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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명[부제포함] 정창관국악녹음집(13) <오한수의 국악세계>-비나리와 경서도민요-
음반 번호 CKJCD-013 , CD 1 매
제작 / 기획사 정창관/국악아카이브연구회
발매 연도 2010
구 분 일반반
분 류 민요
업데이트 일시 2010-12-31
비 고
* 2011년 1월 27일 미의회도서관 및 미국 인디아나대학 전통음악도서관 기증. * 2012년 7월 11일 한국-인도문화원 기증(India) * 2013년 4월 5일 World Musc Center in Korea 기증. * 2015년 6월 5일 미국 Westminster Choir College Talbott Library 기증.



 
정창관국악녹음집(13) <오한수의 국악세계>-비나리와 경서도민요-

1. 비나리 중 반멕이 14:23
2. 비나리 중 오조염불 6:28
3. 비나리 중 고사덕담 14:07
4. 회심곡(반멕이조) 13:22
5. 화청(불가조 회심곡) 7:07
6. 제전 6:11
7. 한오백년 1:48
8. 강원도아리랑 1:50
9. 정선아리랑 4:33 총 녹음시간(Total Time) 70:10

• 소리.반주(꽹과리, 징, 장구):오한수. 조창:최정희

○ 기획․제작:국악아카이브연구회 회장 정창관(2010전통예술경연대회 평가위원장/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서초국악포럼 좌장)010-2023-4390
○ 음반 해설:이보형․김인숙
○ 녹음:2010년 12월 12일 오후. 유니버샬스튜디오. 녹음기사:진관섭.
○ 마스터링 및 편집: 양정환(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예술기획탑 대표)
○ 가사 제공 : 오한수. 정리:정창관.
○ 제조:2010년 12월 27일 ○ 인쇄:도서출판 무송

* 여기에 수록된 자료들은 영업외의 목적이라면 마음대로 사용하셔도 됩니다.

* 이 음반의 제작비 일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금입니다. 지원에 감사합니다.

* 모든 국악음반의 자세한 내용은 국악아카이브연구회 회장이 운영하는 비영리사이트 “정창관의 국악CD음반세계”(www.gugakcd.kr)를 참조하시고, 전자책 국악음반 길라잡이 “정창관의 국악이 보인다” (www.gugakebook.com)도 방문해주세요.
 
* 운영자가 매년 제작하고 있는 시리즈 13집이다. 국악아카이브연구회 이름으로 제작되었다. 제작 후기를 인용하였다.(2010.12.31)

* 국악방송, KBS- 1FM 오후 5시 '흥겨운 한마당' 청취자, 객석에게는 합계 100장 정도 무료로 제공할 예정임.

<오한수의 국악세계>를 기획·제작하면서.....

국악아카이브연구회 회장 정 창 관
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서초국악포럼 좌장
2010전통예술경연대회 평가위원회 위원장

이 땅의 잃어버릴 소리, 날아가버릴 소리를 후손에게 남기기 위해서 기획자가 제작하고 있는 ‘정창관 국악녹음집’ 제13집 <오한수의 국악세계>가 출반되었다. 1998년 제1집
<강순영의 국악세계>, 1999년에 제2집 <조순애의 국악세계>, 2000년에 제3집 <인간문화재 김영택의 국악세계>, 2001년에 제4집 <박보아 박옥진 자매의 국악세계>, 2002년에 제5집 <신용춘의 국악세계>, 2003년 제6집 <김경성의 국악세계>, 2004년 제7집 <박홍남의 국악세계>, 2005년 제8집 <박대성의 국악세계>, 2006년 제9집 <조영숙의 국악세계>, 2007년에 출반한 제10집 <1896년 7월 24일, 한민족 최초의 음원> 음반을 출반하고, 2008년 제11집 <박덕화의 국악세계>에 이어, 2009년에는 2007년에 출반한 제10집 <1896년 7월 24일, 한민족 최초의 음원>의 소리꾼을 알게 되어 재출반하고, 제12집 <김화선의 국악세계>에 이어 올해에는 제13집 <오한수의 국악세계>를 출반하게 되었다. 이번 음반 출반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국악아카이브연구회 이름으로 출반하게 되었으며, 시리즈 이름은 ‘정창관 국악녹음집’으로 계속하게 되었으니, 계획대로 매년 한 장이 출반되는 셈이다.

작년의 제 12집은 1,000매를 제작하여 200매는 연주자에게 배부하고 700매는 무료로 배부하고 100매는 판매 및 보관용으로 가지고 있다.

오한수 선생과는 9월부터 양정환 선생을 통하여 연락이 되었지만, 오랫동안 부르지 않은 음악들이 있어 녹음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였다. 녹음일자도 한차례 연기되어 12월 12일에 녹음하게 되었다. 그 동안 동국대학교 연구교수인 김인숙 박사가 오한수 명창과 인터뷰하여 녹음할 곡 선택과 해설서에 담을 내용을 정리하고 있었다. 녹음은 제시리즈의 다른 녹음과는 달리 어렵게 진행되었다. 가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가사 부침이 너무 어렵고 오랫동안 부르지 않은 곡들이 있어 익숙하지 않아 몇 번인가 다시 하다가, 결국 편집하기로하고 녹음을 진행하였다. 다른 제시리즈에 비해 중간에 음색이 약간 변하는 것은 이 편집 때문이다. CD 수록시간(74분 이하 적정) 제한으로 녹음한 서도소리 ‘초한가’, ‘영변가’는 제외되었지만, 2곡은 별도로 CD에 담아 오한수 명창에게 전해줄 예정이다. 녹음때에는 오한수 명창은 곡에 따라 장구, 징, 꽹과리로 직접 반주하였으며, 조창은 오한수 명창의 제자인 최정희 선생이 수고하였다. 김인숙 박사의 딸인 이도원이 녹음내내 자리를 같이하여 분위기는 즐거웠다.

이 음반은 일련번호를 부여한 1,000매 한정반으로 오한수 명창에게 200매 증정 예정이며 대부분 무료로 배부한다. 국악FM방송 청취자, KBS FM 청취자(국악프로), 객석 구독자에게는 무료(?)로 음반을 가질 기회가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다 무료로 드릴 수 없기 때문에 국악원 자료판매실(02-580-3160)과 예술기획탑의 쇼핑몰인 www.gugakcd.com 등에서는 구할 수 있도록 하겠다.

예술 기획탑의 양정환 대표는 연주자 소개에서 녹음, 마스터링, 제작 등, 전 과정에 자기 일같이 도와주었다. 김인숙 박사는 해설서 작성을 위해 많은 시간(인터뷰 및 녹음참관)을 내어주어 고마우며, 항상 시작하는 글을 보내주시는 한국고음반연구회 이보형 회장님께 감사드린다.

이 출반을 국악아카이브연구회의 사업으로 진행 하는 것과 ‘정창관 국악녹음집’ 시리즈로 계속할 수 있도록 결정해 준 회원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돈을 쓰는 것을 이해해주는 마눌님 고마우며, 지원해주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감사함을 전한다.

2010년 12월 27일 월계1동 현대아파트에서

* 정창관 국악후원회
구좌:제일은행 광화문지점 130-20-389890 정창관
전화:02-943-4390 / 손전화:010-2023-4390
홈폐이지:www.gugakcd.co.kr / www.gugakebook.com
이메일 : ckjungck@gmail.com / ckjungck@hanafos.com

* 국악아카이브연구회
홈폐이지:www.gugakarchive.kr (현재 구축 중)
 
* 해설서에서 :

오한수의 비나리 음악 음반에 대하여

이 보 형(한국고음반연구회 회장)

올해에도 거르지 않고 “정창관 국악녹음집”이 나왔는데 제13집이라 한다. 정창관 선생은 해마다 사라져가는 전통음악 보유자를 발굴하여 이를 사재를 들여서 음반을 내는 고마운 일을 하고 있다. 올해에 나온 것은 “오한수의 국악세계-비나리와 경서도소리”라는 음반이다. 오한수 비나리 명창이 보유하고 있는 고사염불 5곡과 경서도소리 4곡를 녹음하여 음반으로 엮어낸 것이다.

비나리라는 말은 고사소리의 곁말(隱語)이다. 고사소리를 절걸립패가 부를 경우에는 고사염불이라 이른다. 전통사회에서는 절걸립이 성행하여 걸립패도 성세를 이뤘고 뛰어난 비나리꾼(고사소리꾼)도 많았다. 일제시대 하용남을 버롯하여 수 많은 명창들이 유성기 음반에 이를 취입하여 이름을 날렸던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근래에는 절걸립이 드물어 전통적인 비나리꾼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나마 근래에 비나리라는 말이 널리 알려진 것은 사물놀이패 비나리가 퍼진 뒤의 일이다.

오한수는 소년시대에 잠깐 출가하여 염불과 작법을 배운 적이 있고 이윽고 절걸립패에 들어가 고사염불을 배워 활동한 적이 있다 한다. 그리고 안비취에게 경서도 소리를 익혀 국악인들과 공연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한수는 실제 절걸립패에서 비나리꾼으로 활동하였던 지금 몇 안 되는 전통적인 비나리꾼이라 할 수 있다. 이 음반이 중요한 것은 실제 비나리를 한 명실상부한 비나리꾼의 소리를 담았다는 전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비나리를 감상하고자 하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전통 고사염불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오한수의 국악세계 - 비나리와 경서도민요

대담 정리 및 해설: 김 인 숙(동국대학교 연구교수)

1. 나의 생애와 예술세계

민속예술과 만남 :
나 오한수(吳漢秀)는 1941(辛巳)년 1월 2일(음력) 서울 돈암동에서 아버지 오충우와 어머니 이복년 사이 2남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동네 어귀에서 무수히 듣던 태평양전쟁 <출정가>와, 광복된 날 아버지와 함께 돈암초등학교에서 만세를 부른 일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4학년 때 6.25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전라북도 금산의 어느 여인숙에서 일을 도우며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근처 장터에 한 달 동안 난장이 섰다. 남사당패의 풍물놀이와 무동舞童 서기, 저녁이면 횃불 돌리는 광경이 멋있어 일만 끝나면 개구멍으로 들어가 보곤 했다. 장구와 꽹가리, 신기한 재주를 배워 보고 싶어 가르쳐 달라 했지만 거절당했다. 당시 처했던 사정이 불우하여 애처로운 소리에 끌렸는데, 저절로 귓가를 맴돌아 혼자 불러보곤 하던 노래가 나중에 알고 보니 비나리였다.

출가와 염불소리 :
어린 나이에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는 이의 소개로 15세에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동패리 수막산(심학산)에 있는 약수암(오늘날 약천사로 중창됨)으로 출가 아닌 출가를 하게 되었다. 절의 주지 정호남 스님의 상좌가 되어 아침에 일어나 물 길어다 법당 청소와 나무하기, 대소 심부름 하기, 틈이 나면 염불을 외는 고되고 단조로운 생활이 계속되었다. 아침밥을 먹고 나면 스님이 그 날 욀 것을 적어 주셨다. 매일 절에서 하는 염불 즉 천수경, 반야심경과 같은 경전 외에 관음시식 같은 의식 절차도 익혔다. 법성계, 종성계, 천수바라, 소청계, 청사 등은 머릿속에서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입에서는 자연적으로 나오도록 반복 연습해서 나중에는 스스로 할 수 있었다. 절의 염불은 비슷비슷하지만 음률이 다 다르고 작법(바라춤이나 나비춤과 같은 의식무)도 스물다섯 가지가 된다. 작법도 몇 가지는 학습했다. 절에 재가 들어오면 정호남 스님이 의식을 주도하셨지만 맨 마지막의 화청은 젊은 상좌인 내가 해서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정호남 스님은 경기도 일원의 범패승으로 분명한 학습 내력이 있으셨는데 부평의 호명사에 계신 스님과 함께 김포 용화사의 노장 스님(성명 미상) 계통 이라고 들었다. 만일 내가 계속 절에 승려로 머물렀으면 범패로 일가를 이루었을 것이다.

걸립패와 고사덕담 :
경기도 김포,통진,양천,양곡 등지는 들이 넓어 물산이 풍부하고 동두천, 문산, 주변은 미군들로 인해 경제가 비교적 풍요로웠다. 절에 온 지 3년이 지난 1월 어느 날 물지게를 지고 물을 길러 갔다가 마을 아래에서 들려오는 “쾌갱캥 꽹꽹...” 걸립패의 징소리에 그만 머리끝이 쭈뼛쭈뼛 서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어 그 길로 물통을 내던지고 걸립단에 들어갔다. 단장을 만나서는 예전에 금산서 듣던 것을 해 보이니, 싹수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따라 다녀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 때 만났던 걸립패 단장이 민남선으로 당시 70세 안팎이었고 내 나이는 17세 때였다.

걸립패는 유랑예인집단 가운데 사찰과의 관계로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단체이다. ‘걸립’은 건립建立과 같은 말로서, 절을 짓기 위해 기금을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사찰에서 조직을 지시해 만들어진다. 나의 경험을 토대로 걸립패의 조직과 걸립의 절차, 형태 등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걸립패는 모갑이(단장), 화주(섭외 담당. 권선이라고도 함), 불자꾼(비나리꾼), 상쇠, 장고, 북, 징, 소고(상모), 회적(호적), 외에도 지게꾼(쌀 및 짐을 관리하는 사람)과 깃봉(깃대 드는 사람) 등으로 분업화되어 10명 안팎으로 구성된다. 비나리꾼은 하루 종일 소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 2명(이것을 ‘작형’이라 부른다)이며 1 명만 있을 경우 단장이 대신 하기도 한다. 남사당패와는 달리 걸립패는 고깔을 썼는데, 사찰과 관련을 드러내고 축원 덕담으로 기원을 해주는 집단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예외로 상쇠와 소고는 상모를 썼고 화주는 승려들이 쓰는 까맣고 동그란 모자에 염주를 걸고 집집마다 고사 드리기를 청했다. 비나리꾼은 장삼을 입고 소리를 했는데 단원들은 각기 자기 전공 이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화주는 집집마다 권선문(시주를 적은 문서)을 내밀며 시주를 청했는데 한지를 접어 철한 공책의 맨 앞장에는 절에서 보냈다는 신표가 있었다. 시주의 내용을 적은 권선문을 절로 보내면 절과 신도의 관계가 새롭게 맺어지는 기회가 되었다. 1960년 무렵, 내 나이 18~19세 때 민남선 선생을 단장으로 서울 돈암동 신흥사의 적조암 중창을 위한 걸립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걸립패가 동네에 들어서면 맨 처음 동네 앞 정자나무나 서낭당, 공동우물을 한 바퀴씩 돌고, 그 동네에서 가장 큰 집(보통 기와집에 사랑채가 있음) 마당에 기를 꽂고 한 바탕을 놀며 고사 드리기를 권한다. 집주인이 허락하면 걸립패는 우물-뒷꼍(우물 · 장독)-부엌-대청 순서로 풍장을 울리는데, 그 동안 주인은 대청에 상을 편 후 말 위에다 쌀을 수북히 놓고 주인의 밥주발에 쌀을 담아 얹고 그 위에 수저를 꽂는다(제사 지낼 때에는 거꾸로 꽂지만 이때는 제대로 꽂는다). 수저에 실타래를 한번 감아 늘어뜨리고, 그 앞에 돈을 놓고 양쪽에 촛불을 켠다. 그런 뒤 비나리꾼이 “땅 땅/땅 땅/땅따당/땅 따...상봉길경에 ...고설고설 고사로다” 하고 고사덕담을 한다. 돈이 많이 나오는 경우 신나서 달거리 액풀이 다 해주지만 조금 나오면 눈치 봐서 짧게 한다. 비나리를 하는 동안 화주는 다른 집으로 가서 다시 고사를 청하는데, 그와 같이 해서 하루 종일 집집마다 돌아가며 비나리를 해주게 된다. 비나리가 끝나면 고사상에 담긴 쌀(한 말 정도)을 지게에 싣고 돈은 챙겨서 가져가는데, 다 가져갈 수 없을 경우 어느 집에 맡겨 놓고 나중에 거두러 가기도 한다. 걷힌 쌀을 팔고 돈을 만들어 그 중의 1/4은 떼어 절로 보내고 나머지를 나누는데, 단장과 상쇠, 비나리꾼은 한 몫 반, 나머지는 한 몫씩 가졌다.

걸립은 가을 추수가 끝난 음력 9월부터 정월, 2월까지가 한창이다. 잠은 화주가 미리 잡아 놓은 동네의 사랑방에서 자게 되는데, 저녁에는 동네사람들을 위해서 비나리, 회심곡, 개성난봉가, 청춘가, 창부타령 등 있는 재주를 다 보여준다. 볼거리가 없던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 아주머니들이 먹을 걸 싸가지고 와서 노는데 신이 나면 이때 또 돈을 내놓기도 했다. 걸립패에서 활동할 적에 소리는 특별히 시간을 정해 배우지는 않았고 비나리를 할 때 끼어서 같이 하다가 점차 내가 하는 부분이 많아지는 식으로 익히게 되었다. 비나리는 “고설고설고사로구나, 천개어자하니....”로 시작하는데 그냥 고사덕담이라고 한다. ‘비나리’는 전체를 아우르는 이름으로 보통 3시간 걸리는데 여기서 분화한 것이 ‘반메기’, ‘오조’ 등이다. 보통 달거리, 살풀이는 의무적으로 해 주고, 돈이 많이 나오면 성주풀이, 농사풀이, 과거풀이까지 이어 가는데, 다른 집도 다녀야 하니까 한 집에서 너무 오래 하지 않는다. 비나리는 지방마다 다른데, 충청도 천안 이남은 평조를 좋아하고 천안 이북은 반멕이를 좋아한다. 내가 하는 비나리는 하용남(Okeh와 Victor 유성기음반에 고사덕담을 취입함), 이수영 등과 같은 계열이며, 당시 나의 작형(걸립패에서 비나리를 함께 하는 짝을 이름)으로 함께 비나리를 했던 친구로 김재천이 있었으나 병이 들어 단체를 탈퇴하여 헤어진 후 만나지 못했다.

걸립패들은 자신들만의 은어로 얘기한다. 비나리꾼-불자꾼, 어르신-노통, 중년-탁생원, 젊은이-통자, 성교하다-탁치다, 늙은 부인-뜨구, 처녀-피조리, 사찰-남두럭, 숙소-연주, 꽹가리-마패, 불편하다-쥐난다, 훔치다-두럭치다, 먹다-마치다, 본다-대질한다, 술-등, 의복-덥장, 사물-연장, 도망간다-땅문연다, 단장-몽둥이 등이다. 성원들은 떠돌이 신세로 맘에 차지 않으면 팽개치고 도망가는 일도 흔했고, 한 철 같이 지나면 뿔뿔이 흩어져 지속적인 유대를 갖기 어려웠다. 예인 집단 가운데에서도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꾸려가야 했기 때문에 안정적인 가정생활이나 제대로 된 인격체로 대접받는 일은 애초에 기대할 수 없었다. 이 무렵 돌아가신 줄 알고 있던 어머니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머니와 상봉 · 제대 후 사업 :
돌아가신 줄 알았던 어머니께서 효자동에 혼자 살고 계셨다. 떠돌이 생활을 접고 어머니와 함께 지내며 정육점을 하고 계신 대이모 집에서 심부름 하고 있다가 군대를 갔다. 군대생활은 비교적 편했는데 파주군 문산면 법원리의 미군 제1사단 병원에서 근무했으며 65년 1월 16일 만 36개월 15일만에 제대했다. 예편 뒤 이모님의 소개로 마장동의 한 도축회사에 취직하여 현장관리소장으로 일하며 인맥을 넓힌 뒤 냉동회사를 설립해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는 우리나라가 냉동설비를 막 시작하던 초창기였으므로 오늘날에 비해 소규모 사업에 불과했지만 나름대로 기반을 다지며 안정된 생활을 꾸려갈 수 있었다.

사업하는 중에도 나도 모르게 전통음악에 이끌려 매일 남산 KBS방송국의 국악프로그램을 애청했다. 그 중에서도 김옥심의 <정선아리랑>과 이은관의 <초한가>, <제전>, <배뱅이굿>, 등에 심취하여 혼자 익혀 부르곤 했다.

스승 안비취와 경서도민요 :
1975년 KBS TV의 “민요백일장”에 출연하여 라디오를 통해 익혔던 서도좌창 <초한가>를 불러 주장원을 했다. 대회를 마친 뒤 심사위원이었던 안비취 선생이 불러 찾아갔더니 소리공부를 정식으로 해보라고 권유하셨다. 안비취 선생은 여성이 주류를 이루던 경서도계에서 남자 성악가를 키우고 싶어 하셨다. 이를 계기로 경서도계의 여러 스승, 선후배들과 교유하게 되었고 이들을 통해 처음부터 경서도소리를 다시 익히게 되었다. 안비취 선생께는 <노랫가락>, <창부타령>, <뱃노래>를 비롯한 경기민요 일체를 배웠고 <난봉가>, <초한가>, <공명가> 등의 서도소리도 배웠다. 재담소리로 유명한 백영춘 선생께 <관동팔경>과 같은 소리를 배우는 외에도 안비취 선생으로부터 배운 소리를 다시 가져가 다듬었다. 그 후 서도소리를 더 학습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오복녀 선생을 찾아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다. 점차 음악에 빠지면서 77년부터 80년까지 3년간은 김뻑꾹 예술단에 합류하여 박용진, 이은관, 최창남, 안비취선생과 함께 전국을 누비기도 했다. 소리와 사업을 함께 하는 일이 버거워지자, 안비취 선생님은 내게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경제적 이유를 들며 사업에 열중할 것을 권하셨다. 이때부터 1997년 IMF의 여파로 사업을 접을 때까지 약 15년간은 사업에만 열중했다.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음악과 인연을 끊고 살았던 기간이었다.

새로운 음악 인생 :
1998년, 김뻑꾹 선생과 더불어 다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김뻑꾹 선생은 젊은 시절부터 나를 따뜻하게 이끌어주신 고마운 분이다. 후배 유지숙과 함께 항두계놀이 무대에서 주고받는 <개타령>은 나의 장기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나의 경서도소리는 안비취 선생의 소릿조를 이어 받은 바, 서도민요라 해도 경기창법으로 부드럽고 화창하게 넘어가는 가락이 특징이다. 서도를 배경으로 하는 소리이면서 남한에 정착되어 불린다는 의미로 ‘한양제 서도소리’라고 이름 붙였다. 성악은 특히 정확한 발음이 기본이 되어야 하며, 노랫말이 조리에 닿고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운 소리 중에 앞뒤가 바뀌었거나 발음이 와전된 말은 바로 잡아 부르고 있으며, 민요 중에 내가 직접 작사한 부분은 표시를 해서 부르거나 가르친다. 아울러 반주악기인 장고는 단순한 장단을 치는 역할을 넘어 다양한 반주악기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내가 알고 있는 타악 장단을 응용하여 ‘가락장고’라는 연주법을 개발하여 쓰고 있다.

비나리는 발표할 기회가 거의 없지만 주위에서 인정을 해 주는 것이 기쁘고 현재 몇몇 제자가 배우고 있기도 하다. 이광수 선생의 비나리와 같이 새롭게 다듬어진 소리도 좋지만, 걸립패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복을 빌어주던 소리의 소박함이 살아있고 가사나 곡조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비나리를 비롯하여 불가의 화청, 오조회심곡 등의 소리를 제대로 전승해 놓고 싶은 소망이 있다.


조창 : 최정희
- 충북 청주 출신
-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경기민요) 이수자
- 충북무형문화재 제1호(농악:장구) 이수자
- 사사 : 이은주. 오한수.


2. 악곡 해설

1) 비나리 중 반멕이

<반멕이>는 집집에 드는 액설 구설을 물리치고 복을 받아들이는 내용의 노래이다. 하용남(VictorKJ1056B)을 비롯해서 이수영, 남운용 · 양도일 등이 부른 <반멕이>가 전해오지만 현재 오한수 외에는 부르는 이를 찾기 어렵다. 오한수의 <반멕이>는 “일심정념은 극락세계라 에헤 아미로다 봉위 에헤...”로 시작하는데 이 부분을 ‘봉청조’라 한다. 노래 중에 “에헤 헤 사실지라도 늘여서 사대로만 사십소사” 부분을 후렴과 같이 반복하는 점이 특징이다. 음악은 ♩♪♩♪의 리듬으로 반복되면서 박자는 불규칙한 집합구조를 보이는데, 대부분 3박자가 중심이 되며 3박자에 한두 박이 더하거나 덜리어 4박, 5박 등으로 혼합박자를 이루는 특징이 있다. 악구의 끝은 꽹가리로 리듬을 치며 숨을 조절하고 가락도 이어간다. 음조직은 re, do, La, Sol, Mi의 음계에 La가 선율의 중심이 되어 진행을 하며, re-do의 퇴성과 Mi에 요성이 나타나는 동부지방의 메나리토리와 같다.

2) 비나리 중 오조염불

<오조염불>은 하용남(VictorKJ1056A), 이수영, 박청해 등이 부른 후 오늘날 오한수가 유일하게 간직하고 있는 소리이다. 우리 인생이 초로와 같으니 효도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라는 교훈을 담은 내용이다. <오조염불>은 예전에 합창으로 불렀다고도 하는데, 오한수에 의하면 독창으로 불렀다고 한다. <오조염불>은 얼핏 불규칙하게 들리는 듯하지만 5박자(3박+2박)를 기본으로 하여 5박이 두개 모인 10박이 한 장단을 이루는 리듬형이 특징적이다. 악구의 끝은 꽹가리를 치며 간혹 박을 늘여 가기도 하기 때문에 박자의 규칙성이 제대로 드러나 있지는 못하다. 선율적 특징은 <반멕이>와 같이 동부지방의 메나리토리로 되어 있다.

3) 비나리 중 고사덕담

걸립패 소리의 요체라 할 수 있는 고사선염불, 즉 <고사덕담>이다. 집집마다 방문하여 고사상이 마련되면 “고설고설 고사로다”로 시작하여 하늘이 열리는 데서부터 나라가 생기고 각도각읍을 마련한 후 ‘달풀이’-’살풀이’-’삼재풀이’와 같이 중요한 세시와 모든 액살을 풀어내며 만복을 기원하는 덕담이다. 고사덕담은 이 음반에 담긴 내용 외에도 ‘직성풀이’, ‘호구살풀이’, ‘과거풀이’, ‘농사풀이’ 등의 문서가 있으나 실제 걸립패들도 시간상 다 부르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리듬은 ♩♪♩♪와 같은 리듬 형태가 4박 단위로 일어나서 자진모리와 흡사하다. 오한수는 <고사덕담>의 중간에 <반멕이>의 후렴 부분을 잠시 빌어 노래하기도 하고 후반부 <삼재살> 부분에서는 평조로 돌려서 변화를 주는데, 맨 마지막은 평조로 마무리한다. 오한수의 <고사덕담>은 시월상달이나 대보름풍속을 묘사하는 등 사설이 구체적이고 민속적인 내용이 풍부한 점에서 눈길을 끈다.

4) 회심곡(반멕이조)

<회심곡>은 사찰 안에서 하는 ‘화청 <회심곡>’과 절걸립패나 탁발승들이 민간에서 하는 ‘염불 <회심곡>’의 두 가지로 나뉜다. ‘염불 <회심곡>’은 보통 경기민요의 음악 어법인 평조(경토리)로 하는 것이 보통인데 오한수가 녹음한 회심곡은 보기 드문 반멕이조의 <회심곡>이다. 내용은 인간이 이 세상에 나온 은덕과 부모의 은혜, 죽음으로 돌아가는 인생을 노래하며 어진 공덕을 쌓아 왕생극락하자는 노래이다. 선율 및 음악적인 특징은 앞서 소개한 반멕이조의 <비나리>와 같다. 간혹 높이 소리를 높이 내지르며 길게 끄는 소리는 사찰의 염불 소리를 연상시킨다. 반멕이조는 걸립패의 음악에서 흔히 치악산조라 하는데, 평조 회심곡이 세속적이라면 반멕이조는 사찰의 염불소리의 느낌이 강하여 불교적인 색채가 강하다.

5) 화청(불가조 회심곡)

사찰에서 재를 마치며 재에 참여한 일반 대중들을 위해 순우리말 사설로 부르는 ‘화청 <회심곡>’은 “걸청걸청 지심걸청”으로 시작한다. 석가세존과 부모의 은공으로 이 세상에 왔다 가지만 인간사가 무상하니 효도하고 어진 공덕을 쌓으라는 내용이다. 리듬형은 보통 1음보를 5박에 부르는데 마치 판소리나 산조의 엇모리장단과 같이 5박자 둘이 집합하여 10박이 한 장단을 이루는 형태이다. 장단은 절에서와 같이 방석 위에 징을 엎어놓고 소리가 퍼지지 않게 울리는 ‘태징’으로 반주하였다. 오한수의 화청 <회심곡>은 “저기 저 법고 밑에 법고 치는 저 상좌야 먼데 시주 보기 좋게 주위 시주님 듣기 좋게~”와 같은 친숙한 향토조의 노랫말이 자주 눈에 띈다. 이 소리는 창자가 사찰에서 정호남 스님의 상좌로 있을 적에 재의 끝에 직접 참여했던 기억에서 소리를 재현한 것이다.

6) 제전

<제전>은 서도좌창의 하나로 한식날 임의 분묘를 찾아가 제를 올리는 내용을 노래한 것이다. 분묘 앞에 자리를 마련하고 갖가지 제사 음식을 차리는 절차와 음식의 종류를 일일이 묘사하며, 죽은 임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토로하는데, 마지막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소리를 <수심가>의 선율에 얹어 마무리하는 노래이다. 음악은 3박을 기본으로 하며 2박과 4박 등이 혼합되어 나타난다. 서도를 배경으로 하여 서도지방의 음악어법인 수심가토리가 바탕이 되는데 오한수의 <제전>은 안비취를 사사한 소리로서 선율적인 면에서 경기음악어법이 나타나며 창법이나 시김새도 부드럽고 화창하다.

7) 한오백년

<한오백년>과 <강원도아리랑>, <정선아리랑>은 강원도지방을 배경으로 하는 민요이다. 걸립패의 소리 중 흔히 치악산조 또는 반멕이조가 이와 같은 음악어법으로 되어 있으며 불가의 성악곡도 대부분 같은 동부민요와 악조로 짜였다. 청소년기에 사찰의 염불소리를 익혀서인지 오한수가 부르는 동부민요에는 특별한 정한의 느낌이 실려 있는 듯하다.

<한오백년>은 근대기에 만들어진 신민요로서 음악적 원천은 <정선아리랑>이다. 세마치(3박자)가 4개 모여 중모리장단을 이루는 리듬형이다. 제2절의 “개나리꽃이 피거들랑~”이 오한수 작사이다.

8) 강원도아리랑

<강원도아리랑>은 서울지방에서 쓰이는 명칭으로, 강원도에서는 ‘자진아라리’로 통하는 소리이다. 강원도에서는 이와 같은 ‘자진아라리’를 김매는소리나 나물뜯는 소리등 노동요에 널리 부른다. 3박자와 2박자가 혼합된 5박자 계통의 노래로서 판소리나 산조의 엇모리와 형태가 같으나 악구의 끝을 길게 늘이는 말붙임이 다소 다르다. 제1절은 전래하는 가사를 불렀고 제2절 “별빛을 보면서 ~”이하 가사는 오한수가 지은 것이다.

9) 정선아리랑

강원도에서는 <정선아리랑>이라는 명칭보다는 단순한 ‘아라리’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이와같은 ‘아라리’는 위의 ‘자진아라리’에 대비하여 ‘긴아라리’라 하는데, ‘긴아라리’ 중에서도 엮음조로 이루어진 노래이다. 엮음은 긴 사설을 말하듯이 주워 섬기다기 끝을 길게 늘여 부르는 방식으로 부른다. 그에 따라 박자와 리듬의 변화도 일어난다. 제2절 “그대 진정 나 싫다고~”의 사설이 오한수에 의해 작사된 것이다.

* 해설서에는 가사가 나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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