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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명[부제포함] 정창관국악녹음집(7) <박홍남의 국악세계>-단가.판소리-
음반 번호 CKJCD-007 , CD 1 매
제작 / 기획사 정창관
발매 연도 2004
구 분 일반반
분 류 판소리
업데이트 일시 2004-08-21
비 고
* 미의회도서관 기증(2006.6.7.) * 영국도서관 기증(2006.8.3.). * 2011년 4월 26일 베트남 호치민 국립대학 한국학과 기증. * 2016년 9월 21일 미국 Westminster Choir College의 Talbott Library 기증.



 
정창관국악녹음집(7) <박홍남의 국악세계>-단가.판소리-

* 단가(Danga)
1. 호서가(Hoseoga) 7:30
2. 호남가(Honamga) 5:20

* 판소리(Pansori)
* 심청가 중 뺑덕이네 도망가는 대목 ~ 끝까지(Scenes from Simchungga)
3. 뺑덕이네 도망가는 대목 ~ 심봉사 목욕하는 대목 8:28
4. 방아타령 대목 5:26
5. 심봉사 눈뜨는 대목 ~ 끝까지 8:39

* 춘향가 중 이별가 대목(Scenes from Chunhyangga)
6. 이별가 대목 1 6:45
7. 이별가 대목 2 11:40

* 박홍남 보유 신갑진제 적벽가 중 동남풍 부는 대목 ~ 조자룡 활쏘는 대목(Scenes from Jukbyuk
ga)
8. 동남풍 부는 대목 7:09
9. 조자룡 활 쏘는 대목 7:32
* 녹음 총 수록시간: 68분 31초

* 소리:박홍남. 북:정화영.


○ 기획·제작: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훠룩시스템코리아(주) 전무이사 / 전화: 02-943-4390. 손전화:011-9098-4390)
○ 음반 해설:이보형(한국고음반연구회 회장) 노재명(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
신성수(연정국악원 근무)
○ 마스터링 및 편집 : 양정환(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예술기획 탑 대표)
○ 녹음 : 2004년 6월 19일. 서울 서초동의 훈스튜디오(대표:이훈/02-585-6585)
○ 제조 : 2004년 7월. (주)화음
○ 인쇄 : 도서출판 무송
○ 표지그림 : 화가미상(1542년 그림) <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蓮榜同年一時曹司契會圖)>

* 여기에 수록된 자료들은 영업외의 목적이라면 녹음하여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 이 음반의 제작비 일부는 한국문화예술진흥 기금의 지원금입니다.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또 이 음반은 여러분의 후원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모든 국악음반의 자세한 내용은 제작자가 운영하고 있는 <정창관의 국악CD음반세계(www.gugakcd.pe.kr)>를 참조하세요!
 
* 소생이 1년에 한장씩 제작하고 있는 시리즈입니다. 제작후기로 대합니다.

<박홍남의 국악세계> 음반을 기획·제작하면서....

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 훠룩시스템코리아(주) 전무이사)

이 땅의 잃어버릴 소리, 날아갈 버릴 소리를 후손에게 남기기 위해서 기획자가 제작하고 있는 ‘정창관 국악녹음집’제7집 <박홍남의 국악세계>가 출반되었다. 1998년에 제1집 <강순영의 국악세계>, 1999년에 제2집 <조순애의 국악세계>, 2000년에 제3집 <인간문화재 김영택의 국악세계>, 2001년에 제4집 <박보아 박옥진 자매의 국악세계>, 2002년에 제5집 <신용춘의 국악세계>, 2003년 <김경성의 국악세계>에 이어 올해 제7집이 발간되니 계획대로 매년 한 장이 발간되는 셈이다.

제6집은 1,000매 제작하여, 300매는 예전미디어를 통해서 판매용으로, 400매는 비매품으로 배부하였고, 300매는 연주자 및 제주도청(100매) 등에 전해 주었다.

제6집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늦게(2003년 12월에 출반) 출반되었지만, 올해 제7집은 후반기에 국악음반 길잡이(가칭) 책을 한권 쓸 계획 때문에, 일찍이 출반을 서두르게 되었다, 녹음은 2-3년 전부터 이보형 선생님이 추천한 박홍남 명창을 선정하여, 그의 제자인 신성수를 통해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녹음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두번 부르는 일없이 단번에 완료되었다. 제작자는 산유화가, 해방가 등도 녹음하고 싶었지만, 선생님은 지금까지 정말 녹음하고 싶은 것이 판소리라고 하면서 단가와 판소리만 하셨다. 85세의 연세로 저렇게 열정적으로 소리를 하는지 놀랄 정도였다. 아마 대한민국 최고령 독집음반 녹음일 것으로 확실시된다.

제7집은 일련번호를 부여한 1,000매 한정반으로 제작하여, 300매는 예전미디어를 통해 판매용으로 공급하고, 400매는 무료로 배부, 300매는 연주자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이 음반의 제작에 도와주신 분이 많다. 중간에서 여러 가지로 수고해 주신 신성수(박홍남 명창의 제자)는 곡 설명과 가사 채록을 맡아 주었고, 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장)은 선생님의 일생에 대하여 글을 주었고, 양정환(한국고음반연구회원)은 녹음과정과 편집, 마스터링을 꼼꼼히 챙겨주었고, 한국고음반연구회 이보형 회장님의 격려는 항상 힘이 되고, 바쁜신 중에서도 서문을 맡아주었다. 또 이보형 회장님은 2-3년전부터 박홍남 명창의 녹음을 추천해주신 분이기도 하다. 인쇄소 무송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매년 표지그림 선정을 해 주신 국립광주박물관 이원복 관장님, 후원금을 보낸 주신 여러분에게 고마움의 말씀을 드리며, 서초포럼 회원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이 음반을 제작하는데, 돈을 쓰는 것을 이해해주는 마눌님에게 또한 고맙다라는 말을 전한다.

이번에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지원금 덕분에 많은 돈이 절약되어 부담을 별로 느끼지 않고 제작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 고마움을 전한다.



2004년 7월 말에 월계1동 동신아파트에서
정 창관

* 정창관 국악후원회 : 제일은행 광화문지점 130-20-389890 정창관(국악음반후원회)
전화 : 02-943-4390 손전화 : 011-9098-4390
홈페이지:www.gugakcd.pe.kr 이메일:ckjungck@hanafos.com

(2004.8.21)
 
* 해설서 내용입니다:

박홍남의 판소리 음반 발매를 축하하며

이보형(한국고음반연구회장)

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 정창관 선생이 사비를 들여 내는 일련의 ‘정창관 국악녹음집’이 이번에는 ‘박흥남의 판소리’를 엮어 내었다. 박흥남이 보유한 단가와 판소리 몇 대목을 취입한 것인데 이 가운데 신갑진의 고제 적벽가가 담겨 주목되고 있다.

필자는 일찍이 박흥남 선생을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1990년 무렵에 문화재연구소에서 실시한 전국 판소리 실태조사차 만난 일이었다. 그때 조사된 그의 인적 사항과 학습 내력이 1992년에 문화재연구소에서 낸 ‘판소리 유파’라는 보고서에 실려 있다.

그리고 최근에 만난 것은 의외로 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 노재명 선생의 국악음반 박물관 개관 기념 공연에서였다. 그가 이 공연회에서 적벽가를 몇 대목을 불렀던 것인데 신갑진제라 하였다. 필자가 놀란 것은 신갑진이라는 명창의 이름이었다. 신갑진은 필자가 어려서 살던 고향의 이웃 마을에서 살았고 필자가 어려서 그의 공연을 더러 본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갑진은 전라북도 김제군 진봉면 심포리에 살았던 명창이고 가야금산조로 유명한 신관용의 당숙이 되는 이인데 소리는 고제로 하지만 목구성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서 그 근방에서는 인기가 대단하였다. 이 음반에 담긴 신갑진제 적벽가가 주목되는 것은 지금은 전승되지 않는 고제 판소리이므로 기록상으로 귀한 것이라 하는 것이다.

이 음반에는 박흥남 명창이 부른 신갑진제 적벽가 말고도 박동실제 심청가 몇 대목, 단가 호서가 및 호남가도 귀한 것이라 할 것이다. 80이 넘은 고령에도 소리를 능히 부른 박흥남 명창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 표지그림 :
화가미상, 1542년 그림 <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蓮榜同年一時曹司契會圖)>
종이에 담채 102x61cm, 국립광주박물관 소장
 
고려시대 이후로 양반 관료층이 상호간의 인화, 결속, 사교, 침목을 위한 각종 계 모임이 있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그림인 계회도는 참석한 인원 수 만큼 그려 나누어 가졌다. 1531년 김인후,정유길 등 7인이 같이 사마시 합격 후 11년 뒤인 1542년 경치 좋은 산수간에 모인 것을 기념한 그림이다. 이런 계모임은 시대가 내려오면서 양반만이 아닌 중인층까지 파급되었다.
(그림 선정 및 해설 : 국립 광주박물관장 이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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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남 명창의 예술과 삶

글: 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

박홍남(朴弘南, 호적:朴洪男)은 1920년 11월 17일(음력) 전라북도 부안군 행안면 궁안리에서 부친 박운종과 모친 장민경 사이의 4남 4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부친 박운종이 상쇠였다 하는데 박홍남이 부친에게 국악을 배운 것은 없다고 한다. 박홍남은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는데 큰딸 박옥희가 지금 50대 초반(2004년)으로 경기도 광주에 살면서 가야금, 소고, 판소리, 민요를 하고 있고 둘째딸 박아랑은 지금 40대 초반(2004년)으로 경기도 남양주에 살면서 가야금, 판소리, 민요를 하고 있다 한다. 박옥희는 김윤덕에게 가야금산조를, 박아랑은 박귀희와 오정숙에게 창을 배웠다 한다.

박홍남은 7세 때 마을 서당서 글 공부를 했고 서당 훈장 어른 임기화한테 가야금풍류와 시조를 사사했다 한다.
박홍남은 18세 때 고창으로 이사했고 부안농사학교를 입학하여 조금 다니다가 19세 때 고창에서 부안 사람 전옥수에게 8개월 동안 단가, 판소리 춘향가와 심청가, 북을 배웠다. 전옥수는 오래전에 작고하였는데 전남 장성 출신인 김옥돌의 제자라 한다. 김옥돌 또한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 한다.

박홍남은 22~23세 때 2년간 별님창극단에서 북, 소리 활동을 하였다. 또 박홍남은 24세 때 부안에서 이명보(상쇠)에게 2개월 동안 쇠가락을 사사했고 25세 때에는 1년 반 동안 부안에서 김바우의 아들 김대근에게 설장고를 배웠다. 이명보는 부안 상쇠로 유명한 김바우보다 약간 연하이고 김대근은 정읍 살던 안봉구에게 설장고를 배웠다 한다.

박홍남은 29~30세 때 군산에서 살았고 31~32세 때는 정읍권번에서 1년간 판소리 사범을 하였다. 그리고 30대 초반에 김홍집, 전도삼, 전재선 등과 같이 걸궁판을 누비며 장고 치고 판굿을 익혔으며 35세 때쯤 보성 산골 정응민을 찾아갔으나 별로 얻은 게 없었고 보름 정도 설북 치고 소리 좀 얻어 듣고 그냥 왔다 한다.

박홍남은 35~36세 때 4~5개월 동안 편재준에게 북, 가야금, 판소리 심청가와 흥보가 등을 배웠다. 편재준은 박영실(박동실 동생)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한다. 박홍남은 37세 때 부안국악원 원장을 역임하였다.

박홍남은 38세 때 부안여성농악단을 조직해서 9년간 단장을 맡았는데 이때 상쇠는 정읍 살던 여자 박모씨(작고)가 했다 한다. 박홍남은 38~39세 무렵에는 3주간 김제에서 신갑진에게 판소리 적벽가를 사사했다 한다. 일제 때 대다수 사람들은 경제 형편 때문에 5명창을 스승으로 모시기가 어려웠다 한다.

박홍남은 김토산, 김성수, 신영채, 편재준, 신갑진, 김숙자, 이기준, 이동안, 김대근, 이명보 등의 명인들과 음악 교류를 가졌다 한다. 신영채는 정읍 사람인데 소리를 맛있게 잘했다 한다.
이기중은 이일주의 부친으로 목이 좋았다 한다. 이기중은 말인 듯 아니리인 듯 소리인 듯 그렇게 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웬만한 고수는 이를 반주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한다. 이기중은 왈 명창으로서 충청도에 살면서 정읍 어느 회갑집에 초대받아 가서 소리를 할 때 박홍남이 북반주해 준 기억이 있다고 한다. 이기중은 박홍남보다 7-8세 연상이고 그 스승은 누구인지 모르나 고제로 소리를 했다 한다. 이기중은 본래 부여 출신인데 나중에는 서천에서 살았다 한다.
강경 권모씨가 북을 잘 쳤는데 오래전에 작고하였다 한다. 이 권모씨는 정읍군 고부면 백운리 사람으로 박홍남과 가까웠다 한다.

박홍남은 현재 단가 <호서가>(박홍남 작곡), 이기중제 단가 <죽장망혜>(이기중 사사), 박동실제 신작민요조 단가 <건국가>(8.15 해방가), 판소리 춘향가 중 <하루 가고>(편재준 사사), 신갑진제 적벽가 중 <동남풍 비는 데>~<조자룡 활 쏘는 데>(신갑진 사사), 박동실제 흥보가 중 <흥보 가난타령>~<박타령>(40~50분/편재준 사사), 아쟁산조, 판소리 북 반주, 풍물 설장고, 쇠가락 등의 음악을 보유하고 있다 한다.

2001년 7월 7일 박홍남이 경기도 양평 국악음반박물관 개관 기념 공연에 출연하여 부른 판소리 적벽가는 신갑진한테 배운 것이고 단가 <호서가>는 박홍남이 1980년 무렵에 작곡했다 한다.
박홍남은 학생 때 정읍 시내에서 이동백이 인력거 타고 가는 걸 봤고 당시 정읍의 공연장과 이리에서 이동백이 소리할 때 돈이 없어 몰래 들어가서 봤는데 이동백은 키 크고 얼굴, 풍신 좋고 소리를 아주 잘했다 한다.

박홍남은 46세부터 지금까지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부여국악원 원장을 맡은 적이 있다. 박홍남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충남팀의 공주 장승제, 보령 소년 등불놀이, 붕기 풍어놀이, 저산 8읍 길쌈놀이, 서산 볏가릿대, 청양 동화제, 한산 모시 짜는 것 등을 연출했다 한다.
박홍남은 현재 충남 무형문화재 제4호 산유화가 예능보유자로서 활동 중인데 박홍남이 이 산유화가를 발굴한 것은 1970년 무렵의 일이라 한다. 산유화가 예능보유자로 함께 지정되었던 이병호는 충남 부여군 세도면 가회리 3구 출신으로 박홍남보다 8세 연하인데 5~6년 전에 작고하였다. 이 산유화가의 전승계보는 임윤필→김학수→홍준기→박홍남·이병호로 이어져 내려왔고 이 가운데 홍준기는 충남 부여군 가회리 1구에서 살다가 오래전에 타계했다 한다.

박홍남은 1990년 한국예총 부여지부 초대지부장 역임하였으며, 지역의 민속을 발굴 작품화 시켜 민속예술을 널리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다. 2003년 남북음악회 '2003 겨레의 노래뎐'에 산유화가로 공연으로 갈채를 받았으며, 현재 부여국악원에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여기 저기 민요와 토막소리로 음반이 나온 것은 있으나, 85세 연세에, 늦겠나마 정창관 선생님의 노력으로 이렇게 독집음반이 출반된 것은 고마운 일이다.


* 박홍남 명창 수상 경력 :

부여 산유화가로 민속경연대회 문공부장관상 수상('76)
붕기 풍어놀이로 대통령상 수상('77)
저산팔읍 상무사놀이로 문공부장관상 수상('79)
한산 저산길쌈놀이로 국무총리상 수상('81)
공주 탄천 장승제로 국무총리상 수상('84)
서산 볏가리쌓기놀이로 국무총리상 수상('85)
청양 동화제로 문공부장관상 수상('89)

* 고수: 정화영

- 1978 김동준선생께 고법 사사
- 현 서울시 중요무형문화재 제25호 판소리 고법 보유자




곡 설 명

신성수 (박홍남 명창 제자/연정국악원 근무)

1. 단가 호서가 :

옛 충청지역의 지명을 엮어 우리나라를 칭송하는 단가이다. 충청 지역의 소리꾼들이 부르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찾기 어렵고 박홍남이 부르는 단가 호서가는 1980년대 부여 향토사학자인 홍사준이 문헌에서 찾아 박홍남에게 곡을 지어보라고 해서 박홍남이 사설에 곡을 붙여 오늘 부르게 되었다. 박홍남이 평소 즐겨 부르는 단가이다

2. 단가 호남가 :

요즘은 대부분 호남가를 짧게 잘라 부르는데 박홍남이 옛날 기억을 살려 호남가 전곡을 호서가와 대비하여 부르게 되었다. 예전에 임방울 명창이 주특기로 자주불러 유명해진 단가이다.

3. 판소리 심청가 :

이 심청가는 박홍남이 17.8세 경에 부안의 전옥수라는 분한테 북을 배우면서 배우게 된 소리이다. 전옥수는 고수인데 소리도 좀했다고 한다. 지금은 접하기 어려운, 아주 귀중한 소리제이다. 곡은 뺑덕이네 도망가는 대목부터 끝까지이다.

4. 판소리 춘향가 :

이 춘향가는 박홍남이 고창에 살때(22.3세 경) 편재준이라는 맹인 퉁소 명인을 모시고 한동안 소리와 북을 배웠는데 바로 그때 익힌 소리라 한다. 편재준의 말에 의하면 이 춘향가는 박동실 바닥이라고 한다. 지금은자취를 찾아 보기 힘든 매우 소중한 박동실제 춘향가로서 본 음반에서 고령의 박홍남 명창이 대단히 열창을 해주었다. 곡은 이별가 대목이다.

5. 판소리 적벽가 :

이 적벽가는 박홍남이 서른 즈음에 김제 만경의 신갑진이라는 명창을 집으로 찾아가서 사나흘간 배워온 소리라고 한다. 당시 신갑진의 적벽가가 좋다는 소문이 있어서 배우게 된 것이라 한다. 고제 판소리의 진수를 보여준다. 박홍남 명창이 장기로 삼고 있는 소리이다. 곡은 동남풍 부는 대목부터 조자룡 활 쏘는 대목까지이다.



사 설


신성수 (박홍남 명창 제자/연정국악원 근무)
1. 단가 호 서 가

목천나무 배를무어 면천수에 띄워놓니 당진으로 흘러놓아 호서를 돌아보니 곤륜산 중조봉은 백두산의 연산이라 황하수 내린물이 황간수 되단말가 물마다 해미어늘 뫼마다 서산이라 산수도 좋을시고 인걸이 대흥하니 한산에 장양이요 노성에 공자나사 이단 멀리하고 인륜을 신창이라 부자유친 회인이요 군신유의 전의로다 장유유서 예산하니 이 아니 덕산인가 만학천봉 상응하니 국가의 아산이라 천수만파 내린물이 골골마다 서천하니 이렇듯이 많은 물을 게뉘랴서 진천하며 저렇듯이 많은 뫼를 게뉘랴서 진잠할고 성은이 물이 되야 흘러가니 은진이라 요순태평 남은 덕을 성상이 부여하사 천지같이 넓은 덕을 무슨 도로 보은할고 성상이 회덕하사 천리동방 비인이라 황성이 지공하니 읍읍이 공주로다 삼백육십 넓은 홍주 성상이 영동하사 청안을 숭상하니 각읍이 청주로다 충신을 권면하니 처처마다 충주로다 어유화 성은이야 우순풍조 천안하사 옥야천리 옥천땅에 해해마다 연풍하니 문의도 하려니와 가색을 힘쓰리라 못을 메워 밭을 가니 이아니 평택인가 산전에 피씨 심어 직산이 되었구나 농극에 틈을 얻어 돌을 모아 결성하고 석성이 굳어지니 사해 연기가 많게 된다 이삼월 영춘비에 괴산의 잎이 피고 제천의 언덕위에 푸른 풀만 고았거늘 승지에 그늘지니 이 아니 음성인가 저는 나귀 취어타고 녹수청산 들어가니 이산 저산 정산없이 풍경도 그지없다 춘일이 온양하야 화기를 자아내니 붉은 꽃이 단양이요 푸른 잎이 청양이라 화초 섞여 내린 물이 남포바다 되단말가 날아가는 비홍산아 네어디로 행하느냐 풍광을 돌아보니 임천이 여기로구나 태안성세 일이 없어 산수구경을 다니노라 한하나니 이내몸이 청풍고산 이 아니며 뉘로 하야 만세보령 하오리오 연기봉에 춤을 추고 오천수에서 노래할제 좋은경개 다 구경하니 청풍명월이 이 아니냐


2. 단가 호남가

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랴하고 제주어선 빌려 타고 해남을 건너갈제 흥양의 돋은 해는 보성을 비쳐 있고 고산의 아침 안개 영암을 둘러있다 태인하신 우리성군 의약을 장흥허니 삼태육경은 순천심이요 방백수령으 진안군이라 고창성을 높이 앉어 나주 풍경 바라보니 만장운봉이 높이 솟아 칭칭한 익산이요 백리 담양 흐르난 물결은 구부 구부 만경인데 용담의 맑은 물은 이 아니 용안처며 능주의 붉은 꽃은 골골마다 금산이라 남원으 봄이 들어 각색 화초 무장하니 나무나무 임실이요 가지가지가 옥과로구나 인심은 화순이요 풍속은 함열인데 기초는 무주하고 서해는 영광이라 창평한 고은 시절 무안을 일삼으니 사농공상은 낙안이요 부자형제는 동복이로구나 강진의 상고선은 진도로 건너가고 금구 금을 일어 쌓인게 김제로다 농사허던 옥귀 백성 임피상을 둘러있고 정읍에 청맥비는 납세 인심 순창이요 고부청청 양류색은 광양춘풍이 새로워라 곡성으 숨은 선비 구례도 하거니와 흥덕을 힘을 쓴즉 부안고가 이 아니냐 우리 호남 좋은 정치 전주 백성 거느리고 장성으로 밀어 쌓아 장수로 둘러놓고 여산에 칼을 갈아 남평루에 꽂아놓니 우리 호남 좋은 정치를 어느 국이 당할소냐 아니 놀고 무엇을 할거나 사업을 하며 놀아보세


* 판소리 심청가 중 뺑덕이네 도망가는 대목 ~ 끝까지

3. 뺑덕이네 도망가는 대목 ~ 심봉사 목욕하는 대목

그때에 심봉사가 뺑덕어미를 주막밖에서 잃고 황성길을 떠나는데

(중모리) 날이 차차 밝아 오니 주인을 불러 하직허고 황성길을 올라간다 주막밖을 나서더니 그래도 생각이 나서 아이고 여 요년아 세상천지 몹쓸년아 눈뜬가장 배반키도 사람치고 못할턴데 눈어둔 날버리고 네가 무엇이 잘될소냐 새 낭군다리고 잘살어라 너와 나와 둘이 오육년동안으 기약을 하던 기억이 오늘날 생각허니 내가 허망한 사람이로다 잘가거라 요년아 네 그럴줄을 내 몰랐다 더듬 더듬 올라갈제 이때가 어느땐고 오뉴월 한더위라 태양은 불빛같고 더운땀을 휘뿌릴제 한곳을 점점 찾어가니 치어다 보느냐 만학은 천봉이요 내려굽어 보니 백사지땅이라 허리 구부러진 늙은 장송은 푸른 빛을 띠어있고 시내유수는 청산으로 돌고 이골물이 주루루루 저골물이 콸콸 열이 열두골물이 한티로 합수쳐 천방져 지방져 얼턱져 구부져 방울이 버금져 떠나가고 청산 유수는 골골이 흘러내리어 사람으 정신을 모두뺀다

(중중모리) 심봉사 좋아라 물소리 듣고 반긴다 얼씨구나 절시구 상하의복 훨훨 벗어 되는데로 내던지고 물이가 풍덩 주저앉어 물한줌을 덥벅 쥐어 양주질도 퀄퀄하고 또한줌을 덥벅 쥐어서 활궁둥이 문지르며 아 시원허고 장히좋다 유월 영천더운날에 창파수에 목욕하니 없는 정신이 새로나고 없는 정신이 새 돋는다 이리로 툼벙 저리툼벙 툼벙툼벙 잘논다

(아니리) 아 심봉사가 이리 한참 목욕을 하고 바깥에 나와 지 의복을 찾아보니 자기 의복을 어떤놈이 가져갔던 것이었다 자탄으로 울음을 우는디

(진양조) 떳다 절컥 주저앉으며 엇따 이 강도독놈들아 허다헌 부자 집에 먹고 쓰고 남은 재물이 허다이 많건마는 앞못보는 내 의복을 가져갔느냐 앉은뱅이도 못될 놈들아 옷가져 오라고 울음을 운다

(아니리) 아 그때여 무릉촌 태수가 황성갔다 오는 길에 심봉사 자탄하는 것을 보고 활기 벗은 것이 매우 우습겄다 그 곡절을 물어보니 심봉사가 잠깐 곡절을 아뢰는디

(중모리) 예 소 아뢰리다 예 소맹인이 아뢰리다 소망은 다른 봉사 아니옵고 황성잔치가는 봉사온디 간밤에 이 아래 주막에서 계집을 잃고 나오다가 날이 심히 더웁기에 모욕을 허고 나와보니 어떠한 도적놈이 옷을 모두 가져갔소 찾어주고 가시던지 옷을 한벌 주시던지 양단간의 하여주오 옛글에 이르기를 적선지가에 필유여경이요 적악지가에 필유여악이라 하였으니 여보 태수장 살펴주오 태수 듣고 가긍하야 옷한벌을 내어주니 심봉사 받어 입고 백배치사 하직하고 황성길을 올라갈제 낙수제를 얼른 넘어 녹수정을 당도하여 시원헌 그늘을 찾어 쉬여 앉어서 자탄을 헐제

4. 방아타령 대목

(아니리) 아 근데 그 근처에 부자집 방앗간이 있든가 여인들이 모여서 방아를 잠깐 찧는데 심봉사와 하는 말이 아 저기 가시는 맹인 여기와서 방아는 찧던 못허먼 한번 방아찧는 것을 멕이고 점심이나 먹고 가오 심봉사가 배고픈짐에 달려들어서 한번 멕여 보는디 꼭 이리허던 것이었다

(중중모리) 어유화 방아요 어유화 방아요 덜그덩 떵떵 잘 찧는다 어유화 방아요 이 방아를 누가 냈냐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경신시 강태공의 조작방아라 어유화 방아요 덜그덩 떵떵 잘 찧는다 어유화 방아요 귀목위소 유소씨는 이런 남기로 집을 짓고 신농씨 삼백초도 이런 남기로 만들었네 어유화 방아요 덜그덩떵떵 잘찧는다 어유화 방아요 태고라 천황씨는 목덕으로 왕을 삼었으니 남기 아니 중할소냐 어유화 방아요 어유화 방아요 오고대보 죽은 후에 방아소리가 끊쳤더니 우리 승상 직위후에 국태민안 세화연풍 하물며 맹인 잔치 고금에 처음이라 우리도 태평성대 방아타령을 불러보세 어유화 방아요 덜그덩 떵떵 잘 찧는다 어유화 방아요

(아니리) 아 이렇게 방아를 다 찧고 점심을 얻어먹고서 배가 빵빵허니 또 황성길을 한번 더 올라가던 것이었다

(중모리) 올라간다 올라가네 황성길을 올라갈제 갓 벗어 등에 메고
웃옷 벗어 어깨걸고 소상반죽 열두마디 지팡을 왼손에다 검쳐 쥐고 탄탄대로 너른 들에 갈지자 걸음으로 시름이 없이 올라갈제 산천의 각새들은 심봉사를 비양허여 비지지지 울음을 우니 심봉사 기가 막혀 묻노라 각새들아 너희는 무삼 한이 있어 진정체혈 울음을 우느냐 나는 이길로 황성을 간다마는 누구를 보랴고 황성 가리

(자진모리) 황성문밖 다달어서 중로로 내려갈제 골목 골목 거리거리 소경천지가 되얐네 골목군사 영기 메고 골목 골목 다니면서 각도각읍 소경님네 어허 오늘 잔치 망종이니 어서 급히 참여하오 나날이 오신 소경 이리 가고 저리 갈제 그때여 심봉사는 파방판에 당도를 하여 성칭을 하고 들어가 말석에 자리를 주니 시름없이 앉었구나

5. 심봉사 눈뜨는 대목 ~ 끝까지

(아니리) 그때에 심황후는 부친 상봉을 하려하고 맹인잔치를 시작하였는데 망종일이 되도록 부친상봉을 하지 못허니 자탄으로 울음을 울던 것이었다

(진양조) 천지신령이 이다지 무심터냐 황송헌 처분을 모아 맹인잔치 하옵기난 불쌍한 우리 부친 상봉할까 바랬더니 어이하여 못오시오 당년 칠십 노환으로 병이 들어서 못오시오 불효여식 날 버리고 애통자진 허시다가 세상을 버리셨소 몽운사 부처님으 연금으로 감은 눈을 뜨옵시고 맹인축에 빠지셨소 오날 잔치 망종인데 어이하면 상봉을 허리 방성통곡으 울음을 운다

(아니리) 눈물 씻고 궁전을 살펴보니 열자에 앉은 소경 받은상 물리치고 말석에 오신 소경 처음상을 받었겄다 황후 분부하시되 저기 앉은 저 맹인 처자가 있나 (창조)심봉사는 처자 말만 들어도 두눈에 눈물이 빙빙 돌며 본사를 낱낱이 아뢰는데

(중모리) 예 소 아뢰리다 예 소 맹인이 아뢰리다 소맹이 사옵기는 황주 도화동에 거주옵고 성은 청송 심가요 이름은 학규온데 곽문에 취처를 하여 이십에 안맹하고 사십에 상처를 하여 강보에 싸인 자식을 동냥젖을 얻어 먹여 근근히 길렀는데 효성이 출충하여 아비 눈 어둔 것이 평생에 한이 되야 남경장사 선인들게 삼백석에 몸이 팔려 인당수에 죽었소 자식 팔어 먹은 놈이 세상 살어 무엇하오 몹쓸년의 인간을 어서 급히 죽이어서 능지 처참을 시켜주오 감은 눈에 피눈물이 방울이 져서 떨어진다

(자진모리) 심황후 이말 듣고 산호 주렴 걷어 안고 버선 발로 우루루루루루 달려들어 부친으 목을 안고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뜨셨소 내정성이 부족턴가 몽운사 하주승께 공들이라 하옵더니 여태 눈을 못뜨셨소 어 이게 누구여 나는 자식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오 심황후 이말 듣고 아이고 아버지 눈을 뜨고 나를 보오 인당수 풍랑중에 매시 두각을 하옵삽든 심청이 살아왔소 어 이게 왠말이냐 내 딸 심청은 인당수 죽었는데 여기가 어디라고 살아오다니 왠말이냐 이것이 꿈이련가 이것이 생시련가 꿈이거든 깨지말고 생시거든 어디보자 더듬더듬 더듬더듬 더듬더듬 더듬더듬 이리 한참 더듬더니 난데 없는 오색체운이 황극전을 뒤덮더니 청학 백학 난봉이며 공작이 운무중에 먼 눈을 치번쩍 딱 떴겄다

(아니리) 심봉사가 눈을 다 뜨고 보니 세상만사를 잘 알아볼 것두 있구 웂는 것도 있던 것이었다 하도 반가와서 한번 노는디 꼭 이리 놀던 것이었다

(중중모리)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나 좀도 좋네 갑자사월 초파일 몽중으 너를 보고 눈을 뜨고 다시 보니 그때 보던 얼굴이라 얼씨구나 절씨구 황극전 높은 잔치 맹인잔치도 장관이오 열자 맹인이 눈을 뜰제 춤출 무자가 장관이로다 얼씨구나 절씨구 송천자 보아도 만만세 심황후 얻기도 만만세 성수무광을 누리소사 얼씨구나 절씨구 아아아아 어허어허 얼씨구 얼씨구 좋다


* 판소리 춘향가 중 이별가 대목

6. 이별가 대목 1

아이고 어머니 어머님은 건넌방으로 건너가소 도련님이 내일은 부득불 가신다 허니 밤새도록 말이나 하고 울음이나 실컨 울고 보낼라요

(중모리) 춘향 어머니 이말을 듣더니 못허지야 못허지야 네맘 대로는 못허지야 저 냥반 가신후 뉘 간장을 녹이랴느냐 각지어라 각지어 보내여도 각을 짓고 따러가도 각을 지어라 여필종부가 지중허니 늙은 어미는 쓸데가 없구나 너의 년놈이 죽던지 살던지 나는 모른다 나는 몰라 춘향모친 건너방을 건너가서 회독 쓰고 앉었을 때 춘향이 새로 울음을 내어 아이고 도련님 참으로 가실라요 나를 어쩌고 가실라요 나를 죽여 이 자리에 묻고 가면은 영이별이 되지마는 살려두고는 못가리다 이렇다시 울음을 울제 동방이 희번이 밝아온다

(아니리) 방자 총총 나오더니 아이고 여보 도련님 잘가시오 잘있으오 하면 그뿐이지 무슨 이별을 뼈가 노긋 노긋 하드락 헌단 말이오 내행차는 벌써 오리정까지 떠날 작정을 하고 사또께서는 야단이 났소 도련님 어디갔다구 (창조)도련님이 하릴없이 방자따라 간연후에 춘향이가 하도 허망하야 향단아 예 술상하나 채리어라 도련님이 가신다니 오리정을 나가 술이나 한잔 건네보자

(진양조) 술상차려 향단들려 앞세우고 오리정 동림숲을 울며 불며 나가더니 치맛자락을 끌어다가 눈물흔적을 씻치면서 잔디땅 너른 곳에 술상차려 옆에 놓고 두다리를 쭉뻗고 정갱이를 문지르며 아이고 어쩌리 이팔 청춘 젊은 년이 낭군 이별이 웬일이며 독수공방을 어찌 살으라고 날버리고 가실라요 이렇다시 울음을 울제

7. 이별가 대목 2

(잦은몰이) 내 행차 나오랴고 쌍교를 고르거니 독교를 고르거니 쌍교 독교 고른다 마두 병방 좌우나졸 쌍교를 옹위하야 구름같이 나올적에 그 뒤를 바라보니 그때의 이도령은 비룡 같은 노새등에가 뚜렷이 올라 앉어 제상 만난 사람처럼 훌쩍훌쩍이 나올적에 동림숲 바라보니 춘향의 울음소리가 귀에 선뜻 들리거날 이얘 방자야 예 이 울음이 웬 울음이냐 춘향이 울음소리가 분명허니 어서 건너갔다 오너라 방자 충충 건너 갔다오더니 (창조)춘향이가 울음을 우는데 사람으로는 못보겠소

(중모리) 도련님이 이말을 듣더니마는 말 아래 급히 나려 동림숲을 들어가서 춘향이 목을 안더니만 아이고 춘향아 니가 이 울음이 왠일이냐 니가 천연히 집에 앉어서 잘가라고 말을 하여도 장부 간장이 녹을턴데 삼도 네거리 쩍 벌어진데 니가 이 울음이 왠일이냐 춘향이 기가 막혀 아이고 여보 도련님 술한잔을 부여 잡고 옛소 도련님 약주 잡수오 금일 송군수진취니 술이나 한잔 잡수시오 오냐 춘향아 술받으마 합환주는 먹으려니와 이별허자 주는 술은 내가 어찌 먹고 가겄느냐 이삼배를 잡수더니 춘향이 거동을 보소 한손으로는 말고삐를 잡고 또한 손으로는 등자 디딘 도련님 다리 잡고 한양이 머다 말고 소식이나 종종 전해주오 백마는 가자고 내굽을 치는데 임은 꼭 붙들고 아니 놓네 아이고 여보 도련님 참으로 가시거담 나를 죽이고 가면 어쩔라오 이렇다시 일어날제

(자진모리) 방자 보다 답답하야 에랴 툭쳐 나귀 몰아 도련님 어서 가사이다 다랑 다랑 다랑 다랑 다랑 다랑 떠나갈제 이만큼 보이다가 저만큼 보이다가 나비만큼 불티만큼 아주 망종 고개 아주 깜박 넘어가니 그림자도 못 보겄구나 춘향이 기가 막혀

(중모리) 가네 가네 하더니만 이제는 영 가셨네 내 신세를 어쪄 집이라고 들어가면 우리 도련님이 안고 눕고 스고 자던 디며 오르 나려 신벗던데 옷벗어 걸던 디를 생각나서 어이 살거나 부질없이 이몸이 삼기어 사세가 난처로구나 죽자하니 청춘이요 사자하니 고생이라 죽도 사도 못하는 심사를 어느 누구가 어이 아리 하루 가고 이틀가고 열흘 가고 한달 가니 날 가고 달이 가고 해가 지낼수록 임으 생각이 뼤속어 든다 도련님 계실때난 밤도 짜루어 한이더니 도련님이 떠나신날 부터는 밤도 길어서 원수로구나 도련님 계실적에 바느질을 하랴기면 도련님은 책상을 놓고 소학 대학 예기 춘추 무시 상서 백두시를 역력히 오여가다 나를 흘끗 돌아보고 와락 뛰여 달려들어 내의 목을 부여안고 얼씨구나 내사랑이지야 하던 일도 생각이요 무심코 앉었다가 귀에 대고 놀래키와 그 정도 간절헌건 임의 이별 허기 전에 줄연 한장 써서주되 시연유죽 산창하에 불괘청음 대하기를 붙여 두고 보랴기며는 심상히 알았더니 이제와 생각을 허니 이별을 하실랴고 실참으로 쓰셨든가 임의 생각이 절로나네 행군견월 삼신색으 저 달이 비쳐도 임의 생각 춘풍도리 화개야으 꽃만 피어도 임의 생각 야우문령 단장성은 비소리 들어도 임의 생각 추절가고 동절오니 명사백해를 바라보며 주루루루 기일룩 울고 가는 기러기 소래도 임의 생각 앉어 생각 누워 생각 생각 끝일 날이 전히 없고 잊을 날이 있어야지 모진 간장 불이 타며 독수공방 임그린 줄 어느 누가 알어주리 그저 퍼버리고 울음을 우네

* 박홍남 보유 신갑진제 적벽가 중 동남풍 부는 대목 ~ 조자룡 활쏘는 대목

8. 동남풍 부는 대목

그때에 주유는 병세가 위중하야 눕고 일어나지를 못하니 공명이 노숙을 대동하야 좌우를 물리치고 주유병세를 볼제 냉약을 쓰는지라 냉약이라 하면은 서늘헌것이요 서늘허면은 바람이라 주유 질색하야 아무 말을 않고 누웠으니 공명이 다시 여짜오되 십육자 글을 써서 다시 올리니 주유가 보고 아무말이 없겄다 욕파조병이면 의용화공하고 매사불길허니 흠 동남풍이라 주유 여짜오되 바람이라 하는 것은 하늘에 조화온데 어찌 인력으로 하오리오 공명이 여짜오되 모사는 재인이요 성사는 재천이라 나 할일 다했으니 하늘에 뜻이야 어찌 알리요 병졸 오백만 내에게 허락해 주신다면은 노숙과 병행하야 남병산을 올라가서 동남풍을 한번 빌어보리다

(자진모리) 주유가 이말을 반겨듣고 장졸군사 오백명을 남병산으로 보내여 단을 묻게 할제 공명이 산에 높이 올라 지세를 살펴 보아 칠성단을 모으랴할제 장수 유령을 불러 여봐라 너는 동북방 서사와 남방 길일을 봐 중앙의 침달할세 방우는 이십사방이요 매일층고 삼척이니 합고가 구척이요 장광이 일백 이십척 단은 삼층으로 모아 명은 오층 칠성단이라 두렷이 세운후어 하일층 이십사면에 기호를 세울적에 오방제신 표를 헌다 동의 청룡 일곱이니 각항저방 심미기 교룡낙토오호표로 청룡기를 그려 꽂고 남의 주작 일곱이니 정귀유성의 장익진이라 간양장마 녹사인으로 주작상을 그려주며 응하라 하고 서의 백호 일곱이니 규루위묘 필자삼이라 구낭치계오후원으로 백호기를 그려꽂고 중앙의 황신대기 복희씨 그린 팔괘 추천 삼백 육십괘를 둥두렷이 세운후어 그 옆에 사명기난 붉은 바탕 금자로 새겼으되 대한신충무호 제갈량이라 두렷이 세운후어 상일층 네사람은 속발관 헌남포의 붉은신을 신겨두고 하일층 한사람은 지대로 깃을 달아 풍신을 표하고 전자층 한사람은 끝에 칠성 깃대를 매어 바람을 표하고 후일층 한사람은 보검을 들려두고 하일층 한사람은 향로를 받쳐들고 단하의 이십사명은 정기 보개 대극장과 동감을 삼팔 무인이 청목으로 예단하고 남은 병정이칠화니 홍목으로 예단하고 서경신사 오금인이 백목으로 예단하고 북에는 임계일륙수니 흑목으로 예단하고 또한 전조 단발허고 단전에 일어서서 노숙다려 이른말쌈 차경도 돌아가 공근선생을 위로하라 또한 장졸으게 하령하되 불허천허방위허며 불허고두접미허며 불허대경소의하되 만일 영을 어긴자는 참하리라 또한 제장으게 하령하되 입주장양 정영유도하고 매산각산 조포유령하라 초관은 재일지상하고 기동은 제일대거상하고 화초는 제오상지중이라 대는일일 기로 위로하고 기는 일일초로 위로하고 사는 일일영으로 위로하되 만일 영을 어긴 자는 참하리라

(아니리) 군중이 조용커날 공명이 축지어 손에 들고 공중을 향하야 무수히 사례한후 단을 넘어 도망할제

(엇중모리) 공명이 바람을 얻은후어 머리풀고 발벗은채 학창의 거듬거듬 거듬어 흉중에 고이안고 백운선을 손에들고 남병산을 급히 넘어 오강변을 내려가니 강천은 고요한디 물결만 출렁출렁 새별이 둥실떠어 지난달을 빗꼈난디 자룡이 배를타고 선두에 퉁퉁 내리시며 선생님 위방진중 기체안녕하십니까 공명이 반기하야 자룡손을 부여잡고 현주 안녕하옵시며 제장 군졸이 다 무사하오 둘이 급히 배를 타고 일편선 돛을 달고 만경창파 대해중의 둥덩실 떠나갈제

9. 조자룡 활 쏘는 대목

(아니리) 그때에 주유는 동남풍을 기둘릴제 초경이경이 되도록 아무 소식이 없으니 노숙이 여짜오되 공명은 천하지영웅으로 주유가 가만히 생각해 보닝께 아이 동남풍이 불지 않는다 이기여 공명이 천하지영웅이지만 남으게 허언도 더러허는구나 무슨 동남풍이 부느냐 노숙이 여짜오되 공명은 천하지영웅이 아니요 무슨 허언이 있으리까 좀더 기둘려 보시지요

(자진모리) 이말이 맞지 못하야 이날밤 삼경시에 사면이 어둑 정그러져 미풍이 부동터니 바람소리가 우루루루루루 주유 괴이 여겨 창밖을 나서 풍색을 살펴보니 서남방에 꽂은 기가 술해방으로 펄 서북방으로 펄렁 북풍이화 동남풍이 아메도 제갈양은 천지조화능탄하고 이매맞아 제술이라 공명의 탈추하는 귀신도 난척이니 그대로 두다가는 동호의 화근이라 죽이는게 옳타하고 꾀 용코 날랜장수 서성 정봉 양장 불러 엄숙히 분부하되 이대로 급히 남병산에 나는 닷이 올라가 공명을 만나거든 양단을 묻지 말고 대칼로 뎅그렁 비여오너라 서성 정봉 이말 듣고 서성은 배를타고 정봉은 말을 몰아 남병산 올라갈제 정기는 표표하야 일색을 가리웁고 검극은 창렬하야 살기중천 띠었는데 비사주석 펄펄 사방 짖쳐 쓰러질제 영기대파 물자각은 바람결에 휘적휘적 크게 부는 동남풍에 돛대 직신 부러질제 정봉의 급한 마음 이놈 군사야 예 공명이 어데로 가드니 저 군사 여짜오되 저 군사 여짜오되

(늦은 자진모리) 작일일모시 작일일모시에 강안의 매인배가 양양강수 맑은 물에 고기낚던 어선배 십리장강 벽파상에 왕래허던 거루선 호의 호상 연월속에 범상국으로 가는배 강안의 매인 배가 만단으심을 하였더니 머리 풀고 도착하야 뜻밖에 어떠한 사람인지 비발도솔하고 머리 풀고 발벗은채 황황 분주 나려 오니 배안으 일원대장이 나오넌디 얼굴은 형산 의 백옥이오 양의 목재 소상강 물결이라 비호같이 나오더니 둘이 손을 마주 잡고 고개를 끄떡 끄떡 입을 쫑끗 쫑끗 히히하 하이하 웃고 그배 바로 잡어 타고 저어 넘어로 갔나이다 옳타 그것이 공명이다 이놈 수졸아 예 공명이 탄 배가 제 아무리 비선인들 천리창파 급한 물에 어찌 그리 수이가리 노를 더디 저어 그배를 못잡게 되면 내 장창드는 칼로 네의 목을 뎅그렁 비어 이 물속에 넣게 되면 네의 백골을 뉘 찾으리 수졸이 겁을 내어 닻감고 돛을 달고 키잡고 뱃머리 돌려 노를 저어 떠나갈제 어기야 어기야 아아 어허 어기야 어기야 어기야 어기야 저어라 저어라 저어라 저어라 운단풍경 근호천을 견불견 둥실떠 살대같이 쫓아갈제 전선을 바라보니 표의 한사 빗겨 앉어 한가이 가는 거동 공명일시 분명커날 크게 외쳐 허는 말이 저기 가는 공명선생 가지 말고 잠깐 머물러 내의 한말을 듣고 가오 우리도독 청래하오 공명이 하하 웃으며 동호의 주도독이 나를 해코자 하야 저 뒤를 밟어오니 저 놈들 죄가 아니니 죽이지 말고 양국 화친지의를 두어 욕이나 뵈여 보내라 자룡이 일어서며 선생님 염려 마옵소서 순금갑옷 황금투구 일로 허리 고무등에 막막 조대를 둘러 띠고 배의 망으 우뚝서서 저기 오는 서성 정봉놈아 우리선생 높은 재주 너의 나라를 들어가서 위공을 하고 오는 길에 무삼일로 해코저 하야 뒤를 쫓아 내보내드냐 네 아무리 쫓아온들 하날이 내신 공명 시기하면 무엇하리 너희를 죽이겄으나 양국화친지의를 두어 죽이던 아니허나 내의 수단이나 보아라 한산땅 조자룡을 아느냐 모르느냐 천궁에 와전을 멕여 깍지손을 다르르르르 꺾어 어깨에 딱붙이고 손등이 터지게 좀통을 꼭쥐고 구미꿩꿩 흉허 복실 하야 하삼지 들받어 호무끝 끌러 늘여 중머리 삼통 물받쳐 대투 뻗뻗 턱에 붙이고 깍지손 철컥노니 비거공중 빠른 살은 해상으 높이 떠 살대 피르르르르 건너가 서성 정봉 탄 배 돛대 직신 부러져 물에가 풍 또한대를 드려 쏘니 서성 정봉 탄배가 뱃머리 뒤둥 뒤둥 오던배 가로 접쳐 뱃머리 빙빙 돌아 만경창파로 뒤둥 뒤둥 떠나가니 쫓아올수 있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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