거리를 헤매였네
찻집의 접시 닦이 구인광고가 눈에 띄어 거기에 들어가려고
나이를 숨기고 일하였다

27. 처음으로 눈칫밥을 얻어먹으며 세상의 냉정함이 몸에 사무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나도 이제 와서 돌아갈 순 없는 신세
더부살이 반년간 일하였었네

28. 어차피 제대로 된 직업에는 이런 나에겐 되지도 않아
이번에는 미군기지 있다는 곳 이와구니란 거리에 가보았지
외국인 바에서 일을 하였지

29. 육십오 년 그 당시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라
전장에서 돌아온 병사들은 술과 여자에 광분해 있어
매일 밤이 축제와 같았소

30. 그곳은 일본의 미국과 같이 백인 흑인들이 뒤범벅되어
술집에서 흐르는 음악은 재즈에 블루스 컨트리
미국 가는 그 길을 동경하였지

31. 그런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돌연 전보를 받아보았지
내가 태어나자마자 결핵으로 병원에 들어간 아버지께서
마침내 병원에서 돌아가셨네

32. 젊었을 때부터 무리를 하여 어지간히 자기 몸을 손상시킨
아버지의 죽은 얼굴 보았을 때도 함께 살지도 않아서인지
한 방울의 눈물도 나지 않았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나는 간다

제5장 <미국>
33. 스물한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일본을 뛰쳐나왔지
브리질 마루란 배를 타고 미국 대륙으로 길을 떠났네
편도티켓 손에든 여행이었네

34. 로스앤젤레스에 배가 다 달아 샌프란시스코에 가 보았지
히치하이크를 해가면서 낯선 나라를 방황하였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 채

35. "너는 누구냐"는 물음에 "나는 코리안 재패니즈"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아시아의 피를 잇는 사람이라고
처음으로 미국에서 말하였네

36. 인종의 도가니 뉴욕은 가지각색 사람들이 살고 있어
말도 나라도 다르지만은 그저 살아가는 그곳 사람들과 더불어
접시를 닦았다오

37. 일이 끝나면 친구들과 싸구려 술집의 카운터에서
한잔에 이십오 센트 드래프트 맥주를 마시면서
주크박스를 듣고 있었네

38. 낡은 기타 어깨에 걸머지고 일본에 돌아온 게 스물다섯 살
이제야 마지막이라 각오하며 도쿄 거리에 나와 있었지
기어이 가수가 되겠다고

39. 아오야마, 아카사카, 롯폰기 나이트클럽에 뛰어 들어가
노래하는 자리를 달라고 매일 밤마다 찾아 다녔지
어느 가게서도 비웃었네

40. 그래도 가수의 꿈 버리지 못해 포기 못하고 찾고 있었지
시부야 도겐자카 작은 술집의 기타 치며 노래하는 일자리를
드디어 얻어서 노래하였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나는 간다

제6장 <가족>
41. 그러던 혼자만의 생활에서 만나게 되었던 여인이 있어
그 사람의 따뜻한 마음씨에 잊었던 온기를 느끼면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오

42. 지금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내 몸에 흐르는 뜨거운 피가 어찌 할 줄 모르게 그리워하여
그것이 청하로 달리게 했네

43. 나라에 대한 이야기로 아내하고도 몇 번인가 슬픈 싸움을 했지
우리들의 생활엔 국적 같은 건 관계가 없다고 말하면서
쓸쓸한 얼굴하며 울고 있었네

44. 끊임없이 구애하고 살아가는 것도 그런 구애 버리고 사는 것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사랑 받는 사람이 있기에
자유롭게 살기로 결심했네

45. 밤기차에 흔들리며 부산까지 오는 동안 내 인생을 생각했지
내가 이제부터 돌아가는 곳 이웃의 일본이라 하는 나라
내가 나서 자라난 나라일세

46. 부산항에서 잠시 멈추어 돌아가는 배를 기다렸었네
이윽고 뱃전에 올라타니 서서히 항구가 멀어진다
아버지의 나라가 멀어져 간다

47. 긴 여행 끝에 내 집에 와서 마중 나온 우리 가족을 보니
모두의 환한 얼굴 반기면서 가족들이 우리들의 나라라고
처자들을 부둥켜안았다오.

48. 나의 뿌리는 대륙이요 조선반도라고 불리는 곳
나의 아버지는 그 옛날에 바다를 건너서 왔소 라고
자자손손 대대로 전해주리라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나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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