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음반 관련 정보                                      

                                                                                                                                  


 * 우연하게 인터넷에서 발견한 글인데, 5-6년전에 한국영상음반협회에서 음반에 관한 책을 제작한다고 한국고음반연구회 이름으로 글을 부탁받았다. 배연형 선생의 글을 전해 주었는데, 돈이 없다고 책을 만들지 못해 원고료도 주지 못하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때 보낸 준 내용의 글이 약간(?) 추가 변경되어,  인터넷 상에 돌아다니는 것을 이번에 발견하고 여기에 올린다.(2004.11.14)

 

우리나라 음반산업의 역사


가.개 관


1877년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함과 동시에 세계 최초로 음반이 생산된 이후, 전세계적으로 음반산업은 막대한 규모를 지닌 문화산업으로서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음반산업의 규모는 날로 커져가고 있으며, 새로운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나라 음반산업은 19C말 태동기부터 현재가지 꾸준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데, 그 성장 상황을 단계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C말-한일합방 음반산업의 태동기

- 외국으로부터 축음기와 레코드가 도입된 시기.

 

일제시대 일본에의 예속기

-국내음반산업 성장이 일본에 의해 주도됨.

 

해방이후-1950년대 순수 한국음반산업 도입기

-우리나라가 자체기술과 설비에 의해 음반제작을 시작함.

 

1960년대-1970년대 국내 음반산업 정착기

- 음반관련 법률공포와 라디오의 전문음악방송 실시로 인한 음반 산업 활성화 시기. 이때부터 외국음반사와의 라이센스 계약을 통한 음반발매가 이루어짐 

 

1980년대 이후 본격적인 성장기

- 대기업의 음반산업 진출 및 외국 음반사의 직배체제가 확립됨.


 

1. 음반산업의 태동기

 

우리나라에 축음기와 레코드가 소개된 것은 1890년으로 추정되지만 기록에 의한 우리 나라 최초의 음반은 1907년 3월에 발매된 미국 컬럼비아(Columbia)사의 음반이다.


그러나 1885년 빅터(Victor)사에서 취입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기명창 박춘재의 녹음이 우리 음반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이는 1907년 6월 주한 미국 영사 알렌의 주선으로 '시카고박람회'에 참가했던 10명의 국악인 일행중 박춘재가 레코딩을 했다는 기록에 근거한다.


1908년에는 일본 오사카에서 취입하여 미국에서 생산된 빅터사의 음반이 소개되었다.


이후 컬럼비아, 빅터의 두 회사는 1911년까지 우리 전통음악, 기타 서양음악, 일본음악을 중심으로 100여종의 음반을 발매하였는데, 이들의 우리 음악 레코드 발매는-유성기 판매가 목적 이었다.


2. 일본에의 예속기

 

1910년의 한일합방으로 일본은 한국음반시장을 장악하게 되었다.

한일합방을 계기로 일본축음기상회는 1911년 국내에 진출하여 1928년까지 500여종의 우리 나라 전통음악, 클래식, 대중음악을 발매하며 레코드산업을 성장시켰다. 그러나 일본은 식민지 에 생산공장을 두려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음반의 국내제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우리나라를 상품시장으로 간주한 (일본축음기상회)는 음반구매자가 한국인이므로 한국인의 음반을 취입하긴 했으나 음반취입자를 일본으로 데려가 음반을 녹음, 제작한 후 완제품을 다 시 한국으로 가져와 판매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당시의 축음기와 음반 가격은 상당히 비싼 편이었기 때문에 실제적 수요는 많지 않은 상황 이었다. 축음기와 음반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26년 7월 17일 동경에서 취입 된 윤심덕의 '사의 찬미'가 높은 판매량을 올린 이후이다. 노래의 취입을 마친 가수 윤심덕이 그의 연인과 투신자살한 사건이 화제가 되어 일반소비자들이 '사의 찬미'를 듣기위해 레코드 와 축음기를 구매하게 되었다고 한다 .


한편, 나팔통식 양면 SP(Standard Play)에 의해 주도되던 우리나라의 레코드산업은 1928년 전기식 SP가 도입되면서 크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자체 음반생산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일본 을 통해 서울에 지사를 설립한 빅터(1927),컬럼비아(1928),폴리돌 (Polydor,l930)등의 외국 회사들을 통해 음반발매가 이루어졌다.


1933년에 설립된 오케(Okeh)레코드사는 최초로 한국인에 의해 설립된 음반회사로, 일본제 국축음기회사와 기술 제휴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국내에는 한 군데의 레코드 생산 공장도 없 었으며, 녹음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으므로, 음반은 여전히 일본에서 취입, 제작되었다. 오케의 다동 녹음실, 폴리돌의 충무로2가 녹음실, 컬럼비아의 국도극장 뒷골목 대정관 극장 녹음실이 갖취진 40년대 이후에야 국내취입이 이루어지긴 했으나, 음반의 제작은 일본에서 이 루어졌다


3.  8.15해방 이후의 순수 한국음반산업 도입기

 

일본에 예속되어 있던 우리나라 음반산업이 실질적으로 시작된 것은 1945년 해방 이후 부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자체적으로 녹음, 생산의 전 과정을 담당한 최초의 음반은 1945년 오케에서 발매된 양면 SP판으로, 앞면에 장세정의 '울어라 은방울: 뒷면에 '백팔번뇌'가 실려 있었다. 1946년 부산에서 코로나, 1947년 고려, 명동의 럭키, 대구의 오리엔트 레코드사, 625이후 피난시절 부산에서 도미도와 스타, 1954년 아세아, 미도파음반공사(현재 (주)지구레코드의 전신)가 설립되었으며, 이후 킹스타, 신세기, 오아이스, 삼성, 평화등이 설립되었다.


SP가 아닌 LP(Long Play)는 1956년에 도입되었는데, 당시의 LP는 모노 녹음으로 제작된 10인치 LP로, 1950년대 말가지 SP와 10인치 LP를 발매했던 음반회사는 킹스타, 신세기, 오아시스, 유니버셜, 대도, 도미도, 미도파, O.S,고려, 국제, 내쇼날음향, 라미라, 미미, 뷔너스, 서울, 신성, 신태양, 아세아, 오메가, 오스타, 컬럼비아, 태평양, 한일, 홈런, 나하나레코드사 등이다. 10인치 LP는 1962년에 12인치 LP로 발전하였고 다음해에는 스테레오 녹음 방식의 12인치 LP로 발전하게 된다.

  

4. 국내 음반산업 정착기

 

해방이후 자체기술과 설비에 의해 음반을 발매하면서 순수 한국음반산업의 도입기를 거친 음반업계는 1960년대 들어 정착기에 돌입하게 된다.


1964년 4월 3일에는 사단법인 대한레코드제작자협회가 설립되었는데 이는 음반 제작사와 음반판매업자의 협조를 통한 최초의 음반단체였다는데 의의를 지니는데 대한레코드제작자협회는 이후 67년에 한국음반협회로 변경되었다가 70년에 해산, 72년에 부활되었다.


1968년에는 음반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어 음반산업의 정비를 가능케하는 토대를 이루었고,스테레오 방송과 FM이 개국되어 전문 음악방송이 실시되면서 음반업계 활성화의 계기가 되었다. 특히 라디오는 가요발전에 큰 영향을 미침으로써 가요가 음반산업을 주도하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한편 외국음악의 경우, 6.25전쟁 이후에 주한미군과 AFKN방송에 힘입어 팝음악이 널리 보급되었는데, 이로 인해 60년대 말까지 우리나라에는 팝송 복각음반 (미군 PX에서 구한 오리지널 음반을 복제해서 만든 '백판'을 의미한다)의 제작, 판매가 성행하게 된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국내 음반사들이 외국사와 정식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 음반을 판매함으로써 복각음반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1969년 5월 성음이 영국의 클래식 레이블 데카와 계약을 맺으면서 정식 라이센스 음반이 발매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국내 음반회사들은 계속해서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여 클래식과 팝음악 음반 생산에 주력하게 되는데 이러한 라이센스 음반의 산업추이를 음반사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성음은 1969년 데카(Decca )와의 계약 이후 1973년 필립스(Philips),도이치 그라모폰(Deutch Gramophon)과 계약을 맺었으며, 또한 폴리돌, A&M,아르고(Argo),머큐리(Mercury)와도 계약을 맺어 라이센스 음반 산업에 주력했다.


지구는 1972년 10월 미국 RCA와 계약하면서 라이센스 음반산업을 시작하였으며, 1974년에 는 일본의 CBS소니와 계약을 체결했다. RCA와의 계약은 1985년 9월에 끝이 났고, CBS소 ' 니와 계약이 끝난 1984년 5월 이후에는 미국 CBS본사와 직접 계약하여 1989년 6월에 계약 - 이종료될 때까지 라이센스 음반을 판매했다.


1973년 영국의 EMI와 계약을 맺어 라이센스 음반생산을 시작한 오아시스는 이후 WEA,일 본의 Pony Canyon Records등과 계약을 맺는다.


그외에 대도, 아세아, 태광음반, 예음사, 서라벌, 현대음향, 한국음반, 대성음반, 태양음향, 은성음반, 새한음반등이 외국 음반회사의 라이센스 음반을 발매하게 되는데, 1986년에는 (주)서울음반이 RCA(현재 BMG)와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면서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음반산업은 70년대 중반 이후 국내에 소개된 뮤직카세트(MC, Music Cassette)로 인해 또한차례 변화의 계기를 맞게된다. SP이후 등장한 LP에 의해 독점되어 온 국내 음반산업에 뮤직 카세트가 소개됨으로써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 것이다.


카세트는 기기조작의 용이성, 재생기기의 소형화라는 특성에 의해 음반 소비를 용이하게 함으로써 음반의 판매량 증대에 도움을 주었으며, 마이크를 통한 녹음 가능성의 증대, 복제의 용이성에 의해 음악의 전파를 수월하게 하여 음반산업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한편 으로는 뮤직 카세트의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음반업계에 군소 음반사와 불법 복제업자들이 다수 등장하게 되었음도 사실이다.


5. 80년대 이후의 본격적인 성장기

 

국내 음반산업이 현재와 같은 구조로 자리잡힌 것은 80년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197I년 13개, 1981년,24개에 불과하던 음반제작사(출처:광공업통계조사보고서)가 1990년에 는 55개(비디오/음반 제작업체 포함), 1994년에는 102개(비디오/음반 제작업체 포함)로 증가하여, 80년대 이후 음반제작사가 급증하여 오늘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80년대 이후의 전반적인 매체산업 증가가 음반산업의 발전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80년대 중반이후 국내 음반산업은 외국음반사의 직배체제 확립, 대기업의 음반산업 진출 본격화라는 특징을 보인다.


1987년의 법개정으로 인해 해외 음반사의 직배가 가능해지면서 국내 음반사들의 라이센스 음반 발매는 외국사들의 합자사 및 직배사 진출로 대체되는데 1988년세 오아시스와의 라이센스 계약이 끝난 EMI가 계몽사와 합자사를 설립했고, 같은해 워너뮤직(Warner Music)이 100% 자본투자로 한국에 판매 자회사를 설립, 음반판매에 들어갔다.


다음해인 1989년에 는 소니뮤직(Sony Music)이 역시 100%자본으로 한국지사를 설치하여 활동을 시작했으며 성음과 라이센스 파트너 관계에 있던 폴리그램이 1990년에 80:20의 비율로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또한 1991년에는 BMG가 직배를 시작함으로써 세계 5대 메이저들 모두가 직배 또는 합자사의 형태로 한국 음반산업에 참가하고 있는 상태이다.


SKC가 1987년 음반업에 진출함으로써 시작된 대기업의 음반시장 참여는 이후 삼성계열 사인 제일기획(92)과 삼성전자(93.8),두산의 오리콤(93.7),현대의 현대전자(93.9),대우의 세음미디어(93.9),럭키금성의 LC미디어(93.4),롯테의 대홍기획(94.7)등의 참여로 이어진다.


한편 80년대 이후 또 하나의 특기할 사항으로는 콤팩트 디스크(CD,Compact Disk)의 발매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6년 필립스사와 기술제휴한 SKC에 의해 국산 콤팩트 디스크 (CD,Compact Disk)가 출시되었다.


CD이후에도 LD(Laser Disk), DCC(Digital Compact Disk), MD(Mini Disk)등 새로운 형태의 음반 개발이 이루어졌다 국내 LD는 1990년 삼성전자에 의해 최초로 생산되었으며, 이후 - 많은 업체들이 이 분야에 참여하여 삼성전자, 인켈, 태광, 롯데, 해태전자 등이 LDP를, 나이세스, 스타맥스, SKC, BMB코리아, 오아시스등이 소프트웨어를 생산하여 점차 시장을 넓혀가고 있는 추세이다. 「1990년에는 지구레코드도 CD생산에 참가하게 되었고 이후 여타 음반회사들이 CD생산에 참여하여 현재의 CD제작업체는 SKC,지구, 오카시스, 성음, 서울음반, 아세아, 태광, 삼성, 웅 진미디어 등의 9개사에 이르고 있다. CD의 등장이후 LP는 사향일로에 접어들었고 현재는 CD에 의해 LP가 거의 대체된 상태이다.」


나. 하드웨어의 역사

 

우리나라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최초의 음향기기는 A-501로 명명된 진공관 라디오로, 1959년 11월 금성사가 개발해 정식으로 상품화한 제품이었다. 금성사의 이 제품은 설계를 위해 서독인 기술자를 기술고문격으로 초빙, 판매이익금 중 2%를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생산설비 및 부품들을 들여온 것 인데, 국산 부품은 60%정도 사용되었다.


이렇듯 60년대 전후를 기점으로 시작된 음향산업은 라디오 조립에서부터 시작,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에 힘입어 스피커 제조회사들이 등장했다. 당시의 음향기기 제조업은 대부분 수공업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으려, 이때부터 독일이나 일본은 진공관 라디오에 수동식 레코드 플레이 어를 탑재시켜 놓은 일체형 전축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60년대부터 70년대 사이에 존재하던 우리나라의 전축 브랜드는 별표, 성우전자의 독수리표, 활표, 바이킹, 엠파이어등이었는데, 이중 국내 오디오 산업의 원조로 꼽을 수 있는 브랜드는 별표와 독수리표라고 할 수 있다.


1957년 종로에서 오디오 판매를 시작한 별표의 천일사는 61년 전축 제조업체로 확장, 변신하게 된다. 이후 전축 천일사는 국내시장위주로, '천일사 전자산업주식회사'는 수출위주로 오디오를 제작, 판매하면서 당시의 국내시장 및 수출량 대부문을 차지할만큼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인한 자금압박으로 도산, 결국 태광산업에 인수되고 만다. 한편 성우전자의 독수리표는 1957년 진공관 시대에 문화전파사라는 상호로 출발하여 발전하게 된다.


이들에 의해 생산된 60년대초의 전축은 부피가 컸으며 스피커가 좌우에 부착되어 있고 중앙 상단에는 앰프, 하단에는 레코드 플레이어가 설치된 일체형이라는 특징을 지녔다. 국내 오디오 산업은 트랜지스터의 개발로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짧은 수명, 잦은 고장의 문제점을 갖고 있던 진공관에 비해 트랜지스터는 많은 장점을 지녔던 것이다. 트랜지스터는 반영구적인 수명을 지닐뿐만 아니라 혁신적인 회로설계와 창신한 디자인의 제품 등장을 가능케 했다. 또한 반도체 기술의 축적 역시 오디오 산업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하에 70년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의 음향기기는 비약적 발전을 시작한다. 이 시기부터 많은 오디오 제작사들이 등장하여 국내 오디오 산업을 성장시켜 나가는데, 오늘날의 대표적인 국내 오디오 제작회사들은 거의 70년대에 설립되어 현재까지 주도적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이들 제작사는 설림이후 70년대와 80년대의 경제부흥에 힘입어 발전을 지속하게 되며, 그 현황은 다음과 같다.


국내의 롯데 파이어니아는 일본 파이어니아와의 합작투자 회사로서 1973년 11월에 설립된다. 롯데 파이어니아는 수출에만 전념해 오다가 80년대 초에 내수용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국내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또한 70년대 초에 동원전자(현재의 인켈)가 등장하여 국내 오디오 산업의 발달에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데, 현재 이 회사는 미국의 셔우드(SHERWOOD)를 인수, 수출상표로 사용해 세계무대로 진출하고 있다.


한편 한국내셔널전기주식회사(현재의 아남)도 설립되어 국내 최초로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고 신제품 품평회를 갖게 되며, 별표전푹을 인수하여 세워진 태광산업도 일본 도시바와의 기술제휴로 국내시장을 석권하여 에로이카, 쾨헬등의 상표로 오디오를 판매하게 되었고, 일본 샤프전자와 합작으로 설립된 샤프전자도 오디오 시장에 참가했다.


가전 3사 역시 오디오 산업에 적극 참여한다. 금성(현재 LG전자-삼성), 대우전자는 각각 자체 브랜드를 보유하면서 국내 오디오 산업의 발달에 기여하고 있다.


국내 오디오 산업은 40년도 되지 않는 짧은 역사를 보유하고 있지만 다수 오디오 제작 사들의 경쟁구도하에서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2. 음반산업의 현황과 구조적 성격

 

음반은 비디오와 같은 문화상품으로서 미적, 표현적 기능에 소구하므로 소득에 대한 탄력성이 높은 상품이다. 또한 소비의 비반복성이라는 속성을 지닌 사치재로서 제품수명이 짧다는 특성을 지닌다.


한편 음반상품은 공공재적 특성을 지니므로 제작에 들어가는 초판비용이 크지만 복제비용은 상대적으로 저렴하여 단위당 생산에 소요되는 비용은 매우 적다. 따라서 일단 제작된 음반의 판매수입은 대부분 소비자의 소비욕구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겠다. 복제비용의 저렴성으로 인해 더 많은 소비자가 구매할수록 판매수입은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음반상품의 공공재적 성격은 다음과 같은 음반산업 구조를 형성하는 원인이 된다. 우선, 원작의 복제비용이 저렴하므로 복제상품이 유통되는 암시장이 형성되어 불법유통구조가 광범위하게 발달하게 된다.또한 해외음반사의 국내진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한다. 이들 해외음반사에 있어서 한국시장은 부수시장의 성격을 지니게 되는데 이미 해외에서 제작되어 평가를 받은 음반을 복제비용만 투자하여 제작, 판매하게 되므로 그 이윤성을 보장받게 된다. 따라서 국내 음반사들보다 유리한 입장에서 음반발매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이미 해외 메이저사들은 국내 음반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메이저사들의 각국 음반시장 잠식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음반의 경우 비디오 시장과는 달리 국내 기호충을 바탕으로 한 국내가요시장이 비교적 탄탄히 형성되어 있는 상태로, 국내 음반산업은 국내가요시장과 외국음반시장으로 이루어진 이원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국내 가요시장과 외국음반시장은 서로 다른 구조를 지니게 되는데, 가요시장은 기획사나 가수 개인이 기획을 한 뒤 제작사와 전속계약을 하여 제작된 음반이 매체를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형태를 갖는다.


한편 외국음반시장의 경우는 이미 해외에서 제작된 음반중 한국시장데 적합하다고 결정된 레파토리가 라이센스 음반사 또는 해외음반의 한국지국에 의해 기획되고 국내 제작사와의 계약을 통해 제작, 발매되는 과정을 거친다. 현재와 같은 음반산업의 이중구조는 80년대말 해외음반사들이 합작사 또는 직배사의 형태로 국내에 진출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국내 음반시장에서의 가요시장과 외국음반시장 점유율 은 60:40으로 추정되며 전체적인 국내음반산업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국내 음반시장에서 음반은 기획과 제작의 과정을 거쳐 공급된다, 국내 음반과 해외 음반은 각각 기획단계를 마친후 음반제작사에 의해 제작되는데, 해외음반의 경우 국내가요보다 위험부담률이 낮아 기획상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한편 음반제작부문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라면 CD제조 업체의 증설 및 신규참여가 증가한다는 것으로, 이는 CD시장의 규모확장에 기인한다. 음반 유통부문은 대기업 및 외국메이저 유통사들의 유통시장 참여로 인해 변화가 요구되고있다. 기존의 유통체계는 도매상 및 중간도매상이 주축을 이룬 다단계 구조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다단계 유통은 소비자 가격의 상승 등 문제점을 내포한다.


또한 전근대적 음반거래 방식, 도매상 및 소매상의 규모 영세성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는 국내유통구조는 막강한 자본과 합리적 마케팅을 바탕으로 하는 외국 메이저 유통사들의 진출이 본격화되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에 대한 자구책 마련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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