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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명[부제포함] 정창관국악녹음집(9) <조영숙의 국악세계>-여성국극.신민요-
음반 번호 CKJCD-009 , CD 1 매
제작 / 기획사 정창관
발매 연도 2006
구 분 일반반
분 류 판소리
업데이트 일시 2006-12-24
비 고
* 미의회도서관 기증(2007.2.13) * 영국도서관 기증(2007.2.13). * 2011년 4월 26일 베트남 호치민 국립대학 한국학과 기증. * 2013년 4월 5일 World Musc Center in Korea 기증. * 2015년 6월 5일 미국 Westminster Choir College Talbott Library 기증. * 2016년 5월 30일 미국 인디아나대학 전통음악도서관 기증.



 
정창관국악녹음집(9) <조영숙의 국악세계>-여성국극.신민요-

■ 여성국극 <선화공주>(Yeoseong Guggeuk : The Princess, Seonhwa)
작곡:조상선. 편곡:임춘앵. 시연장소:부산극장(여성국극 동지사). 시연년도:1953년 겨울.
1. 서동과 선화공주가 처음 만나는 대목 - 5:42
(The scene that Seodong and Seonhwa encounter for the first time)
2. 서동이 잡혀와 문초받는 대목 - 3:47(The scene that the captured Seodong is interrogated)
3.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 시작되는 대목 - 7:43
(The scene that Seodong and Seonhwa start to blossom their love)

■ 여성국극 <견우 직녀>(Gyeonwoo and Jiknyeo)
작품:차범석. 작곡:임춘헌. 한일섭. 시연장소:시공관(명동). 시연년도:1957년경.
4. 지상 대목(Love in this world) - 7:43
5. 천상 대목(Love in the heaven) - 6:16

■ 여성국극 <바보온달>(The Babo Ondal - The Foolish Ondal-)
작품:조건. 작곡:박동진. 시연장소:햇님 여성국극. 시연년도:1957년경.
6. 온달과 평강공주가 만나는 대목 - 3:42
(The scene that Ondal and the Princess, Pyeonggang encounter)
7. 온달과 평강공주의 산중생활 대목 - 3:21
(The scene that Ondal and Pyeonggang live together in the mountains)

8. 여성국극 <춘향전>(Chunhyangjeon) 9:53
연출:박진. 편곡:임춘앵. 시연장소:부산극장. 시연년도:1952년 겨울.

9. 여성국극 <못잊어>(Monnijeo - Never Forget-) 7:15
작곡:임춘앵. 한일섭. 시연장소:시공관 (명동). 시연년도:1956년 봄.

10. 여성국극 <춘서몽>(원작품 이광수)(Chunseomong : Original novel by Lee Gwang-Soo) 3:44
작곡:임춘앵. 시연장소:명동 시공관. 시연년도:1956년 겨울.

11. 여성국극 <백년초>(Baeknyeoncho) 5:56
작곡:임춘앵. 시연장소:동양극장. 시연년도:1958년.

12. 신민요 <동백꽃 타령>(Shinminyo - Dongbaekggot taryeong) 6:24
작곡:한일섭(1961년작곡). 작사:조영숙.

* 총 녹음시간(Total Time) : 71:26

* 소리:조영숙 조창:한혜선 아쟁:이관웅 대금:이성준 장구:조순애(Vocalist: Jo Young-Sook/ Co-vocalist: Han Hye-Sun/ Ajaeng: Lee Kwan-Woong/ Daegeum: Lee Sung-Joon/ Janggu: Cho Soon-Ae)

○ 기획·제작: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원.서초국악포럼 좌장.헤임코리아(주) 사장) 02-943-4390, 011-9098-4390
○ 음반 해설:이보형·이진원
○ 녹음:2006년 11월 11일 훈스튜디오
○ 마스터링 및 편집: 양정환(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예술기획탑 대표)
○ 제조:2006년 11월 30일 ○ 인쇄:도서출판 무송
○ 표지사진 : 조영숙(1953-4년경 여성국극 극락과 지옥 중에서)

* 여기에 수록된 자료들은 영업외의 목적이라면 마음대로 사용하셔도 됩니다.
* 이 음반의 제작비 일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금입니다. 지원에 감사합니다.

* 모든 국악음반의 자세한 내용은 제작자가 운영하는 비영리사이트 “정창관의 국악CD음반세계”(www.gugakcd.pe.kr)를 참조하시고, 전자책 국악음반 길라잡이 “정창관의 국악이 보인다”(www.gugakebook.com) 도 방문해주세요.
 
* 운영자가 1년에 한장씩 제작하고 있는 시리즈로, 올해는 여성국극으로 한 평생을 한 조영숙 선생의 여성국극 음반이다. 여성국극 음반은 귀하다. 오래간만에 재현하는 하는 곡들이라, 부족함이 많은 것 같다. 음반은 다음 주 수요일 이후 국악방송을 잘 들으면 무료로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1월달부터 국악원 자료판매실(02-580-3160)과 www.gugakcd.com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다.(2006.12.24)
 
* 해설서에서(지면 관계로 해설서의 곡 설명과 가사 내용은 생략함):

국극과 재담의 명인, 조영숙의 소리

이보형(한국고음반연구회 회장)

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이신 정창관 선생은 해마다 숨은 고로 명인 명창들을 찾아내어 그 음악을 담아 자비를 드려 음반을 내 드리는 고마운 일을 계속하고 있다. 올해에는 국극과 재담소리의 달인이신 조영숙 명창의 소리를 담아 음반을 내었다.

조영숙은 일제강점기 시대 활동하신 조몽실 명창의 따님이시다. 조몽실 명창은 오명창의 한 분이신 김창환 명창에게 소리를 배워 일제시대 이름을 떨치었던 명창이시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조영숙은 집안 어른들에게 소리를 배워 명창으로 성장하여 주로 국극 공연활동으로 이름을 떨치었다.

그는 기억력이 비상하여 국극시절의 소리와 아니리를 두루 기억하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그래서 여성국극시절 공연했던 소리와 아니리를 기억하여 되찾을 수 있었다. 그는 재담에 능하여 국극에서 해학적인 연기로 유명하였거니와 그 실력을 발휘하여 중요무형문화재 발탈의 어릿광대 역, 중요무형문화재 줄타기의 어릿광대 역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번에 음반에 담은 것은 주로 조상선, 임춘앵, 박동진 등이 작곡한 국극이다. 창극과 국극의 작가로 한일섭, 정철호 선생도 유명하지만 그 선배인 조상선은 작곡과 연출에서 단연 첫 손을 꼽던 분이시었다. 그가 작곡한 국극은 두루 유명한데 특히 ‘선화공주’, ‘만리장성’, ‘사월이 초파일’은 한 때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처럼 불려지기도 하였다. 그런 조상선의 작곡이 기록되지 못하고 사라지게 된 것을 정창관 선생이 조영숙이 보유한 조상선의 명곡들을 음반에 담아서 영구히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은 갸륵한 일이다.

정창관 선생은 몇 해 전에 박보아, 박옥진, 조순애와 같은 당시에 활동하였던 명창들의 소리를 담으며 곁드려 국극의 소리도 담은 적이 있지만 이번 음반에서는 조상선 등의 여성국극 소리를 집중적으로 담아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 음반이 여성국극 연구에 귀한 자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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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숙의 국악세계>를 기획.제작하면서.....

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 서초국악포럼 좌장. 헤임코리아(주))

이 땅의 잃어버릴 소리, 날아갈 버릴 소리를 후손에게 남기기 위해서 기획자가 제작하고 있는 '정창관 국악녹음집' 제9집 <조영숙의 국악세계>가 출반되었다. 1998년에 제1집 <강순영의 국악세계>, 1999년에 제2집 <조순애의 국악세계>, 2000년에 제3집 <인간문화재 김영택의 국악세계>, 2001년에 제4집 <박보아 박옥진 자매의 국악세계>, 2002년에 제5집 <신용춘의 국악세계>, 2003년 <김경성의 국악세계>, 2004년 <박홍남의 국악세계>, 2005년 <박대성의 국악세계>에 이어 올해 제9집이 발간되었다. 계획대로 매년 한 장이 발간되는 셈이다.

작년의 제8집은 1,200매를 제작하였다. 처음에 1,000매를 제작할려고 하였는데, 작년에 제작자가 KBS국악대상 출판 및 미디어 부문을 수상한 기념으로 200매를 더 제작하여 일련번호를 부여한 1,200매를 제작하였다. 연주자에게 300 매를 전해주고, 600 매는 나누어 주었다. 음반은 국악원 자료판매실(02-580-3160)과 예술기획탑의 쇼핑몰인 www.gugakcd.com에서 구 할 수 있다.

제9집은 작년에 녹음을 계획한 한 여성국극의 산증인 조영숙 명창의 여성국극 음악이다. 여성국극 음반은 귀하다. LP음반을 복각하여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나온 <선화공주>, <콩쥐팥쥐>,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정도이다. 조 선생님의 기억력은 대단하였다. 옛날 국극을 할 때의 재미나는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들을 수 있었다. 선곡을 할 때는, 선곡된 곡의 가사를 직접 즉석에서 적어 주곤 하였다.

녹음은 몇 번의 연기 끝에 11월 11일에 진행되었다. 녹음은 준비된 대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장구를 맡은 조순애 선생님의 도움으로 녹음은 더 빨리 진행되었다. 조창은 제자인 한혜선이 맡았고, 형제인 아쟁 이관웅과 대금 이성준이 수고하여 주었다. 끝나고나니 시간이 80분이 넘었다. 줄이는 작업을 해야만 하였다. 1, 2곡을 빼어야 하는데, 그러기는 아까워 조 선생님이 곡들을 들어보고 중간 중간 아쉬운 부분을 10분 정도 삭제하였다. 내가 원하는 방향의 편집방향이 아니었지만 조 선생님의 뜻이 완곡하여 따르도록 하였다. 그래서 어떤 곳은 연결이 약간 매끕럽지 못한 부분도 있다.

음반 디자인은 4년마다 바뀌었다. 지금까지 그림 선정은 국립광주박물관장인 이원복 선생이 해주었는데, 매년 폐를 끼치는 곳 같아, 올해부터는 연주자의 사진으로 표지를 꾸며보았다.

이 음반은 일련번호를 부여한 1,000 매 한정반으로 대부분 무료로 배부할 예정이다. 구입은 국악원 자료판매실(02-580-3160)과 예술기획탑의 쇼핑몰인 www.gugakcd.com에서 가능하도록 하겠다.

금년 7월에, 1896년에 녹음된 한민족의 최초의 녹음자료를 미의회도서관으로부터 입수하였다. 내년에는 ‘정창관국악녹음집 10’ 특집으로 이 음원으로 음반을 제작할 예정이다.

이 음반의 제작에 도와주신 분이 많다. 양정환(한국고음반연구회원)선생은 녹음과정과 편집, 마스터링을 꼼꼼히 챙겨주었다. 조영숙 선생님과 다리를 놓아준 노재명 관장 고맙고, 한국고음반연구회 이보형 회장님의 격려는 항상 힘이 되고, 바쁜신 중에서도 서문을 맡아주었다. 인쇄소 무송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후원금을 보낸 주신 여러분에게 고마움의 말씀을 드리며, 서초국악포럼 회원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이 음반을 제작하는데, 돈을 쓰는 것을 이해해주는 마눌님에게 또한 고맙다라는 말을 전한다.

올해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금 덕분에 편하게 음반을 제작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고마움을 전한다.


2006년 11월 말에 월계1동 현대아파트에서
정 창관

* 정창관 국악후원회 구좌 : 제일은행 광화문지점 130-20-389890 정창관
전화 : 02-943-4390 손전화 : 011-9098-4390
홈페이지:www.gugakcd.pe.kr / www.gugakebook.com 이메일:ckjungck@hanaf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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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숙의 국악세계 음반해설

- 여성국극과 한평생을 -

. 이진원(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조영숙 선생님은 1934년 함남 원산에서 출생한 후, 51년 여성국악동지사 입단한 것을 계기로 여성국극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가 여성국극의 길로 접어든 것은 아버지인 조몽실 명창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조영숙 선생님은 한국전쟁 발발 당시 원산사범학교에서 수학을 하고 있었고, <나란히 선 두 집>이라는 학생 연극에서 왈가닥 부인 역을 맡아 연기상을 받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나서 우연히 조선고전음악연구소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당시 박동실, 최승희, 최옥산, 안기옥 등의 예술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조영숙 선생님이 창극을 처음 접했던 것은 이북에서 피난 나와 있을 때였다. 광주에서 공연한 <만리장성>을 접했는데, 그 작품은 월북한 조상선이 작곡, 안무, 출연까지 한 창극이었다. <만리장성>을 본 기억은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선생님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빨치산들과 국방군과 학교 근처에서 교전을 벌이는 통에 학교를 그만두고 광주 언니집으로 옮기게 되는데, 그로서 학교 생활은 끝이었다.
그러던 중에 임춘앵씨가 여성극극동지사라는 단체를 만들어 광주에 머무르고 있었고, 그 길로 조영숙 선생님은 단체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어려서도 거의 보지 못했던 아버지를 만나 소리를 배울 기회를 얻게 된다. 그의 아버지 조몽실 명창은 공창식 명창에게 심청가를 배우고, 14세에 김창환의 문하로 들어가 김봉학 등 김창환의 아들과 춘향가와 흥보가를 배웠다고 한다. 이후 스스로 그 소리를 갈고 닦아 조선성악연구회에 들어가 창극 운동에 힘을 더했던 훌륭한 예술가였다.

그가 구술해서 편찬된 <예술인 조영숙의 끼와 멋, 그리고 쟁이 무대를 베고 누운 자유인自由人>에서 선생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이, 그녀의 아버지에게 제대로 소리를 배울 수는 없었다. 공연 단체를 따라다니던 조몽실 명창에게 소리를 배울 수 있었을 때는 그녀가 소리를 거의 하지 못하였을 때라 아버지 조몽실 명창은 조영숙 선생님에게 소리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어려운 고비를 겪어가며 겨우 시작한 단체 생활, 드디어 1952년 1월 25일 조영숙 선생님은 처음으로 <공주궁의 비밀>이란 작품에서 무대에 오르게 된다. 첫 무대에 오른 기쁨도 잠시, 연구생들은 어른들을 모시느라, 연습하느라, 공연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야 했다. 12시쯤 시작되는 첫 공연은 한 밤중이나 되어야 하루 두 번에서 네 번 하는 공연 스캐줄을 끝낼 수 있었다.
입단한 지 2년 5개월 혹은 6개월 만에 방자역을 맡게 된다. 임춘행 명창은 예술적인 면에서는 완벽을 요구할 정도로 엄하여서, 단원 전부가 다 잘할 때까지 연습을 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완벽주의가 임춘행 명창을 여성 국극계의 동작이나 소리 등을 정립할 수 있도록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여성국극동지사는 한 때 󰡐임춘앵과 그의 일행󰡑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흥행을 다녔다. 워낙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가짜 임춘앵 소동도 있었다고 한다. 흥행이 잘되니 버스를 대절해서 공연을 다녔다.
1953년 휴전이 되고 나서, 임춘행 단체는 도강증을 발급받아 서울로 돌아온다. 서울로 돌아온 임춘앵 일행은 명동의 시공관에서 곡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인 <바우와 진주목걸이>라는 국극을 무대에 올린다. 주역 바우는 임춘앵 명창이, 조영숙 선생님은 바우의 친구 재모역, 그리고 원로 탤랜트인 정애란 씨가 공주를 했다. 당시 여성 국극은 남성 혼성 창극과 경쟁을 해서 이길 정도로 많은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남성 명창들이 소리에 주로 공력을 쏟는 반면, 연기나 볼거리에 치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 국극이 극정으로 훨씬 완성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춘앵 단체가 마산 강남극장 개관 공연으로 <백호와 여장부>를 무대에 올린 후 마지막 날 임춘앵 명창으로부터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었다고 한다. 1954년 음력 섣달 그믐날 돌아가신 것이다.

조영숙 선생님은 임춘앵 단체에 입단한지 3년 만에 경리를 맡기도 하는 등 임춘앵 명창의 신임을 얻었고, 단체의 주축 배우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극락과 지옥>, <백년초>, <못 잊어>, <견우 직녀> 등의 작품에 출연하여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견우 직녀>에서는 임춘앵 명창과 한일섭 아쟁 명인이 금강산 타령을 공동으로 작곡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기 좋던 임춘앵 단체도 시간이 흐르자 문제점들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임춘앵 명창의 조카 둘이 단체를 떠나 새로운 국극 단체를 만들고, 임춘앵 명창 신변에도 많은 변화가 생겨 결국 마약을 하는 등 단체 운영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되어 갔다. 결국 임춘앵 명창의 대역을 조영숙 선생님이 맡는 등 임춘앵 명창이 없는 임춘앵 단체로서 한 동안 유지되니 그 어려움은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때 대역을 맡았던 작품으로 <선화공주>의 서동, <춘서몽>의 조신역 등이 있었다.

여성 국극의 쇠락은 1960년대 이후 영화와 텔레비젼 보급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대중들의 인기가 시들해지기 시작하니 흥행에도 많은 어려움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공연할 극장도 잡기 어려웠다. 1962년 남녀 혼성 창극은 국립창극단의 발족으로 숨통을 틀 수 있었으나, 여성 국극은 국가의 지원없이 더욱 더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1965년 풍림각 주인이 자금을 대고 김경수가 주관하여 여성 국극 멤버들이 모여서 일본 공연을 떠난다. <심청전>과 <왕자호동>을 주요한 레파토리로 하여 적은 보수지만 일본 순회를 하였다고 한다. 1966년에는 일본의 창경원이라는 한국음식점에서 6개월 동안 공연을 했는데, 작고한 가수 백년설 씨의 주선이었다고, 저녁 시간에 약식으로 <춘향전>을 올렸다.
이후 기나긴 국극의 암흑기를 거쳐 1980년대에 이르자, 여성 국극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날 조짐이 보였다고 한다. 음악 평론가 이백천 씨의 주선으로 롯데 클리스탈 볼룸에서 <바보 온달>이 약식으로 공연되었다. 또 심철호씨의 주선으로 롯데 호탤 36층에서 <춘향전>이 약식으로 공연되었다. 이후 소극장 운동이 벌어지고 극장주 겸 연출자 최유진 씨와 이광표 씨가 주축이 되어, 신촌시민극장에서 여성 국극 마당놀이 <춘향가>를 올리게 되는데, 큰 인기를 끈다.

1984년 우연히 이동안 명인이 발탈로 문화재로 지정받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찾아갔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무형문화재 79호 발탈의 이수자가 된다. 이수자가 된 이후 1995년부터 해마다 한 차례 발탈 공연과 여성 국극 공연을 계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1993년 12월에 한국여성국극협회가 창립되었는데, 국극의 암흑기 혹은 침체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에 생겼던 국극 단체를 통합하여 국가 보조금을 받아 한 해 한 작품 씩 올리는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 <바람이 머무는 곳>, <원효대사>, <황진희>, <환향녀>, <장화홍련전>, <춘향 연구> 등을 공연했다고 한다. 이러한 공연에서는 현대 관객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개량을 했다.

여성 국극에서 단역으로 시작된 조영숙 선생님의 국극 인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가 자신의 일생을 고백한 <예술인 조영숙의 끼와 멋, 그리고 쟁이 무대를 베고 누운 자유인自由人>에서 말했듯이 그는 자신의 국극의 길을 계속가고 있다. '아따 가다 보면 앞이 트일 것 아닌 게비여?'라는 그의 말처럼 여성 국극의 새로운 중흥이 그의 미래에 계속되기를 바란다.

* 조영숙:
- 1952년 <춘향전>에서 방자 역을 시작으로 국극 조연을 맡으면서 여성국극에 첫발을 디딤.
- 1954년<선화공주>에서 서동역으로 첫 주연.
- 1965년 우리국악단 입단.
- 198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전수조교 지정.
- 1998년 전국남도민요 경창대회 명창부 최우수상 수상.
- 현 중요무형문화재 제79호 박탈 전수조교
(사단법인) 발탈.전통극 보존회 이사장

* 상기 글은 김서경 구술정리, <예술인 조영숙의 끼와 멋, 그리고 쟁이 무대를 베고 누운 자유인自由人>(서울: 명상, 2000)를 참조하여 정리한 내용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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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 소개 :

장구: 조순애
- 1929년 9월 21일 전남 화순 출생
- 사사: 박기채. 조몽실. 조상선. 박초월. 박록주 등
- 1999년 정창관 국악녹음집(2) <조순애의 국악세계> 음반 출반

조창: 한혜선
- 중앙대학교 국악교육 대학원 졸업
- 1995년 서울종로국악경연대회 명창부 최우수상 수상
- 사사: 박계향. 조영숙. 정철호. 박송희
- 현 바닥소리 단원

아쟁: 이관웅
-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한국음악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 제5회 전국국악경연대회 기악일반부 장원 - 문화관광부 장관상
- 사사 : 이일구. 이성진. 임경주. 이세환
- 현 한푸리 가무악 코리아 음악감독

대금: 이성준
-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한국음악학과
- 전국 국악경연대회 종합대상 국무총리상 수상
-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이수자
- 사사: 이생강. 이성진
- 현 한푸리 가무악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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