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토벤 '운명' 고집은 내운명 - 음반수집가 정창관씨 |
책장 가득 꽂혀있는 레코드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몇 개를 꺼내 오디오 위에 올려 놓으면 의아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어떤 판을 틀든지 스피커에서는 귀에 익은 한 곡만이 흘러 나오가 때문. '빠빠빠 빰~'.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수집가들 사이에서 그는 음반수집가라기보다 '운명'수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군에서 전역한 뒤 클래식음악을 처음 듣게 됐죠. 그때 산 음반이 바로 베토벤의 운명입니다. 음악에서 처음 감동을 맛봤죠." 결국 정씨는 지휘자에 따라 재해석된 여러 '운명'들을 듣기 위해 이 음반만을 고집하게 됐다. 지금까지 수집한 베토벤 5번 LP와 CD는 187종 250장. 이 중에는 1913년 독일지휘자 아르투르 니키쉬가 베를린필을 지휘해 세계 최초로 녹음한 '운명'이 수록된 음반도 있다. 또 국내에서 발매된 32종과 1920-1930년에 제작된 유성기음반 3장도 포함돼 있다. "운명이 최초로 녹음된 유성기음반은 세계적으로 희귀해 구하기가 무척 힘들죠. 10여년을 쫓아다닌 끝에 레코드판으로 복각된 음반을 구할 수 있었어요." 정씨는 86년에 한 음악잡지에 근무하는 사람으로부터 간곡한 부탁을 받았다. 그 사람은 독일지휘자 오토 클렘페러의 레코드를 모으고 있는데 유독 베토벤의 5번 교향곡만 구하지 못했다는 것. 통화할 ?는 한마디로 거절했지만 정씨는 결국 그 사람에게 음반을 넘겨주었다. "수집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자기가 갖고 있는 물건이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 더 소중하게 간직될 수 있다면 기꺼이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 제 수집철학입니다." 천운이었을까. 얼마 후 정씨는 외국을 다녀온 동생으로부터 몇장의 음반을 선물받았다. 그중에 '오토 클렘페러의 운명'이 들어 있었다. "'운명'이 끝날 때까지 '운명'을 모을 생각"이라는 정씨는 요즘 국악CD음반 수집에 나서고 있다. 서태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