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설서 내용 :
현대 경기소리에서 남성 소리꾼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 근래 들어 남성 소리꾼의 활동이 점차 부각되고, '남성 소리', ‘남창'을 전면에 내세운 작업들이 이어지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나 또한 한 명의 남성 창자로서 내 소리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탐구해왔다. 고민 끝에 도달한 결론은 결국 ‘내소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내 소리’는 내가 남성이며, 남성의 신체에서 비롯된 음성을 내고 있다는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렇기에 남성의 소리를 찾아가는 일은 단순한 흥미나 개성의 문제를 넘어, 이분야에서독자적인 음악가로 존재하기 위한 문제였다. 나는 그 실마리를 옛 남성 소리꾼들에게서 찾았다. 남성 소리의 맥이 활발히 이어지던 시기의 명창들이 취입한 유성기 음반을 듣고 채보하며 따라 부른 지도 꽤 오래되었다.근래에는 그들이 어떤 집단을 기반으로 활동했고, 어떤 곡을 불렀는지 공연·방송·음반 자료를 찾아정리했다.
그렇게 축적한 자료는 박사논문으로 이어졌고, 연구 과정에서 오늘날의 경기소리에서는 쉽게만날 수 없는 수많은 소리를 발견했다. 그 안엔 지금과 다른 선율과 음역, 낯선 시김새와 발성, 같은 곡이라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다른 가창도 있었다. 어떤 소리는 오래된 음반 속에 있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오히려 새롭고 감각적으로 다가왔다. 고음반에서 발견한 소리를 배우고 현재 주류로 전승되는 소리와 함께 불렀다. 서로 다른 시대의 가락을 한 곡 안에서 만나게 하고, 때로는 옛 소리의 구조와 원리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락을 만들었다.
과거의 소리와 현재의 소리, 그리고 나의 소리가 뒤섞이는 과정이었다. 그러한 시도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향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부를 것인가. 유성기 음반 속 남성 명창들의 음색은 거칠지만 결코 투박하지 않다. 낮은 음역은 아니나 그렇다고 여성의 음색을 모방하지 않는다. 간드러지게 가공하기보다는 타고난 음성을 호방하게 끌어내는 멋이 있다.
그들은 같은 곡을 같은 방식으로부르지 않았다. 선율과 장단, 발성, 사설의 운용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음악을 만들었다.경기소리는 본래 그러한 다양성과 비정형성을 품고 있던 음악이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오늘날 몇몇 남성창자들이 '남성 소리', ‘남창'을 강조하면서도 실제 가창에서는 여성 창자의 음색과 발성 관습을 따르는경향에 의문을 갖는다. 남성 소리의 정체성은 ‘남성’이라는 이름을 크게 외치는 데 있지 않다. 남성의 몸에서 비롯된 음성과 옛 남성 명창들의 어법을 충분히 체득하여 스스로의 음악적 언어를 갖는 데 있다. 옛명창들의 소리는 그 질문에 중요한 실마리를 주었다.
그러나 그들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들의 소리를 그대로모창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각자의 소리를 만들었던 것처럼, 나 역시 나의 소리를 만들어가는일이었다. 이 음반은 그 과정의 기록이다. 선곡과 구절의 선택, 음역의 설정, 발성, 시김새에 이르기까지 옛 남성명창들의 1차 자료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했다. 그렇기에 이 음반과 나의 박사논문은 글과 음악이라는 서로 다른 매체로 구현된 결과물이지만,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동일선상의 작업이라 할 수있다. 나는 전통을 이어가고자 하는 사람이기에 나의 정체성은 단지 새롭거나 남들과 다른 소리를 만드는것으로 완성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 소리의 근원을 알고, 그 뿌리 위에서 무엇을 이어받고 무엇을 새롭게 만들어갈 것인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전통 경기소리의 대중적 기반은 점차 약화되어 왔고, 그 흐름이쉽게 바뀌리라 낙관하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내게 ‘나의 소리’를 갖는다는 것은 단순한 개성의 문제가아니다. 전통에 근거하면서도 누군가의 소리를 반복하지 않고, 한 명의 독자적인 음악가로 존재하기 위한문제이다. 그래서 이 음반을 만들었다. 존재하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정체성을 찾았다.
2026.08 전병훈
전병훈(JEON BYUNGHOON) :
경기소리의 전통을 바탕으로 공연·음반·연구·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소리꾼이자 연구자이다. 전통경기민요와잡가의 음반화, 유성기 음반에 남겨진 옛 소리의 발굴과 재현, 새로운 잡가의 작사·작창 등 경기소리의 전승과확장을 위한 다양한 작업을 지속해왔다. 특히 근대 남성 경기소리 명창들의 음악과 활동을 연구하며 옛 소리의음악적 가치를 오늘의 가창으로 연결하는 데 주목하고 있다. 한양대학교에서 음악연주학 박사(DMA) 학위를받았으며, 국가무형유산 경기민요 이수자이자 사단법인 경기음악연구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
『경기소리 전공자를 위한 오선보와 함께 보는 경서도창 가사집』 도서출판 경음, 2023『전병훈의 창작잡가 OLD NEWNESS』, 도서출판 경음, 2025
학위논문
「배따라기, 지진배따라기 연구: 시대별 변화 양상을 중심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학위논문2019「20세기 전반 경기소리의 음악적 다양성과 미적 특징: 남성 명창을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박사학위논문2026
주요음반
2020 『전병훈의 경기민요전집, 서도민요』
2022 『전병훈의 경기잡가 전집(東鎭姓殿全族)』 5CD
2025 『회심곡과 고사덕담』
2025 『전병훈의 창작잡가 OLD NEWNESS』
학력 및 활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술사 및 예술전문사 졸업
한양대학교 음악연주학 박사(DMA)
국가무형유산 경기민요 이수자
사단법인 경기음악연구회 이사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출강
국립국악고등학교 출강
주요 수상 및 심사
2025 국가무형유산 ‘올해의 이수자상’ 전통음악 부문 수상
2024 제50회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 민요 명인부 장원
2017 제37회 온 나라 국악경연대회 민요부문 1위
2017 제33회 동아국악콩쿠르 일반부 가야금병창·민요부문 금상
2016 제7회 안비취대상 전국민요경창대회 명창부 대상
2024 제15회 서울국악제 민요부문 심사위원
2026 제44회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 민요부문 심사위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