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위의 www.zen.co.kr 가져왔습니다.:
**앨범 설명**
힌디어로 소리를 '나다'(nada)라고 한다. 이는 단순한 소리의 차원을 넘어 우주의 에너지를 의미한다. 이 에너지에 영혼을 실을 때 비로소 명상음악이 된다. 진정한 명상음악은 나다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다. 자연 에너지에 조율된 소리-. 이는 예민한 감각과 깊은 명상상태에서만 알 수 있는 미묘한 테크닉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조율된 소리를 즉흥이라는 영적인 연주 방식을 통해 형상화시킬 때 그 파장은 듣는 이에게 전달된다.
본 앨범에서 연주자들은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깊은 삼매에서 음악이 가고 싶은 길로 가도록 내버려두고 있다. 이는 음악의 한계를 넘어 음악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가능한 일이다. 본 앨범의 녹음에 참여한 연주자들은 지고한 축복 속에서 즉흥으로 음악의 흐름을 따라가며 열반에 들었다.
어둠과 빛의 라사, 코즈믹 에너지의 변화
산스크리트어인 라가에는 색채·정열·욕망·환희·애정·성교 등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정서를 표현하기 위한 선율형을 가진 선법 혹은 이 선법에서 비롯되는 음악을 라가라고 한다. 그 근본은 말할 것도 없이 '나다' 즉 우주에너지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우주에너지의 변화에 따른 다양한 감정적 반응에 따라 수많은 라가가 존재한다. 그 라가들은 정서적 반응의 유사성에 따라 분류된다. 이렇듯 라가는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 역동적 음악실체인 것이다. 광범위하게 말해서 라가는 즉흥연주를 위한 음악적 틀로 간주할 수 있다.
인도사람들은 우주에너지의 변화에 따라 하루 24시간을 열 두개로 나누어 그 시간대에 따라 연주할 라가를 정해 놓았다. 해가 뜨기 전, 낮, 황혼, 밤 등 두 시간 단위로 연주해야 할 라가를 분류했다. 이런 분류는 우기와 건기 등 다양한 상황에 따라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로써 수 많은 라가가 존재한다.
각 라가는 어떤 특별한 정서나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라사(rasa)라고 한다. 필자는 인도에서 라가를 들으며 연주자들로부터 나오는 소리의 파장 속에서 독특한 기분으로 유영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듯 라가는 듣는 이들의 정서적인 반응을 자극한다.
아침 라가, 저녁 라가, 장마철 라가 등 수많은 라가가 모두 엄격한 음악적 룰을 가지고 있다. 가령 고정된 음계라든가 음들의 위계, 액센트와 장식음 등 특별한 접근 방식이 각 라가들 마다 따로 존재한다.
필자가 다양한 라가를 들으며 느낀 점은 같은 라가 스케일로 연주되는 음악은 같은 감정적 유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같은 감정적 유형, 즉 동일한 정서를 우리의 전통악기로 표현이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가졌다. 우리의 전통음악은 그 자체로 명상음악인만치 어딘가에서는 분명 라가와 만나는 지점이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필자는 라가를 들으며 어떤 음이 강조되고 반복되는지, 어떤 음들이 숨겨지는지, 그리고 어느 음 위에서 악구들이 끝나는 가를 연구했다. 텍스트로 사용한 음악은 몇 곡의 둔(dhun : 라가를 배우는 사람들이 연주하는 가벼운 라가)이었다. 그러나 그 맥을 찾기가 어려웠다. 귀에만 의존한다는 것이 무리였고, 문헌이나 인터넷을 통한 자료 수집을 통해서도 키포인트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날 필자는 라가가 수록된 음반 몇장을 들고 백인영 선생을 찾아갔다. 선생은 이미 오래 전에 필자에게 함께 명상음악을 만들 것을 제안하신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라가를 연구했고, 예상했던 대로(?) 난관에 부딪힌 것이다. 선생은 필자가 들려드리는 라가를 귀 기울여 들으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김선생은 음악을 지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시는군요. 음악은 감각적으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리고는 가까이 있는 가야금을 당겨 퉁기는데 여지없는 라가가 나오고 있었다. 선생은 하나의 음으로 어떻게 긴장을 만들고 푸는지, 또는 여러 음을 어떻게 결합시키는지 그리고 어떻게 긴장을 증가시키는가는 세계의 모든 음악이 다 같다고 하셨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소리의 본질은 모두 같다는 것이다.
'보세요. 이 라가를 보면 근본음은 몇 개 안되지 않습니까. 이 음은 이렇게 흔들리고 또 이음은 이렇게 변해가지 않습니까. 이 단순성에서 전체 음악이 비롯되고 있군요. 문제는 인간의 심리 혹은 감정 같은 것을 소리로 어떻게 콘트롤하느냐 입니다. 명상음악은 소리의 파장을 통해 듣는 이의 호흡을 콘트롤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말씀을 하시면서 선생은 가야금으로 음반에서 나오는 라가 팀과 합주를 하고 계셨다.
'선생님! 바로 이 느낌입니다. 이건 한국적이면서 분명 나다의 흐름을 담고 있어요.'
나는 고조된 어조로 외쳤다.
다음 날 나는 부리나케 녹음실을 예약했다. 그리고 마트라(라가에 있는 독특한 인도적 리듬 비트) 효과를 얻기 위해 원건희(스와미 디얀 쌍깃)씨에게 타포(아메리칸 네이티브 우드블럭) 연주를 부탁했다.
녹음 당일 선생은 제자인 25현 가야금을 연주하는 서라미 양과 함께 오셨다. 이렇게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녹음 전에 몇 가지 룰을 정했다. 첫째, 반드시는 아니지만 될 수 있는 대로 펜타토닉(5음음계)으로 구성할 것. 이는 한국적 색채를 두드러지게 하기 위함이었다. 둘째, 각 악기가 독자적 흐름을 지니기 위해 화성적인 진행을 피하고 선법적인 흐름을 가질 것. 그러기 위해 반주음형은 절대적으로 피해갈 것. 까딱하면 흔해빠진 뉴 에이지 음악이 될 우려 때문이었다. 셋째, 각 악기는 화성이나 리듬 패턴 등에서 일반적인 앙상블 방식을 따르지 말고 독자적인 흐름을 타고 갈 것. 넷째, 타악기는 기교를 부리지 말고 자신의 호흡을 주시한 상태에서 타임 키핑에만 충실할 것. 이는 음악적 효과가 아니라 음악에 호흡과 맥박의 효과를 주기 위한 의도였다. 음악보다는 생명의 원리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준 컨셉은 어두운 새벽부터 동이 트고 아침이 완전히 밝아 오는 시간대(새벽 4시부터 아침 10시까지의 6시간)를 염두에 둘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소네트를 들려드렸다.
어둠 속에서 빛이 나타난다
어둠이 사라진다
축복에 가득 찬 세계가 다가온다
새로운 오늘은 영원과 이어진다
이러한 몇 가지 룰을 바탕으로 '어둠 속에서 빛이 나타나 증폭되는 광경'을 백인영 선생께서 즉흥으로 연주했다. 먼저 아쟁을 연주하고 가야금을 더빙했다. 선생은 어둠 속에서 잉태된 빛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며 다가오는 장면을 주시하듯 선험적인 기억의 나락 속에서 아련한 선율을 끄집어냈다. 이를 바탕으로 그 위에 25현 가야금과 타포가 차례로 더빙되었다. 이렇게 해 한국의 자연 에너지에 조율된 새로운 명상음악이 탄생했다. 선생께서는 중심음을 B플랫에 두셨는데 이는 우리네 새벽 혹은 아침 에너지에 잘 맞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모델로 삼은 인도의 아침 라가도 같은 중심음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는 어딘가 상통하는 부분이다.
마지막 곡인 '나다'는 다양한 타악기와 여러 가지 음향을 사용하여 믹싱과 더빙을 통해 산사(山寺)에 어둠이 걷히는 장면을 그려보았다.
김 진 묵(음악평론가)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