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설서에서 :
盤樂을 함께 나누며
나는 아마도 음반만큼은 가장 치열하게 수집하고, 듣고, 연구한 사람에 속할 것이다. 그러니 음반에 얽힌 소감이나 사연이 없을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개인적인 소감이나 수집에 얽힌 일화 같은 것을 가능한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에는 꾼들이라면 열 마디를 척 알아듣는 영업비밀이 들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컬렉션이란 것은 그만큼 신경전과 전략과 배짱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잔머리도 굴려야 하고, 재산도 좀 털어먹어야 제대로 된 컬렉션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컬렉션은 여기까지이다.
진짜 컬렉션의 꽃은 컬렉션 그 자체가 아니다. 연구를 통해 수집품의 가치를 높이고, 그 가치와 감동을 함께 나누는 데 컬렉션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수집에서 끝나고 그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값비싼 컬렉션이 많다. 그런 것을 보면 참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음반 속 담긴 이야기를 찾고, 먼지를 닦아낼 때 드러나는 위대한 예술혼! 그 숨 막히는 감동이 바로 컬렉션의 진정한 묘미이다.
숱한 시행착오와 모험 끝에 한 장의 고음반에서 위대한 예술과 음악사적 가치를 발견하고 나면 정말 볼륨을 크게 올려 여러 사람들께 들려주고 싶다. 내가 이런 것을 찾아냈노라고 자랑하고 싶을 때도 더러는 있다. 울고 싶은데 이렇게 뺨 때려 주니 핑계삼이 그 동안 참았던 소리를 한번 내 보는 것도 좋겠다. 복각을 하고 싶었는데 사정이 여의찮아서 미루던 음반 몇몇 곡을 고르느라고 밤을 새웠다. 골랐다 뺐다 하는 이 고통스런 쾌감을 함께 누리고 싶다.
먼저 고른 것은 스터디 음반이다. 아무리 잡음이 시끄러워도 음반 역사의 첫머리는 공부하자면 반드시 들어야 하는 음반이다. 1-2트랙이 그런 것이다. 그리고 나의 애청곡도 남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남들도 나처럼 좋아하란 법은 없지만, 내가 즐기는 음식처럼, 남들에게도 한번 맛보라고 권하고 싶은 음악이 있다. 그 가운데는 숱한 사연과 역사가 담긴 음악도 있고, 거장들의 절창이 담긴 음반도 있다. 3-10트랙은 모두 명연 절창으로 그 자체가 진한 감동을 안겨줄 것으로 믿는다.
유성기음반을 대할 때면 착잡한 감정이 들 때가 많다.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적 슬픔과 아픔이 서려있기 때문이다. 나의 유년시절에는 정확한 정체를 이해하지도 못한 채 일제에 대한 증오를 배웠다. 그러나 이제는 그 증오를 극복하고 좀 더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되었다. 11-15트랙을 듣다 보면 남루했던 과거가 아련하고 슬픈 추억처럼 떠오를 것이다. 이 곡은 대부분 처음 복각되는 것으로 학술적으로도 좋은 자료가 될 줄로 믿는다.
유성기음반에는 변화하는 시대상이 담겨있다. 16-18트랙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판소리의 모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유성기음반의 이야기를 한 장의 음반으로 요약할 수는 없지만, 이 음반을 통해 내가 느꼈던 감정을 나누고, 내가 이해한 우리 음악 이야기를 얼마간은 들려드리고 싶다. 그리고 내가 유성기음반을 수집하면서부터 신세지고 동고동락했던 많은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이 음반에 가득 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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