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의 근원, 소리로 찾다                                                                                             

                                                                                                  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 정 창관          

 

국립국악원이 무가지로 발간하고 있는 '국악누리' 2012년 11+12월호 20쪽 '세계와 함께, 국악'에 실린 글입니다.

 

               

 

               


아리랑의 근원, 소리로 찾다!

1896년, 6개의 에디슨원통형음반에 숨은 ‘아라랑 아라랑 아라리요.....’

1896년 7월 24일, 조선인 남성 3명이 미국 워싱턴 시내 국회의사당 근처에 있는 한 여성인류학자의 집을 찾는다. 남성 1, "양반 체면에 여자 혼자 사는 집에 간다는 게 영 마음에 걸리네만……" 남성 2, "여긴 미국일세. 그리고 우린 엄연히 부탁 받아 가는 게 아닌가."남성 3, "그런데. 무슨 기계에 대고 노래만 부르면 되는 거라네. 우리 노래를 녹음해서 후세에 남긴다지 않나. 학문 연구가 목적이라니 도와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네." 위는 이 음원을 처음 발견한 미국 메린랜드대학의 로버트 프로바인 교수가, 미국 원주민 인디언의 연구가 전공이었던 인류학자 엘리스 플래처 여사가 동료 학자 애나 톨맨 스미스의 부탁으로 조선인의 노래를 에디슨축음기로 녹음하게 된 경위를 상상한 장면이다. 플래처 여사는 집에 찾아온 조선인 3명에게 전통민요와 동요 등을 혼자 또는 둘이서 부르게 하여 에디슨원통형음반 여섯 개에 담았다.

이것이 한민족 최초의 음원이다.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콜럼비아세계박람회에 조선의 장악원 악사 10명이 참가하였다. 이들이 녹음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만, 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악사들이 시카고에 머문 기간이 5박 6일로 너무 짧고, 당시의 원통형음반의 녹음기술이 10명의 기악연주를 담을만한 기술수준이 아니었으며, 이들을 인솔한 정경원 출품대장의 어느 기록(고종에 보고 등)에도 녹음에 관한 기록은 없다. 현재까지 밝혀진 음원 중에서 1896년 7월 24일에 녹음된 이 6개의 원통형음반이 한민족 최초의 음원임에 틀림없다,

이 음원은 프로바인 교수가 1998년경에 미의회도서관의 목록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6개의 원통형음반에 한국음악이 실린 것을 처음 발견하였다. 6개의 음반에는 모두 11곡이 실려 있다. 음반마다 마다 플래처 여사가 적은 메모가 남아 있으며, 이 메모와 같이 6개의 원통형음반은 미의회도서관에 기증되어 전해지고 있다. 6개 중 1개는 기증 전에 파손되었으며, 1개는 기증 후에 파손된 상태이다. 이 음반에 담긴 음악은 1980년에 미의회도서관의 ‘Federal Cylinder Project'에 의거 원통형음반 자체에 대한 구두설명과 함께 디지털 음원으로 전환되어 보관되어 있다.

노래한 조선인은 당시에 일본에서 유학 중 아관파천 시기에 신변의 위험을 느껴 미국으로 도망간 유학생 중 3사람으로 밝혀졌다. 안정식(Jong Sik Ahn)과 이희철(He Chel Ye), 2사람은 출신이 밝혀진 상태이며, ‘Son Rong’이란 이름은 아직 미확인 상태이다.

이들이 부른 11곡 중에 ‘Love Song’으로 표기한 ‘Ararang’ 음악이 3곡 담겨 있는데, 잘못 녹음된 8초의 음악을 제외하면 2곡이 실린 셈이다. 이들이 부르는 ‘아라랑’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리랑’과는 사뭇 다르다. 1896년에 헐버드 박사가 채보한 ‘아라렁’과도 다르다. ‘Ararang’ 2곡에 나타나는 아리랑 후렴구가 한곡에는 ‘아라랑 아라랑 아라리요 아리랑 얼쑥 아라리요’로 다른 곡에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얼쑥 아라리요’로 달리 나타나는 것은 당시에 ‘아리랑’과 ‘아라랑’을 별로 차이없이 부른 것 같다. 또 헐버트의 ‘아라렁’을 고려한다면 당시에 지방에 따라 여러 발음으로 사용된 것이 확실시 된다. 그러나 곡명을 ‘아라랑’으로 표기한 것은, 노래를 부른 안정식의 고향이 경기도 광주, 이희철의 고향이 서울 서부차동임을 고려하며 서울, 경기지역에서는 ‘아라랑’으로 부른 것 같다. ‘아라랑’을 ‘사랑노래’(Love Song)로 적은 것도 매우 흥미롭다. 추정해보면 ‘아라랑’을 부르고나서 녹음한 플래처 여사가 ‘이게 무슨 노래냐?’고 물었을 때 미국에 도착한지 얼마되지 않은 영어가 어눌한 유학생들이 단순하게 ‘Love Song’으로 대답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음질이 열악하여 가사를 일부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지만, 가사 중에 ‘...산도 들도 물도 좋네 / 희망을 찾아서 여기 왔네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는 유학생들이 자신의 처지를 노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1896년에 녹음한 이 음악의 친필 채보악보를 미국 스미소니언협회 국립인류학자료관에서 찾았다. 11곡 중 6곡을 채보한 것으로, 플레처 여사의 필체(Box 7. No 11 / 3rd Record)가 적힌 ‘아라랑’악보도 있지만, 다른 채보곡과 마찬가지로 실제 음악과는 많이 다르며, 아리랑 후렴구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다. 이는 당시에 미국인들이 처음 접하는 우리소리에 대한 채보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1896년 7월 24일에 녹음된 이 음악들은 전문소리꾼이 아닌 20대 유학생들이 부른 당시의 대중가요/유행가이다. 여기에 숨어 있는 사랑노래 ‘아라랑’, 그 안에 들어 있는 아리랑 후렴구에서 민족의 노래 '아리랑'의 근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scene.gifscene.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