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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명[부제포함] 단성 이춘희 명창의 <삶과 소리 그리고 흔적>-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
음반 번호 AURA-010*L , CD 4 매
제작 / 기획사 신나라/Aura Corea
발매 연도 2007
구 분 일반반
분 류 민요
업데이트 일시 2007-12-31B
비 고
* DVD크기 별도정리. * 2008년 4월 7일 미의회도서관 기증.



 
단성 이춘희 명창의 <삶과 소리 그리고 흔적>-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

CD 1 :
1. 유산가 Yusanga 11:37
2. 소춘향가 Sochunhyangga 9:07
3. 제비가 Jebiga 7:32
4. 십장가 Sipjangga 13:48
5. 입창사거리 Ibchangsageori 27:23
경기놀량 Kyeongginolryang - 앞산타령 Apsan-taryeong - 뒷산타령 Deuitsan-taryeong - 자진타령 Jajin-taryeong 총 69:30

* 소리:이춘희. 장구:장효주.

CD 2 :
1. 제전 Jejeon 7:10
2. 육칠월 Yukchilweol 2:33
3. 맹꽁이타령 Maengkongyi taryeong 6:26
4. 바위타령 Bawi-taryeong 6:25
5. 병정타령 Byeongjeong-taryeong 2:56
6. 한잔부어라 Hanjan-bueora 0:56
7. 풍등가 Pungdeungga 6:51
8. 곰보타령 Gombo-taryeong 3:17
9. 회심곡1 Hoesimgok I 9:12
10. 회심곡2 Hoesimgok II 8:42
11. 탑돌이 Tapdori 4:44
12. 장끼타령 Jangki-taryeong 4:58
13. 개고리타령 Gaegori-taryeong 2:09 총 66:26

* 소리:이춘희. 장구:강효주(1-8번곡) * 9-10 번곡: 소리.꽹과리:이춘희.
* 반주 - 장구:장덕화. 대금:이철주. 피리:최경만. 해금:김영재. 가야금:백인영. 아쟁:김무경.(11-13번곡)

CD 3 :
1. 연평도난봉가 Yeonpyeongdo-nanbongga 3:53
2. 싸름타령 Ssareum-taryeong 2:24
3. 물레방아타령 Mulebangah-taryeong 2:38
4. 느리게타령 Neurigae-taryeong 2:28
5. 신고산타령 Singosan-taryeong 2:29
6. 궁초댕기 Gungchodaenggi 3:22
7. 개성난봉가 Geaseong-nanbongga 2:44
8. 너영나영 Neoyeong-nayeong 3:30
9. 사철가 Sacheolga 4:13
10. 한오백년 Han-obaeknyeon 3:36
11. 긴아리랑 Gin-arirang 5:09
12. 이별가 Yibyeolga 4:56
13. 한강수타령 Hangangsu-taryeong 2:44
14. 뱃노래 Baetnorae 4:13
15. 방아타령 Bangah-taryeong 3:51
16. 자진방아타령 Jajinbangah-taryeong 2:36
17. 천안삼거리 Cheonan-samgeori 2:40
18. 풍년가 Pungnyeonga 3:06
19. 건드렁타령 Geondreong-taryeong 2:42
20. 사설방아타령 Saseolbangah-taryeong 2:12
21. 애원성 Aewon-seong 3:25 총 69:01

* 소리:이춘희. 반주 - 장구:장덕화. 대금:이철주. 피리:최경만. 해금:김영재. 가야금:백인영. 아쟁:김부경.

CD 4 :
1. 금강산타령 Geumgangsan-taryeong 7:05
2. 노랫가락 Noreatgarak 3:20
3. 청춘가 Cheongchunga 2:13
4. 태평가 Taepyeongga 2:55
5. 창부타령 Changbu-taryeong 3:56
6. 아리랑 Arirang 3:53
7. 구아리랑 Guarirang 3:40
8. 노들강변 Nodeulgangbyeon 3:40
9. 도라지 Doraji 3:19
10. 오봉산타령 Obongsan-taryeong 2:27
11. 도화타령 Dohwa-taryeong 2:18
12. 매화타령 Maehwa-taryeong 3:39
13. 밀양아리랑 Milyang-arirang 2:51
14. 양산도 Yangsando 3:40
15. 오돌독 Odoldog 3:21
16. 늴리리야 Nilririya 2:26
17. 군밤타령 Gunbam-taryeong 2:18
18. 양류가 Yangryuga 2:19
19. 는실타령 Neunsil-taryeong 2:37
20. 울산아가씨 Ulsan-agassi 2:44
21. 경복궁타령 Kyeongbokgung-taryeong 2:21 총 67:13

* 소리:이춘희. 반주 - 장구:장덕화. 대금:이철주. 피리:최경만. 해금:김영재. 가야금:백인영. 아쟁:김부경.

* 녹음:2006.12. - 2007.11. Beeznuri Recording Studio

* 기획:Aura Corea - www.auracorea.com

* 반주자는 음반에 표기되어있지 않았으나, 기획자에게 문의하여 정확하게 적었습니다.
 
* 지난 11월 2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이춘희 명창의 60주년 음반 출반 기념 콘서트 '소리로 빚은 삶 60년'에서 선보인 음반이다. 시중에는 신나라를 통하여 돋 유통될 것이다. DVD케이스 크기로 고급스럽게 제작한 음반이다. 자세한 해설서와 영어, 일어로도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2008.1.12)
 
* 해설서에서 :

경기민요

경기민요란 서울과 경기도지방에서 전승되는 민요이지만, 여기서의 경기민요는 경기긴잡가를 가리킨다.

잡가는 가곡이나 가사와 같은 정가(正歌)와 대비되는 속가(俗歌)라는 뜻으로 쓰였으나, 오늘날에는 속가 중에서도 긴형식의 노래를 앉아서 부르는 것을 잡가라 한다. 경기잡가 가운데 느린 장단으로 된 12잡가를 긴잡가라 부른다. 경기긴잡가는 유산가, 적벽가, 제비가, 소춘향가, 선유가, 집장가, 형장가, 평양가, 십장가, 출인가, 방물가, 달거리 등 12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산가는 산천경치를 노래한 것이고, 소춘향가, 집장가, 십장가, 형장가는 판소리 춘향가의 내용을 따서 사설을 지은 것이며, 적벽가는 판소리 적벽가와 비슷하고 제비가는 판소리 흥보가와 내용이 통하지만 이들 잡가가 판소리 곡조로 된 것은 아니고 다만 일부 사설만 따왔을 뿐이다. 평양가, 출인가, 방물가, 달거리는 서민적인 인정, 사랑 등을 노래하고 있다.

장단은 흔히 느린 6박 도드리장단이나 좀 느린 3박 세마치장단으로 된 경우가 많다. 선율은 서도소리제인 수심가토리와 경기소리제인 경토리가 뒤섞인 특이한 음조로 되어 있다.

경기긴잡가의 특징은 경기 특유의 율조로서 대개 서경적 혹은 서정적인 긴사설로 비교적 조용하고 은근하며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서정적인 표현이 많다. 조선시대 서울 장안의 소시민들의 모임장소인 '공청' 또는 '깊은사랑'을 통해 12잡가가 발생하였으므로 공청소리문화의 특색을 잘 담고 있는 귀한 문화재이다.

경기민요란 서울과 경기도지방에서 전승되는 민요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는 경기긴잡가를 가리킨다. 잡가란 가곡, 가사와 같은 정가(正歌)의 대칭인 속가(俗歌)라는 뜻으로 쓰였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속가 가운데 좀 긴 통절형식(通節形式)의 좌창(坐唱)을 잡가라 하며 경기잡가 가운데 느린 장단으로 된 십이잡가(十二雜歌)를 긴잡가라고 일컫는다.

경기잡가는 서울 문(門)안과 근교의 장인밭장이 한량 출신 소리꾼들에 의하여 전승 발전되어 왔다. 특히 서울 만리재에서 청파(靑坡)에 이르는 사계축 소리꾼들이 잡가를 잘 하였다 한다. 이들은 겨울에 파를 기르는 움집을 크게 만들었는데, 그 안에 소리방(房)을 꾸미고 여기에 둘러앉아 장고 장단에 맞추어 소리를 하였다.

잡가 명창으로 조선 말 속칭 추(秋), 조(曺), 박(朴)이라는 3인을 꼽는다. 추조박이란 기교에 뛰어난 추교신(秋敎信), 성대(聲帶)를 잘 타고난 조기준(曺基俊), 잡가로 이름이 높던 박춘경(朴春景)을 가리키는데 박춘경이 잡가를 많이 지어 잘 불렀다 한다. 이들의 뒤를 이어 한인호(韓仁浩), 주수봉(朱壽奉), 최경식(崔景植), 박춘재(朴春載)와 같은 잡가 명창들이 났고 뒤이어 이창배(李唱培), 김순태(金順泰), 최정식(崔貞植), 이진홍(李眞紅) 등이 활약하였으며 이들의 후배인 안비취(본명 안복식:安福植), 묵계월(본명 이경옥:李瓊玉), 이은주(본명 이윤란:李潤蘭)가 보유자로 인정받았다가 안비취가 사망하였고 이춘희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경기잡가에는 가사와 같이 긴 사설을 도드리장단이나 세마치장단으로 짠 긴잡가와 사설시조형의 긴 사설을 빠른 장단으로 짠 휘모리잡가가있다. 긴잡가 가운데 유산가(遊山歌), 적벽가(赤壁歌), 제비가(연자가, 燕子歌), 소춘향가(小春香歌), 선유가(船遊歌), 집장가(執杖歌), 형장가(刑杖歌), 평양가(平壤歌), 십장가(十杖歌), 출인가(出引歌), 방물가(房物歌), 달거리(월령가(月令歌))를 십이잡가라 한다.

휘모리잡가의 사설이 사설시조에 보이는 서민적인 해학으로 가득찬 데 비하여 긴잡가의 사설에는 판소리의 한대목씩을 따서 극적인 장면을 노래하거나 서정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 많고 흔히 통절형식으로 된 것이 많다. 장단은 도드리장단으로 된 것이 많고 세마치장단으로 된 것도 있다. 선율은 서도소리에 보이는 수심가(愁心歌)토리에 가까우나 시김새가 서도소리보다 짙지 않고 경기민요에 보이는 경토리(京調)가 섞여서 특이한 음조(音調)를 갖는다.

경기소리 가운데 양산도(楊山道), 방아타령, 창부타령(倡夫타령)과 같은 경기민요나 곰보타령 병정타령과 같은 휘모리잡가가 흥겹고 구성진 느낌을 주는 것에 비하여 유산가, 소춘향가와 같은 긴잡가는 차분하고 구수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색이라 하겠다. 또 놀량, 앞산타령과 같은 산타령은 소리꾼들이 늘어서서 소고를 치고 춤을 추며 부른다고 하여 입창이라 하고, 잡가는 늘어앉아-서 장고의 반주로 부른다 하여 좌창이라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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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단성(靑丘旦聲), 푸른 언덕에서 부르는 아침노래

- 이춘희 명창의 음악미학 - 윤 중강 (음악평론가)

명창이 살아 온 흔적

이춘희 명창은 서울토박이다. 1947년 음력 9월 18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가 노래를 삶의 업(業)으로 선택하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부모의 반대에 부딪혔고, 그는 마치 신내림을 하듯 병을 앓았다. 결국 그는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1965년 가요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최고의 가수인 최숙자의 음반에 󰡐백령도 처녀󰡑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1966년 무렵 이춘희 명창은 청구고전성악학원에 다니기 시작한다. 여기는 이창배 선생(1916-1983)이 운영하는 민간 국악교육기관이었다. 이창배는 1968년 산타령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사실 어린 나이에 국악을 좋아했지만, 대중음악에 끌린 것도 사실이다. 특히 가요학원에 비해, 민요학원은 시설이 좋지 않았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 바 있다.

"가요학원엔 피아노도 있고, 사무실이 멋있잖아요. 그런데 이창배 선생님이 지도하는 학원은 아주 형편없더라고요. 작은 방 하나에 장구 하나 있는 게 고작이었어요. 나중에야 국악인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고, 또 살고 있는지 이해했어요. 저도 경제적으로 상당히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당시에는 그런 안타까움보다는 실망감이 더 컸어요."

하지만, 이춘희는 그 무엇에 홀린 듯, 그는 조금씩 경기민요 특유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1969년에는 당시 최고의 무대라 할 명동 국립극장 무대에 스승과 선배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1972년 전주대사습에 입상을 하게 된다. 이즈음 경기민요의 위상은 점점 높아지기 시작한다. 여흥가요(餘興歌謠)적으로 여겼던 경기민요는 점차 예술성악(藝術聲樂)으로서의 위치를 획득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드디어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57호로 지정을 받게 된다. 당시에도 '경기민요'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기 보다는 서울과 경기지방에서 불려졌던 '12잡가', 이른바 앉아서 부르는 '좌창(坐唱)에 대한 위상이 높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서서히 이런 분위기는 좌창과 민요를 두루 포함하는 '경기소리'에 대한 관심과 위상이 점차 높아졌다. 이 분야의 최초의 인간문화재(예능보유자)로 이은주, 묵계월, 안비취가 지정을 받게 된다.

당시 경기민요의 신(新) 세대에 속하는 이춘희와 김혜란은, 이제 이창배 선생의 권유로 안비취 선생(1926-1992) 문하에서 들어가게 된다. 그동안 남선생에게 공부를 하다가 여선생과 만나게 되었고, 그들은 안비취 명창에 소리뿐만 아니라, 안비취 명창의 활동적인 면을 배우게 된다. 안비취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서, 국악의 다른 분야에서 다소 소외되었던 경기민요분야를 변방에서 중심으로 옮기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분이다.

이춘희는 안비취 선생을 '자신에게 인생을 가르쳐 스승'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는 이춘희 등에게 있어서 '또 한 분의 어머니'였다. 모든 제자가 스승에 대한 생각이 각별하겠지만, 특히 이춘희는 안비취 명창에 대한 애정과 존경은 대단하다.

국악계가 이춘희 명창을 특히 주목하게 된 것은, 1985년 첫 공연을 성공으로 마친 후부터 일 것이다. 그는 이듬해인 1986년 제주한라문화제에서 '대통령상'을 받게 되면서, 명실상부(名實相符)한 명창(名唱)으로 경기민요의 새로운 시대를 이끌 '경기민요 제 2 세대'의 선두주자가 된다. 1994년에는 '경기12잡가 발표회'를 통해서, 또 한 차례 주목을 받았다.

드디어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인간문화재)로 지정 받았다. 2000년에는 제32회 대한민국 문화예술대상을 받았으며, 같은 해 사단법인 '경기민요보존회' 이사장 취임한다. 2004년에는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6년에는 대한민국 국악제 '명인에게 길을 묻다'에서 명인으로 선정되어,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올랐다.

이춘희 명창은 그간 이춘희 민요가락〔1993년, 신나라뮤직), 이춘희 12잡가〔1996년, 다다미디어〕이춘희의 경기민요〔1998년, 다다미디어〕등 음반을 낸 바 있다. 그리고 '근대서민예술가의 노래- 경기12잡가'(2000년, 예솔출판사)란 제목의 책을 출판한 바 있다.

이춘희 명창은 2007년 이제 자신의 삶을 한 분기점에서, 그동안 불렀던 노래를 모두 정리, 음반으로 수록을 했다. 이는 이춘희 명창의; 음악을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며, 아울러 제자와 후학들에게 경기민요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해주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이춘희 명창의 음악적인 아름다움, 다시 말해 이춘희 명창의 경기소리가 담고 있는 음악미학(音樂美學)를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춘희의 음악미학


1. 멋

한국어에는 '멋'과 '맛'이란 단어가 있다. 모두 순수한 우리말이다. 이런 단어는 일상에서 사용하지만, 모두 예술적인 깊은 뜻을 포함한다. 맛과 멋은 모두 아름다움 혹은 기쁨을 논할 때 사용하는 단어지만, 그 뉘앙스가 좀 다르다.

이 두 글자의 비슷한 글자다. 다른 것은 바로 'ㅏ' 와 'ㅓ'에 있지 않은가! 앞은 양성모음이요, 뒤는 음성모음이다. 이처럼 앞의 것이 직접적인 느낌이고, 뒤의 것은 간접적인 느낌이다. 확대해석한다면, 양성모음은 직유적(直喩的이)고, 음성모음은 은유적(隱喩的)인 이미지가 더욱 풍긴다고 할 수 있다. 실제 '맛'이 감각적(感覺的))이라면, '멋'은 지각적(知覺的)이라 할 수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 57호 '경기민요'의 인간문화재 이춘희 명창은 '멋'과 '맛' 중에서 어디에 해당할까? 나는 '멋'에 해당한다고 얘기하겠다. 흔히 경기민요는 한국의 다른 노래에 비해서 밝은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산뜻하고 화려하다. 이춘희 명창은 한국어의 표준어인 서울 말씨로 또박또박 분명하게 노래를 부르는 듯 싶지만, 거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이런 '음성모음'적인 매력이 있다. 경기민요를 이춘희 명창이 부를 때, 거기에는 적당한 '그늘'이 존재한다. 이것이 이춘희 명창의 대단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2. 정(情)

한편, 한국 전통예술의 미학은 한자(漢字)로도 나타낸다. 그런 단어 중에 한(恨)과 정(情)이 있다. 이 또한 앞의 단어들과 비교할 수 있다. '한'이 슬픔과 같은 정서가 더욱 드러나는 것이라면, '정'은 이런 정서를 안으로 내 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한에는 'ㅏ'라는 양성모음이 있고, 정에는 'ㅓ'라는 음성모음이 있다. 한은 표정이나 소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정은 마음이나 생각 속에 담아두는 것이다. 따라서 한이 직접적이라면, 정은 간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역시 이춘희 명창의 노래는 한(恨)보다는 정(情)에 가깝다. 그는 슬픈 노래를 그저 슬프게 부르지 않는다. 슬픔을 걸러서 (필터링) 노래를 하는 것이 이춘희 명창의 매력이다. 한국의 노래 중에서 슬픈 노래에 속한다는 '정선아리랑'과 '한오백년'도 그의 목소리를 통해서 들으면, 한이 아닌 정의 노래로 들려온다.

3. 담(淡)

그렇다면 이춘희 명창의 노래를 색깔의 명암 혹은 표현의 강약으로 표현한다면 어떨까? 그는 한국의 소리도 한국의 그림처럼 농담(濃淡)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면, 그는 짙은[濃] 소리를 자제하고, 엷은 [淡] 소리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스며든다. 이춘희 명창은 이런 음악적인 특징을 가지고, 경기민요를 수준 높고 세련된 예술가곡으로 승화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



명창이 노래한 세 영역

이춘희 명창은 많은 노래를 불렀다. 한국의 노래는 노래를 부르는 방식에 따라 분류한다. 흔히 방안에서 부르는 노래가 있고, 또한 야외에서 부르는 노래가 있다. 방안에서 부를 때는 앉아서 부르고, 야외에서 부를 때는 서서 부른다.

이춘희 명창은 서서 부르는 노래(立唱)건, 앉아서 부르는 노래(坐唱)건 두루 넘나든다. 흔히 남성 소리꾼들이 입창은 잘 해도 좌창을 못하고, 여성명창이 좌창을 잘 불러도 입창이 부족한 경우도 있는데, 그는 이 양쪽을 다 넘나드는 것이다.

한국에서 좌창 혹은 입창이라고 부르는 노래는 모두 소리에 능통한 전문가가 불렀던 노래들이다. 그리고 일반대중들이 부르는 노래를 민요(民謠)라고 한다. 그런데 그가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은 종목은 한국의 수도인 서울 및 경기지방의 노래지만, 실제 그의 노래는 한반도 땅 전역에 걸쳐져 있다. 그가 부르는 관서지방의 노래(평안도, 황해도지방의 민요로 '서도민요'라고 함.), 관동지방의 노래(강원도 지방의 민요로 '동부민요'라고 함.), 관북지방의 노래(함경도 지방의 민요로 '동부민요'라고 부른다)는 그 지역의 특색을 잘 드러내면서, 이춘희 특유의 음성을 통해 아름답게 전달된다. 그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또한 한반도의 남쪽인 제주지방의 민요도 맛깔스럽게 부른다.

이춘희 명창은 평생 이렇게 좌창(坐唱), 입창(立唱), 민요(民謠)라는 세 영역을 넘나들면서 큰 역할을 했다.

명창을 예찬한 세 필객(筆客)

이춘희 명창은 무수히 많은 노래를 불렀다. 그런 노래 중에서 명곡 중의 명곡을 꼽아보자.
그 자신도 그렇고, 주변 사람도 그렇고, 다음의 다섯 곡을 꼽는다. (1) 노래가락, (2) 긴아리랑, (3) 이별가, (4) 정선아리랑, (5) 한오백년이다. 그의 이런 노래의 아름다움은 이미 여러 문필가에 의해 예찬되었다. 그런데 특히 다음의 세 여성의 글에 눈길이 간다.

진회숙(평론가)은 그의 '노랫가락'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나는 요즘 이춘희 명창이 부르는 <노랫가락>에 취해 있다. 이 노래가 들어 있는 CD를 어찌나 많이 들었는지 이제는 소리가 튀어서 새 것을 장만해야 할 형편이다. 같은 경기소리지만 <노랫가락>은 <창부타령>과는 또다른 맛을 느끼게 하는 소리다. <창부타령>에 비해 문학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훨씬 세련되어 있어 이것이 무가에서 파생된 노래라는 사실이 적이 의심이 될 정도다. 노래의 정서도 그저 무심하게 낙천적인 여타의 경기 소리와는 다르다. 본격적인 가창민요로서의 품격과 내면의 멋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이춘희 명창이 부르는 <노랫가락>이 그렇다. 그녀의 점잖은 창법이 이 노래에 새로운 멋을 부여한다.

현경채(방송인)는 이춘희 명창의 '이별가'에 관한 글을 썼다. 이 노래는 영화 <취화선>을 통해서 특히 사랑을 받았다.

'이춘희 명창이 긴 호흡으로 부르는 느린 템포의 경기민요 '이별가'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서 영상과 절묘한 조화로 관객의 가슴에 아름답게 각인되기도 했다. 천재화가 오원 장승업이 멀리 떠나는 장면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담은 영상과 함께 어우러지는 이 음악은 이춘희 명창의 품격 있는 목소리와 정일성 촬영감독의 담채색 영상이 만나 영화의 완성도를 더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춘희 명창의 경기민요는 '이별가'나 '긴아리랑'과 같은 느직한 템포의 노래에서 격조 높은 예술음악으로 승화된다. 이춘희 명창의 소리는 진중한 맛이 있으며 또한 야무지고 기품이 있다. '빛나는 눈, 다부진 입매'에서 풍기는 이춘희 명창의 인상을 닮아있는 듯 소리 또한 단아하고 명쾌하며 정확한 서울 표준말의 노랫말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춘희 명창의 대표적인 노래에 속하는 <긴아리랑> <정선아리랑> <한오백년>은 모두 󰡐아리랑󰡑 계통의 노래다. 아리랑은 한국의 대표적인 노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서민적인 노래가 이춘희를 통해서 불려지면 매우 기품이 있고 세련된 노래로 거듭난다. 더불어서 그는 슬픈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감추면서 표현하면서, 노래가 갖고 있는 서정적인 의미를 더욱 승화시키고 있다.

이윤정(음악학자)은 이춘희 명창의 삶과 예술에 관한 긴 글은 쓴 바 있다. 명창의 음악적 특징을 인터뷰를 바탕으로 해서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야질자질한 맛을 내기 위해서 그는 발성과 가사의 받침을 중요시 여긴다고 한다. 가사 받침이 붙어져야 할 때 붙어줘야 한다. 가사가 늦게 붙거나 빨리 붙는데, 이럴 때는 경기소리의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가사의 받침을 정확하게 붙어줘야 한다. 그리고 입은 소리를 담아내는 그릇 역할을 하는데, 그 그릇을 어떻게 벌리느냐에 따라서 소리의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입은 동그랗게 벌려야 소리가 동글동글하게 나오는데 잘못 벌리면 풀어져 나오기 때문에 섬세하게 불러야 한다. 이렇게 했을 때 노래는 부르는 사람은 차이를 별 느끼지 못하지만 소리를 듣는 청중들은 가사를 어떻게 부치고, 발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엄청 차이를 많이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필자가 뽑은 소리극(音樂劇) 삼수작(三秀作)

이춘희는 한국음악발전에 많은 역할을 했지만, 특히 경기소리 및 서도소리를 바탕으로 해서 음악극을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른바 이런 음악극을 '소리극'이라고 한다. 그는 최초의 경서도 소리극 '남촌별곡'(1998. 10. 26-27, 국립국악원 예악당)을 시작으로, '시집가는날'을 공연해서 성공을 했다. 2002년에는 고(故) 안비취 선생 추모공연 '한오백년'을 무대에 올렸다. 2006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지정 30주년 기념공연으로, 경기민요소리극 '미얄할미뎐'을 공연한 바 있다. 2007년에는 기생의 얘기를 다룬 '일타홍'을 무대에 올렸다. 나는 이 중에서 특히 '남촌별곡' '한오백년' '미얄 할미뎐'을 그가 총지휘한 소리극의 주요 3부작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소리극 '한오백년'은 스승 안비취(1926~1997)선생의 5주기를 맞아 그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스승의 삶을 강원도민요 '한오백년'의 한 맺힌 소리를 통해 승화시켜보겠다는 의지로 이 작품을 만들었고, 이춘희, 이호연, 서정화가 각기 안비취 선생의 중․장년기 - 젊은 시절 - 어린 시절을 맡았다.

그에 의해 시작된 이런 '소리극 운동'은 지금 더욱 확산이 되고 있다. 경기민요의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많은 사람들이 경서도소리를 즐기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한국적인 뮤지컬의 기반을 공고히 했다.

그는 최근 어린이들에게 경기민요를 전해주는 사업과 어린이들이 꾸미는 소리극을 무대에 올리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경기민요의 맛을 알아야 커서도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경기민요를 어린이들이 배우고 즐기는 일에 치중하고 있다.


명창의 세 가지 현명한 선택

이춘희 명창의 인생을 돌아보면, 세 가지의 현명한 선택이 있다.

첫 번째, 그가 이창배 선생의 문하에서 국악을 정진한 것이다. 사실 그가 가요를 했어도 최정자, 최숙자, 김세레나, 김부자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요라는 장르의 속성상 유행이 바뀌면서 세상의 감성이 바뀌면서, 이런 당시 최고의 가수들도 잊게 마련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그가 이 분야를 선택했으면 그 또한 그랬을 거다. 그가 젊은 나이에 '가요'를 선택하지 않고 '민요'를 선택한 것은, 국악계의 입장에서는 큰 소득이다.

두 번째, 안비취 문하에서 정진한 것이다. 그는 안비취 선생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여러 경로를 통해서 얘기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진정으로 스승을 존경한다. 1990년대 그의 스승이 건강이 좋지 않았었는데, 그가 자신의 무대에서 스승의 쾌유를 바라면서 무대에서 했던 얘기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아직도 따뜻하고 진지하게 살아 있다.

세 번째, 그가 국립국악원에서 들어가서 활동한 것이다. 그는 분명 출중한 소리꾼이었고, 그또한 이른바 개인 학원이라는 민간 교육기관에서 제자들을 길러내면서 보람과 경제적인 충족이 되었을 거다. 그러나 그는 사명감을 갖고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에 들어갔고, 여기서 그는 󰡐소리극󰡑이란 새로운 전통을 만들었다. 당시 그가 처음 소리극을 계획했을 때, 주변에서는 소리극을 올리기 위한 작품 제작에 대한 경제적인 부담감, 그리고 아울러 일부에서는 솔직히 경기민요가 갖고 있는 한계로 인해서, 이런 경기민요로는 소리극과 같은 극음악(劇音樂)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는 부정적인 견해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국립국악원과 같은 공공기관에서는 소리극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이 있었고, 결국 경서도소리에 뿌리를 둔 '소리극'은 이제 한국음악의 하나의 장르로 정착을 하게 된 것이다.


명창의 삼색(三色) : 고아(高雅), 풍성(豊盛), 분명(分明)

흔히 경기민요를 부르는 아름다운 소리를 청아(淸雅)하다고 표현한다. 이춘희 명창도 이런 청아한 목으로 아름답게 노래한다. 하지만 왠지 그에게는 청아(淸雅)라는 단어가 너무 작아 보인다. 그는 청아(淸雅)를 넘어선 고아(高雅)한 품격이 있다. 경기소리를 부르는 명창 가운데서 가장 격(格)이 높게 노래하는 것은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이춘희 명창은 그 이름이 자체가 그의 음악적인 성격과 통한다. 명창은 봄 춘(春), 복희 희(羲)자를 쓴다. 봄[春]은 그대로 경기민요의 계절이다. 동서고금의 많은 노래가 봄을 예찬하는 노래를 부르지만, 경기민요만큼 봄과 연관이 깊은 노래도 드물다. 경기민요의 가사나 곡조, 서정(抒情)과 연정(戀情)은 모두 봄과 일맥상통한다. 더불어 희(羲)자를 풀어보면, 이춘희 명창의 음악적인 성격도 풀려진다. 복희 희(羲)자는 양 양(羊)자와 옳을 의(義)자가 결합된 형태다. 본디 아름다울 미(美)자는 양 양(羊)자에서 출발했다. 미(美)자는 양 양(羊)자와 큰 대(大)자가 결합한 형태다. 동양에서의 아름다운 여성은 풍만한 여성을 뜻했다. 양귀비가 결코 요즘처럼 호리호리한 여인이 아니었지 않은가! 이처럼 동양의 많은 아름다움은 풍성함과 관련이 있다. 이춘희 명창의 소리는 무척 풍부한 느낌을 준다.

'고아함'이 그의 소리의 질감(質感)이라면, '풍성함'은 그의 소리의 양감(量感)이 된다. 그리고 이런 고아함과 풍성암이 그의 소리의 씨줄과 날줄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이춘희 명창은 평소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기소리의 특징을 강조하고 있다. '소리란 착착 여미고 갈 때 여며져야 하고 풀어줘야 할 때 풀어줘야 하고, 넘나들 때 넘나들어야 하고, 건드릴 때 건드려줘야 소리의 맛이 제대로 난다.' 이것은 앞에서 얘기한 이춘희명창의 소리의 '고아함'과 '풍성함'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결국 이춘희 명창의 성격적인 '분명함'과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춘희 명창의 삶과 예술을 논함에 있어서 한 가지 꼭 덧붙여할 단어가 있어 보인다.

이춘희 명창은 소리 자체는 물론이요, 국악계에서 늘 무게중심이 되고 있다. 이는 그의 이름 속의 옳은 의(義)자도 통할 것이다. 본디 옳은 일을 바르게 추진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확고한 뜻[意]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음악적 가치를 외모 혹은 배경 등으로 평가하는 시대를 극복하고, 이춘희 명창이 경기민요의 큰 기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의 '意'와 '義'가 없었다는 불가능했으리라. 나는 이춘희 명창을 논함에 있어서, 핵심어는 분명 '고아함', '풍성함', 그리고 '의로움'이다.


청구단성(靑丘旦聲) : 푸른 언덕에서 부르는 아침의 노래

이춘희 명창을 가리켜, '경기민요 제 2 세대의 선두주자'라고 불린 바 있다. 경기민요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최초로 인간문화재가 된 분은 이은주, 묵계월, 안비취였다. 이춘희는 안비취 명창의 큰 제자로서, 스승의 대(代)를 이어서 경기소리의 맥을 잇고 있다.

그가 경기민요와 최초로 인연을 맺은 것은 이창배 선생이다. 그는 학식과 음악성이 뛰어나서 경기민요를 비롯해서 많은 노래의 사설(辭說)을 정리하고, 곡조를 확립했다. 그리고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이춘희는 이창배가 세운 청구고전성악학원(靑丘古典聲樂學院)을 통해서 한국의 전통노래와 인연을 맺게 된다. 청구(靑丘, 靑邱)란 한국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바로 이러한 사설교육기관을 통해 많은 소리꾼들이 배출되었다.

이춘희 명창의 노래를 그 누군가는 이렇게 예찬했다. '흥청거리며 경박하게 들릴 수 있는 경기민요에 심도 있는 깊이를 불어넣은 소리꾼'이라고 했다. 그를 가리켜 또한 이렇게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춘희 명창은 경기소리의 자존심이다' 그가 담담하게 부르는 노래에서도, 우리는 이춘희 명창의 소리에 대한 당당한 태도가 느껴진다.

한국이 포함된 동양의 한자문화권에는 사자성어(四字成語)의 전통이 있다. 네 글자의 한자가 모여서, 하나의 큰 뜻을 이루게 된다. 필자는 이제 세월이 좀 지나서, 청구단성(靑丘旦聲)이란 사자성어가 널리 큰 의미로 소통되기를 기대한다. 청구는 조선(朝鮮)처럼 우리 대한민국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 뜻을 풀이라면 '푸른 언덕'이란 뜻이 된다. 청구는 또한 이춘희 명창이 최초로 국악과 인연을 맺은 교육기관의 이름이 아니던가! 이춘희 명창의 호는 단성(旦聲)이다. 아침의 소리란 뜻을 담고 있다.

우리는 이제 이 <삶과 소리 그리고 흔적>이란 음반을 통해서, 6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평생 한 길을 걸으면서, 품격 있게 예술 활동을 했던 어떤 한국인의 아름다운 삶의 흔적을 느끼게 되리라. (*)


단성 이 춘 희 선생의 발자취

1947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출생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산타령 보유자 이창배, 정득만선생 사사
1969년 KBS라디오 전국민요백일장 연말 장원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안비취선생 전수장학생 지정
198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안비취선생 전수조교 지정
1983~1986년 국악예술고등학교 강사 역임
1986년 제주 한라문화제 대통령상 수상
1987년 미국 LA 재미국악협회 초청 순회공연
1987년 제1회 경기12잡가 및 민요발표회
1988년 제2회 경기12잡가 및 민요발표회
1988년 KBS 국악대상 수상
198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준보유자 지정
1990~1991년 KBS FM 명인전 선정 명인무대 공연
1992년 남북예술단 합동공연
1993년 일요명인전 공연
1994년 경기12잡가 발표회
1994년 실연자협회 공로상 수상
1996년 안비취선생 고희기념 음악회
1996년 제23회 학국방송대상 개인부분 국악인 대상 수상
1997년 11월 1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인간문화재 지정
1998년 (고)안비취선생 추모공연
1998년 최초의 경기 소리극 '남촌별곡' 공연
1999년 경기 소리극 '노들골에 단풍드니' 공연
2000년 경기 소리극 '시집가는날' 공연
2000년 9월 16일 (사)경기민요보존회 창립 및 12개 지부 설립
2000년 경기 소리극 '춘풍별곡' 공연
2000년 제32회 대한민국 문화예술대상 수상
2001년 경기 소리극 '춘풍별곡' 재공연
2002년 경기 소리극 '시집가는날' 재공연
2002년 (고)안비취선생 추모공연 '한오백년' 공연
2003년 1월 1일~2004년 12월 31일 국립국악원 민속단 예술감독
2003년 11월 제6회 경서도창대회
2004년 2월 26~27일 제1회 이춘희 명창 제자발표회 '차세대 끼풀이'
2004년 10월 7일 제2회 이춘희 명창 제자발표회
2004년 10월 20일 화관문화훈장 서훈
2004년 10월 미국 워싱턴 공연
2004년 한일국교정상화 40주년 기념공연(일본 오사카)
2005년 5월 금강산 공연
2005년 10월 6일 제1회 경기민요대제전 '명창 이춘희의 이별가'공연
2005년 12월 프랑스 공연
2005년 12월 베트남 하노이 공연
2006년 1월 멕시코 공연
2006년 7월 12일 중요무형문화재(제57호)지정 30주년 기념공연 경기소리극 󰡐미얄할미뎐󰡑 공연
2006년 2006 국악대전 명인10인 선정
2006년 한가위 국악축제 공연(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06년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 GOOD(굿)! 보러가자! 공연
2006년 10월 21일 제2회 경기민요대제전 '복사골, GOOD! 놀러가자!' 공연
2007년 1월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해외공연발표회 '2007 KOREANSOUND&COLORS'
2007년 2월 21일 '사단법인 한국전통민요협회' 명칭변경
2007년 10월 21일 제3회 경기민요대제전 경기소리극 '일타홍전' 공연


(사)한국전통민요협회 이사장, 한국국악협회 이사
용인대 음악대학 국악과 교수, 이화여대, 중앙대, 한양대, 한국예술종합학교,
추계예술대, 백석대 등 출강
한국연수원, 한국여성지도자 연수, 문화재관리청 연수
서울국악대경연, 경기국악제, 전주대사습놀이대회 등 다수 심사위원 위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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