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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명[부제포함] 반락, 그 남자의 음반이야기 <이진원>-과학도 퉁애에 빠지다-
음반 번호 KOUSCD-009 , CD 1 매
제작 / 기획사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발매 연도 2013
구 분 사가반
분 류 혼합
업데이트 일시 2013-04-28
비 고
* 2015년 6월 5일 미국 Westminster Choir College Talbott Library 기증. * 2015년 6월 8일 미의회도서관 기증(항공우송료 진보비 스님 부담)



 
반락, 그 남자의 음반이야기 <이진원>-과학도 퉁애에 빠지다-

1. 퉁소와 맺은 인연
Victor Star KS-2007(KRE185) 洞簫獨奏 散調 柳東初 鼓韓成俊 3:21

2. 풀잎으로 가락을 빚다
Regal C269(1R35) 草琴獨奏 휘모리 姜春燮 鼓韓成俊 3:20

3. 박종기 평전을 쓰다
Million CM821-B 大笒獨奏 농부곡 大笒朴鍾基
Million CM821-A 大笒獨奏 진양엇모리 大笒朴鍾基 6:24

4. 김계선 이전에 김계선 없고 김계선 이후에 김계선 없다.
Victor 49022-A 古樂 平調會像평조회상(上) 大琴金桂善 揚琴金相淳
Victor 49022-B 古樂 平調會像평조회상(下) 大琴金桂善 揚琴金相淳 6:35

5. 첼로와 단소의 만남
Victor 49300-A 短簫․기타-․첼로三重奏 正樂 本靈山
短簫李炳祐 기타-․첼로 日本빅타-管絃樂團員 3:06

6. 최초의 풍각장이 음원을 찾다
ROYAL RECORD NIPPONOPHONE 6032 KOREAN SONG 피리기러기타령 3:21

7. 신민요 창작을 되짚다
Polydor 19229-A 新民謠 太平宴 (南江月作詞․鄭士仁作曲) 鮮于一扇
伴奏 포리도-루管絃樂團 3:16

8. 울산아가씨의 비밀
CHIERON 113-B 新民謠 蔚山큰아기 獨唱金仙草 伴奏시에론管絃樂團 3:09

9. ‘누가누가 잘하나’에서 동요 음반 수집가로
Victor 49108-A 童謠 옵바생각 獨唱金順任 2:45

10. 누가 우리 영화음악을 정리할 것인가?
Victor 49071-A 映畵小唄 아르렁 獨唱金蓮實 伴奏日本빅타樂團 3:21

11. 소리있는 무성영화
Victor 49017-A 映畵劇 洛花流水(낙화류수)(上) 金永煥 卜惠淑 伴奏團成社管絃團
Victor 49017-B 映畵劇 洛花流水(낙화류수)(下) 金永煥 卜惠淑 劉慶伊 伴奏團成社管絃團 6:34

12. 신무용에 쓰인 우리 음악
Polydor 19310(1095) 民謠 도라지타령 (裵龜子樂劇團文藝部作詞)
裵龜子 伴奏포리도-루管絃樂團 2:55

13. 북한의 전통음악인들-1
SUPRAPHON 45222 B23155 SPRING SONG Dance Song
Played on Korean national instruments
by AN KIOK and KIN YIN KUAN 2:53

14. 북한의 전통음악인들-2
조선레코드 ㄱ-60218/5765 민요 산천가 작시…주영섭 작곡…김진명 노래…김진명
반주…국립민족예술극장관현악단 3:00

15. 스포츠와 전통음악, 그리고 재능기부
Taihei C8092-☾ 雜歌 노래가락 金玉葉 피리 高載德 短簫 崔壽成 3:16

16. 음반 수집의 즐거움-1
Columbia 40759(1 22455) 伽倻琴散調 굿거리 咸洞庭月 長鼓金成彩 2:44

17. 음반 수집의 즐거움-2
Victor 49060-A 興甫傳 江南行강남항(上) 獨唱金昌煥 長鼓韓成俊
Victor 49060-B 興甫傳 江南行강남항(下) 獨唱金昌煥 長鼓韓成俊 6:36

18. 음반 수집의 즐거움-3
NITTO RECORD 2249-A 決死の獨奏 死の讚美 尹心德 4:41 총 71:52

* 음반 해설·복각:이진원. 마스터링:양정환.

*수록곡 중 오래된 음반을 복각한 음원의 경우 음질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CD에 수록된 음원의 무단 복제 및 상업적 사용을 금합니다.
 
* 한예종 이진원 교수의 반락 연주회 기념(아래 스캔 참조)으로 KOUS에서 제작한 음반이다. 본인이 소장환 귀한 음원으로 제작한 음반으로, 참석자에게 무료 배부한 비매품 음반이다. 해설서에는 곡마다 음원 출처, 가사와 설명이 나와 있다. 연주회 표값은 5,000원 인데 음반 무료제공이다.(2013.4.28)


 
* 해설서에서 :

이진원 /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부교수, 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

1969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린 시절, 남들은 구경도 힘들었던 전축이 있었고 성악을 하던 누이가 있었다. 음악이 곁에 있었으나, 매일같이 울리던 누이의 꿈결 같은 라보엠에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잔잔했다. 그렇게 과학고를 나왔고 카이스트를 졸업. 전공인 화학을 좀 더 공부하려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하지만 잔잔해 보이던 그 마음에서는 고교시절 취미로 불어본 단소 소리에 이미 잔물결이 일기 시작한 터였다. 국악에 대한 관심의 싹은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기 시작했고 취미로 키운 줄 알았던 그 나무는 그의 온 삶을 덮어버렸다.

카이스트 대학원 자퇴 후 서울대 음악대학 국악과와 중국 중앙음악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쳤고 이후 한국전통음악을 끈질기게 파고들어 100여 편의 학술논문과 다수의 저서들을 통해 전통음악 계보의 잃어버린 고리들을 찾고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음반해설 및 잡지 기고 등을 통해 대중과의 소통에도 노력을 기울여오고 있으며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반락음반을 준비하며

<반락>을 준비하면서 어떤 음반을 함께 나눌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이 있었다. 필자가 소장한 음반 한 장, 한 장에 모두 스스로의 이야기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작성해 놓은 음반 목록을 이리 저리 보다가 한 장, 한 장, 복각할 음반을 정리했다. 음반 한 장에 이야기 하나, 모두 열여덟 가지 이야기를 모아 보았다. 마지막 세 음반은 진정한 ‘반락’에 대한 이야기로 꾸몄다. 음반 해설을 마치고 나니 반락이 필자에게 매우 소중한 즐거움을 선사한 것 같았다. 바로 나눔의 즐거움이었다. 이 음반에 소개된 유성기음반들을 함께 나누는 이 즐거움이야 말로 <반락>의 진정한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된다.

해설

1. 퉁소와 맺은 인연
Victor Star KS-2007(KRE185) 洞簫獨奏 散調 柳東初 鼓韓成俊
경기과학고등학교 시절에 처음 접한 단소 음악은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후 단소에 대한 관심은 퉁소로 옮겨갔고, 퉁소 음악을 듣고, 배우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다가 접한한범수 명인의 퉁소 음악과 일제강점기 퉁소 명인 유동초의 음악은 퉁소 음악을 벗어나서 전통 음악 전반에 까지 관심을 갖도록 했다.

한국과학기술대학에 다니며 어렵게 구한 퉁소 가락을 정간보로 채보했다. 어설프지만 그때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퉁소연구󰡕라는 조그만 책자를 저술하여 발표했다. 그 과정에서 이보형 선생님께 전통 음악에 대한 애정을 배웠고, 유성기음반 속에 그토록 찾아 헤매던 퉁소 음악이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유동초는 퉁소 산조로 이름이 높았던 명인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정해시와 더불어 유성기음반에 산조를 취입하기도 하였다. 유동초의 가락을 분석하여 그 음조직에 우조, 평조, 계면조가 쓰이고 있음도 알았고, 유동초 음반에 담겨진 산조가 바로 한범수 퉁소산조의 중모리로 이어지고, 또한 뒷면의 봉작취가 자진모리 가락의 근간이 되는 것도 알 수 있었다.

1970년대 이후 한범수 명인이 사망한 이후 거의 연주되지 않았던 유동초의 가락을 연주하기 위해 한양대학교 앞에 있었던 대나무 가게를 찾아가 퉁소를 제작할 대나무를 구했다. 그리고 한범수 선생님의 자제분인 한상일 선생님을 찾아가 퉁소 치수를 구하고 퉁소를 만들어 유동초의 퉁소 가락을 익히기 시작했다.

󰡔퉁소연구󰡕가 시작이 되어서 이보형 선생님을 회장으로 하고, 필자가 간사가 되는 퉁소연구회가 발족되었다. 이 퉁소연구회는 이후 한국퉁소연구회로 그 규모를 확장하여 한국 퉁소 음악의 전승과 보급을 위한 단체로 자리 잡게 되었다.

2. 풀잎으로 가락을 빚다
Regal C269(1 R35) 草琴獨奏 휘모리 姜春燮 鼓韓成俊
󰡔퉁소연구󰡕를 발표한 후, 유성기음반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에 매료되었다고나 할까. 이보형 선생님을 주축으로 유성기음반을 연구하는 한국고음반연구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한국고음반연구회에는 유성기음반을 비롯해 장시간음반, CD 등 다양한 음반 매체를 수집하는 고수들이 운집해 있었다.

그중 배연형 선생님이 한국의 전통 관악기와 기악에 관심이 있는 필자에게 관련 유성기음반 녹음을 제공해 주었다. 그중에는 강춘섭이 연주하는 초금 독주 음반이 두 장 녹음되어 있었다. 강춘섭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가 풀잎으로 불어내는 신묘한 가락에는 어느 누구도 넋을 잃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어릴 때 풀피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어릴 때 풀잎을 따서 불던 풀피리는 소리만 나는 정도였다. 일본 만화 <개구리 왕눈이>의 왕눈이가 부는 풀피리, 또 <독수리 오형제>에 나오는 2호가 부는 풀피리처럼 잘 소리내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그러다가 한국민요대전 경기도편 조사를 위해 한국문화방송 박우성 PD의 보조원으로 경기도 일원을 다니며 민요를 조사하며 풀피리 연주가 가능한 몇 분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분들의 연주 방식이 󰡔악학궤범󰡕에 나오는 풀피리의 연주 묘사와 딱 일치하는 것 아닌가?

그 후로 과자나 라면 봉지를 이용해 풀잎을 대신하여 소리를 만들기 시작하고, 강춘섭이 연주하였던 <인생칠십고래희>나 <부세>, <휘모리>나 <굿거리> 가락을 비닐 풀피리로 연습하기 시작했다.

󰡔악학궤범󰡕의 내용을 연구하고, 그리고 실제로 비닐 풀피리로 불면서 연습하며 채보한 <인생칠십고래희> 음악을 채보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풀피리 연구”라는 논문으로 발표할 수 있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문헌 속에 기록된 풀피리 관련 자료를 더듬고, 풀피리와 관련된 시와 노래들을 찾고, 또 중국과 일본의 풀피리의 기록을 살펴서 󰡔풀잎으로 가락을 빚다 -한국 풀피리 음악 문화󰡕라는 단행본을 펴낼 수 있었다.

강춘섭의 풀피리는 신기에 가깝다. 중국과 일본의 풀피리 연주자들의 음악을 많이 들어보았지만 강춘섭의 연주가 으뜸이다. 강춘섭의 풀피리 음악은 산조의 전바탕은 아니지만 풀피리 산조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3. 박종기 평전을 쓰다
Million CM821-B 大笒獨奏 농부곡 大笒朴鍾基
Million CM821-A 大笒獨奏 진양엇모리 大笒朴鍾基
경기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대학을 진학하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대금을 배우는 것이었다. 단소에 빠져 있는 필자는 음반 가게에서 여러 대금 음반을 구할 수 있었고, 그 중에서도 신세계에서 발매한 김동진 명인의 대금산조를 즐겨듣곤 했다. 따라서 용감하게 대악회의 문을 두드렸다. 현재 수원대학교의 교수로 계시는 임진옥 선생님과 연이 닿아 대금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실내악단 슬기둥의 연습실이나 국립국장에 있던 국립국악원에 가서 선생님께 대금을 배울 수 있었다. 그때 배운 영산회상 가락과 한범수류 대금산조 일부는 이후 필자가 전통 음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대전시립연정국악연구원에서 현 목원대학교 교수로 계시는 신응재 선생님께 대금정악과 한범수류 대금산조 한바탕을 공부할 수 있었다. 전공이 아닌 만큼 실력은 어디에 내놓을 수 없는 정도였다.

대금산조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고 한범수 대금산조의 원류가 되는 박종기 명인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다. 현 대금산조의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인 이생강 선생님을 찾아 뵙고 이생강류 대금산조를 배우기 시작하고 선생님께서 주신 녹음테이프에 담겨있는 박종기 대금산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금산조의 시작은 오늘과 많이 다르구나. 사람마다 같은 가락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구나. 창조적 즉흥성이 대금산조의 핵심이구나. 그 녹음테이프에 담겨있는 대금산조의 전승관계, 그리고 박종기 명인의 실제 녹음을 듣고 박종기 명인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떠올랐다.

한국고음반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박종기 명인이 취입한 유성기음반을 찾기 시작했다. 콜럼비아, 오케 적반, 태평, 뉴코리아, 밀리온, 고라이, 빅타 등에서 1929년 이후 발매한 음반들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박종기의 자료를 구했다. 그 과정에서 얼굴이 얽고 자신이 없어 사진한장 남기지 못했다는 박종기 명인의 사진도 찾아낼 수 있었다. 박종기 명인의 일화를 정리하고, 음악을 고찰해서 󰡔대금산조 창시자 박종기 평전󰡕을 엮을 수 있었다. 전설 속에 묻혀있는 박종기 명인을 오늘에 다시 살린 기분이었다.

박종기 명인의 음반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자료실이나 각 대학 도서관에 릴 녹음 테이프로, 그리고 또 많은 CD에 복각되었다. 한국고음반연구회에서 펴낸 음반에도 필자가 관여하여 해설을 썼다. 하지만 오늘 소개하는 밀리온 음반은 이번 소개가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공개되는 것이다.

박종기는 콜럼비아에서 이화중선이 부른 농부가, 자진농부가의 대금 반주에 참여한 바 있다. 그 음반에서 필자는 박종기의 대금 반주가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서 감탄한 바 있었다. 장쾌한 대금 소리로 노래와 노래 사이를 이어주는 간주 또한 훌륭했다. 아마 박종기 또한 스스로 농부가 반주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는 박종기는 그의 반주 음악을 농부곡이라는 독주 음악으로 바꾸어 버렸다. 바로 밀리온의 이 음반이 그의 대금 독주곡 농부곡을 담고 있다. 뒷면에 소개된 진양엇머리는 장단 제목이 현존하는 장단 명칭이 아니라 혼란스럽지만, 실제 음악은 진양조로 되어 있으며, 음조직은 계면조로 되어 있다.

4. 김계전 이전에 김계선 없고 김계선 이후에 김계선 없다.
Victor 49022-A 古樂 平調會像평조회상(上) 大琴金桂善 揚琴金相淳
Victor 49022-B 古樂 平調會像평조회상(下) 大琴金桂善 揚琴金相淳
󰡔대금산조 창시자 박종기 평전󰡕을 집필한 후, 한동안 단소 산조의 명인 전추산 평전을 집필했다. 아직 단행본으로 발간하지는 않았지만 전통 기악인의 평전을 집필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생각되었고, 일제강점기 박종기와 더불어 유성기음반에 가장 많은 대금 음악을 녹음했던 김계선은 바로 그 후속 작업의 대상이라 여겨졌다.

서양에는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등 수많은 음악가의 평전이 그의 작품(악보), 세례 관련 자료, 그리고 편지 등에 의해서 연구, 집필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음악인들에 대해서는 다양한 자료로 그 평전을 집필하기에 부족함이 많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김계선은 그 스스로 일제강점기에 자신의 음악 경력을 언급한 글이 잡지에 발표되었고, 그가 남기 무수히 많은 유성기음반을 통해 그의 음악 세계를 진단할 수 있으며, 그의제자인 김성진 명인의 대금 음악을 통해 그의 음악의 후대로의 전승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평전 집필이 가능한 음악인이라 볼 수 있다.

김계선 명인은 오늘날 학원의 ‘일타강사’와 같은 연주자였다.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이왕직아악부의 공연 무대에는 항상 그의 대금 독주가 따랐다. 그의 평조회상은 워낙 인기가 있었는데 당대 최고의 신무용가 최승희의 무용 반주로도 사용되었다. 필자가 발표한 “최승희 무용작품에 활용된 음악에 대한 연구- 전통음악을 중심으로 -”에서 최승희의 무용반주로 사용한 평조회상에 대해 살펴본 바 있었다.

조선정악전습소에서 활약했던 양금 명인 김상순과 함께 병주로 연주한 빅타의 평조회상은 앞 면에 평조회상을 뒷 면에 헌천수를 녹음하고 있다. 김계선은 대금 독주를 하면서 서로 다른 악곡을 연결하여 매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곤 하였다.

이러한 연주는 전통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전통음악의 만드는 방법으로 비슷한 분위기의 곡패(曲牌)를 연결하여 가사의 느낌을 살린 음악을 만드는 방식으로 희곡(戱曲)을 구성하기도 한다. 김계선의 이와 같은 연주 방식은 오늘날 전통 음악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의미있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된다.

김계선은 궁중 음악 뿐만 아니라 민간 음악의 대금 반주, 그리고 일제강점기 일본식 노래의 대금 반주도 음반으로 취입하였다. 서양의 어떠한 관악기도 그의 손에 닿으면 음악을 만들었다고 한다. 평조회상은 김계선이 어떤 음악보다도 많이 연주한 곡으로 “김계선 이전에 김계선 없고 김계선 이후에 김계선 없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명반이 틀림없다.

5. 첼로와 단소의 만남
Victor 49300-A 短簫․기타-․첼로三重奏 正樂 本靈山
簫李炳祐 기타-․첼로 日本빅타-管絃樂團員
한국고음반연구회에서 활동을 하면서 시작한 것이 음반 해설을 쓰는 일이었다. 연구회에서 복각하는 명인명창선집과 이외에 서울음반이나 LG미디어의 복각 음반에서 기악 음반 해설을 주로 담당했다. 복각 음반의 해설을 맡는 것은 필자에게 매우 큰 즐거움이었다. 유성기음반에 담겨 있는 음악을 들을 누구보다도 먼저 들어볼 수 있으며, 필자의 느낌을 해설을 통해 대중들과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악의 원류를 찾아서󰡕라는 LG미디어의 음반 해설을 쓸 때이다. 그 음반에는 피리의 이병우 명인이 남긴 단소 음악이 수록될 참이었다. 따라서 이병우 명인의 음악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왕직아악부 아악부원 양성소 출신이면서 민간에서 더 많이 활동했던 피리 연주가. 그리고 국악기로 과감하게 유행가를 불었던 피리 연주가로만 알고 있던 이병우 명인은 서양악기와 전통악기의 합주인 한양합주의 선구자이기도 했고, 제주도 민요를 채보하여 악보로 편찬하기도 하는 등 근현대 음악 사회가 요구하는 음악인상을 갖춘 예술가였음을 비로서 알게 되었다.

더욱이 놀라웠던 것은 1930년대 초에 기타, 첼로와 함께 단소로 본령산을 연주하였다는 점이었다. 물론 1920년대 중반 홍난파의 바이올린과 김상기의 단소가 만나는 합주가 음반으로도 발매된 적이 있으나 첼로, 기타, 단소의 조합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조합이었기 때문에 음반을 입수하였을 때의 기쁨은 대단했다.

조심스럽게 위 음반을 깨끗이 한 다음 78회전이 돌아가는 텐테이블에 올렸을 때에 묵직하게 울려퍼지는 첼로의 소리와 그 저음의 공간을 메꾸어주는 기타(하와이안 기타)와 단소의 어울림이 참 매력적으로 들렸다. 이 음반에서 첼로와 기타를 연주한 이는 일본빅타관현악단의 단원이었을 것이므로 일본인이었을 가능성이 많으며, 추정컨대 이병우가 채보한 서양악보를 활용하여 본령산의 주요음을 연주하고 있었다.

이 음반을 구입한 이후 서양음악과 전통음악의 융합, 교류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서양 음악 교육이 보편화된 이후, 전통 음악 교육에서 오선 악보를 사용하게 된 이후 전통 음악의 음조직은 평균율에 근접하게 되고, 과거 전통 음악 사회에서 갖고 있었던 음악적 특성이 점차로 사라지는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서양 악기가 전통 악기가 내는 음조직을 연주할 수는 없었을까. 우리의 특징적인 음조직은 어떻게 다시 본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앞으로 많은 고민을 떠 안겨준 음반이었다.

6. 최초의 풍각장이 음원을 찾다
ROYAL RECORD NIPPONOPHONE 6032 KOREAN SONG 피리기러기타령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전기화학을 전공하다가 국악이론을 전공하는 국악도가 되었다. 매우 힘든 결정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추구하는 전공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과학 뿐만이 아니라 한국음악학에도 공부하고 연구해야할 분야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공부를 하면서 우리나라 풍각장이 음악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졌다. 이보형 선생님의 “풍각장이 음악고”에서 보이는 풍각장이들의 음악들을 살펴보고 싶었다. 이보형 선생님은 정해시나 유동초, 그리고 임방울의 판소리 뒤에 나오는 풍각장이 음악들에 주목하여 연구를 진행한 바 있었다. 선생님의 논문에 나오는 풍각장이 음악으로 봉장취는 정말 환상 속의 음악이었다.

공대일 명창 등이 전한 고니타령을 들어볼 수 있을까. 유성기음반 목록을 살피다가 유명갑이 연주한 피리기러기타령을 보았다. 유명갑은 피리 명인이지만 피리계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연주가였다. 피리기러기타령이라는 제목을 본 순간 직감적으로 바로 이 음악이 고니타령 즉, 봉장취임을 느꼈다.

한국음악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에 진학하고, 한국음악학의 심도있는 연구 능력을 키우기 위하여 중국 중앙음악학원에서 박사학위 과정으로 들어갔다. 어느 해인가 일이 생겨 한국에 돌아왔는데 대구 쪽 한 분이 연락이 왔다. 한쪽면만 있는 쪽반이 나왔는데 구입하겠냐는 것이다. 알았다고 하고 그 분을 만나서 음반을 보니 바로 필자가 찾던 유명갑의 피리기러기타령이었다.

음반을 듣고 또 들었다. 그리고 그 음반에서 재담과는 다른 ‘재담연주’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2004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열린 이론과 교수회 제1회 국제학술 심포지엄에서 “전통음악예술과 기록: 풍각장이 재담연주의 현대적 재현 가능성”이라는 글에 유명갑의 피리기러기타령을 소개했다. 그때 썼던 일부분을 아래 인용하여 본다.

필자가 소장한 유명갑의 피리기러기타령은 처음 부분이 떨어져나가 1분 이내의 녹음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암수 기러기가 함께 노니는 아니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부분이 끝나면 “이렇듯 포수가 드러오니까 두루 암기러기가 ‘포수옵니다’ 그러는 데 올시다”라는 아니리가 등장하며 포수가 오는 모습과 기러기가 허둥거리는 모습을 묘사하는 피리 독주 부분이 나타난다. 다음으로 “‘펑’ 총맞아 숫기러기가 죽었겠다. (녹취불능)”하는 아니리가 나오며, 피리 독주 선율 부분이 등장한다. 이 부분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뒷 부분은 암기러기의 울음을 묘사하는 듯한 성음으로 되어 있다. 다음으로 “모든 기러기들이 조상을 하러 들어오는데 올시다.”라는 아니리 이후에는 뭇기러기들이 조상을 와서 우는 피리 선율 대목으로 되어 있다.

계면조로 이루어진 피리기러기타령은 오늘날 전승되는 피리 음악의 지평을 넓혀줄 매우 중요한 음악적 사료라고 할 수 있다. 서사가 강조되는 현대 사회에서 한국 전통 기악이 과거의 전통을 이어받아 예술 형식을 재창조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7. 신민요 창작을 되짚다
Polydor 19229-A 新民謠 太平宴 (南江月作詞․鄭士仁作曲) 鮮于一扇
伴奏 포리도-루管絃樂團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석사과정에 진학하여 공부하면서 민족음악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접할 수 있었다. 동명의 강좌는 당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끝내고 돌아오신 채현경 선생님이 담당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최신의 민족음악학계의 동향을 알려주시고, 중요한 논문의 리딩 리스크를 만들어주신 후, 그 논문들을 읽으면서 수업을 진행했었다. 평소 접하지 않았던 민족음악학 용어들이 머리를 어지럽히는 가운데에 한 학기는 흘러가고 기말보고서로 서양 음악의 유입에 따른 민요의 변화라는 현상에 주목하여 짧은 글을 제출하게 되었다. 이때 주목해서 보았던 것이 신민요였다.

개화기 새롭게 형성된 새로운 민요로서 신민요의 의미도 파악되었고, 작사, 작곡자가 민요풍으로 작곡한 유행가로서의 신민요의 정체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넓은 의미, 그리고 좁은 의미의 신민요의 정의로서 이해되고 있는 것들이었다.

신민요 관련 문헌과 유성기음반을 찾았다. 다행히 많은 신민요 유성기음반을 수집하여 악보화한 김점도 선생님의 저작이 눈에 들어왔다. 필자 본인도 유성기음반들을 수집하면서 신민요에 주목하였던 바 몇 가지 중요한 신민요에 대해서 새로운 견해를 낼 수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태평가에 대한 것이었다. 양악계에서는 태평가가 정사인의 작곡으로 보는 경우가 있었다. 필자가 수집한 음반 중에 정사인곡으로 되어 있는 태평연이라는 음악이 있었는데 그 음악을 들어보니 지금 부르는 태평가가 바로 정사인곡으로 되어 있는 태평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태평가는 늴리리야와 창부타령이나 노랫가락의 선율적 모티브를 연결시켜 편곡한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는 신민요 창작에서 나타날 수 있는 한 가능성이었던 것이다.

필자는 “신민요 연구(1)”이라는 글을 통해 태평가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논문의 제목을 “신민요 연구(1)”로 단 것은 이후의 계속적인 연구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다행히 (2), (3)의 연구를 더 진행할 수 있었다.

8. 울산아가씨의 비밀
CHIERON 113-B 新民謠 蔚山큰아기 獨唱金仙草 伴奏시에론管絃樂團
"신민요 연구(1)”를 진행하는 동안 흥미로웠던 다른 하나의 신민요는 울산아가씨였다. 울산아가씨를 월북한 이면상이 작곡했다는 북한측 자료도 흥미로웠고, 필자가 입수한 울산큰아기라는 김월신 작곡의 신민요도 재미있었다. 필자는 김월신 작곡의 울산큰아기가 발표된 이후 이면상이 이 신민요를 편곡하여 울산아가씨를 작곡했다고 보았다. 물론 이후 편곡이라는 것에 대해서 편곡은 아니며 일부 선율을 차용하여 새로운 작품을 창작한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어찌되었든 이면상의 울산아가씨를 통해서 기존에 발표된 신민요 또한 새로운 신민요의 모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김월신이라는 새로운 신민요 작곡자를 발굴할 수 있었다. 얼마 전 무용 전문지 󰡔몸󰡕지에 김월신의 울산큰아기와 이면상의 울산아가씨를 소재로 글을 발표한 바 있다.

9. ‘누가누가 잘하나’에서 동요 음반 수집가로
Victor 49108-A 童謠 옵바생각 獨唱金順任
석사과정에서 국악이론을 공부하면서 전통 음악과 관련된 음반을 수집했다. 시간이 허락되면 청계천이나 헌책방, 그리고 골동품점에서 유성기음반이나 LP음반을 뒤적였다. 어떠한 물건이라도 원하는 물건은 잘 손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 허탕치는 경우가 많았고, 또 유성기음반의 경우 좋은 물건을 보게 되도 금액이 맞지 않아 입수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던 중에 동요 음반이 눈이 띄었다. 어릴 때 꿈 중의 하나가 한국방송공사의 동요 프로그램인 ‘누가누가 잘하나’에 나가서 상을 받는 것이었는데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부른 동요 음반들을 접하면서 이들 음반도 수집하기 시작했다. 동요 음반을 모으고 동요 관련 자료를 탐독하다보니 동요 또한 연구할 것이 많은 분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마도 필자가 수집한 최초의 동요 음반이 옵바생각 음반이라고 생각된다. 옵바생각은 요즘 오빠생각이라고 불리는 최순애 작사, 박태준 작곡의 동요이다. 1925년 11월에 방정환이 만든 잡지 󰡔어린이󰡕에 실린 것이다. 어릴 때 줄기차게 불렀던 이 노래 음반을 시작으로 많은 동요 유성기음반과 LP음반을 수집했다.

그리고 현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의 소개로 빅터 유성기음반 원반 시리즈 4집 󰡔30년대 동요 선집󰡕이라는 음반의 해설을 맡게 되고, 그 음반 해설에 한국 동요 음반 발달과 관련된 글을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동요 음반 수집은 기존의 동요 음반 관련 논문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생생한 관련 기록을 제공해 주었다.

동요에 대한 관심과 해당 음반에 대한 관심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하게 된 초등학교 음악교과서 집필로 이어지게 되었고, 동시와 동요를 틈나는 대로 쓰는 동요 창작자가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10. 누가 우리 영화음악을 정리할 것인가?
Victor 49071-A 映畵小唄 아르렁 獨唱金蓮實 伴奏日本빅타樂團
동요 음반도 음반이었지만 필자의 관심을 끈 음반이 또 있었다. 바로 영화음악 음반이었다. 음반 수집을 하다보면 음반에 담고 있는 음악 이외에 또 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다. 바로 앨범 커버 아트이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엘범 자켓에는 앤디 워홀의 바나나 일러스트가 상징처럼 알려져 있다. 이러한 앨범 커버에 관심을 가지고 음반을 보다보면 정말 재미있는 음반을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과거에 방화라 불렀던 한국영화의 포스터를 사용한 음반을 보면 구입 충동을 참을 수 없었다.

한국영화 음반에는 영화주제가나 배경음악이 수록되어 있었고, 영화음악의 관심은 또 한국음악이 어떻게 영화에 사용되었는가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영화음악사󰡕를 정리하는 시작점이 되었다.

지난 해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리랑에 대한 관심이 요즘 뜨거운데, 영화음악사를 집필하면서, 영화 아리랑의 영화주제가가 김연실의 독창으로 취입된 음반을 구하기도 하였다. 나운규가 영화를 제작할 때 자신이 고향에서 들었던 아리랑 선율을 기억하여 편곡하도록 한 것이 우리가 잘 아는 신민요 아리랑인데, 영화 상영 당시에는 이후 콜럼비아에서 많은 동요를 취입했던 이정숙이 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김연실은 1927년 나운규의 영화 <잘 있거라>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영화배우로 연극배우로 그리고 가수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예술인이었다.

11. 소리있는 무성영화
Victor 49017-A 映畵劇 洛花流水(낙화류수)(上) 金永煥 卜惠淑 伴奏團成社管絃團
Victor 49017-B 映畵劇 洛花流水(낙화류수)(下) 金永煥 卜惠淑 劉慶伊 伴奏團成社管絃團
한국 영화음악에서 놓칠 수 없는 영화가 있는데 그것이 <낙화유수>이다. 제목이 오케의 대표적인 유행가 가수 남인수의 노래와 같은 점이 흥미롭다. 따라서 영화 <낙화유수>의 주제가 낙화유수를 강남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화 <낙화유수>는 금강 키네마사 제 1회 작품으로 1927년 10월 6일부터 10월 27일까지 단성사에서 상영하였다. 본 영화는 <쌍옥루> 제작에 참여하기도 하였던 이구영 감독이 제작한 애정비극이다. 이구영 감독의 여동생이 나운규의 <아리랑>에서 노래를 불렀던 이정숙으로 영화 <낙화유수>에서도 주제가를 불렀다고 한다. 영화 <낙화유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청년화가 안성원은 은행원인 서도영의 결의 누이 춘홍이란 기생을 소개받는다. 성원은 내년 가을 북경 미전에 출품할 ‘몽상의 여신’이란 그림의 모델로 춘홍을 섰으나 점차로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춘홍을 탐내는 강호정이 재물을 이용하여 춘홍의 부모를 설득하여 그녀를 취하고자 하고 결국 만석이라는 건달과 함께 서울에 있는 안성원의 부모에 투서하게 해 그를 서울로 불러올리도록 한다. 어머니의 눈을 피해 안성원을 찾은 춘홍이 본 것은 편지한 장과 2백원의 수표. 1년이 시간이 흐르고 성원은 자신의 약혼녀인 경순과 춘홍사이에 고민하다 북경으로 미전을 참여하기 위해 떠난다. 춘홍은 의협남아 서도영의 도움으로 성원과 사이에서 난 유아를 데리고 성원의 본가를 찾아 떠난다. 춘홍이 북경으로 보낸 전보 소식을 보고 성원이 춘홍을 찾아왔을 때에 공교롭게도 강호정과 같이 있는 춘홍을 성원은 목격하게 된다. 깊은 오해로 말미암아 춘홍은 상심하고 그녀의 혈육인 아이의 죽음으로 절망속에 미쳐버리게 된다. 그녀를 돕기위해 힘쓰던 서도영도 횡령범으로 몰려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사나운 바람 속에 춘홍은 종적을 감추고, 성원은 경순을 찾아 시카고로 떠난다. 춘홍은 낮이나 밤이나 성원이 보고싶을 때 강변을 배회하였다. 성원은 집으로 돌아가지전 강변 근처의 옛 화실을 추억을 더듬어 다시 돌아왔다. 성원과 경순의 결혼이 몇일 남지 않은 날 강물을 성원의 화실로 가는 다리로 착각한 춘홍은 강물에 빠지게 된다. 이때 출옥한 서도영이 그녀를 구해냈는데, 식어가는 춘홍을 받아드는 성원을 춘홍이 보고 눈은 감는다. 그 뒤 성원은 ‘몽상의 여신’을 완성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다.”

빅타유성기 음반으로 발매된 위 음반은 원작자인 김영환과 주연 배우로 출연하였던 복혜숙, 그리고 유경이(劉慶伊) 등이 배역을 맡아 영화극을 구성한 것이다. 노래를 취입하였던 유경이가 이정숙을 대신하여 영화주제가를 부른 것으로 생각된다. 위 음반에 단성사에 소속되어 있는 단성사관현악단의 연주가 실려있어 당시 무성영화의 영화음악의 전형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무성영화라도 소리는 있다. 특히 유성기음반에 담겨있는 단성사, 조선극장 등의 극장 관현악단은 무성영화가 상영될 때 배경음악과 주제가 반주를 맡았던 실제 연주 단체였다. 당시 무성영화 자료가 희박한 상황에서 유성기음반은 초기 무성영화 연구에 결정적인 자료라고 생각할 수 있다.

12. 신무용에 쓰인 우리 음악
Polydor 19310(1095) 民謠 도라지타령 (裵龜子樂劇團文藝部作詞)
裵龜子 伴奏포리도-루管絃樂團

중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과에서 교편을 잡게 되었다. 한국예술학과는 음악, 무용, 연희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진행하는 정체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필자의 전공인 음악학 이외에도 무용이나 연희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실제 연구로 발전시킬 충분한 기회가 제공되었다.

무용 이론 교수가 없던 상태에서는 전통예술원 무용과 전문사들의 논문 지도를 담당할 수밖에 없었고, 한편으로 배우면서, 한편으로 지도하며 무용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용 분야에서도 근대 시기 신무용에 대해서 연구들이 있으며, 이중에서 배구자, 최승희, 조택원 등의 신무용 선구자들에 대한 담론이 진행되고 있음도 알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배구자가 직접 노래부른 유성기음반을 입수하게 되었다. 음반에는 배구자악극단 문예부에서 작사한 민요를 배구자가 부른 것으로 되어 있다. 배구자는 1920년대 일본에서 배구자악극단을 조직하여 소녀가극을 시도하였고, 귀국 후에 무용극, 촌극 등의 공연을 한 바 있다. 1930년대 중반에는 민요를 활용한 무용을 시도했는데 위 포리도루 음반이 그 증거가 되고 있다.

13. 북한의 전통음악인들-1
SUPRAPHON 45222 B23155 SPRING SONG Dance Song
Played on Korean national instruments
by AN KIOK and KIN YIN KUAN

필자가 중국에서 중국 전통음악 이론을 배울 때 거의 매주 중국 국가도서관과 중국예술연구원 음악연구소 자료실을 다녔다. 그곳에는 북한에서 주체 음악을 하기 이전의 북한음악 관련 자료들이 있었으며, 생활비를 쪼개가며 자료들을 복사하곤 했었다. 당시 입수한 관련 도서는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에서 발간한 󰡔북한의 전통음악󰡕 집필 자료로 제공한 바 있었다.

평소 우리 전통음악 중 기악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는 여러 루트를 통해서 관련 자료를 입수하고 있는데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 경매에서 입수한 자료로 1947년의 최승희의 무용 작품의 반주 음악의 실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위 음반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안기옥이 무용 반주 음악을 연주하여 발매한 것으로 보이는데, 최승희 무용의 반주 음악을 담당하였던 안기옥의 음악이 담겨있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안기옥은 해방이 되기 전 1942년에서 1945년 사이에 최승희 무용단에 반주악사로 참여하여 지방 순회 공연을 시작하여, 중국까지 다녀오기도 하였다. 해방 후에 안기옥은 서울에서 ‘민족음악연구소’를 창립하고 활동을 하였으나, 1946년 6월 다시 평양으로 가서 그해 말 조직된 ‘조선음악연구소’의 소장직을 맡음과 동시에 각 지방의 전통 음악인들을 평양으로 불러 창극 <흥부전>을 완성하기도 하였다. 안기옥이 체코슬로바키아에 가게 된 것은 1947년 제1차 국제청년학생콩쿨에 출전하여 가야금산조를 연주하게 되면서라 생각된다. 안기옥은 이후 1951년에도 베를린에서 열리는 제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 <법성포 배노래>와 가야금산조로 1등상, 특별상 금메달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1953년에는 중국을 방문하여 가야금 연주를 한 바 있다. 이러한 그의 이력을 고려하고 음반 제작사가 체코슬로바키아임을 고려한다면 SUPRAPHON 45222번 음반에 안기옥이 취입한 음악은 안기옥이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열린 1947년 제1차 국제청년학생콩쿨에 출전하였을 때 제작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해방 후 조선음악󰡕에는 제1차 ‘세계 청년 학생 축전’이란 이름으로 제1차 국제청년학생콩쿨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축전 참가는 “축전에 참가하는 예술단의 한 성원으로 극장배우들이 참여하였다.”라는 설명과 함께 1947년 8월 프라하(원문 ‘쁘라가(체코)’)에서 성악으로 심창실 외 1명, 무용으로 최승희 무용연구소 안성희 외 3명, 반주로 안기옥 외 1명 등이 참여하여 심창실이 연주하는 아리랑, 박연폭포 등과 김인선이 연주하는 양산도, 베틀가, 닐리리야 등을 공연하여 예술 단체상 2등 상을 수상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서 본다면 안기옥은 당시 민요와 무용 반주를 위해 체코슬로바키아로 간 것임이 확실해졌다.

그러므로 SUPRAPHON 45222번 음반에 취입된 음악은 최승희 무용연구소에서 안성희 등이 제1차 국제청년학생콩쿨에서 공연한 무용의 반주음악으로서 연주한 것을 SUPRAPHON의 요청에 의해서 음반으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으로 을 안기옥이 가야금으로 연주하고, 김인선<원반에는 KIN YIN KUAN으로 되어 있음>이 장고로 반주하여 ‘Dance Song’, 즉 무용 노래라고 분류명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봄노래는 강홍식이 부른 처녀총각을 말한다.

14. 북한의 전통음악인들-2
조선레코드 ㄱ-60218/5765 민요 산천가 작시…주영섭 작곡…김진명 노래…김진명
반주…국립민족예술극장관현악단
북한음악과 관련된 자료로 이번에 새롭게 공개하는 자료는 주영섭 작시, 김진명 작곡으로 발표된 민요 산천가 음반이다. 김진명은 1990년 12월 평양민속음악단원으로서 '범민족통일음악제'와 '송년통일전통음악회'에 참가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린 서도명창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신경식에서 소리를 배운 후 빅터 유성기음반에 서도소리를 취입하여 많은 활동을 했다. 그는 해방 후 북한에서 서도소리가 중심이 되는 창극을 작창하기도 하였고, 산천가 등 노래들을 창작하기도 하였다. 1955년 8월 '국립민속예술극장' 소속배우로 활동한 후 1959년 배뱅이굿으로 공훈배우가 되었으며, 1962년 10월에는 인민배우가 되었다.

남북한이 분단되고 남한의 많은 예술가들이 월북했고, 그곳에서 나름대로 전통음악을 개량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창작을 시도했다. 김진명의 산천가 또한 전통적인 음악 어법으로 작곡된 민요로 서도소리의 진한 여운을 느낄 수 있는 곡이라 할 수 있다.

15. 스포츠와 전통음악, 그리고 재능기부
Taihei C8092-☾ 雜歌 노래가락 金玉葉 피리 高載德 短簫 崔壽成
음반을 수집하다 보면 지금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음악사에서 꼭 다루어져야 할 음악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그중의 한 사람이 고재덕이다. 고재덕은 민간 피리의 명인이면서 택견의 달인이었다. 한국과학기술원에서 당시 결연택견협회 이용복 회장님께 택견을 배우기 이전부터 우리 민간 무예 택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유성기음반으로 만난 고재덕은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고재덕은 초대 택견의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던 송덕기 명인의 동문이었다. 그들의 스승 임호에게 고재덕은 최고의 제자였다. 고재덕은 택견 이외에도 피리 음악에 매료되었으며 이응룡 등에게 피리를 배우면서 일제강점기 조선 최고의 피리연주자가 되었다. 그의 음악은 콜럼비아, 리갈, 빅타, 폴리도루, 오케, 태평 등 유성기음반 회사 마다 등장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민간 피리로서는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러한 고재덕을 주목하며 스포츠와 전통예술은 서로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는 확신이 섰다. 과거 전통음악인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택견과 같은 무예를 반드시 익혔을 것이고, 그중에 고수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통예술과 스포츠는 강인한 체력이나 감각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종목이기 때문에 상호 연관성을 짚어 본다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을 글로 쓰게 된 것은 참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몇 년 전 창간한 국악잡지 󰡔라라󰡕의 편집장을 우연히 학교에서 만나게 되면서 재능기부 차원에서 원고를 기고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첫 원고로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에서 대금을 배웠던 장흥기가 해방 후 전국남녀탁구선수권대회에서 3관왕을 차지한 이야기를 처음 썼다. 그리고 한갑득에게 거문고산조를 전한 박석기가 야구 포수였던 이야기, 고재덕과 택견 이야기를 썼으며, 앞으로 실내 골프 연습장을 운영한 경기 민요 명창 안비취 이야기가 독자들과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 선택한 고재덕의 노래가락 반주는 독특한 피리 가락으로 노래의 흥을 돋우는 고재덕의 신묘한 연주가 잘 담겨져 있다.

16. 음반 수집의 즐거움-1
Columbia 40759(1 22455) 伽倻琴散調 굿거리 咸洞庭月 長鼓金成彩

17. 음반 수집의 즐거움-2
Victor 49060-A 興甫傳 江南行강남항(上) 獨唱金昌煥 長鼓韓成俊
Victor 49060-B 興甫傳 江南行강남항(下) 獨唱金昌煥 長鼓韓成俊

18. 음반 수집의 즐거움-3
NITTO RECORD 2249-A 決死の獨奏 死の讚美 尹心德


16-18번 트렉까지는 음반 수집의 즐거움이라는 소제를 달아보았다. 음반 수집에는 많은 즐거움이 있다. 필자가 선택한 세 장의 음반은 음반을 즐기는 필자의 반락을 대변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발굴의 즐거움이다. 필자는 청계천에서 한 때 ‘학생’으로 불렸다.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학생인데 싼 음반만 찾아다니니 학생으로 불린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따라서 음반 가게 아저씨들도 필자에게 음반을 잘 보여주지 않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음반 가게 주인에게 유성기음반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성기음반을 정리한 한 가게 주인 아저씨가 대량이 유성기음반을 보여줬다. 그곳에서 발견한 한 장의 음반 속에는 아마도 함동정월 명인이 연주한 가야금산조가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날 참가한 한국고음반연구회 회의에서 함동정월 명인의 음반을 화제에 올렸다. 그리고는 그 음반이 바로 함 명인의 증언은 있었지만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과장하자면 전설의 판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다시 그 가게를 찾았고 함동정월 명인의 가야금산조 음반을 구할 수 있었다. 음반 레이블은 거의 훼손되어 글씨를 읽기 어려웠지만 그 음반은 초기 함동정월 가야금산조 모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이후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김해숙 교수님께서 “유성기음반의 함동정월 가야금산조와 현행과의 비교”라는 논문을 통해 그 음악적인 실체를 밝혀주시기도 하였다. 이 음반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음반 레이블에 기록된 굿거리는 현행 중중머리에 해당되며, 중머리는 현재 늦은 자진모리에 해당되는 가락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감상의 즐거움이다. 수집한 음반은 감상을 통해 그 즐거움을 극대화한다. 이제는 들을 수 없는 명인명창들의 옛 녹음을 방안에서 들으며 과거로 타임슬립을 하기도 하고, 오늘날의 음악과 비교해보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명인 김창환이 남긴 제비노정기는 판소리사에서도 위대한 더늠으로 여기곤 한다. 김창환은 일찍이 판소리의 창극화에 많은 공헌을 한 명창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장기 중 하나인 제비노정기는 이미 복각되어 일반에게 공개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재생 과정에서 소릿골을 건너 뛰어 완벽한 녹음으로 복각되지 않았었다. 다행히 필자가 입수한 빅타 유성기음반 중 김창환 명창의 제비노정기를 담고 있는 강남행 음반이 있어 완벽한 상태의 제비노정기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는 소장의 즐거움이다. 혹자는 수집이 일종의 집착증이 아닌가 말하곤 한다. 하지만 집착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수집은 감히 인류가 형성해온 여러 종류의 문화의 하나로서 인류가 존재하는 한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싶다. 수집한 음반이 만약 희귀 음반으로 매우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 하면 즐거움은 극대화된다.

이러한 음반으로 윤심덕이 취입한 사의 찬미 음반을 선택해 보았다. 이 음반도 여러 번 복각되어 발매되었으나 필자가 소장한 사의 찬미 음반은 거의 미사용에 해당되는 음반으로 이번 기회에 복각하여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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