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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명[부제포함] 정창관국악녹음집(1) <강순영의 국악세계>-신관용류 가야금산조 외-
음반 번호 CKJCD-001 , CD 1 매
제작 / 기획사 정창관
발매 연도 1998
구 분 일반반
분 류 산조+
업데이트 일시 1998-06-00
비 고
* 미의회도서관 기증(2006.6.7.) * 영국도서관 기증(2006.8.3.)



 
정창관국악녹음집(1) <강순영의 국악세계>-신관용류 가야금산조.독주.병창.단가.판소리-

* 신관용류 가야금산조(Kayagum Sanjo of Sin Kwan-yong Style)
1. 다스름(Tasurum)(0:24)
2. 진양조(Chinyangjo)(7:22)
3. 중모리(Chungmori)(7:13)
4. 중중모리(Chungjungmori)(2:20)
5. 굿거리(Kutgori)(1:51)
6. 자진모리(Chajinmori)(4:05)
7. 단모리(Tanmori)(4:58)
8. 엇모리(Onmori)(1:17)
가야금:강순영. 장구:박환영.

*가야금독주(Kayagum Solo)
9. 허튼가락(강순영 작곡)(Hutungarak Composed by Kang Soon-young)(3:50)
10. 남도민요 새타령(Namdominyo Saetaryong)(6:43)
가야금:강순영.

* 가야금병창(Kayagum & Song)
11. 단가 어화세상(Tanga Oihwasesang)(5:13)
12. 단가 객래문아(Tanga Kaegraemuna(2:21)
가야금:강순영. 장구:박환영.

* 단가·판소리(Tanga·Pansori)
13. 단가 사창화림(Tanga Sachahwarim)(4:37)
14. 심청가 중 곽씨부인 유언하는 데(From Simchongga, Scene of Madam Kwak's dying wish)(14:11) * 총연주시간 : 66분 25초
소리:강순영. 장구:박환영.

[기타음반정보]

*기획·제작: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홍콩샹하이은행 지배인/집:(02)918-7290)

*음반 해설 및 사설채록: 이보형·노재명(한국고음반연구회) *도와주신 분:양정환·이성희

*녹음: 1997년 9월 22일 리드사운드(녹음기사: 홍윤성) *디지털 마스터링: 김도연

*표지그림제공:이원복(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 *제조: 1998년 5월 지구레코드
 
* 정창관국악녹음집(1)

"강순영의 국악세계"를 기획·제작하면서

잃어버릴 소리, 날아가 버릴 우리의 소리를 여기에 담았다. IMF시대에 대부분의 음반제작사들이 국악음반 제작을 중단한 이 때에, 이 땅의 소리를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개인이 기획, 녹음, 제작한 음반이다. 개인이 자기의 이름을 앞에 걸고, 지금 녹음하지 않으며 영원히 사라질 소리를 찾아 녹음하는 시리즈의 첫 번째 음반이다.

강순영 명인은 72세로, 1927년에 풍류의 고장인 남원에서 태어났다. 15세 때 남원에 살던 꿈 많던 소녀시절에 국악에 입문하여 강도근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우는 등 여러 선생을 모시고 갖가지 기예를 익혔는데 그 가운데 가야금산조로 귀신같은 솜씨를 자랑하던 신관용을 선생으로 모시고 3년간 신관용제 가야금산조를 배운 것이 평생 가야금 명인으로, 그리고 신관용제 가야금산조의 기둥으로 활동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27세 때부터 남원 국악원에서 5년간 가야금 사범으로 있었는데, 이때 기른 제자 오갑순, 안숙선, 안옥선, 강정렬은 지금 경향에서 국악계의 중진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39세 이후로 지금까지 진주에 은거하며 제자를 기르고 있다. 그와 더불어 활동하던 김윤덕, 성금련, 김죽파, 함동정월, 원옥화, 김춘지, 박귀희와 같은 선후배 명인들이 두루 저 세상으로 갔으니 강순영 명인은 학교 세대가 아닌 마지막 명인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음반은 강순영 명인의 데뷔음반으로 취입한 곡은 <신관용제 가야금산조>, 창작곡 <독주 허튼가락>과 <새타령>, 가야금병창 단가 <어화세상>과 <객래문아>, 단가 <사창화림>과 판소리 심청가 중에서 <곽씨부인 유언하는 대목>으로, 강순영 명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음악을 조금씩 다 담았다.

강순영 명인 취입한 가야금산조는 신관용제이며 이는 전라북도제에 든다고 할 수 있다. 가야금산조를 창시했다는 김창조 가야금산조와는 음악구성이 사뭇 다르다. 대단한 기량을 지닌 이색적인 거장 신관용의 음악이 고스란히 표현되고 있다. 산조를 비롯한 병창, 단가, 판소리 등은 강순영 명인의 음악이 새로이 조명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문화재전문위원 이보형의 서문과 수록곡 해설 및 사설이 실린 해설서는 충실하며, 표지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이 추천했다. 매장마다 일련번호를 삽입한 1,000매 한정반으로 제작하였다.

하나의 값진 문화재의 기록이 보존되게 되어 반갑다.(문의:영풍문고 음반점 02-399-5687 / 02-580-3160:국악박물관내 자료판매실)
 
[음반해설서 중 일부]

강순영 명인의 음반, 값진 문화재의 기록 보존
이보형(한국고음반연구회 회장·문화재전문위원)

지방에 묻혀 있는 가야금 명인 강순영의 음반이 나오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지금 70이 넘은 연세로 비장의 옛 솜씨를 발휘하여 가야금산조와 가야금병창 등 수곡을 취입하였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짐작컨대 그는 노인장의 정력을 발휘하여 필생의 예술적 결정체를 이룬 음반을 내었으니 감회가 깊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와 더불어 활동하던 김윤덕, 성금련, 김죽파, 함동정월, 원옥화, 김춘지, 박귀희와 같은 선후배 명인들이 두루 저 세상으로 갔으니 강순영 명인은 학교 세대가 아닌 마지막 명인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강순영 명인은 1927년에 풍류의 고장 남원에서 출생하였고 지금은 풍광 좋은 진주에서 조용히 살고 있다. 15세 때 남원에 살던 꿈 많던 소녀시절에 국악에 입문하여 강도근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우는 등 여러 선생을 모시고 갖가지 기예를 익혔는데 그 가운데 가야금산조로 귀신같은 솜씨를 자랑하던 신관용을 선생으로 모시고 3년간 신관용제 가야금산조를 배운 것이 평생 가야금 명인으로, 그리고 신관용제 가야금산조의 기둥으로 활동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27세 때부터 남원 국악원에서 5년간 가야금 사범으로 있었는데, 이때 기른 제자 오갑순, 안숙선, 안옥선, 강정렬은 지금 경향에서 국악계의 중진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39세 이후로 지금까지 진주에 은거하며 제자를 기르고 있다.

이번에 강순영 명인이 음반에 취입한 곡은 신관용제 가야금산조, 독주 허튼가락과 새타령, 가야금병창 단가 어화세상과 객래문아, 단가 사창화림과 판소리 심청가에서 곽씨부인 유언하는 대목이다.

강순영 명인 취입한 가야금산조는 신관용제이며 이는 전라북도제에 든다고 할 수 있다. 흔히 가야금산조는 김창조가 처음 내었다고 하는데 김창조와 비슷한 무렵에 한숙구, 박한용, 심정순, 박팔괘, 이영채 등 여러 가야금 명인들이 있었던 것으로 봐서 김창조 당시에 이미 원초 가야금산조(심방곡)가 보편화되었던 것 같고 오늘날 보편적으로 통하는 가야금산조의 음악적 구성틀을 정리한 것이 김창조의 업적이 아닌가 한다. 강순영 명인이 보유하고 있는 신관용제 가야금산조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겠지만 김창조 가야금산조와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다. 전라북도제 가야금산조나 충청도제 가야금산조가 두루 그렇듯이 강순영이 전승하고 있는 신관용제 가야금산조(이하 강순영 가야금산조라 이르기로 함)는 김창조 가야금산조와 음악 구성이 다르게 되었다.


* 강순영제 가야금산조는 음악적 특성은 다음과 같다.

장단 구성은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굿거리, 자진모리, 단모리, 엇모리로 되었다. 여느 가야금산조가 흔히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단모리로 된 것과 견주어 보면 굿거리와 엇모리가 끼어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가야금산조에서 굿거리는 경기민요에서 굿거리라는 뜻이 아니고 자진중중모리라는 뜻이며 이런 장단 명칭을 넣은 것은 강순영제 밖에는 박상근-성금련제, 김종기-김삼태제에서 볼 수 있을 뿐이다. 거문고산조에서 엇모리는 중간에 한 악장으로 존재하지만 가야금산조에서 엇모리는 맨 끝을 여미는 구실을 하는 것으로 서양음악에서 말하는 에필로그와 같은 특성을 갖는 것으로 강순영제 산조밖에도 드물게 볼 수 있다. 강순영제 가야금산조의 조구성 또한 여느 산조와 다른 면이 있다. 우선 진양의 조구성이 계면조-평조-계면조-평조-계면조-우조-평조로 되어 여느 가야금산조가 우조-평조-계면조로 구성되는 것과 매우 다르게 되었다. 계면조로 시작하는 진양 조구성법 부터가 파격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색적인 조구성 때문에 그 동안 신관용제 가야금산조가 이단시되었는지도 모른다. 중모리는 계면조 경드름 계면조로 구성되어 되었고, 중중모리는 평계면으로 일관하며, 자진모리는 계면조, 강산제로 구성되어 여느 산조와 비슷하나 단모리는 계면조, 강산제, 계면조, 변청강산제, 강산제, 계면조로 되어 여느 산조와 다르게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강순영의 가야금산조는 전북제인만큼 전남제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좀 이색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 만큼 개성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관용 명인은 대단한 기량을 지니었던 이색적인 거장이었던 만큼, 그 거장의 풍모와 의장이 담겨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강순영 명인의 음악이 처음으로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이를 계기로 강순영 명인의 기량과 신관용제 가야금산조와 병창 등 그의 음악이 새롭게 조명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IMF시대에 대부분의 음반제작사들이 국악음반 발매를 중단한 이 때에, 이 음반 제작을 위하여 스스로 경비를 감내하고 제작에 헌신한 한국고음반연구회 정창관 회원의 노력에 감사를 드리며, 또 하나의 값진 문화재의 기록이 보존되게 되어 매우 기쁘다.

2000.09.18.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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