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설서에서 :
새로움, 누가 꾸는 꿈일까.
부드럽고 깡마른 체격의 가야금 연주자 정길선. 건드리면 톡 부러질 것 같은 그녀의 팔목은 가야금 연주자로서 넘어야 할 산이다. 그래서 그런가? 인텨뷰를 위해서 마주한 눈빛에서 무언가가 마음 깊숙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사람으로 비춰졌다.
예쁜 소녀의 미소를 보고 싶어 썰렁한 첫인사를 건넨다. “강아지는 잘 있어?” 실내악단 슬기둥의 연습실에서 만난 그녀는 작은 애완견을 안고 있었던 기억을 더듬어서..... 그때부터 이었던가? 내 마음의 장부엔 ‘소녀 취향의 섬세한 가야금 연주자’, 그리고 ‘판타지’ 이렇게 써 놓았었다.
직설화법과 판타지
정길선의 가야금 음악은 한마디로 직설화법이다. 하지만 영화 에서 자전거가 둥근달 위로 날아가던 장면에서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판타지’가 정길선의 가야금 음악을 들으며 다시금 아련한 추억 속에서 떠올랐다.
그녀에게 ‘판타지’는 직설화법이 무용해질 때나 기나긴 드라마를 한순간에 압축해야할 때 꺼내드는 와일드카드다.
2000년 9월 가야금창작음악 발표회와 같은 내용의 음악이 수록된 CD 음악에서도 역시 반짝이는 ‘판타지’를 만나게 된다. 그 음악은 바로 이준호 작곡의 ‘바람 · 강’. 이 곡에는 정길선의 가녀린 섬세함과 소녀취향의 꿈이 있다.
하지만, 2000년의 가야금 독주회에서 정길선을 가장 힘들게 한 음악은 김대성 작곡의 가야금과 첼로 편성에 의한 2중주곡 ‘반서름’이다. 체격 좋은 첼로 연주자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던 이 음악은 혼신의 에너지를 쏟아 붓는 연습시간을 요했으며, 체력이 바닥날 때 까지 피를 말리기도 했고, 때론 치를 떨며 연습에 몰입했던 음악이다. 다행히도 정길선은 이 음악으로 ‘멋진 음악, 멋진 연주’라는 평을 받으며, ‘작고 가녀린’이라는 인상에서 벋어나 ‘불같은 열정의 에너지’를 품고 있으며 ‘현대 가야금 음악을 잘 표현하는 연주자’로서의 전환점을 마련하게 되었다.
새로움, 누가 꾸는 꿈일까.
매 번 새로운 음악을 위촉하고 그 음악으로 독주회를 마련한다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다. 치밀한 음악을 위해 연주자는 때론 非人間을 자처해야한다. 하지만, 새로운 음악을 위촉 하지 않으면 가야금 음악의 미래가 없는 절박함이 있다. 가야금 연주가 정길선이 작곡가들과의 이 처럼 어려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종의 자기만족일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음악에 대한 집착이라고 일축할 수도 있지만, 새로운 가야금 음악을 위한 계속되는 작업은 미래 음악의 비젼 제시라 점에서 값지다.
2002년 12월 정길선은 까다롭다고 정평이 나 있는 작곡가 김대성의 작품으로 가야금독주회를 개최하였고, 연주된 5곡의 음악 중, 초연 곡 3곡을 준비하면서 실신하기도 했었다. 그중 가야금 3중주곡 ‘호호굿’은 복잡한 리듬이 연속적으로 얽히고설킨 작품으로 의도적으로 까다롭게 작곡된 음악이다. 이 곡에서는 매우 재미있는 ‘혼합박 장단’이 리듬의 열정을 발하고 있으며, 이 음악은 연주자와 작곡가, 그리고 청중에게 또 다른 ‘판타지’를 경험하게 하였다. 정길선은 이곡으로 또 하나의 산을 넘을 수 있었다.
음반은 연주자에게 있어서 명함과 같은 존재이다
365일 현대 가야금 음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노력하는 가야금연주자 정길선은 2005년에도 직접 작곡가를 선정하고 위촉한 가야금 음악을 9월과 12월 등 두 번에 걸친 독주회를 통해 발표하였다.
그리고 연주회에 이어서 이번에는 좀 더 치밀하게 준비하는 모습으로 엄선한 작품을 ‘정길선표’ 음악으로 음반에 담아냈다. 음반은 연주자에게 있어서 명함과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이미 녹음된 음악은 2005년의 겨울에 만난 가야금 연주자 정길선의 현재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정길선의 치밀하고 완벽한 가야금 음악을 공연장의 무대가 아니라 이제, 음반을 통해 쉽게 만나볼 수 있어서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음악평론가 현경채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