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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명[부제포함] 민속음악자료집 제4집 <유성기음반으로 보는 경기충청의 소리>
음반 번호 SBCD-13911 , CD 1 매
제작 / 기획사 국립민속국악원
발매 연도 2006
구 분 사가반
분 류 판소리+
업데이트 일시 2006-12-31C
비 고



 
민속음악자료집 제4집 <유성기음반으로 보는 경기충청의 소리>

1. 박춘재 <걸승덕담가> 1912년 3:39

2. 박춘재 문영수 경기잡가 <장대장타령 上> 1929년 2:56
3. 박춘재 문영수 경기잡가 <장대장타령 下> 1929년 2:57

4. 신해중월 표연월 경기잡가 <제석거리> 1932년 3:20
5. 신해중월 표연월 경기잡가 <중타령> 1932년 3:18

6. 임명옥 임명월 만곡 <군로사령 술주정 上>1929년 3:01
7. 임명옥 임명월 만곡 <군로사령 술주정 下> 1929년 2:57

8. 백점봉 김종기 외 제창 <보렴> 1929년 2:43

9. 백점봉 김종기 외 잡가 <새타령> 1929년 2:50

10. 백점봉 단가 <별조유람가 上> 1929년 3:01
11. 백점봉 단가 <별조유람가 下> 1929년 3:00

12. 심정순 가야금병창 <춘향가>중 <사령 춘향부르는데> 1912년 3:34

13. 심정순 가야금병창 <춘향가>중 <어사또 발행가> 1912년 3:31

14. 심정순 판소리 <춘향가>중 <천자뒤풀이> 1912년 3:43

15. 이동백 판소리 <심청가>중 <심봉사 맹인연에서 애소> 1928년 3:03

16. 이동백 판소리 <심청가>중 <부녀상봉> 1928년 2:51

17. 이동백 판소리 <춘향가>중 <이별가 上> 1928년 3:23
18. 이동백 판소리 <춘향가>중 <이별가 下> 1928년 3:24

19. 김창룡 판소리 <심청가>중 <심청이 비는데> 1925년 3:14

20. 김창룡 판소리 <심청가>중 <심청이 몸팔려 가는데> 1925년 3:05 총 63:30

* 제작:국립민속국악원. 기획:국립민속국악원 원장 곽영효. 편집:박정경 학예연구사. 음원제공:노재명. www.ntmc.go.kr
 
* 국립민속국악원이 출간하고 있는 동명의 책의 부록음반으로 비매품이다. 지금은 웹사이트 www.ntmc.go.kr에서 들을 수 없지만, 조만간 서브를 증설하여 들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한다.(2007.1.21)

 
* 해설서 내용으로 국립민속국악원에서 보내주었습니다(전내용을 보내주었는데, 지면관계상 앞부분만 실었습니다) :

음반을 내면서...

국립민속국악원에서는 근대 민속음악의 자료 확충과 심도 있는 연구를 위해 음반과 책자로 구성된 『민속음악자료집』을 기획 제작하고 있습니다. 2006년에는 근대음악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유성기음반을 대상으로 『민속음악자료집』 제4집 “유성기음반으로 보는 경기 충청의 소리”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 음반에는 경기 충청 지역 출신의 판소리 명창인 심정순, 이동백, 김창룡 등의 소리와 박춘재, 임명월, 임명옥, 신해중월 등 일제강점기에 활약했던 경기 명창의 잡가와 민요 등 총 20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곁에 남아있는 판소리와 민요 등의 민속음악은 대부분 20세기 초의 근대 사회를 거치면서 생성되고 변화된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1910년 이후 일제강점기의 음악을 담아낸 유성기음반은 우리 음악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교량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유성기음반에 담긴 명창의 소리와 음악을 통해 판소리와 민요의 다양한 옛 모습을 고증하여 연구하고 연주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민속음악자료집』 제4집 “유성기음반으로 보는 경기 충청의 소리”에서는 중고제 명창들의 판소리와 함께 경기 잡가 및 민요를 함께 수록하여 경기 충청권의 다양한 음악을 다루었고, 음반과 함께 연구 논문과 채보 악보를 수록한 책자를 발간하여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민속음악자료집 제4집』 “유성기음반으로 보는 경기 충청의 소리”는 중부 지방의 전통음악과 전통 명인을 새롭게 조망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귀중한 음원을 제공해주신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장, 음반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해제를 맡아주신 김문성 선생님께 감사를 전하며 『민속음악자료집』 제4집 “유성기음반으로 보는 경기 충청의 소리”가 유성기음반 관련 자료를 축적하고 근대 한국음악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6년 12월
국립민속국악원장 곽영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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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음반으로 보는 명창과 명창의 소리 -김문성(언론중재위원회)

1. 박춘재

관련음원
박춘재 <걸승덕담가>, 박춘재 문영수 <장대장타령>

원반정보
음반번호 6099, ROYAL RECORD NIPPONOPHONE, KOREAN SONG 門前僧念佛 걸승덕담가
음반번호 40022-A, 콜럼비아, 京畿雜歌 張大將타령(上) 朴春載 文泳洙 長鼓 池龍九
음반번호 40022-B, 콜럼비아, 京畿雜歌 張大將타령(下) 朴春載 文泳洙 長鼓 池龍九

해 설
문전승염불(門前僧念佛) 즉 <걸승덕담가>의 발매기록은 매일신문 1912년 7월 12일자에 보이는데 당시 박춘재는 문영수, 심정순등과 함께 닙보노홍 레코드 등에 많은 경서도, 남도창을 녹음했다. 특히 중고제 명인 심정순과는 <장대장타령>(6050), <소상팔경가>(6071), <토끼화상>(玉兎畵像.6083), <남원사령술주정가>(6093) 등의 노래를 함께 녹음하기도 했다.

한편 콜럼비아 레코드의 재담소리 <장대장타령>음반은 동아일보 1929년 4월 9일자 및 조선일보 1929년 4월 4일자에 발매광고가 보이는데 서도명창 문영수가 고인이 되었음을 뜻하는 ‘故 文泳洙’로 기록되어 있다. 콜럼비아레코드 가사지에도 역시 ‘故 文泳洙’라는 표기가 보인다.『서울600년사』 등 많은 문헌에는 문영수의 타계연도가 1930년으로 되어있으나 동아일보 및 조선일보의 기록에 미뤄볼 때 음반 발매 즈음인 1929년에 작고한 것으로 보인다.

박춘재가 부르는 <걸승덕담가>는 불가의 <화청회심곡>이 소리꾼들에 의해 윤색되는 과정의 초창기 ‘소릿조 회심곡’으로 추정되며 선율면에서는 서도회심곡으로 발전한 소리(장학선, 박명화 등이 부른 서도회심곡)와 상당히 흡사해 있다. 아니리로 시작해 염불을 외는 점, 고수인 문영수가 적절한 시점에서 추임새를 넣고 있는 점에서 재담소리가 판소리와 상당히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춘재가 유행시킨 <장대장타령>은 황해도 해주 일대에서 전해오는 소규모 무당광대극인 《장대장네 굿》을 박춘재가 다듬어 새롭게 만든 재담소리인 것으로 추측된다. 박춘재는 <장대장타령> 외에도 <장님타령>, <개넋두리> 등 많은 재담을 무대에 올렸는데 1920년대 이후에는 주로 무가계의 소리를 많이 부르며 전수시키기도 했다.

최선묵의 구술본을 중심으로 《장대장네 굿》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장장이 장씨의 미녀 아내인 장대장네가 봉사인 박판수와 동네 오입쟁이인 오두께비로부터 유혹을 받던 어느 날, 굿을 하러 가다가 수수밭에서 오두께비와 정사를 나누게 되고 박판수가 점괘로서 이 사실을 알아내게 된다. 박판수가 남편 장대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을 하며 장대장네에게 몸을 줄 것을 요구하자 장대장네는 제대로 굿을 하지 못하고 결국 박판수에게 몸을 허락하기로 약속하지만, 굿을 제대로 못했다는 이유로 장대장에게 추방된다는 노래 위주의 재담극이다.

박춘재의 <장대장타령>은 실제 《장대장네 굿》과는 내용에 있어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박춘재는 1912년 닙보노홍에 <장첨사득처가>(張僉事得妻歌)라는 이름으로 <장대장타령>을 녹음했으며 이후에도 일축음반, 일동 음반등에도 <장대장타령>을 녹음했다. 콜럼비아 의 <장대장타령>은 이들 음반과 마찬가지로 재담과 노래가 적절히 섞인 중후반부 대목을 중심으로 녹음되어 있다. 이창배의 『한국가창대계』에 기술된 <장대장타령> 사설은 장대장이 태어난 내력부터 장대장마누라가 허봉사에게 몸을 허락하는 대목까지가 한바탕인 것으로 정리되어 있는데 배뱅이굿에도 일가견이 있는 이순일이 박춘재로부터 장대장타령을 배우고 또 홍경산, 정득만 등과 함께 부른 창본으로, 정득만은 사설 전부를 기억하지 못하나 홍경산이 이를 기억해 1960년대에 이창배에게 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 신해중월, 표연월

관련음원

신해중월, 표연월 <제석거리>, <중타령>

원반정보
음반번호 19006-A(5167BF) 폴리돌 京畿雜歌 帝釋거리 申海中月, 表蓮月 해금. 피리, 저 長鼓 金玉葉
음반번호 19006-B(5168BF) 폴리돌 京畿雜歌 즁打鈴 申海中月, 表蓮月 해금. 피리, 저 長鼓 金玉葉

해 설
1927년 일본 동경에 설립된 폴리돌은 처음에는 일본음반과 라이센스 계약을 맺은 서양음악반을 발매하다가 1932년 9월부터 한국음악반을 발매하기 시작했다. 신해중월, 표연월이 녹음한 <제석거리>와 <중타령>은 폴리돌 레코드사가 초창기에 녹음하여 발매한 곡으로, 동아일보 1932년 9월 14일자에 이 음반의 발매 광고가 보인다.
신해중월과 표연월의 서울 · 경기굿의 ‘굿놀이’ 관련 음반은 폴리돌 레코드사에서 모두 석장으로 나뉘어 녹음되었는데 <구조노래가락(어정제노래가락)>과 <초가망>(19004), <대감노리>와 <대감타령>(19005) 그리고 <제석거리>와 <중타령>(19006)으로 이루어져 있다.
재담의 명인 박춘재가 서울 · 경기지역의 재수굿을 바탕으로 정형화시킨 것으로 보이는 굿놀이 레파토리는 신해중월 외에 이진홍계와 모영월계로 나누어져 발전했다. 이 중에서 모영월계는 지연화를 거쳐 현재 많은 경기소리꾼들이 무대에 올리고 있으며, 담백하면서도 어정제가 특히 강한 이진홍계는 윤일지홍, 백운선, 심명화, 고백화 등에게로 이어졌다.

신해중월과 표연월은 폴리돌 레코드 외에도 빅타 레코드, 콜럼비아 레코드 등에 여러 장의 굿놀이 음반을 남겼다. 빅타 레코드에서 <초가망> · <넉두리>(KJ-1147) <제석거리> · <중타령>(KJ-1148, 49077)등 모두 석장의 음반을 녹음했으며, 콜럼비아 레코드에서 <초가망> · <넉들어온다> · <대감노리>(40011), <제석거리> · <중타령>(40012) 등 두장의 음반을 녹음했다. 이외에도 이 둘은 어정제 <노래가락>과 <창부타령>을 비롯한 재담과 잡가 등을 여러 차례 녹음했다. 1905년 서울 구파발동 무가계통의 집안에서 태어난 신해중월이 걸걸하고 구수한 목소리로 주로 공수를 매기고 서도출신의 표연월이 된목으로 칼칼하게 신해중월의 소리를 받고 있다.
굿놀이 음악은 서울굿의 열두거리 가운데 초가망, 제석거리, 대감거리, 창부거리를 중심으로 연희되는데 비교적 흥겨운 창부타령조와 노래가락조에 얹어 부르는 노래가 많다. 초가망의 <넉두리>, 제석거리에서 불리는 <제석타령>, <중타령>을 비롯해 대감거리에서 불리는 <대감타령>, 창부거리의 <창부타령>을 비롯하여 <열두 달 홍수맥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굿놀이를 여러 차례 녹음한 여류 명창으로는 충남 전의 태생의 이진홍 명창을 꼽을 수 있다. 이진홍은 경기도 양주일대에서 행해지는 소놀이굿의 굿놀이를 무대에 많이 올렸다. 이진홍의 굿놀이는 초가망-개넋두리-제석거리-대감놀이순으로 짜여져 있다. 주무와 반주무(주로 장고재비)가 서로 대화하는 형태로 진행되며 창부타령조와 노래가락조의 소리를 주고 받기도 하며 주무는 공수를 통해 액을 막아주고 복과 재화를 빌어준다.

경사굿인 양주 소놀이굿은 굿의 열세 번째 거리인 제석거리와 열네 번째 거리인 호구거리 사이에서 주로 연희되는데 이러한 형태의 연희는 일제강점기 만담이나 재담의 형성 및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특히 재담의 귀재인 박춘재에 의해 굿놀이 공연 형식이 정형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박춘재가 만든 장대장타령 가운데 장대장이 만포의 첨사로 올라가는 도중 장단지역에서 행해지는 소놀음굿을 목격하게 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는 점과 또한 박춘재의 굿놀이를 사사한 것으로 알려진 표연월, 신해중월의 굿놀이, 모영월의 굿놀이, 그리고 이진홍의 굿놀이의 순서와 내용이 거의 흡사하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을 더욱 높여준다.
현재 신해중월의 어정제 대감놀이 및 무가소리는 전승이 단절되었으나 신해중월과 비교적 비슷한 류의 어정제 소리가 모영월, 지연화를 거쳐 많은 경기소리꾼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다만 어정제로 부르는 <창부타령>이나 <노래가락>은 모두 음악적으로 고상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언젠가부터 소릿조로 바뀌어 불리고 있다.

3. 임명옥, 임명월

관련음원
임명옥, 임명월 <만곡 군노사령 술주정>(上, 下)

원반정보
음반번호 일츅조션소리판 K815-A(20679) 漫曲 軍奴使令술주정(上) 林明玉 林明月
음반번호 일츅조션소리판 K815-B(20680) 漫曲 軍奴使令술주정(下) 林明玉 林明月

해 설
위의 음반은 동아일보 1929년 10월 21일자에 음반발매 광고가 보인다. 임명옥과 임명월, 특히 임명월은 매우 오랫동안 방송출연과 공연을 통해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음반은 그다지 많이 남아있지 않다. 이 음반외에 두 사람이 함께 녹음한 음반으로는 경기잡가 <장긔타령>, <매화타령>의 음반이 있고, 임명옥이 혼자 부른 남도잡가 <륙자배기>, <흥타령>이 남아있는데, 이들은 모두 일축 음반에 남아있다. 임명월이 남긴 음반으로는 이외에도 잡가 명인 이비봉, 장채선과 함께 녹음한 경기잡가 <달거리>(Okeh12308), 서도잡가 <영변가>(Okeh 12280)등이 있다. 일축조선소리판의 만곡 <군노사령술주정> 대목은 후에 리갈레코드(C168)에서 재발매되기도 했다.

이들이 부른 <군노사령술주정> 대목은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인데 분류를 판소리나 남도잡가, 혹은 남도창 대신 ‘漫曲’이라고 한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당시 ‘漫曲’은 ‘일본에서 영향을 받은 해학적인 노래’ 정도로 해석이 되는데 해학과 풍자를 띤 가요곡은 대체로 ‘漫謠’라는 이름으로 나온 반면 국악곡은 만요, 만가, 재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발매가 되었다.
박춘재가 일축 음반에 녹음한 재담소리 <장님흉내> 역시 ‘漫曲’이라는 표기로 발매가 되었다. 다만 태평 레코드사에서 발매된 김종조의 서도잡가 <장한몽>(C8313)이나 권명학의 <회심곡>(8184~8186)은 각각 ‘漫謠’ 와 漫曲의 이름으로 발매되었는데 이로 미루어볼 때 漫曲이라는 용어는 서사적인 노래에까지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 <군노사령술주정대목>은 줄타기 광대들이 즐겨 부르는 대목이다.

경기민요 명창인 임정란에 따르면 고모인 임명옥, 임명월은 과천 출신으로 대표적인 여류 줄타기 광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의 학습에는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성방송국 출연 기록을 보면 임명옥은 출연회수도 적고 레퍼토리도 남도창과 창극에 한정되어 있다. 임명옥은 1933년 7월 24일 임명월과 함께 남도 단가, <장기타령>, <매화타령> 등의 남도 및 경기민요를 부른 것을 끝으로 이후 이름이 보이지 않는 반면, 임명월은 이후에도 왕성하게 활동하였고 1939년 12월 10일까지 거의 매년 한달에 한두 번씩은 정기적으로 방송에 출연해 남도잡가부터 경서도잡가까지 부른 것으로 되어있다.

특이한 점은 1935년 이전까지는 남도민요를 먼저 부른 다음 경기민요를 부르는 레퍼토리를 가지고 방송출연을 했으며 1935년부터는 남도민요대신 서도민요를 먼저 부르고 경기민요를 부르는 레퍼토리를 가지고 방송에 출연했다. 그리고 1935년 8월 6일 방송에서 <유산가>, <제비가>, <영변가> 같은 좌창을 부른 것을 제외하고는 1938년 8월까지는 경기민요만으로 레퍼토리를 꾸렸다. 이후에는 경기잡가와 휘몰이잡가, 서도잡가를 골고루 불렀으며 1939년 12월 10일 손경란과 함께 출연해 <소춘향가>, <제비가> 등을 부른 후로는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임명옥과 달리 임명월의 경우, 초창기 때 배운 토막소리로 연희활동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잡가를 체계적으로 공부했으며 아마도 권번 등에서 집중적으로 경서도 소리를 배운 것으로 추정된다. 동명이인의 임명월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으나 방송에 출연해 부른 레퍼토리, 즉 민요곡이 일정하고 또한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명의 임명월이 존재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임명월의 이름은 1928년 1월 17일자 경성방송국 방송목록에 처음으로 보이는데 이때는 김운선, 김금선 등과 함께 서도잡가를 부른 것으로 되어 있다. 신파극이 유행함에 따라 전통 창극의 이름이 ‘구파조’로 바뀌어 불려진 1929년부터는 주로 창극무대에 이름이 보이는데 1928년 8월 21일부터 격일로 5회에 걸쳐 방송된 《춘향전》에서 임명옥은 방자 등의 역으로 임명월은 향단 등의 역으로 활동했다. 당시 《춘향전》에서 도창을 맡은 주요 배우는 김종기, 백점봉, 김완근이었으며 특이한 점은 광무대음악단이 반주단으로 참여한 것이다.

민속연구가 이자균에 따르면 임명옥, 임명월이 과천의 유명한 재인 김관보에게서 줄타기를 배운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임명옥, 임명월 공연의 반주자로 김관보의 수제자인 김봉업이 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오늘날 연희되는 발탈에도 재담과 소리는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특히 과거 발탈연희가 서도지방에서 열리면 서도소리를 중심으로 소리가 이루어졌고 남쪽으로 가면 남도 단가와 토막 판소리, 남도민요로 짜졌다는 박해일의 증언에 기초해볼 때, 발탈에 참여한 광대는 남도소리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소리를 어느 정도 배웠던 것 같고 그런 점에서 임명옥은 주로 남도소리를, 임명월은 경서도소리를 배운 것으로 보인다.

*이비봉1917-1997)과 임명월이 함께 찍은 사진으로 오른쪽이 임명월이다.

4. 백점봉

관련음원
백점봉 단가 <별조유람가> 上, 下, 백점봉 남도잡가 <보렴>, <새타령>

원반정보
음반번호 K803-A,B 일츅조션소리판 短歌 別調遊覽歌 白点奉 長鼓 李興元
음반번호 40053-A(20611) Columbia 齊唱 보렴 白点奉 金宗基外 男女合唱團
음반번호 40053-B(20612) Columbia 雜歌 새타령 白点奉 金宗基外 男女合唱團

해 설
일츅조션소리판은 일본축음기상회가 일본 콜럼비아와 합작한 이후 전기녹음 방식으로 녹음하여 발매한 음반으로 1925년 발매가 시작된 ‘일축조선소리반’과 1928년 발매가 시작된 ‘콜럼비아’레코드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 음반이다. 콜럼비아 레이블로 음반이 발매된 이후에도 독자적으로 ‘일츅조션소리판’이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발매하였다. 일련번호가 k-8XX으로 시작되며 초창기 음반에는 일축조선소리반처럼 ‘와시표’라는 상표가 레이블에 표기되어 있다. 첫 음반은 k-800 이화중선의 <심청이 선인따라가는 대목>이며 오태석, 김추월, 박조익, 배설향, 김정문, 이진봉, 백모란, 장학선, 손진홍, 김운선 등 당시 장안의 소문난 명창들의 많은 소리가 녹음되어 있다. 1929년 9월부터 1932년 10월까지 음반을 발매하였으며 이후에는 Regal레코드로 대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 1929년 9월 27일자 신보광고 및 10월 5일자 광고 10월 21일자 제회 신보광고에 보이는 백점봉의 <별조유람가>는 정통으로 불리는 <유람가>와는 다른 조로 불린다는 의미에서 ‘별조’라는 말을 붙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와 유사한 용어로는 ‘新調’, ‘變調’ 등이 있으며 이러한 용어는 음반뿐만 아니라 당시 경성방송국 방송순서 프로그램에도 종종 등장하고 있다. 1925년 김추월, 박경화가 일축조선소리반에 녹음한 <유람가>(遊覽歌. K555-A)와 비교해 비교적 담담하고 고졸한 느낌이 강하다.

이보형 및 노재명에 따르면, 백점봉은 경기도 장호원 출신의 소리꾼으로 별조유람가는 충청도 양반광대 정춘풍이 지어 불렀다는 단가 <소상팔경>(瀟湘八景. 닙보노홍 K178-B, 1913년, 송기덕 창) 및 박록주의 박기홍제 단가 <대관강산>(大觀江山, 콜럼비아 40099-A, 1929년), <죽장망혜>(竹杖芒鞋. 콜럼비아 40248-A, 1929년) 그리고 이동백의 <죽장망혜>(竹杖芒鞋, 빅타 49036-B, 1928년 추정) 등과 곡조가 비슷해 정춘풍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백점봉은 경성방송국 개국 초창기 방송에 자주 출연하였는데 단가와 판소리 외에 창극도 종종 녹음하였다. 특히 가야금 명인인 김종기와는 남도민요와 잡가를 비롯해 창극으로도 함께 활동했으며 방송에도 자주 출연했는데, 1928년에는 《춘향전》을, 1929년에는 《심청전》을 녹음했으며 당시 주인공 춘향과 심청 등 비중이 큰 배역을 맡은 것으로 미루어 상당히 대중적이고 인기 있는 소리꾼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창극 《춘향전》과 《심청전》에는 김종기 외에도 김완근, 임명옥 · 임명월 자매, 이일선, 김옥진, 송옥주 등이 함께 출연했는데, 1929년에 출시된 남도잡가 <보렴>과 <새타령> 음반은 이들 소리꾼들의 제창 (齊唱) 녹음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까지 발견되는 백점봉의 음반은 지명도에 비해 그리 많지 않으며 폴리돌 레코드사에서 녹음한 단가 <몽유가>(19042-A)와 <이별가>(19042-B)를 비롯해 5~6매의 음반이 발매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몽유가> 역시 <별조유람가>와 비슷한 선율로 진행된다.

5. 심정순

관련음원
심정순 가야금병창 《춘향가》 중 <사령 춘향 부르는데>, <어사또 발행가>
심정순 판소리 《춘향가》 중 <천자뒤풀이>

원반정보
음반번호 6076, ROYAL RECORD NIPPONOPHONE, 南原使令呼春香托領(사령춘향부르는가)
음반번호 6077, ROYAL RECORD NIPPONOPHONE, 李道領御使發行(어사토발가)
음반번호 6098, ROYAL RECORD NIPPONOPHONE, 千字文歌(천자뒤푸리)

해 설
일본축음기상회가 1911년부터 일본에서 녹음하여 발매하기 시작한 음반의 상표가 ‘ROYAL RECORD NIPPONOPHONE’이다. 발매 초창기 녹음은 나팔통식 녹음으로 음질이 다소 불량하며 한쪽 면에 음을 입히는 소위 ‘쪽판’ 형태로 발매되었으며 후에 양면판으로 발매되었다. 일부 음원은 1925년부터 일축 ‘닛노홍’ 레이블로 재발매되기도 하였다. 당시 음반 레이블에는 연주자나 반주자의 이름이 표기가 되어 있지 않아 신문이나 잡지의 음반 발매 광고 및 조선음반총목록 등의 기록을 근거로 연주자 및 반주자를 추정하고 있으며 음반사의 레이블에 독수리 문양의 로고가 새겨져 있어 통상 ‘독수리표 음반’ 혹은 ‘독수리표 로열 레코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심정순의 가야금병창 음반은 1912년에 발매되었는데, 이는 매일신문 1912년 7월 12일자에 실린 광고에 의거한다. 당시 심정순, 박춘재, 문영수 등은 로열 레코드에 소리를 녹음한 주요 가창자였으며 심정순은 《춘향가》 중 <남원사령춘향부르는대목>(남원사령호츈가)와 <어사또발행가>(어사역졸발가) 및 <천자뒤푸리> 등을 포함해 모두 21면의 소리를 녹음하였다.

심정순이 녹음한 가야금병창 《춘향가》 중 <사령 춘향 부르는데> 대목과 <어사또 발행가> 대목은 후에 일축 음반에 각각 短歌 <軍奴使令이 나간다>(k224-A), 短歌 <御使發行歌>(k224-B)의 이름으로 재발매되기도 하였다. 이들 음반은 이른바 ‘비동비서’(非東非西; 동편제도 서편제도 아닌 소리)로 불리는 중고제의 특징이 비교적 잘 드러나 있어 중고제 소리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음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심정순은 로열 레코드 음반에 21면의 소리를 녹음한 것 외에 1925년부터 발매가 이루어진 일축조선소리반에 24면의 소리를 녹음한 것으로 추정되며 로열레코드에 녹음한 주요 음반으로는 <새타령>(各鳥托領, 6023), 《심청가》 중 <선인가>(船人歌. 6065), 《춘향가》 중 ‘옥중가’(烈女春香獄中歌, 6068), 《흥보가》 중 ‘박타령’(朴鉅歌, 6084)을 비롯해 박춘재, 유명갑 등과 함께 부른 남도민요 <육자배기> 등이 있다.

매일신보 1914년 3월 4일자에는 심정순에 관한 기록이 보이는데 이 기사를 통해 심정순의 특기가 《춘향가》임을 알 수 있다. 이 기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여러 광대 중에서도 가장 품행이 단정하고 순실하고 은공한 사람은 아마도 누구든지 심정순의 위인을 첫째로 손꼽을지라. 고향은 충청남도 서산이요, 현주소는 경성 교동 40통 1호라. 시골서는 농업으로 지내다가 우연한 기회로 25세부터 단가와 율(律)공부를 시작하여 지금은 조선지경에서 구배우(전통음악배우) 심정순이라 하면 대개 알게 되었더라. 단가에는 토끼타령, 춘향가와 기타잡가요. 음곡에는 가야금, 양금, 단소, 장고이니 집안에 들어가서는 근검치산과 자질교육에 열심근면하고 밖으로 나와서는 광대의 직업으로 여러 사람의 환영을 사는 것이 심정순의 특별한 장기라 하겠도다. 금년 42세로 이십년 동안의 장장한 세월을 방탕하기 쉬운 구렁에서 지루하게 지내었건만은 품행상에 대하여 한 개의 흠절을 잡을 곳이 없는 것도 심정순의 가상한 곳이라. 지금은 장안사 연극장에서 구연극을 설시하고 각항 재미있고 흥취나는 광대의 소리로 관객의 발을 쉬게 하고 마음을 유쾌하게 하여 단아한 풍류중에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 또한 심정순의 일개 취미라 하겠다”


6. 이동백

관련음원
이동백 판소리 《심청가》 중 <심봉사 맹인연에서 애소>, <부녀상봉>,
《춘향가》 중 <이별가> 上下

원반정보
음반반호 40026-A, 콜럼비아, 沈淸傳 盲人宴에서 沈奉事哀訴 李東伯 長鼓 李興元
음반번호 40026-B, 콜럼비아, 沈淸傳 沈奉事와 沈皇后相逢 李東伯 長鼓 李興元
음반번호 49028-A, 빅타, 春香傳 離別歌리별가(上) 獨唱 李東伯 長鼓 池東根
음반번호 49028-B, 빅타, 春香傳 離別歌리별가(下) 獨唱 李東伯 長鼓 池東根

해 설
콜럼비아 레코드사가 발매한 이동백의 《심청가》 음반은 동아일보 1928년 4월 1일자 및 조선일보 1929년 4월 4일자에 발매 광고 기록이 보인다. 그러나 콜럼비아레코드사와는 달리 음반광고에 비교적 소극적이었던 빅타 레코드사의 《춘향가》 중 <이별가> 음반의 발매기록은 발견되지 않고 있으나 빅타 레코드의 <새타령> 및 <강산경가>(이동백, 49033)의 녹음일이 1928년 6월 6일인 점, 음반번호가 49018, 49019인 백운선의 서도잡가 <관산윰마>, <박연폭포>, <상하청영변가>의 녹음일이 1928년 6월 19일인 점에 미뤄볼 때 이별가의 녹음시기는 1928년 6월경인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날짜를 예상해 보면, 《심청가》 중 <심봉사 젖비는 대목>(沈逢使孤兒沈淸乞乳歌, 49001), 《적벽가》 중 <공명가>(孔明歌, 49002), 《심청가》 중 <심청부친이별가>(沈淸父親離別歌, 49025), 《춘향가》 중 <이별가>(離別歌, 49028), 《수궁가》 중 <토끼타령>(兎打令, 49029), 《심청가》 중 <심황후놀이>(沈皇后宴歌, 49032), <심봉사 눈뜨는 대목>(沈奉事開眼, 49036-A), 단가 <죽장망혜>(竹杖芒鞋, 49036-B), 그리고 <새타령> 등과 함께 6월 6일에 녹음된 것으로 추정된다.

빅타 레코드사는 《심청가》를 중심으로 이동백의 판소리를 비교적 다량 발매했는데 특히 《심청가》의 후반부 대목에 녹음이 집중되고 있으며 빅타 레코드의 1번 음반과 2번 음반이 이동백의 《심청가》와 《적벽가》인 점에 미뤄볼 때 당시 이동백의 인기가 상당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동백은 판소리 5바탕 중에서 《심청가》 외에 《춘향가》의 음반을 비교적 많이 녹음하였는데 빅타 레코드보다 앞서 발매된 일축조선소리반에는 《춘향가》 중 <이도령광한루경개가>((K514-A), <춘향추천대목>(K514-B), <천자뒤풀이>(K515)를 비롯, 《춘향가》 중 <사랑가>와 <자진사랑가>(K565), <춘향화실애가>(春香花室愛歌, K570-A), <이도령 집돌아오는 대목>(李道令歸家歌, K570-B) 등이 녹음되어 있다.

이동백이 《춘향가》에 능하였음을 암시하는 자료 가운데 1959년 5월부터 6월까지 동아일보에 게재된 박용구의 풍류명인 야화 「명창 이동백」편에는 고종황제의 명을 받은 이동백이 고수 정원섭과 함께 궁궐에 들어가 《춘향가》 중 <박석티를 올라서서> 대목부터 부른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당시 고종은 이동백의 소리가 다른 명창들의 소리에 비해 그리 출중하지 못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흥미를 느낀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는 전형적인 중고제 판소리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고종은 이동백의 <박석티를 올라서서>를 다 듣고는 <참으로 명창이로다>라고 탄복하였다고 한다. 매일신보의 기록 및 박용구의 기술에 따르면 이동백은 고종 4년 충남 비인군 도만리(현 서천군 비인면 도만리)에서 태어난 것으로 기술되어 있으며 이동백의 타계연도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박용구는 경기도 평택군에서 1949년에 향년 83세를 일기로 타계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7. 김창룡

관련음원
김창룡 《심청가》 중 <심청이 비는데>, <심청이 몸 팔려가는데>

원반정보
음반번호 K517-A, 닙보노홍, 沈淸傳 沈淸工祝歌(二) 심쳥이비난데 金昌龍 長鼓 韓成俊
음반번호 K517-B, 닙보노홍, 沈淸傳 沈淸賣身歌 심쳥이 몸팔여가난데 金昌龍 長鼓 韓成俊

해 설
일축조선소리반 닙보노홍은 1925년부터 발매된 일축회사의 음반 상표로 비슷한 시기에 창립된 제비표 일동축음기회사와 함께 양강 체제를 구축했다. 1928년에는 미국 콜럼비아사와 합작하여 일본 콜럼비아로 개명하였는데, 레이블에 닙보노홍의 로고인 남대문이 찍혀 있어 통상 ‘남대문표 음반’으로도 불리며 ‘와시표’라는 표시가 있어 ‘와시표 일축음반’이라고도 불린다. 녹음방식은 나팔통식 녹음이며 1926년 이동백, 김추월, 신금홍 등이 참여한 이동백 도창 《춘향전 전집》을 비롯해 많은 양의 국악음반을 발매했다.

김창룡의 대중적 인기와 위상을 짐작케 하는 대표적인 증거가 바로 일축조선소리반의 음반들이다. 1925년을 즈음하여 일동 음반과 일축 음반은 판소리꾼과 경서도 소리꾼의 소리를 경쟁적으로 녹음하였다. 이 때 김창룡은 일동 음반과 일축 음반에 많은 양의 판소리를 녹음하였는데 특히 일축음반의 1, 2번 음반이 김창룡의 판소리 음반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대중적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번 음반(K501)에는 김창룡의 단가 <대장부가>가 녹음되어 있고, 2번 음반(K502)에는 《심청가》 중 <곽씨부인품타령>과 <곽씨부인유언하는 대목>이 녹음되어 있다. 김창룡의 《심청가》 중 <심청이 비는 대목>은 K516음반에 전편이 실려 있고 K517음반에는 <심청이 비는 대목>의 후편이 실려 있다.

<심청이 비는 대목>은 심청가의 주요 눈대목 중 하나로 심청이가 후원에 단을 쌓고 아버지의 개안(開眼)을 비는 내용이 주가 되는데, 중고제의 발성 특징인 단아하고 담백하며 정갈한 성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박춘재 등 초창기 경서도 소리꾼들이 즐겨 부르는 민요조 혹은 창조의 성음 예를 들면 서도시창에서 발견되는 요성을 사용하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매일신보 1935년 1월 25일자에는 ‘김창룡은 충청도 태생으로 그의 특징은 적벽가이다. 쾌활한 적벽가의 우렁찬 목소리가 아직도 원기 왕성함을 말하고 있다‘라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를 입증하듯 김창룡은 정정열, 이동백, 조학진, 임소향과 함께 폴리돌 레코드사의 적벽가 전집 녹음에도 참여했다. 적벽가중 ‘삼고초려’ 대목은 김창룡의 특장으로 알려졌으며 심청가 중 ‘화초타령’ 역시 김창룡의 특장으로 알려져 있다.

김창룡은 《적벽가》 전집 외에도 이동백, 정정열, 문련향, 임소향과 함께 폴리돌 레코드사의 《심청전》 전집 녹음에 참여했으며 이화중선, 오비취, 권금주와 함께 콜럼비아 레코드사의 《춘향전》 전집 녹음에도 참여하는 등 비교적 많은 양의 판소리, 단가, 창극 음반을 남겼다. 김창룡의 소리로는 이밖에도 일축조선소리반에 《심청가》 중 <범피중류>, <심청걸식가>등의 녹음이 남아있으며 일동의 제비표 레코드에는 《춘향가》 중 <이도령광한루경개가>와 <기생점고> 등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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