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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명[부제포함] 반락, 그 남자의 음반이야기 <김문성>-나그녀의 오프더레코드 음악-
음반 번호 KOUS-011 , CD 1 매
제작 / 기획사 한국문화재재단
발매 연도 2014
구 분 사가반
분 류 민요
업데이트 일시 2014-11-30
비 고
* SP복각 등.



 
반락, 그 남자의 음반이야기 <김문성>-나그녀의 오프더레코드 음악-

■ Legends of Minyo
1. 김옥심 <정선아리랑> 1962년 녹음(4:36)
2. 김옥심 <탑돌이> 1982년 녹음(4:47)
3. 유개동 <달거리> 1963년 녹음(5:56)
4. 이비봉 <국문뒤풀이> 1958년 녹음(4:56)
5. 지연화. 박채선. 이진홍 <창부타령> 1975년 녹음(4:06)
6. 이진홍. 이은주 <개성난봉가> 1962년 녹음(3:12)
7. 이진홍. 김옥심 <늴리리야> 1962년 녹음(2:28)
8. 김옥심. 이소향 <신고산타령> 1962년 녹음(2:19)
9. 김옥심. 묵계월 <건드렁타령> 1968년 녹음(2:25)
10. 김옥심. 한정자. 장국심 <긴난봉가. 자진난봉가> 1962년 녹음(5:51)
11. 장학선 <온정가> 1938년 녹음(2:48)

■ My Memorial Collections
12. 유성준 <삼국지 중‘조자룡 활쏘는 대목’> 1934년 녹음(2:29)
13. 박월정 <성주푸리> 1926년 녹음(2:21)
14. 이난영 <아리랑-이별의 뱃노래> 1936년 녹음(3:46)
15. 콜럼비아레코드 경음악 <조선민요 방랑가> 1943년 녹음(3:13)
16. 인민창편레코드 경음악 <조선무곡> 1955년 녹음(2:57)
17. 김여랑 <사설시조 ‘창외삼경’> 1967년 녹음(3:36)
18. 이소향 <천리몽> 1963년 녹음(2:52)
19. 남혜숙 <혈죽가> 2009년 녹음(4:23)

■ The Origin of My Music
20. 심순애 <진도아리랑> 2001년 8월 녹음(1:55)
21. 안이순 <남도자장가 모음> 2014년 6월 녹음(1:13)
22. 김아준 <너영나영> 2013년 11월 녹음(0:28) 총 (65:40)

* 음원.녹음.해설:김문성.

* 수록곡의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음반부가설명' 란을 참조하세요.
 
* 아래 반락 연주회의 음반이다. 지난 11월 26일에 KOUS에서 열린 김문성 선생의 공연에 무료로 배부된 음반이다. 음원은 주로 유성기음반과 릴테이프의 복각자료로 귀한 음원들이다. 해설서에는 설명이 자세하다.(2014.11.30)
 
* 해설서에서(김문성 선생이 보내주었습니다) :

Legends of Minyo

1. 김옥심 “정선아리랑”(1962년)
※김옥심 명창 유품 릴테잎 수록곡

태산준령 험한고개 칡넝쿨 얼크러진 가시덤불 헤치고
시냇물 굽이치는 골짜기 휘돌아서 불원천리 허덕지덕 허우단심
그대를 찾어왔건만 보고도 본체만체 돈담무심

세파에 시달린몸 만사에 뜻이 없어
홀연히 다 떨치고 청려를 의지하고 지향없이 가노라니
풍광은 예와 달라 만물이 소연한데 해저무는 저녁노을
무심히 바라보며 옛일을 추억하고 시름없이 있노라니
눈앞에 온갖 것이 모다 시름뿐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만 주소

강원도 정선지역의 대표적인 아라리중 ‘엮음아라리’를 편곡해 노래한 것이 오늘날 전하는 서울경기민요 ‘정선아리랑’이다. 한정자(1924-2002)와 장국심(1926-2001)에 따르면 이 ‘정선아리랑’은 1946,7년경 대한국악원 소속이던 김옥심, 장국심, 한정자를 비롯, 이창배 등이 함께 정선공연을 갔다가 우연히 현지인이 부르는 아라리를 듣게 되었고,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 김옥심이 이창배에게 흉내를 내보이며 작품으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한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한국전쟁직전 1950년 1월 서울중앙방송국의 팔도민요 녹음작업때 처음으로 선보였으며, 반응이 좋아 이후 무대에서 자주 선보였다고 한다. 음반등으로 확인되는 ‘정선아리랑’ 첫 녹음은 1956년 오아시스와 킹스타의 ‘정선아리랑’이며, 여기에 실린 ‘정선아리랑’은 1962년 한국민요연구회 결성 직후 이진홍, 이소향, 묵계월, 이은주, 백운선, 주학선, 김옥심, 장국심, 한정자 등이 함께 녹음에 참여해 부른 민요곡 중 한곡이다.

2. 김옥심 “탑돌이” (1982년)
※김옥심 명창 유품 릴테잎 수록곡

사월이라 초파일은 관등가절 이 아니냐
봉축하세 석가세존 명을 빌고 복을 비오
대자대비 넓으신 덕 만세봉축 하오리라
이내몸이 나기전에 그 무엇이 내 몸인가
이세상에 태어난뒤 내가 과연 누구런가
인간백년 산다한들 풍진속에 늙는구나
쓸데없는 탐심진심 부질없는 공상일세
일심정념 아미타불 마하반야 바라밀다
사바세계 중생들아 불심지켜 수신하세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도세도세 백팔번을 도세

탑돌이는 사월 초파일에 밤새도록 탑을 돌며 부처의 공덕을 찬미하고 각자의 소원을 비는 행사로, 이때 탑을 돌면서 부르는 노래가 ‘탑돌이 노래’, ‘탑불가’이다. 그런데 실제 탑돌이 때 부르는 노래는 ‘회심곡’ 류이며, 민요 ‘탑돌이’는 1950년대에 민요조로 새롭게 편곡된 노래로 추정된다. 음반으로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탑돌이’는 1956년 김옥심 명창이 유니버셜 레코드에서 녹음한 ‘탑도리’이다.
여기 녹음된 탑돌이는 1982년 동대문구 용두동 김옥심 명창 자택에서 녹음된 것으로 전곡이 7분여 정도이나 음질을 고려해 일부만 실었다.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아, 목상태가 전성기 기량에는 못 미치지만 애조의 특유한 창법과 기교가 잘 드러나 있으며, 음색 역시 다소 퇴색하기는 했어도 애잔한 느낌이 매우 깊은 곡이다.

3. 유개동 “달거리” (1963년)
※김문성 소장 릴테잎 수록곡-1963년 국악협회 인간문화재 녹음

네가 나를 볼 양이면 심양강 건너와서
연화분(蓮花盆)에 심었던 화초 삼색도화 피었더라이 신구 저 신구 잠자리 내 신구 일조낭군(一朝郞君)이
네가 내 건곤(乾坤)이지정월이라 십오일에 망월(望月)하는 소년들아 망월도 허려니와 부모봉양 생각세라이 신구 저 신구 잠자리 내 신구 일조낭군이 네가 내 건곤이지이월이라 한식(寒食)날에 천추절(千秋節)이 적막이로다 개자추(介子推)의 넋이로구나면산에 봄이 드니 불탄 풀 속잎이 난다.이 신구 저 신구 잠자리 내 신구 일조낭군이 네가 내 건곤이지삼월이라 삼짇날에 강남서 나온 제비 왔노라 현신(現身)한다.이 신구 저 신구 잠자리 내 신구 일조낭군이 네가 내 건곤이지아무리 하여도 네가 내 건곤이지.적수단신(赤手單身) 이내 몸이 나래 돋힌 학이나 되면 훨훨 수루루루 가련마는나아에 지루에 에 산이로구나. (이하생략)

유개동은 이창배, 정득만 등과 함께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산타령 초대 보유자이다.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한성권번 사범으로 있으면서 시조, 가사, 잡가를 가르쳤으며, 이비봉, 장채선, 노은화(해방후 사사), 장국심, 주학선, 염농옥 등의 제자를 양성했다. 1963년 한국국악협회가 동아일보의 후원으로 사라져가는 예술 보존을 위한 녹음사업을 실시, 1차적으로 정응민, 박록주, 유개동, 허호영 등의 예술을 기록했으며, 여기 실린 ‘달거리’는 이때 녹음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달거리’와 달리 유개동 가문의 ‘달거리’에는 7박이 수시로 등장하며 후렴구에 해당하는 ‘아무리 하여도 네가 내 건곤이지’를 생략하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4. 이비봉 “국문뒤풀이” (1958년)
※김옥심명창 유품 릴테잎 수록곡

가나다라마바사 아자차 잊었구나 기역 니은 디귿 리을
기역자로 집을 짓고 지긋지긋이 사잤더니
가갸거겨 가이없는 이내 몸이 그지없이도 되었구나
고교구규 고생하던 우리 낭군 구부(舊夫)될 줄을 뉘 몰랐나
나냐너녀 나귀등에다 솔질을 하여 송금안장을 지어놓고 여덟도 강산을 유람을 할까
노뇨누뉴 노세노세 젊어 놀아 늙어지면은 못 노나니
다댜더뎌 다닥다닥 붙었던 정이 그지없이도 떨어를 졌네
도됴두듀 도중에 늙은 몸이 다시 갱소년 어려워라
라랴러려 날러가는 원앙새야 널과 날과나 짝을 짓자
로료루류 노류장화는 인개유지(路柳墻花 人皆有持)인데 처처에 있건마는
마먀머며 마자마자 마쟀더니 님의 생각을 또 허는구나
모묘무뮤 모지도다 모지도다 임의 화용이 모지도다
바뱌버벼 밥을 먹자고 돌아다보니 님이 없어서 못 먹겄네
보뵤부뷰 보고지고 보고지고 임의 화용을 보고지고
사샤서셔 (이하생략)

이비봉(1917~?)은 일제강점기에 왕성하게 활동했던 서울 출신의 대표적인 경·서도 명창으로, 한성권번에서 유개동을 사사했다. 박월정, 이영산홍, 백모란, 김옥엽, 이진봉 등 서도 출신 소리꾼들에 비해 위세는 덜 했지만, 당시 남한 출신 소리꾼으로는 이비봉, 박부용, 이진홍을 꼽을 수 있으며, 특히 이비봉은 이진홍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유행한 고제 잡가와 민요를 해방 후 소리꾼들에게 전수한 대표적인 명창이라는 점에서 재조명이 필요한 명창이다. 1958년 KBS의 팔도민요녹음을 끝으로 더 이상의 활동기록은 보이지 않으며, 이 ‘국문뒤풀이’는 정봉선과 함께 1958년 팔도민요녹음에 참여해 부른 잡가·민요곡 중 한곡으로 추정되며 김옥심 명창 유품 릴테잎에 녹음된 곡이다.

5. 지연화, 박채선, 이진홍 “창부타령” (1975년)
※김문성 소장 릴테잎 수록곡-1975년 명창대향연 공연 실황

(지연화)얼씨구나 절씨구나 아니 놀지 못하리라
공도나니 백발이요 면치 못할 것은 죽음이로다
천황 지황 인황씨며 신로 황제가 복희씨라
공덕이 없어 붕했으면 말잘하든 소진장의도 육국제왕을 다 달랬거든 염라황을 못달래고 한번 죽음을 못 면했으면 그러하신 영웅이야 죽어 사적이라도 있건만은 우리 초로 인생이야 아차 한번 죽어지면 움이 나나 싹이 나나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진다 잎진다 설워마라 너는 명년 춘삼월이면 다시 피어오건마는 우리 인생은 한번 늙으면 다시 갱소년 어려워라 얼씨구 절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구려 인생백년이 꿈이로다

(박채선)아 아니 놀지 못하리라
잊어라 꿈이로구나 모두다 잊어라 꿈이로구나
나를 싫다고 나를 박차고 나를 싫다고 떠난 님아
인생의 봄 못올 줄을 나도 번연히 알면서도
어리석은 이 사랑 하고 알고도 속는 줄 몰라주나
무정세월아 가지를 마라 아까운 청춘들 다 늙는다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자 좋네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이진홍)아니나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거들거리고 놀아보자
춘풍화류 번화시에 애를 끊는 저 두견아
허다공산 어따가 두고 내 창전에 와 왜우느냐
밤중이면 네 울음소래 억지 든 잠을 다 깨워요
얼씨구 얼씨구 지화자 좋네 아니 놀지는 못허리로다

박채선은 조선권번에서 주수봉을 사사한 명창으로, 말년에는 송파산대놀이 장고잽이로 활동하며 허호영 일행과 어울리기도 했다. 1968년 세종상 국악대상 경연대회에서 김옥심, 묵계월에 이어 3위를 차지했으며, 특히 재담과 장고에 능통했다.
196,70년대 민요계를 풍미했던 지연화는 예성사양성소 출신으로, 모영월에게서 배운 대감놀이로 일생을 풍미한 명창이다. 이 녹음은 1975년 국립극장 명창대향연 공연의 녹음으로 추정되는데, ‘대감놀이’와 ‘재담’으로 일가를 이루고 각기 다른 시대에 활동하며, 독특한 색깔을 잘 보유한 이진홍(1907년생), 박채선(1917년생), 지연화(1935년생)의 소리제를 비교하면서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김옥심 명창 유품 릴테잎에 녹음된 곡이다.

6. 이진홍, 이은주 “개성난봉가” (1962년)
※김옥심 명창 유품 릴테잎 수록곡-1962년 한국민요연구회 결성기념 민요곡집

사랑 사랑아 내가 노던 사랑 한아름 안고서 뒤냄이(두남이) 치던 사랑
박연폭포가 제아무리 깊다 해도 우리네 양인의 정만 못하리로다
무정세월아 오고 가지 말어라 장안의 호걸이 모두 백발 된다
길나래비 훨훨 모두다 다 날아가건만 주렴아 주렴아 너를 주려무나
※에루화 좋고 좋다 어러럼마 디여라 내 사랑아

이진홍은 일제강점기에 왕성하게 활동한 몇 안 되는 대표적인 경·서도 명창으로 1970년대까지 공연활동, 방송활동 등을 했다는 점에서 경서도소리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지닌 명창이다. 1907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어릴적 연기군 전의로 이사와 살았고, 이후 상경에 장계춘, 주수봉 등을 사사했다. 이은주 명창은 현재 생존한 유일한 1세대 소리꾼으로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초대 보유자이다. 1960년대 이진홍, 묵계월과 함께 한국일보 및 동아일보가 후원하는 무형문화재 발표회와 행사에 다수 참여했다. 이 녹음은 1962년 한국민요연구회 결성이후 기념으로 녹음한 민요곡집에 들어있는 곡으로 보이며, 당시 이진홍은 이은주와 ‘오돌독’, ‘사발가’, ‘사설난봉가’ 등을 녹음했다. 김옥심 명창 유품 릴테잎에 녹음된 곡이다.

7. 이진홍, 김옥심 “늴리리야” (1962년)
※김옥심 명창 유품 릴테잎 수록곡-1962년 한국민요연구회 결성기념 민요곡집

※늴리리야 늴리리야 니나노 난실로(나누가) 내가 돌아간다
늴늴늴 늴리리야
왜생겼나 왜생겼나 조다지 곱게도 왜생겼나
청사초롱 불밝혀라 잊었던 낭군이 다시 돌아온다
무정세월 가지마라 아까운 청춘들 다 늙는다
문중에서 맞은 설 광복절에 돌들었네

‘늴리리야’는 굿거리장단으로 부르는 대표적인 서울·경기 지방 민요곡이면서 창부타령 계통의 민요이다. 이진홍과 김옥심이 부른 ‘늴리리야’는 1962년 한국민요연구회 민요 녹음시 취입된 곡으로 보이며, 당시 이진홍과 김옥심은 ‘늴리리야’, ‘흥타령’, ‘양류가’, ‘방아타령’ 등을 함께 녹음했으며, 김옥심 명창 유품 릴테잎에 녹음된 곡이다.

8. 김옥심, 이소향 “신고산타령” (1962년)
※김옥심 명창 유품 릴테잎 수록곡-1962년 한국민요연구회 결성기념 민요곡집

※어랑 어랑 어야 어야 디야 내사랑아
가을바람 소슬하니 낙엽이 우수수 지고요
귀뚜라미 슬피울어 남은 간장 다썩인다
구부라진 노송남구(나무)는 바람에 건들거리고 허공중천 뜬달은 사해를 비춰만 줍니다
삼수갑산 머루다래는 얼크러 설크러 졌는데 나는 언제 님을 만나 얼크러 설크러 질거나
십년묵은 장독에 국물이 돌면 돌았지 너와나와 지은 맹세 변할 도리가 있느냐


이소향(1919~1986)은 1916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가야금병창과 판소리를 배웠으며, 이후 경서도소리로 전향했다. 이경준을 사사했으며, 국악예고 민요사범 및 한국민요연구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가야금 병창 목으로 시김새를 조금씩 섞는 것이 이소향만의 독특한 창법이다. 김옥심과 함께 부른 ‘어랑타령’은 역시 1962년 한국민요연구회 민요녹음 때 취입한 곡으로 보이며, 김옥심 명창 유품 릴테잎에 녹음된 곡이다.

9. 김옥심, 묵계월 “건드렁타령” (1968년)
※신세기레코드사 제작 민요삼천리 중

※건드렁 건드렁 건드렁 거리고 놀아보자
1.왕십리 처녀는 풋나물장사로 나간다지
고비고사리 두릅나물 용문산채를 사시래요
2.누각골 처녀는 쌈지장사로 나간다지
쥘쌈지 찰쌈지 유자비빔을 사시래요
3.모화관 처녀는 갈매장사로 나간다지 갈매천익 남전대띠에 춘방사령이 제격이래요
4.애오개 처녀는 망건장사로 나간다지 인모망건 경조망건 좁쌀망건을 사시래요

묵계월(1921~2014)은 1921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2세에 조선권번에서 주수봉을 사사했으며, 이듬해 경성방송국에 출연, 소녀명창으로 이름을 떨쳤다. 최정식에게서 잡가와 민요를, 이문원에게서 송서를 배웠으며,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제자로는 임정란, 고주랑, 김영임, 유창 등이 있다. ‘건드렁타령’은 1968년 신세기레코드사에서 제작한 민요삼천리 녹음때 김옥심과 묵계월이 함께 녹음한 곡이다.

10. 김옥심, 한정자, 장국심 “긴난봉가, 자진난봉가” (1962년)
※김옥심 명창 유품 릴테잎 수록곡-1962년 한국민요연구회 결성기념 민요곡집

아 아 에헤 에헤헤 어허야 어럼마 둥둥 내 사랑아
(김옥심)만경창파 거기 둥둥 뜬 배야 게잠깐 머물러라 말 물어보자
(한정자)노자노자 젊어 노자 늙어나 병들면 나는 못 노리라
(장국심)정방산성 초목이 무성무성한데 밤에나 울닭이 대낮에 운다

(김옥심)넘어 넘어간다 넘어 넘어간다 자진 난봉가 훨훨 넘어간다
에헤 에헤야 어야 더야 어허야 어러람마 디여라 내 사랑아
(한정자) 잊을 때 잊을 듯이 임을 그리면서 못잊어 버리는 이 심정 애타는 사랑이로다
(장국심) 물속에 잠긴 달은 잡힐 듯 말 듯 하구요 정든 임의 마음은 알 듯 하고도 모르갔구려

한정자(1924~2002)는 1924년 서울 관수동에서 태어났으며, 종로권번에서 학습했다. 김광식으로부터 시조, 가사, 잡가를, 박춘재에게서 잡가와 민요를 배웠으며, 대한국악원 초대 민요부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정자와 함께 콤비로 많은 활동을 한 장국심(1926~2001)은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김윤태와 유개동에서 잡가와 민요 등을 사사받았다. 서울중앙방송국 시절 많은 민요를 녹음했다. 김옥심과 절친들인 한정자, 장국심이 함께 녹음한 ‘난봉가’는 서도지역의 대표적인 여흥민요로, 1962년 한국민요연구회의 민요녹음 때 취입한 곡으로 보이며, 김옥심 명창 유품 릴테잎에 녹음된 곡이다.

11. 장학선 “온정가” (1938년)
※오케레코드 장학선의 ‘온정가’ 음반 수록곡

초로 하나 둘 서이 너이 다 여 일곱 여덟 아홉 하니 열 나무 관음보살
열에 하나 둘 서이 너이 다 여 일곱 여덟 아홉 하니 스물 나무 관음보살
스믈스믈 늙었어도 자꾸자주 적막허다
스물에 하나 둘 서이 너이 다 여 일곱 여덟 아홉 하니 설흔 나무 관음보살
십오야 밝은 달은 운무 중에 잠겼구나
설흔에 하나 둘 서이 너이 다 여 일곱 여덟 아홉 하니 사십 관음이라
사십에 하나 둘 서이 너이 다 여 일곱 여덟 아홉 하니 오십 관음이라
한 절반 늙었으니 다시 젊지 못하리다
오십에 하나 둘 서이 너이 다 여 일곱 여덟 아홉 하니 육십 관음이라

판소리 5명창에 견줄 정도로 국악사에 가장 뛰어난 소리꾼중 한명으로 평가받는 서도소리 명창 장학선(1905~1970)은 1905년 평양생으로 평양 기성권번에서 김밀화주를 사사받았으며, 1930년 팔도명창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초대 보유자를 지냈으며, 콜럼비아, 빅타 레코드 외에 오아시스 레코드 등에 그의 소리가 남아있다.
‘온정가’는 ‘탕세기’, ‘관암세기’, ‘관음세기’ 등으로 전하고 있는 서도지역의 유흥잡가이다. 주로 목욕을 할 때 뜨거움을 참기 위해 부르는 일종의 숫자세기 노래로, 1938년 오케레코드사에서 녹음한 곡이다.

My Memorial Collections

12. 유성준 삼국지 중 “조자룡 활쏘는 대목”(1934년)
※오케레코드 유성준의 ‘조자룡 활소는 대목’ 음반 수록곡

노숙과 의논하고 동남풍 빌랴할제 오백도부수 앞세우고
이십정군(精軍)은 기를 잡고 단(壇)을 지켜 청령사후(廳令伺候)허라
노숙과 병마(竝馬)하야 동남방 붉은 흙을 군사로 취용(取用)하야 삼층단(三層壇)을
높이 쌓니 방원(方圓)은 이십사장이요 매일층고(高)는 삼척이니 합고가 구척이구나
하일층 이십팔수 각색기를 꽂았으니 동방칠면 청기(靑旗)에 교룡학호토호표(蛟龍
狐兎虎豹) 안검하여 포청룡지형하야 동방에다 기를 꽂고 북방칠면 흑기에는
해우복서연제유를 안검하야 작현무지세(作玄武之勢)하야 북방으 세워두고
서방칠면 백기(白旗)에는 낭구치계오후원(狼狗稚鷄烏 猿)을 안검하야 거
백호지위(踞白虎之威)하야 남방칠면 홍기(紅旗)에는 한양장마녹사인( 羊獐馬鹿蛇蚓)으로 안검하야 현주작 지향하고 제일층 빙황기육십사면 육십사괘를 안검하야 둥두렷이 꽂고 상일층 용사인(用四人)하야 각인인솔 발관 쓰이고
검은 나포봉의(羅布鳳衣)와 박대주립(博帶朱笠) 방군(方裙)을 입히고 전좌입일인(前左立一人) 허고 수집장간 허고 간첨상으 용총위보하고 이표풍신허고 후좌 입일인 봉보검(捧寶劍)허고 후우 입일인 봉향로(捧香爐)하고 단하으 이십사인은 각각 정기보개와 채북장과와 황모백월과 주번 조독을 가려 환요사면하라
공명이 완보(緩步)로 단에 올라 방위 정함을 보아 분향헌작(焚香獻酌)하며 하날을 우러러 독축(讀祝)할 적으 아무도 모르게 가만히 암축을 일렀겄다

동편소리의 중시조로 추앙받는 유성준은 구례 출신으로 수궁가와 적벽가를 특히 잘 불렀으며, 임방울, 정광수 등에게 소릿제가 이어졌다. 오케레코드에 녹음된 ‘조자룡 활쏘는 대목(상)’은 판소리 적벽가중 남병산에 단을 쌓고 동남풍을 일으킨 제갈공명의 신통한 능력에 위협을 느낀 주유가 서성과 정봉을 보내 공명을 암살하려하자 이를 미리 알아채고 조자룡의 도움을 받아 본국으로 돌아가는 공명과 오나라 장수간 오강에서 벌이는 긴박한 추격전을 묘사하고 있다. 임방울, 정광수를 비롯해 모든 소리꾼이 “공명이 완보로 단에 올라~” 부분을 아니리로 하는 데 반해 유성준은 소리로 이어가고 있는 점이 기존의 적벽가와 다른 부분이다.

13. 박월정 “성주푸리”(1926년)
일동레코드 박월정의 ‘성주푸리’ 음반 수록곡

에라 만수 에라 대신
성주본이 어디메냐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 본이라
제비원 받은 솔씨 양근 지평(오늘날 양평)에 영을 받어
이를 받어 던졌더니밤이면은 이슬을 맞고 낮이면은 볕내요
그 솔이 점점 자라나 청장목이 되었네 황장목이 되었구나 도리기둥이 되었네
논비돌이 잡쌀 자라 낙락장송이 완연쿠나 에라 만수 에라 대신

박월정은 서도소리꾼이면서도, 경기소리, 가사, 시조 뿐만 아니라 남도소리에도 뛰어나 판소리와 신작판소리 등 다양한 녹음을 남긴 유일한 명창이다(본명. 박금홍. 평양생). ‘성주풀이’는 대표적인 남도소리이기는 하나 평양 기성권번이나 진남권번, 해주권번 등 서도지역의 대표적인 권번에서는 반드시 배워야 하는 민요 가운데 한곡이었으며, 장학선, 이정열 등이 이 ‘성주풀이’에 뛰어났다. 이 곡은 1926년 일동레코드에 녹음된 ‘성주풀이’ 상, 하중 하곡에 해당한다.

14. 이난영 “アリランの唄”(아리랑), “別れの 船歌”(목포의 눈물) (1936년)
※일본 데이찌꾸레코드 岡蘭子 ‘アリランの唄’‘別れの船歌’ 음반 수록곡

アリランの唄(아리랑)
アリラン アリラン アラリヨ アリラン 峠を 越えて行く
アリランの 峠は 十二の 坂 一つ一つが 戀の坂
靑い空には 星が 多い 妾の 胸には 㥥みが多い

別の 船歌(목포의 눈물)
波路遙か 船は 去り 君が 船歌消えてゆく
泊ためて 見送ち今宵 こころ 殘りな 月明り

조선악극단 단원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던 이난영은 1936년 일본 데이찌꾸 레코드사와 전속 계약을 맺고 ‘오카랑코’(岡蘭子)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936년 한국에서 큰 히트를 친 ‘봄맞이’의 일본판 ‘봄의 환희’(春の歓喜)로 정식데뷔했으며, 같은 해 한국에서 대유행을 했던 ‘목포의 눈물’(別れの船歌)과 ‘아리랑’(アリランの唄)을 일본어로 취입했다. 특히 1938년 8월 13일 개봉한 미즈카에 류우이찌(水ケ江竜一) 감독의 희극 「라쿠텐기미코」(楽天公子)의 주제가로 코가 마사오가 작곡한 ‘자귀나무그늘에서’(合歓の木蔭で)를 불렀으며, 이후 ‘백장미소녀’(白薔薇の乙女), ‘월견초’(月見草の唄), ‘형초의 노래’(螢草の唄) 등을 잇달아 히트시켰다.

<주요 일본어 유행가> 春の歓喜(36.5), 別れの船唄, アリランの唄(이상 36.7), 夕波歌えど, 海のふるさと(이상 36.8), 蛍草の唄(36.9), 感傷の秋(36.10), 合歓の木蔭で(38.8), 白薔薇の乙女, 月見草の歌(이상 38.10)

15. 콜럼비아레코드 경음악 “방랑가”(1943년)

일제강점기 일본에서는 ‘아리랑’에 이어 유행가 ‘방랑가’가 가장 많이 녹음된 조선노래였다. 강석연, 이애리수가 불러 유행한 ‘방랑가’는 1932년 가수 채규엽이 하세카와 이치로(長谷川一郞)라는 이름으로 녹음한 이래로 모두 7종의 음반이 일본에서 발매되었으며, 그중 경음악 형태로 녹음된 경우도 3종에 이른다. 작곡자가 정확하지 않아 일본에서는 코가 마사오 작곡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콜럼비아 관현악단이 연주한 ‘방랑가’는 원곡에 충실하면서도 마치 미국 서부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의 비장함이 곡 전반에 걸쳐 내재되어 있다. 허밍과 다양한 악기변화를 통한 음악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기법에서 가장 편곡이 잘 된 녹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방랑가 음반 발매 현황
放浪の唄(長谷川一郞. 일본콜럼비아. 1932.)
流行歌 放浪の唄(大塚一郎. 오곤레코드 17-A. 1933)
放浪歌(松山時夫. 오곤레코드 201-A. 1933)
Waltz 朝鮮民謠 放浪歌(파리믈랑루즈악단. 일본콜럼비아.1943)
輕音樂 朝鮮名曲 放浪歌(콜럼비아관현악단. 일본콜럼비아.1943)
Waltz 放浪の唄 (동경문라이트악단. 후타미레코드.1943)
放浪の唄(小谷サユリ. 후타미레코드. 1943)

16. 人民唱片 경음악 “조선무곡”(1955년)

중국 만족(滿族) 출신으로 유명한 영화음악작곡가인 뇌진방이
북경영화공사 재직시절에 편곡한 곡으로 녹음은 장춘영화공사로
전근가기 직전인 1955년 즈음으로 추정된다. 뇌진방은 중국
국가 1급 작곡가로 중국영화협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중국음악가협회 이사를 지냈다. 1959년에는 북한 여성혁명가를 주제로 한 ‘김옥희’를 발표하기도 했으며, 특히 소수민족의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서남민족음악을 주제로 한 무곡 ‘愉快的 生活’를 작곡했으며, 조선족 음악을 주제로 ‘조선무곡’ 외에도 ‘노들강변’을 무곡형태로 편곡하기도 했다. 뇌진방은 우리 전통음악의 만-중-삭 진행 방식을 존중해 민요 ‘베틀가’를 ‘무곡’ 형태로 편곡하였으며, 매우 화려하고, 웅장한 멋이 일품이다. 북경영화제작소관현악대가 연주했다.

17. 김여란 “사설시조 창외삼경”(1967년)
※김문성 소장 릴테잎 수록곡-1967년 시조첫걸음 녹음곡

창외삼경 세우시에 양인심사 깊은 정과 야반무인 사어시에
백년동락 굳은 언약 이별이 될 줄 어이 알리
동작춘풍은 주랑의 비소요 장신추월은 한궁녀의 회포로다
지척천리 은하사이하고 오작이 비상하니 건너갈 길 바이없고,
어안이 돈절하니 소식인들 뉘 전하리 못보아 병이되고 못 잊어 원수로다
가득이 타는 간장 이 밤 세우기 어려워라

정정렬제 판소리 춘향가로 일세를 풍미한 김여란(김분칠)은 1907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향제시조 명인으로 추정되는 김비취에게서 가곡, 가사, 시조, 아쟁, 거문고등을 배웠으며, 정정열로부터 판소리를 연마하였다. 1964년 박록주, 김소희 등과 함께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로 인정되었으며, 시조에 탁월한 소리꾼이라는 이점을 잘 활용해 춘향가 중 ‘변사또 생일잔치에 어사 글읽는 대목’ 등을 시창목으로 잘 부른다. 판소리뿐만 아니라 시조계통에서도 3·5점 시조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김여란이 특히 잘 부르는 시조가 사설시조이며, 1967년 한범수 대금에 맞춰 녹음하였다.

18. 이소향 “천리몽” (1963년)
※김문성 소장 릴테잎 수록곡-1963년 닐리리도흥겨웁게 녹음곡

길이 멀어 천리련가 마음멀어 천리라네
마음모여 꿈이되면은 하룻밤 가고올길
에헤요 데헤야 멀기도 해라 야속한 그 마음이 멀기도 해라
마음길이 멀어지니 꿈도따라 멀어졌네 달과별은 기우는데 잠올줄 멀었구나
에헤요 데헤야 멀기도 해라 야속한 그 마음이 멀기도 해라
그대맘이 설워울 때 내마음은 울었는데 내마음이 설워울때는 그댄어이 웃고 있나
에헤요 데헤요 멀기도 해라 야속한 그 마음이 멀기도 해라

천리몽은 신민요의 여왕으로 칭송받는 가수 이화자의 대표적인 신민요곡으로 이화자가 오케레코드사에서 폴리돌레코드사로 옮긴 직후인 1937년 1월에 발표한 곡으로, 이전에 발표된 신민요곡들처럼 주목받지는 못했다. 이화자는 1935년 뉴코리아레코드사에서 ‘섬시악씨’, ‘돈바람분다’ 등을 발표하면서 주목받았으며, 이후 오케레코드사에서 많은 민요와 가요, 신민요를 녹음했다.
이소향의 천리몽은 1963년부터 시작된 음악계의 신민요, 신가요 보급운동 차원에서 기획된 ‘닐리리도 흥겨웁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선보였으며, 당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소리꾼으로는 이소향외에 김옥심, 묵계월, 안비취, 이은관, 박귀희, 김소희 등이며, 특히 이소향 등은 ‘날다려가소’, ‘앞강물’, ‘대한팔경’ 등 일제강점기에 유행했던 다수의 신민요곡을 선보인바 있다.

19. 남혜숙 “혈죽가” (2009년)
※중앙대 남혜숙의 서울잡가 음반 수록곡

국운이 쇠한 곳에 충신이 슬피 울고
열사의 가실 길은 죽음밖에 없단 말가,
낙엽도 다 진하고 눈보라 추운 날에 평리원 섬돌 아래 외로이 무릎 꿇고
이천만 동포 아껴 애틋이 눈물지니 하늘도 한겨운 듯 날마저 거물댄다

을사의 독한 조약 국토를 빼앗길 제 우국에 타는 마음 가슴을 에이는 듯
의와 절 맺힌 생애 의로 써 살아 왔고 나머지 여생마저 의롭게 살랬더니
기우는 나라일을 바로 잡을 길이 없어 구소에 맺힌 한을 죽음으로 풀단 말가

무딘 칼 부여잡고 모진 목숨 끊으랄 제 줄기져 흐르는 피 잡은 손 미끄럽다
벽에다 문대면서 칼자루 다시 잡고 남은 숨 잘라 낼 제 그 괴로움 참단 말가
피와 함께 붉은 마음 사라질 길 바이없고 천만년 남을 자취 갈수록 새로워라

삼팔선 뿌린 피는 공의 뜻 받아 있고 삼천만 뭉친 한은 공 같은 심정이라
혈죽에 모인 혼이 더욱 더 새로우니 앞날의 번창함을 그아니 기약하리
명명히 부탁한 뜻 끝끝이 받들리니 구천에 고이 누워 명복을 받으소서

남혜숙은 김옥심 명창의 큰 제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사사이력에 의혹을 보내지만, 1974년~1978년 이창배 명창이 중심이 되어 국립극장에서 개최한 선소리산타령 및 12잡가발표회 공연 팜플렛에 정확하게 남혜숙의 이력 및 그녀의 사사이력이 기록되어 있다. 더불어 KBS, MBC, TBC 196,70년대에 방송된 국악프로그램의 자료에도 김옥심과 남혜숙이 함께 출연한 흔적은 쉽게 발견된다. 남혜숙은 지난 2005년 사단법인 서울소리보존회를 만들어 서울잡가 보존에 힘쓰고 있다.
‘혈죽가’는 이창배 명창이 1953년 민주식이 작사한 ‘혈죽가’에 곡을 붙인 노래로, 이진홍-김옥심을 통해 남혜숙에게 유일하게 전승되고 있다.

The origin of my music

20. 심순애 “진도아리랑” (2001. 8. 녹음)

님보고 싶으면 사진짝 보고 말소리 듣고 싶으면 전화를 거소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왜왔던고 왜왔던고 왜왔던고 울고나 갈곳을 왜 왔던고
시고 떫어도 막걸리맛 좋고 몽둥이를 맞아도 본남편 좋다요
무정한 기차야 날 실어다 놓고 환고향 시킬줄 왜 모르냐
산천이 고와서 나여기왔나 님사신 곳이라 또 찾아 왔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아라린가 지랄인가 용천인가 얼마나 좋아서 저 지랄용천
에야디야 에야디야 에헤에야 에야 디여로 산아지로구나

나의 조모인 심순애(본명 심아지. 1910~2002) 여사는 전남 승주군 상사면(현 순천시 상사면)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함경도, 평안도, 만주 등지로 돌며 철도노동자 식당일을 했다. 1948년 별량면에서 살던 중 여순항쟁이 터져 남편(조부)과 순천사범생이던 큰아들을 잃었다. 좌익으로 몰려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던 중 가까스로 탈출해 이후 남원군 덕과면(현재의 오수)에 정착, 상업에 종사하며 4형제를 키웠다. ‘장한몽가’ 등 창가를 매우 잘 부르며, 1930년대에는 부벽루에서 열린 시민노래자랑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여기에 소개된 ‘진도아리랑’은 심여사가 92세이던 지난 2001년 중앙대학교 국악과 민요채집단(김정희, 한윤정, 안은경 등)이 두 차례에 걸쳐 녹음한 민요를 발췌한 것으로, ‘진도아리랑’ 외에 신아리랑조 선율과 ‘산아지타령’이 함께 섞여 있다.

21. 안이순 “자장가” 모음(2014. 6. 녹음)

둥둥둥 둥개야 둥개마지 꽃가지
아그데 바그데 덴토지 대구연발 남가지
욱에도 팔랑 아래도 팔랑
할당 발당 매물당 짓고 제주할당에 매물당 짓고
서울서 내려온 큰 부처님은 가운데 방에다 가만히 모셔라
둥둥둥 둥개야

거무야 거무야 말거무야 만리동 동산에 말거무야
니줄을 곱게 늘이어서 내줄을 곱게 늘이어서
아장개 사장개 동박골 동경리 청금사 꾀꼬리 앞내산 눈물로
아주나 실컷 놀다가세 둥둥둥 둥개야

아깡 아깡 우지를 마라 월출산 꼭대기로 해가넘어 간다
에라 이것이 눈물이란다 에라 이것이 눈물이란다

나의 어머니인 안이순 여사는 1933년, 지로리 기생 금덕이(함동정월)의 전설이 깃든 전남 강진군 병영면에서 태어났다. 한학자인 안명수(외조부)옹의 영향으로 두뇌가 총명해 주위의 기대가 컸으나, 집이 가난해 소학교 2학년을 채 마치지 못했다. 한국전쟁 중 외조부가 경찰을 도왔다는 이유로 가족이 몰살될 위기에 처하자 야반도주해 전북 남원군 덕과면(현 임실군 오수면 금암리)으로 피난을 나왔다. 이후 상업에 종사하며 남편 김래글(부친)과 슬하에 8남매를 키웠다. 암기력이 탁월해 일제강점기에 배운 일본창가 수십곡을 비롯 당시에 유행한 가요, 민요 등을 두루 알고 있다. 여기에 소개된 자장가류인 ‘둥개타령-거무타령-청춘가’은 2001년 중앙대 국악과 민요채집단 녹음시 녹음된 것이나 음질이 불량해 2014년 새로 녹음하였다. 특히 자장가 중 ‘청춘가’는 전래민요 ‘남도청춘가(제주아리시리)’와 ‘오동나무’가 합쳐진 구조를 보이고 있다.

22. 김아준 “너영나영”(2013. 11. 녹음)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엄마보고 싶어 운다

너영 나영 두리 둥실 놀구요 낮에 낮에나 밤에 밤에나 참사랑이로구나

나의 큰 아들 아준이는 08년 생으로 엄마 한윤정 나의 아내인 한윤정은 1979년 대구에서 태어나 국악예술고를 졸업한 후 중앙대 한국음악과에 입학했다. 김해숙에게서 ‘최옥산류 가야금산조’를 배웠으며, 이후 교육쪽에 관심이 있어 진로를 바꿔, 코다이음악학을 전공, 헝가리 리스트음악원에서 석사를 수료했다. 이후 귀국하여 중앙대 대학원에서 음악이론(석사수료)을 공부하고 있다.
의 영향을 받아 음악에 소질이 있다. 6살이던 지난해 겨울 집 지하 조그만 연습실에서 장난감 북을 치며 노래한 것을 녹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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