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여는 窓, 아리랑
Arirang, the window through which Korea can be seen
오·늘·아·리·랑·
언제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조차 없는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노래가 있다. 누구에게서 딱히 배운 것도 아닌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다. 아리랑이다. 아리랑, 이 노래는 기쁨의 높이를 따라가면서 어깨춤이 되기도 했고. 슬픔의 깊이를 따라가면서 울음이 되기도 했었다. 한국인의 삶과 역사에서, 기쁨과 슬픔을 늘 함께 해 온 노래가 아리랑이다.
한국인이 있는 곳에 아리랑이 있다. 아리랑이 있는 곳에 한국인이 있다. 지구촌 곳곳에 사는 한국인들은 모두 아리랑을 부를 줄 알고, 또한 저마다 독특한 아리랑을 갖고 있다. 세계의 민족음악학자들은 아리랑을 알게 되면 모두 놀란다. 세계의 유명한 민요는 많지만, 그 민요는 대개 그 개별적인 민요자체로서만 생명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리랑의 경우는, 같거나 비슷한 제목으로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노래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어떤 음악학자들은 아리랑만큼은 기네스북에 올라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것은 마치 한국의 김치가 단 한 종류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만드는 재료나 만드는 방법 더 나아가 저장방법에 따라 각양각색의 이름으로 불리고, 다른 맛을 지니고 있는 것과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아리랑은 이념, 지역, 문화를 초월한 노래이다. 남과 북이 스포츠나 국제행사에 단일팀으로 참석하고자 할 때, 제일 먼저 합의를 보는 사항이 바로 그 단일팀의 단가(團歌)를 아리랑이라고 하자는 것이다. 아리랑은 이렇게 역사 시대 지역을 넘어서, 이데올로기까지를 초월하는 노래중의 노래가 된다.
한국의 아리랑은 음악적인 면에서 계속 변화되었고, 또 변화될 것이다. 토속민요에서 출발한 아리랑은, 그동안 신민요, 가요, 가곡 등 다양한 노래가 되었고, 서양악기, 민족악기, 오케스트라 등 악기를 초월했고, 재즈에서 힙합까지 유행하는 장르와 조우했다.
21세기에는 아리랑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던 차에 '한국을 여는 창, 아리랑'이 새롭게 태어났다. 이 음반 속 아리랑은 이미 존재한 아리랑의 선율, 화성, 리듬, 악기편성, 편곡방식 등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주로 젊은 작곡가가 편곡하고 젊은 연주가들의 감성으로 풀어냈기 때문일까? 이 음반에 참여한 한국의 음악가들은, 단순한 것처럼 보이는 아리랑에서 많은 문화적, 음악적 코드를 찾아냈다. 아리랑, 그 순차진행의 선율이 도약진행으로 바뀔 수 있고, 중모리장단이나 세마치장단만으로 알았던 아리랑은 시대와 함께 새로운 리듬으로 변화할 수 있음을 웅변해 준다. 또한 인생의 경험이 풍부한 이들의 노래로 알았던 아리랑이, 어린이의 목소리에 실려서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빛난다. 전문적인 소리꾼들의 노래도 기존의 가창방식 보다 상당히 정제된 느낌도 받게 된다. 그것은 이 음반을 제작하는 이들이 각 지역의 아리랑의 선율이나 가창에 있어서 하나의 '표준'을 제시하고자 하는 의도로 읽혀진다.
지난 20세기, 우리는 아리랑을 대개 민족, 역사, 한(恨)이란 단어와 같이 놓았다. 이제 21세기 초두에 만들어진 이 음반 속 아리랑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한민족보다는 지구촌을, 과거의 역사보다 미래의 문화를, 한(恨)보다는 정(情)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음반제목이 '한국을 여는 窓, 아리랑'이라고 했던가. 문(門)이 사람의 몸이 드나드는 곳이라면, 창(窓)은 사람의 마음이 넘나드는 곳이다. 그건 창(窓)이란 한자 속의 마음 심(心)자가 잘 말해준다. 한국에는 아리랑이 참 많지만, 아리랑이 담긴 음반은 많지 않다. 또한 이렇게 이 시대의 감성으로 풀어낸 아리랑을 한 장의 음반으로 만나기는 더욱 어려웠다. 이제
세계인들이 아리랑을 사랑하고, 한국을 알게 될 창(窓)이 활짝 열렸다.
윤 중 강 / 음악평론가
* 2002년 9월 24일 출시(이엔이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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