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 스페이스 홈(www.soundspace.co.kr)에서 퍼옴-
* 한농선의 '흥보가'
▣ 탁한음색으로 곰삭은 느낌을 주며 쉰소리가 호소력을 느끼게 하는 흥보가.
▣ 여러 명창들로부터 고된 학습을 통해 본인 특유의 독공으로 자신만의 모노톤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소리.
한농선은 음악가문의 출신 음악가이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가야금산조의 명인 한성기(1899∼1950)이다. 한성기는 가야금산조의 창시자로 알려진 김창조(1865∼1920)에게 가야금 산조를 배웠고 그 산조를 김창조의 손녀인 김죽파에게 가르쳐 준 사람이다. 한성기는 전라남도 영암 출생으로 16세때부터 김창조에게 (가야금산조)를 배워 지방과 서울등지에서 활동하였는데 1930년부터 1941년 까지는 일본 동경에 거주하면서 이화중선, 박녹주, 김흥주, 이행란등과 순회공연을 하기도 하고, 오케레코드에 〔가야금산조〕를 취입하는 등 연주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한농선은 1934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한농선은 판소리에 대한 학구열이 대단하다. 누구에게 던지 배울점이 있으며 주저함 없이 달려가 배우곤 하였다. 그래서 많은 명창을 사사하게 되었는데 강장원, 김소희, 박봉술, 박동진, 박녹주 등이 그의 스승이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스승은 박녹주였다. 박녹주는 〔흥보가〕로 인간문화재의 칭호를 얻은 명창이기 때문에 한농선도 〔흥보가〕를 전수 받고 이수하였다. 그래서 1982년 박녹주가 보유했던 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기예능보유자 후보로 인정을 받았다.
이제 한농선은 박녹주 명창이 전해 준 그 〔흥보가〕를 더 발전시키고 확산시켜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많은 제자를 가르치고 기회 있는 대로 〔흥보가〕를 부르며 무대에서는 것이다. 다행이 요즘 젊은이들은 〔흥보가〕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녀의 이러한 작업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박녹주가 불렀던 〔흥보가〕를 더 많이 전해주는 것이 그녀 남은 생의 목적이자 보람이기 때문에 이번 음반의 출반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겠다.
박녹주(1906∼1979)는 경북 선산 출생으로 12세 때 박기홍의 문하에서 5년간 판소리를 배워 기초를 튼튼히 하였고, 송만갑에게 〔적벽가〕를, 정정열에게 〔춘향가〕를 김정문에게 〔심청가〕와 〔흥보가〕를, 유성준에게 〔수궁가〕를 배워 그의 나이 20대에 전국이 알아주는 대 스타가 되어 인기를 독차지하며 많은 일화를 남겼다. 박녹주가 부르던〔흥보가〕는 놀보가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까지만 부른다. 박동진 명창이 부르는 '놀보 박타는 대목'은 부르지 않는다. 놀보가 박을 타고나면 초란이패 사당당패 등 온갖 볼상 사나운 패거리들이 다 등장해서 놀보의 재산을 요절내는데 그런 대목을 여자가 부르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박녹주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본인도 그 부분을 부르지 않았고 그의 제자들도 '놀보 박타는 대목'은 부르지 않는다.
단가 백발가
단가는 판소리를 하기 전에 명창의 목도 풀고 좌석의 분위기도 정돈되게 하기 의해서 부르는 독립된 노래이다. 명창에 따라 즐겨 부르는 단가가 있는데 한농선은 백발가를 즐겨 부른다. 판소리 하기 전에 부르는 조래이기 때문에 목을 잘 다스리며 과도하게 쓰지 않는 중간음역으로 부르고 장단도 중간정도의 빠르기인 중모리장단으로 부른다.
최종민(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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