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자료는 해설서 내용(영어 해설은 제외)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 서승우 학예연구사께서 보내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 이왕직 아악부의 아악사 김태섭
김태섭 선생님의 호는 화정(和靜)이다. 선생님은 겉으로는 근엄하고 꼬장꼬장한 모습이셨으나 알고 보면 호에서 나타나듯이 인자하고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로 항상 조용하고 맑고 단아한 모습이셨다.
선생님은 1922년 12월 21일 서울시 종로구 서린동 164번지에서 태어나셨다. 정동초등학교를 마치고, 14세 되던 해인 1936년에 이왕직 아악부원 양성소 제5기생으로 입소하여 음악을 시작하셨다. 이왕직 아악부원 양성소 제5기생은 1936년에서 1941년까지 모두 18명인데 그 중에서 피리전공자는 김태섭(金泰燮), 이장성(李長成), 이성수(李聖洙) 이상 3명이었다. 제3학년에서 전공을 가르는데 주선율을 담당하는 피리전공자는 성적이 우수하여야 하는데 선생은 5기생 뿐 만 아니라 1기생이나 3기생들 중에서도 항상 상위권을 맴돌았다고 한다.
졸업해인 1941년 4월 1일 이왕직 아악부 아악수(雅樂手)로 임명되어 월 30원의 봉급을 받으며 연주생활을 하시다가, 1945년 8월 15일 조국광복을 맞아 모두 실직을 하게 되었다. 이왕직 아악부원 양성소는 이렇게 선생님 기수인 5기에서 끝나게 되어 5기가 막내가 되었다.
광복과 더불어 이왕직 아악부는 명칭을 구왕궁 아악부로 고쳤으나, 생계가 막막하여 대부분의 악사가 다 떠나고 몇몇만이 남아 전전긍긍하던 차에 1947년 7월 서울중앙방송국이 전속 <조선음악회>를 설치하여 다행스럽게도 아악부의 붕괴를 막을 수가 있게 되었다.
18명이었던 5기생들 중에서 모두 떠나고 선생님만 남아 악사 중 제일 막내로 선배인 김준현과 피리를 불었고, 봉해룡 선생의 단소에 주법이 까다로운 생황을 불었으며, 김보남 선생과는 엇바꿔 장구를 담당하는 1인 3역을 하셨다.
1948년 8월에 구왕궁 아악부 아악사(雅樂師)로 임명받았으며,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후에 육군 군예대 제3소대 국악조의 일원으로 평양 및 사리원지구의 일선 위문과 문화공작업무를 하였는데 국악조의 명단에 피리는 유일하게 선생 한 분뿐이어서 혼자 모든 곡을 연주하셨고 생소병주 및 그밖의 제반 아악합주의 주역을 하셨다.
1951년 4월 10일 부산에서 국립국악원이 개원되어 초대 원장에 이주환(李珠煥)선생이 임명되었으며 발령 받은 연주원들은 예술사(藝術師)란 명칭으로 모두 13명이었다. 그중에 제일 막내로 선생님은 모든 선배와 상사들로부터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고 한다.
1955년 4월 16일 중·고등학교 6년 과정인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가 남학생 30명 정원으로 개소되었는데 선생님은 개소와 동시에 기악과 피리강사로 발령을 받았다. 처음에는 전체 학생의 보통악과 피리과목을 담당하였고, 1961년 전공악과 피리과목 강사였던 김준현의 타계 후에는 보통악과 및 전공악과 피리과목의 전임강사로 1977년 2월까지 22년 동안을 제자들에게 피리를 가르치셨다. 물론 국립국악원 국악사(國樂師, 1955년 11월 2일 임명)직이 본직이었으며, 피리강사는 겸직이었다.
선생님은 1964년 12월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인 종묘제례악 태평소 기능보유자에 지정되셨는데, 종묘제례악은 조선왕조 역대 임금과 왕후의 신위를 모신 종묘 제향에서 연주하는 음악이다. 또 1971년 1월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인 처용무의 기능보유자에 지정 되셨는데 처용무는 신라에서 기원된 궁중무용으로 5인이 처용의 가면을 쓰고 5방에 서서 추는 춤이다.
어느 기·예능이고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되는 것만도 대단한 일인데 그것을 두 종목이나 보유하는 것은 참으로 대단하고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진미진선의 경지인 궁중음악과 궁중무용으로 선생님의 폭넓고 깊은 예술의 경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선생님은 수많은 국내의 공연뿐 아니라 1964년부터 1985년까지 잦은 해외공연으로 전세계의 모든 지역에 우리 음악을 알렸으며, 피리와 생황, 장구의 연주와 무용으로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셨다.
뿐만 아니라 그 바쁜 일과 중에도 여러 대학의 국악과에서 제자를 가르치셨다. 1961년부터 1989년까지 서울대, 경희대, 중앙대, 한양대, 추계예술대 등에서 강의를 하시어 지금 전국의 모든 내노라하는 정악 피리잽이는 거의 모두 선생님의 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77년 12월 21일 별정직 4급상당의 국악사를 의원면직하고, 1978년 1월 1일자로 1급갑(甲) 연주자로 임명되어 연주원, 단원, 사범, 지도위원, 원로단원, 구체적으로 <국립국악원 전속국악연주단원(정악계열 피리)>으로 복무하다가 1993년 3월 24일 오전 1시에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하셨다.
화정 김태섭 선생님께서는 1941년 4월 1일 이왕직 아악부 아악수, 48년 8월 구왕궁 아악부 아악사, 51년 4월10일 국립국악원 예술사, 55년 11월 2일 국립국악원 국악사로 임명되어 1993년 3월 24일 타계하시기까지 한평생을 국악을 위하여 헌신 봉사하신 분이셨다.
1963년 8월 15일 광복절 18주년 기념 공로표창(국립국악원장), 1963년 12월 17일 혁명과업 유공 공무원 표창(문화공보부장관), 1971년 4월 10일 국립국악원 개원 20주년 기념 모범공무원 표창(문화공보부장관), 1971년 12월 31일 모범 공무원 표창(문화공보부장관), 1977년 12월 21일 녹조 근정포장(대통령)이 선생님의 국악에 헌신하신 공적에 대한 포상이었다.
필자가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이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76년이었는데, 세피리로 가곡을 가르쳐 주셨다. 선생님의 세피리 소리는 나긋나긋하면서도 힘이 있었고 섬세한 가락은 마치 대금이나 단소 선율처럼 복잡하고 부드러웠다. 수업시간의 모습은 아주 근엄하시고 무서우셨으며, 장구채로 박자를 짚으시며, 높은 목소리로 구음을 해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떠오르곤 한다.
1981년 1월에 국립국악원에 피리 단원으로 들어가 4년간 선생님과 같이 근무를 하였는데 피리연주는 안하시고 주로 장구만 연주하셨다. 연세가 많으심에도 불구하고 선배이신 김천흥, 성경린, 김기수, 김성진 선생님들께 깍듯이 예의를 지키고 공경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간혹 피리가락이 틀리거나 표현이 어색할 때는 예의 그 높으신 목소리로 구음을 해주시면서 자상하게 지도를 해주셨다.
고등학교 이후론 선생님의 피리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는데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1972년과 1973년에 선생님의 피리와 생황소리를 녹음하였다고 하니 실로 반갑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영롱한 생황의 대표적인 곡인 <수룡음>, <헌천수>, <가곡중 편수대엽>, <영산회상중 타령>과, 정악의 백미인 <수제천>과 당악계통의 음악인 <해령> 등 정악의 여러 갈래를 골고루 녹음되었다. 더 나아가 관현악으로 합주를 하여도 한바탕 전곡을 연주하려면 무척 힘이 드는 <영산회상>을 한바탕도 아닌 세바탕(현악영산회상, 평조회상, 관악영산회상) 전곡을 피리독주로 외롭게 녹음하신 선생님의 저력과 노고에 벅찬 감격의 박수를 보내며, 유하면서도 강단이 있으셨던 선생님의 모습이 새삼 그리워진다.
피리정악이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된 작금에 선생님의 전반에 걸친 피리정악과 생황의 독주녹음은 무척 귀중한 자료이며, 후학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