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매니아                                                                                                                                                                       

    돈보다 국악음반 만드는 게 더 좋네요"

-홍콩상하이은행 서울지점 수출입부 부지점장 정창관-


국악음반이 과연 돈이 될까? 물론 돈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대중가수 조성모처럼 200백 만장을 팔아치우며 '떼돈'을 벌 정도의 규모도 아니며, 팔려야 1만장이면 베스트셀러에 명반 소리를 듣는 것이 국악음반이다. 그것도 가물에 콩 나듯이 벌어지는 기적 같은 일이다.

이처럼 척박한 환경 속에 묵묵히 뛰어든 사람이 있다. 그는 국악과 관련된 국악언저리에 있었던 사람도 아니며, 더욱이 국악인도 아니다. 그는 은행인 이다. 홍콩상하이은행 서울지점 수출입부 부지점장인 정창관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돈이 필요해서 국악음반에 투자를 할까? 그랬다면 그는 은행 인으로서는 빵점이다. 메이저음반사도 그저 구색 맞추기로 국악음반을 내는데, 세계적인 은행의 부지점장인 그가 그렇게 무모한 투자를 할 리가 없다.

그는 원래 서양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실제로 베토벤 교향곡 5번 음반을 240여장이나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서양음악에 관해서는 매니아였다. 그러던 1987년의 어느 가을날, 판소리나 한번 들어보자고 국악음반을 찾았을 때, 채 10종류가 안 되는 국악음반에 큰 충격을 받았다. 더구나 당시 그가 찾던 판소리 음반은 단 한 장도 없었다. 이때부터 그의 국악 음반에 대한 열정이 시작된다.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중고 국악음반을 수집하기 시작했으며 닥치는 대로 국악을 듣고, 책을 읽고 연주회를 다니게 된다. 뜻맞는 몇몇 친구들이 모여 국악음반을 기획해 음반을 발매하기도 한다. 그의 첫 작품인 '판소리 5명창'. 그 음반을 5000장이나 팔아치우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한다.

십 수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하게 '한국고음반연구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사비(私費)를 들여가며 국악음반을 제작해 화제가 되고있는 정창관씨를 국악중심에서 만나보았다.

*우선 , '정창관 국악녹음집'이라는 레이블로 제작되고 있는 음반에 대해 이야기할까요? 사비를 들여가면서 제작하신 '정창관의 국악녹음집'이 벌써 1998년 이래로 3집까지 나왔는데요.

예 그래요. 일년에 하나씩 제작했습니다. 1998년, 안숙선 선생의 이모로 경남진주에 살고있는 가야금 명인, 강순영 선생의 음반이 1집, 1999년 명창 조순애 선생이 2집, 은율 탈춤의 악사인 김영택 선생이 3집으로 올 7월에 발매되었죠.

*국악계에서도 잘 알려진 분들이 아닌 것 같은데 , 그분들의 음반을 내신 이유가 있습니까?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목소리를 듣고 싶어도 듣질 못해요.누군가 녹음작업을 하지 않으면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귀중한 우리소리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됩니다. 그것이 안타까워 음반제작을 하게 되었죠. 그래서 저는 나이가 드신 분을 우선해서 음반 제작을 합니다.

*특히 제3집인 "김영택의 음악세계"는 음반이 발매된 후 김영택 선생이 열흘만에 세상을 떠나셨다는 데...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목소리를 듣고 싶어도 듣질 못해요. 근데 음반을 들려 드리려고 하니 댁에 CD 플레이어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 길로 서울에 올라와 CD 플레이어를 사들고 다시 내려갔죠. 그리고 선생 옆에서 음반을 들려드렸죠. 누워서 지긋이 음반을 듣더니 "에잇, 여기는 좀 빨리 했어야 하는데!." 라고 무릎을 치며 아쉬워하시는 겁니다. 그 모습이 그렇게 인상적이었건만... 그리고, 열흘만에 타계하셨는데 가족들이 너무 편하게 돌아가셨노라고 이야기를 전해 마음 한구석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비를 들여가며 음반을 제작하는데 수월치 않았을 텐데요. 음반회사나 기업협찬, 기업 메세나와 연결하면 쉽게 제작할 수도 있었을 텐 데요. 그리고 음반은 과연 몇 집까지 나오게 되나요?

제 이름이 들어간 음반이라서 어려워도 제 돈으로 내려고 합니다. 다른 기획 음반이라면 음반회사나 기업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정창관 국악녹음집'음반은 일년에 1개씩, 음... 언제까지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당분간은 계속 제작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음반을 내면 저희 은행의 직원들이 많이 참여해줘서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죠. 또 제가하는 일이 수출입업무다 보니 외국인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그 분들에게 음반을 선물하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어요. 물론 다음에 만나도 저를 바로 기억을 하구요.

*그럼 이제 한국고음반연구회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현재 회원수가 상당하죠? 몇 분이나 활동하고 계십니까?

지금 총 15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보형 선생이 회장직을 맡고 계시죠. 그리고 저, 양정환, 배연형, 김문성, 노재명, 권도희 씨 등 국악계에 계시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국악에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이죠. 저처럼 말이죠. 특히 15명 중 박사가 6명이라서 농담으로 그럽니다. 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이 되려면 박사학위가 있어야 한다고... 하하..

*가입요건이라는 것이 있나요?

고음반에 대해 애착을 갖고 있으면 누구라도 회원이 될 수 있어요. 국악계에서는 한국고음반연구회가 폐쇄적이라고 하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단지 들어오면 많은 일을 해야하지요. 책만 해도 기획부터 교정, 제작까지 모두 우리 힘으로 만들어 내죠. 공연도 전부 우리들이 분담해서 치르고요. 그러니 일 열심히 할 의욕만 있으면 언제든지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한국고음반연구회 활동과 더불어 국악계에 많은 활약을 기대하면서, 마지막으로 한가지, 개인적으로 국악음반을 총 정리한 홈페이지를 제작하셨는데요. 거기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시죠?

CICI, 정말이지 이 나이에 홈페이지(www.kukakcd.pe.kr) 만드느라고 고생했습니다. 책을 들여다보면서 떠듬떠듬 만들었죠. 만들고 나니 많은 분들이 격려도 해주셔서 마음이 흐뭇했지요. 홈페이지에 국내에 나와있고 제가 갖고있는 1400여장의 모든 국악음반을 정리했습니다. 그것들이 현재 유통이 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말예요. 근데 좀 힘이 들어요. 새 음반이 나오면 계속 업데이트도 해야하고 일일이 질문에 답하기도 시간이 부족 하구요. 자료가 넘치면 나중에 서버가 필요하게 되고, 당분간은 혼자 꾸려갈 수 있겠지만 나중에는 도움을 좀 받아야겠지요.

 인터뷰가 끝나고 선물로 받은 3집 '김영택의 음악세계' 음반을 이리저리 둘러보니 표지에 '매년 국악의 해'라는 로고가 들어가 있다. 매년 국악의 해.... 그의 섬세함과 국악에 대한 열정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돌아가는 그의 모습에서 정말이지 매년 국악의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취재/ 엄덕영 adam@kukakcenter.com
* 위의 글은 국악센터 홈페이지에서 퍼와 사진을 보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