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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명[부제포함] 정창관국악녹음집(8) <박대성의 국악세계>-아쟁산조(한일섭제 박대성류).시나위-
음반 번호 CKJCD-008 , CD 1 매
제작 / 기획사 정창관
발매 연도 2005
구 분 일반반
분 류 산조
업데이트 일시 2005-12-10
비 고
* 미의회도서관 기증(2006.4) * 영국도서관 기증(2006.8.3.). * 2011년 4월 26일 베트남 호치민 국립대학 한국학과 기증. * 2012년 7월 11일 한국-인도문화원 기증(India) * 2013년 4월 5일 World Musc Center in Korea 기증.



 
정창관국악녹음집(8) <박대성의 국악세계>>-아쟁산조(한일섭제 박대성류).시나위-

■ 아쟁산조-짧은산조(Ajaeng Sanjo-Short Version) 12:07
1.진양조 03:58
2.중모리 02:54
3.중중모리 02:32
4.자진모리 02:43

■ 아쟁산조-긴산조(Ajaeng Sanjo-Long Version) 22:26
5.진양조 09:18
6.중모리 04:31
7.중중모리 03:54
8.자진모리 04:43

9. 아쟁 시나위(Sinawi) 15:23

* 보너스 트랙(Bonus Track)
10. 아쟁 독주(Ajaeng Solo) - 다스름“세월” 4:15 총 54:26

* 아쟁:박대성. 장구:박환영.

○ 기획·제작: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원. 파루크코리아(주) 전무이사) 02-943-4390, 011-9098-4390
○ 음반 해설:이보형·박환영
○ 녹음:2005년 11월 12일 훈스튜디오
○ 마스터링 및 편집: 양정환(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예술기획탑 대표)
○ 제조:2005년 11월 30일 ○ 인쇄:도서출판 무송


* 여기에 수록된 자료들은 영업외의 목적이라면 마음대로 사용하셔도 됩니다.
* 이 음반의 제작비 일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금입니다. 지원에 감사합니다.

* 모든 국악음반의 자세한 내용은 제작자가 운영하는 비영리사이트 “정창관의 국악CD음반세계”(www.gugakcd.pe.kr)를 참조하시고, 전자책 국악음반 길라잡이 “정창관의 국악이 보인다”(www.gugakebook.com)도 방문해주세요.
 
* 운영자가 1년에 한장씩 제작하고 있는 시리즈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만든 음반은 자료적인 중요성, 남겨야 되는 음악에서 접근하였지만, 이 음반은 음악적으로도 경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성원을 바랍니다. 1,000 매 한정반으로 제작하는 도중 운영자가 KBS국악대상-출판 및 미디어 부문-을 수상하게 되어 200매를 추가하여 1,200 매를 일련번호를 부여하여 제작하였다.(2005.12.10)
 
* 해설서에서 :

다시 돌아 온 포근한 박대성의 아쟁 음악

이 보 형(한국고음반연구회 회장)

정창관 선생이 올해에도 좋은 음반을 내었다. 사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금 일부 포함)를 드려서 해마다 숨어 사는 명인 명창들을 발굴하여 그들이 간직한 귀한 음악을 취입하여 음반으로 내어 드리는 봉사활동을 해왔는데 이번에 낸 것은 박대성의 아쟁음악을 담은 음반이다.

박대성 명인이 누구인가? 그에 관하여 고로 국악인들은 모르는 이가 드물겠지만 젊은이들은 아무래도 생소할 것 같다. 그가 한국에서 활동하다가 근래에 일본에서 살다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박대성은 예향 중에 예향으로 꼽히는 진도 출신이다. 거기다가 판소리 명창 박동준의 아들이며 창극과 잡가의 명인 박보아, 박옥진의 남동생이고, 대금산조의 시조 박종기 및 중요무형문화재 진도 싯낌굿의 기예능 보유자 박병천과 한집안이니 국악의 명문 집안 출신이다. 말할 것도 없이 국악에 대한 체험은 더 없이 좋은 환경에서 자라 그의 온몸에는 국악의 진 멋이 짙게 물들려 있을 것임에 들림 없다.

박대성은 한일섭의 아쟁산조를 직접 이은 제일세대 수제자의 한 사람이다. 한일섭은 본디 판소리 명창이었지만 천재적인 음악 구성능력이 있어 수많은 신민요와 창극들을 작곡을 하였고 아쟁산조, 호적산조를 내였고 대금산조도 구음으로 구성하였다. 이것은 필자가 한일섭 명인에게서 직접들은 이야기이다. 국악인들이 한창 어려웠던 시절에 젊은이들을 자기 집 다락방에 기거하게 하며 아쟁산조, 대금산조를 가르쳤는데 그때 공부한 제자의 하나가 박대성이라 한다.

그러고 보면 박대성은 현재 명인으로 이름을 떨치는 윤윤석, 박종선, 원장현과 같은 명인들과 동문수학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동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활동하던 그가 돌연 일본으로 갔다. 그가 일본으로 간 내력에 관하여 잘 알 수는 없지만 짚이는 것은 그의 체질이 현재 현란한 국악풍토가 맞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것은 이번에 나온 그의 아쟁음반에 담긴 음악을 들어 보면 짐작이 간다.

이 음반에는 그의 아쟁음악이 네 곡 담겨 있는데 긴 산조, 짧은 산조, 시나위, 즉흥음악 아쟁독주 ‘무정세월’이다. 긴 산조는 초 치거나 장 치지 않고 담박하게 짠 것이다. 본인의 말로는 초보자들을 위하여 그렇게 짰다고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꾸깃꿋깃 잔가락 덩어리로 치닫는 현대 국악 성향에 대한 반감이 스며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짧은 산조는 좀 기교적인 점이 있는데 이것은 본인도 가락을 치밀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는 하는 것 같다. 실제로 우조와 계면조 그리고 청의 이동 등에 보이는 그의 성음 변화와 그리고 대단한 활대의 수법은 비범한 데가 있어 거장으로써 풍모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시나위는 매우 표정적이지만 물들지 않은 고제 시나위의 간결한 맛을 느끼게 한다. 요즈음 시나위 성음이 너무 산조 맛으로 물 드려 있어 박대성의 시나위 가락은 옛 시나위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보너스트랙으로 연주한 아쟁 독주, 다스름 ‘세월’은 처절한 비곡인데 최근 일고 있는 국악의 ‘세태에 대한 원과 한’을 담은 것으로 비친다.

정창관 선생의 일련의 음반 시리즈에 이번에도 좋은 음반을 내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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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명인의 삶과 예술

글/박환영(부산대학교 국악학과 교수)

“전설의 인물”

그를 어떤 이들은 그렇게 부른다. 실제로 그에게는 예술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깊은 심연처럼 경외스러운면이 있다. 윤윤석, 박종선, 김일구 산생과 함께 당대의 아쟁4인방 중 한사람이면서도 전혀 세간에 드러나 있지 않은 살아있는 전설의 인물인 셈이다.

박대성 명인(1938.6.25 - 현재)은 전남 진도의 밀양 박씨 가문 박동준씨의 2남2녀 중 작은아들로 태어났다. 한때 여성국극계의 자매스타였던 박보아가 바로 큰누님이며 박옥진은 작은 누님이 된다. 또 형님인 박병기는 국악협회장을 지냈으며 조카인 김성녀, 성애, 성아도 국악계의 큰 그릇들이다.또 대금산조의 창시자인 박종기 명인과 진도씻김굿 인간문화재인 박병천 명인과도 집안 일가가 되는 등 가히 국악계의 큰 가문이라 아니할 수없다.

많은 음악인들이 음악에 입문하게 된 동기가 그러하듯 박대성 명인 또한 비슷하다. 아쟁소리에 이끌려 학업마저 포기할 지경에 이른 동생을 보다 못한 박보아 누나는 음악 하는 것을 한사코 말렸다. 그러나 그가 결코 뜻을 꺽지 않자 재주가 없으면 아예 관두게 할 작정으로 이소희(김윤덕의 부인으로 가야금, 거문고, 아쟁 등 여러 악기를 두루 잘 다루었음)선생에게 데려가 시험적으로 아쟁을 배워보게 하였다. 그러나 진양 몇 장단을 가르쳐본 후 이소희 선생은 이 사람은 재주를 타고났으니 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하였다. 하는 수 없이 허락하며 기왕 하려거든 한갑득 선생께 거문고를 배우라 하였다. 왜냐하면 한갑득 명인은 바로 친 매형 즉 박보아의 남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거문고 학습은 얼마안가 관두게 되었다. 한갑득 선생이 워낙 술을 좋아했던지라 학습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던 탓도 있지만 자꾸만 끌리는 아쟁소리에 미련이 더 컷던 것이다.

대개 명인들의 학습방법이 그러했듯이 그 역시 초창기에는 거의 독학으로 마스터 하였다. 당시에는 수많은 여성국극단체들이 난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악사 품귀현상이 벌어져 어느 단체를 가든지 환영을 받았다. 이러한 환경은 오늘날 많은 명인들을 배출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여러 유파의 산조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특히 한일섭이란 걸출한 인물은 오늘날 아쟁산조의 산파역을 하게 된 인물로써 아쟁의 윤윤석, 박종선, 박대성 등 걸출한 제자들을 길러냈다. 이들 아쟁 3인방이 한일섭을 스승으로 섬기게 된 계기 또한 흥미롭다.

각자 여러 국극단체에서 활약하던 이들에게 여러 선배 음악인들이“스승이 없이는 뿌리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하였다. 이에 세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동시에 한일섭 선생을 찾아가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한다. 그러므로 세 사람의 가락은 비슷한 부분도 많으며 한일섭제의 가락에 각자의 개성에 따라 자기류를 개척하였던 것이다. 한편 김일구 명인은 장월중선 선생이 스승이 되며 서용석 명인은 정철호 선생이 스승이 되므로 전혀 다른 바디이다.

오늘날 여러 유파 가운데 유독 박대성류 산조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박대성 명인이 일찍부터 부산에서 생활한데서 기인한다. 더구나 세태에 환멸을 느껴 음악생활을 접고 80년대 후반 일본으로 건너가 버린 관계로 그의 산조가 널리 알려질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10여년이 넘는 결코 짧지 않은 타국생활을 정리하고 최근 다시 귀국한 그는 부산대학교와 개인연구소에서 꾸준히 제자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 다시 그의 산조가 부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없던 세월동안 국악계는 엄청나게 변했다. 국악관현악단의 시대가 정착되고 온갖 퓨전이 난무하는 등 예전의 공연환경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 달라진 공연환경만큼이나 음악연주 형태도 다양해졌다. 다양해지다보니 깊이 있는 음악적 학습이 부족해지고 그러다 보니 예전 같은 명인들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사라져버렸다. 허나 “명장 밑에 졸장 없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박대성 명인은 그야말로 진정한 아쟁의 대가이다. 그는 음악적 깊이뿐 아니라 아쟁의 활대(유미)쓰는 법을 많이 연구한 관계로 활대 다루는 방법이 아주 독특하고 섬세하다. 성음이 진부하지 않고 아주 깨끗하며 깔끔하다. 특히 이러한 성음은 창작음악 연주에 아주 적합한 톤 칼라라 할 수 있다. 또한 우조와 계면성음이 분명하며 즉흥음악에 아주 대단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박대성 명인의 음반이 몇 번 나올 기회가 있었으나 그때마다 번번이 무산되어 많은 이들이 안타깝게 여기던 차에 이제야 처음으로 세상에 나오게 됨을 아주 다행스럽고 기쁘게 생각한다.

< 곡목설명 >

1-4. 아쟁산조(짧은 산조)
박대성류 짧은 산조가 다른 유파의 산조와 다른 점은 긴 산조를 짧게 줄인 게 아니라 가락 자체를 긴 산조와 다르게 구성하였다는 점이다. 특히 긴 산조보다 더 배우기가 어렵다고 한다.

5-8. 아쟁산조(긴 산조)
대체로 무난하고 평이한 가락으로 구성되어 있는 편인데 이는 다분히 배우는 사람을 배려 한 것이라 한다.

9. 아쟁 시나위
대개의 즉흥음악이 그렇듯이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경우 흐드러지게 흠뻑 젖기가 쉽지 않다. 연주자 본인이 즐겨 연주하는 가락을 가져가지 못해 몹시 아쉬워하였다. 하지만 이대로도 그냥 좋을 뿐이다.

10. 아쟁 독주 : 다스름 "세월"
독특한 활대쓰기가 잘 드러나 있으며 아주 진한 계면으로 되어 있다. 곡 전반에 걸쳐 가슴이 저리도록 진한 고독이 짙게 배어나온다.

장구 :박환영

중요무형문화재 제1 호 종묘제례악 이수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이수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이수
국립국악원 정악연주단원 역임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대금수석 역임
경기도립국악단 악장역임
제3회 동아국악콩쿨 대상수상
현재 부산대학교 국악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박사과정


<박대성의 국악세계>를 기획.제작하면서.....

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 파루크코리아(주) 전무이사)

이 땅의 잃어버릴 소리, 날아갈 버릴 소리를 후손에게 남기기 위해서 기획자가 제작하고 있는 ‘정창관 국악녹음집’ 제8집 <박대성의 국악세계>가 출반되었다. 1998년에 제1집 <강순영의 국악세계>, 1999년에 제2집 <조순애의 국악세계>, 2000년에 제3집 <인간문화재 김영택의 국악세계>, 2001년에 제4집 <박보아 박옥진 자매의 국악세계>, 2002년에 제5집 <신용춘의 국악세계>, 2003년 <김경성의 국악세계>, 2004년 <박홍남의 국악세계>에 이어 올해 제8집이 발간되었다. 계획대로 매년 한 장이 발간되는 셈이다.

제7집은 1,000매 제작하여, 300매는 예전미디어를 통해서 판매용으로, 400매는 비매품으로 배부하였고, 300매는 연주자에게 전해 주었다. 예전미디어가 국악음반의 유통사업을 포기하였으니, 8집은 판매루트를 찾기가 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국악원 자료판매실(02-580-3160)에는 꼭 비치해 놓도록 하겠다.

제8집도 몇 분과 녹음을 약속, 번복을 거쳐, 마침내 양정환 선생의 주선으로 박대성 선생님의 아쟁 음반이 나오게 되었다. 박대성 선생님은 판매용으로 출반을 하여도 손색이 없을 실력인데도, 내 시리즈로 출반하게 되어 나로서는 매우 기쁜 일이었다. 지금까지 내 시리즈는 자료적인 목적으로, 전승을 목적으로, 남기는데 주안점을 두고 제작을 하였는데, 8집은 연주로도 경쟁을 할 수 있는 음반이 될 것 같아 행복하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로얄티를 지불하여 내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사람이 찾는 명반이 되어, 후속제작은 박대성 선생님이 진행하여, 선생님께 도움을 드렸으면 참 좋겠다. 이 음반도, 나는 일련번호를 부여한 1,000매+200 매 한정반으로 제작한다.

녹음은 11월 12일 이루어졌다. 첫곡 연주는 이방인이 녹음실 문을 열어(화장실로 착각) 실패하여 재녹음하였지만,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쟁산조 긴 것, 짧은 것, 시나위를 녹음하고, 선생님께 즉흥 독주를 요청하였는데, 제목은 ‘세월’이라고 명명하였다. 이국땅에서 오래 계시다고 돌아와, 이렇게 당신의 독집음반을 출반하기 위해 녹음을 하고 보니, 만감이 교차하리라 본다. 그 감정을 진한 계면으로 담아 ‘세월’이라고 명명한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이 음반의 제작에 도와주신 분이 많다. 양정환(한국고음반연구회원)선생은 박대성 선생님과의 다리를 놓아주시고, 녹음과정과 편집, 마스터링을 꼼꼼히 챙겨주었다. 장구를 맡아주신 박환영 교수님, 해설서도 맡아 주었다. 한국고음반연구회 이보형 회장님의 격려는 항상 힘이 되고, 자제분 결혼식 준비 때문에 바쁜신 중에서도 서문을 맡아주었다. 인쇄소 무송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매년 표지그림 선정을 해 주신 국립광주박물관 이원복 관장님, 후원금을 보낸 주신 여러분에게 고마움의 말씀을 드리며, 서초국악포럼 회원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이 음반을 제작하는데, 돈을 쓰는 것을 이해해주는 마눌님에게 또한 고맙다라는 말을 전한다.

이번에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금 덕분에 편하게 음반을 제작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고마움을 전한다.

2005년 11월 말에 월계1동 동신아파트에서
정 창관

* 정창관 국악후원회 : 제일은행 광화문지점 130-20-389890 정창관(국악음반후원회)
전화 : 02-943-4390 손전화 : 011-9098-4390
홈페이지:www.gugakcd.pe.kr / www.gugakebook.com 이메일:ckjungck@hanaf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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