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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명[부제포함] 제1회 낙안읍성국악제 전국대회기념 <국창 송만갑 판소리>
음반 번호 NCM-091128 , CD 1 매
제작 / 기획사 국악음반박물관/동편제판소리..
발매 연도 2009
구 분 사가반
분 류 판소리
업데이트 일시 2009-12-26
비 고



 
제1회 낙안읍성국악제 전국대회기념 <국창 송만갑 판소리>

■ 단가
1. 진국명산(1930년 녹음) 3:32
2. 진국명산(1934년 녹음) 3:31
3. 역려과객(1934년 녹음) 3:28

■ 춘향가
4. 이별가(1930년 녹음) 3:22
5. 이별가(1934년 녹음) 2:56
6. 십장가 뒤의 풍경(1930년 녹음) 3:06

■ 심청가
7. 심봉사 자탄(1913년 녹음) 2:57
8. 심봉사가 심청이를 안고 귀여워하는 데(1913년 녹음) 2:56
9. 심청모 행상가(1913년 녹음) 3:04

■ 수궁가
10. 고고천변(1913년 녹음) 2:59
11. 토끼가 수궁에서 나오는 데(1930년 녹음) 3:12
12. 백로횡강가(1913년 녹음) 3:06

■ 흥보가
13. 박타령(1930년 녹음) 3:33

■ 남도민요(춘향가 중)
14. 농부가(1913년 녹음) 3:08 총 44:50

* 제작: 국악음반박물관·사단법인 동편제판소리보존회
* 음원 제공: 국악음반박물관. 제작감수:송순섭. 음반해설:노재명. 디지털마스터링:양정환(예술기획 탑). 인쇄:도서출판 무송.

* 녹음시기: 1913·1930·1934년
* 제작시기: 2009년 11월 28일 유성기음반 복각, 1000장 한정판.
 
* 송순섭 명창이 이사장으로 있는 (사)동편제판소리보존회가 주최하는 낙안읍성국악제 전국대회기념(제1회)의 기념음반으로 출반된 비매품 음반이다. 국창 송만갑 선생의 유성기 음반 음원을 집대성한 음반이다. 음질은 열악하지만, 음악은 최고이다.(2009.12.26)
 
* 해설서에서(원해설서에는 많은 사진자료가 있음):

신 동편제 판소리를 개척한 국창 송만갑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송만갑(宋萬甲, 1865~1939)은 아버지 송우룡, 명창 박만순 등에게 판소리를 사사했다. 송흥록송광록송우룡으로 전승된 가문의 동편제를 7세부터 배웠다.
송만갑은 가업으로 이어져 내려온 동편제 판소리를 자신에게 맞게, 새로운 시대에 맞게 바꿔 불렀고 집안에서 유서깊은 가문의 소리를 변질시켰다 하여 쫓겨났다. 집안에서 쫓겨난 그는 전국을 떠돌며 여러 지방의 소리를 자신의 판소리에 수용하여 신(新) 동편제를 만들어 냈다.

송만갑은 고종에게 정3품(감찰)의 직함을 받았다. 그것은 그의 예술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었고 광대에 대한 사회의 멸시를 극복하기 위해 오랜 동안 몸부림친 소득이었다.
송만갑 세대 대부분의 명창들이 앞세대가 이룩한 업적, 몇 대에 걸쳐 대물림되면서 힘이 집약된 선배들의 소리제를 익히고 그 수준을 유지하는 것만도 벅차 사실상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안주하거나 혹은 고풍스러운 맛을 고집하여 새로운 시대에 맞는 소리를 개발하지 않았다.

송만갑은 이미 중년에 전통적인 동편제 창법 최고의 경지에 올랐지만 그 단계에서 만족하지 않고 한층 분발하여 초인적인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여 신 동편제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

그런 점에서 송만갑이 왈 대명창으로 인정받는 것이며 이는 목을 잘 타고난 것에 자만하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한 결과였다.

송만갑은 당대 전통음악의 몰락과 함께 대부분의 명창들이 모두 낭떨어지로 추락할 때 그는 남보다 우수한 천재성이 있었기에 그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송만갑은 자신이 평생을 공부한 판소리, 진정으로 훌륭하고 아름답다고 느낀 그 음악을 후세에 최대한 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혼신을 다해 무수히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불안했는지 직접 자신의 육성으로 많은 녹음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송만갑은 아들 송기덕을 비롯해 장판개, 박봉래, 김정문 등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지만 대부분 요절하거나 국악에 대한 사회의 천시 풍조 때문에 은둔 생활을 하여 그의 판소리는 박록주, 박봉술 등 몇 명에 의해 일부만이 간신히 전승되었다.
송만갑이 남긴 녹음들을 비교해 보면 송만갑은 말기 녹음으로 갈수록 좀더 기교적이고 통속적인 쪽으로 변해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송만갑과 그의 수제자 송기덕, 장판개, 김정문, 박중근, 김록주의 녹음을 대조해 보면 송만갑의 제자들이 소리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송만갑의 소리를 제대로 물려받았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송기덕, 장판개, 김정문, 박중근은 모두 송만갑 문하에서 배웠지만 조금씩 다른 점이 발견되는데 그 중에서 장판개가 가장 우람하고 박진감있게 소리를 한다. 김정문 역시 성음이 우렁찬 편인데 장판개보다 좀더 감칠맛을 가미한 소리를 구사한다. 박중근 역시 장중함은 있으나 장판개나 김정문에 비해 성음이 다소 약한 느낌이 있으며 반면에 그 누구보다 구수한 맛이 있다. 송만갑과 가장 닮은 꼴은 역시 그의 아들인 송기덕으로서 상성을 곱게 무리없이 내지르는 고운 목이 돋보인다.

이렇게 같은 스승 밑에서 배웠으면서도 서로 조금씩 다른 점이 발견되는 것은 송만갑을 비롯한 옛 명창들이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르게 소리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즉, 제자들의 목에 맞게 각 개개인의 개성을 살려 소리를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송만갑은 많은 음반을 남겼는데 특히 단가 <진국명산>, 춘향가 중 <사랑가>, <이별가>, <십장가>, <남원 오입쟁이>, <옥중가>, <어사 출도>, 심청가 중 <중타령>, <심봉사 눈 뜨는 데>, 적벽가 중 <새타령>, 수궁가 중 <고고천변>, 흥보가 중 <박타령>이 명녹음으로 꼽힌다.

송만갑은 힘있고 경쾌하게 통성으로 높게 질러 올려 상성 위주로 소리를 짜나가고 망치로 내려치듯 힘있게 소리를 끊어서 맺는 동편제 창법을 구사한다.
송만갑이 왜 명창으로 추앙받는가? 그 첫째 조건으로 목이 그는 우선 타인에 비해 월등히 좋다.
송만갑 가문은 특별히 목이 출중했고 원로 명창들은 모두들 송만갑의 목구성은 판소리 하기에 적합하다는 수리성을 훨씬 능가하는 전무후무한 것이라고 말한다.
허나 지금은 맥이 단절되어 버린, 판소리계의 가장 아까운, 이제 찾기 어려운 보물이 되고 말았다.

송만갑은 1908~1910년 그의 첫 녹음, 그리고 1913년에 녹음한 판소리 적벽가 중 <새타령> 유성기음반에 그의 특출난 목구성이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이 <새타령> 녹음을 들어보면 맑고 고우면서도 아주 높은 고음으로서 새소리 묘사를 신기에 가깝게 해내며 또 새의 짧은 울음소리를 느닷없이 최상청으로 올렸다가 그 즉시 기존의 고정 선율로 아무렇지 않게 음정 하나 흔들리지 않고 돌아가서 소리를 진행하는 점이 매우 경이롭다. 이는 성악가한테는 아주 어려운 곡예와 같은 것으로서 컴퓨터로 조절되는 것처럼 완벽할 정도이다.
송만갑의 경우 경상도에서 많은 각광을 받았고 그 지역에서 제자를 굉장히 많이 배출했는데 그가 공들여 길러낸 여류 명창의 상당수가 경상도 출신이다. 그리고 송만갑은 이 지역에서 상당히 활발하게 공연 활동을 했는데 이런 까닭에 그의 소리 전반에 경상도 사투리와 같은 강한 억양의 창법, 곡조가 들어있다. 소리 도입부를 강한 성음으로서 내두름을 한다든지, 소리 끝매듭을 간결하면서도 쇠망치로 내려치듯 맺는다든지 하는 점들이 바로 그런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는 자신의 지지 기반에 대한 답례이자 자연스러운 적응력, 생존 방법인데 그가 서울에서 활동을 많이 하면서는 경드름을 많이 사용했다고 하는 김명환의 증언도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같은 경우로 이해될 수 있다고 하겠다.
본 음반은 송만갑 명창의 판소리 녹음들을 복각하여 모은 최초의 송만갑 독집 CD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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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음반에 복각된 송만갑 유성기음반 목록과 사진

1. 단가 진국명산(1930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095
Columbia 40145-A(21005) 短歌 鎭國名山 宋萬甲 鼓韓成俊

2. 단가 진국명산(1934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880
Victor Junior KJ-1001-A 短歌 鎭國名山진국명산 宋萬甲

3. 단가 역려과객(1934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2195
Victor Junior KJ-1005-A 短歌 逆旅過客역려과객 宋萬甲 杖鼓韓成俊

4. 춘향가 중 이별가(1930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846
Columbia 40175-A(21009) 春香傳 離別歌(上) 宋萬甲 鼓韓成俊

5. 춘향가 중 이별가(1934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880
Victor Junior KJ-1001-B 春香傳 離別歌리별가 宋萬甲

6. 춘향가 중 십장가 뒤의 풍경(1930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095
Columbia 40145-B(21008) 春香傳 十杖歌 宋萬甲 鼓韓成俊

7. 심청가 중 심봉사 자탄(1913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970
NIPPONOPHONE 6126 雜曲 波逢空房自歎歌 宋萬甲 長鼓朴春載

8. 심청가 중 심봉사가 심청이를 안고 귀여워하는 데(1913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689
닙보노홍 K176B(6127) 심봉사사랑하는데 宋萬甲

9. 심청가 중 심청모 행상가(1913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704
ROYAL RECORD NIPPONOPHONE 6214 雜曲 沈淸母行喪歌 宋萬甲 長鼓朴春載

10. 수궁가 중 고고천변(1913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009
NIPPONOPHONE 6133 鱉出陸地歌 宋萬甲

11. 수궁가 중 토끼가 수궁에서 나오는 데(1930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019
Columbia 40219-B(21007) 水宮歌 톡기타령 宋萬甲

12. 수궁가 중 백로횡강가(1913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704
NIPPONOPHONE ニツポノホン 6215 雜曲 白鷺橫江歌 宋萬甲 長鼓朴春載

13. 흥보가 중 박타령(1930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019
Columbia 40219-A(21006) 興甫傳 박타령 宋萬甲

14. 남도민요(춘향가 중) 농부가(1913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009
NIPPONOPHONE 6132 農夫歌 宋萬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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