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카세트테이프… 아련한 내 청춘의 벗                                      

                                                              조선일보    한현우 기획취재부 차장                             


 

 * 2013년 2월 14일 조선일보에서 카세트에 관한 글을 보고 관심있어 실어 봅니다.(일부 삭제하였음) ·

                                           [한현우의 팝 컬처] 안녕, 카세트테이프… 아련한 내 청춘의 벗

먼지 묻은 테이프들 못 버리는 건 한 시대 달래줬던 추억 서렸기에
용돈 아껴 매주 사고 음악에 취해 수줍은 선물 됐던 라디오 녹음…
탄생 50년 올해, 워크맨 생산 중단… 무엇이 또 흔적도 없이 사라지려나

이삿짐을 쌀 때마다 차마 버리지 못하는 물건 가운데 카세트테이프가 있다. 그렇다고 그 안에 담긴 음악을 들어보는 것도 아니다. 실은 들을 방법이 없다. 집에 있던 카세트 플레이어는 이미 오래전 고물상으로 갔고 자동차에도 카세트 플레이어가 없다. 그런데도 어림잡아 100여개가 되는 그것들을 버릴 수가 없다. 마치 초등학생 때 쓴 일기장을 버리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추억을 내다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카세트테이프가 세상에 나온 지 올해로 꼭 50년이 됐다. 네덜란드 전자회사 필립스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전자제품 컨벤션에 '콤팩트 카세트'란 상품을 처음 내놓은 것은 1963년이었다. 그 이전에도 카세트테이프가 있었으나 이 제품보다 훨씬 큰 사이즈였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카세트테이프는 LP와 함께 녹음과 재생을 할 수 있는 양대 매체 중 하나였다. 누구나 손쉽게 녹음할 수 있다는 면에서 LP보다 더 인기가 있었다.

그때 미국에 살던 친척 한 분은 한국에 들를 때마다 MBC FM의 '김세원의 가정음악실' 며칠 분을 카세트에 녹음해서 가져가곤 했다. "미국에서 이 프로그램을 틀어놓으면 향수를 달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아리랑 TV도 없고 인터넷 라디오도 없던 시절의 일이다.

음악 듣는 이들을 종종 'LP 세대' 'CD 세대' 'MP3 세대'로 구분하는데, 굳이 말하자면 나는 '카세트테이프 세대'에 속한다. 한창 음악을 듣던 중·고교 시절, LP는 값이 비싸기도 했지만 듣기에도 불편했다. LP를 틀 수 있는 전축(電蓄)이 거실 한가운데 있어 밤늦게까지 그 앞에 앉아 있다가는 부모님께 타박 듣기 딱 좋았다.

용돈을 아끼고 모으면 1주일에 카세트 하나쯤은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이 음악이라는 것이 들으면 들을수록 더 많이 듣고 싶어졌다는 것이었고, 1주일에 카세트 하나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1980년대엔 금지곡도 많았고 아예 출시가 금지된 외국 밴드들도 많아서 이런 음악을 들으려면 평범한 레코드 가게에선 만족할 수 없었다.

그때 자주 가던 레코드 가게가 서울 광화문 새문안교회 건너편에 하나, 이태원 해밀톤 호텔 근처에 하나 있었다. 두 가게에서는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 외국 음악들을 공테이프에 복사해서 팔았다. 어떤 경로를 거쳐 외국서 들여왔거나 미군 부대에서 구해온 LP를 무단 복사해서 판 것이다. 가게 유리창 전면에 무슨무슨 밴드의 어떤 음반이 입하됐고 복사 테이프를 판다고 써붙여 놓았으니 비록 소량 복사이긴 했지만 대놓고 불법 복사를 광고하고 자랑스럽게 저작권 침해 사실을 인정하며 새로운 음악을 듣던 시절이었다.

당시 공테이프는 60분짜리와 90분짜리가 대종(大宗)을 이루었는데 이 가게들에선 특이하게도 46분짜리 공테이프에 음악을 녹음해주었다. LP의 한 면 재생 분량이 대략 23분 이내였기 때문인 것 같은데, 46분짜리 테이프를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등학교 1학년 교실 하나가 떠들썩하던 때였다.    - 일부 삭제 -

카세트를 뒤집지 않아도 플레이어가 거꾸로 돌면서 뒷면을 자동 재생하는 '오토리버스' 기능에 환호했으며, 카세트 데크가 2개 달린 '더블 데크' 플레이어에 감격했었다. 황인용과 전영혁과 박원웅에 귀를 기울이다가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재빨리 녹음 버튼과 플레이 버튼을 한꺼번에 눌러 카세트에 녹음했었다. 그렇게 녹음한 곡이 담긴 카세트는 수줍은 선물이 되기도 했다. 선물 받은 이가 그 테이프에 다른 노래를 녹음했다더라는 소식에 우울했던 사춘기를 달래준 것 역시 다른 카세트에 담긴 노래들이었다.

생각해보면 부모님 세대만큼이나 우리도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아왔고, 그런 시간을 살아갈 것 같다. 어려서 겪었던 일들과 썼던 물건들 가운데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들이 너무나 많다. 카세트테이프도 그렇게 기억 속의 흔적으로만 존재할 것이다. 오토리버스와 더블 데크보다도 훨씬 더 큰 충격을 줬던 소니 워크맨이 올해부터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 워크맨이 33세에 요절했으니, 아이팟의 수명은 그보다 더 짧을 것이다. 그리고 수명이 더 짧은 무엇인가가 또 등장할 것이다. 이번 주말엔 듣지 못할 카세트의 먼지라도 털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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