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듣고 싶은 소리, 그리고 음악"                                                                 
 

정창관(鄭昌官) / 홍콩 샹하이 은행 부장 / 본회 이사


  천지가 창조될 때 소리도 함께 만들어졌다. 인간은 이 소리를 듣고 난 후에 음악을 만들었다. 소리란 우리의 귀에 들리는 것, 즉 청각에 의하여 느끼는 진동이다. 회화가 색의 예술이고, 사진이 빛의 예술이라면, 음악은 소리의 예술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우리들은 좋은 소리와 좋은 음악을 듣기 위하여 한 평생을 편력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듣는 것은 다른 소리와 다른 음악이지, 결국 좋은 소리와 좋은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어디엔가 좋은 소리와 좋은 음악이 존재할 것이다."라면 나도 남들처럼 죽을 때까지 방황할 것이지만, 지금 좋아하는 소리와 좋아하는 음악은 있다.

  베토벤의『교향곡 제5번』1악장은 항상 나의 운명을 두드리고, 홀스트의『행성』(PLANETS : "혹성"이라고 국내에 번역되어 있지만, "혹성"은 일본말이고 우리말은 행성이다.)의 7곡중의 마지막곡인 "명왕성"의 종결부분인 합창은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를 떠나 미지의 세계로 향해 가는 우주선 보이저 1, 2호를 생각하게 한다.(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탐사선은 지구인의 소리 -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과 자연의 소리등 - 를 싣고 있으며, 1990년에 태양계를 벗어날 것이다.) 스메타나의『나의 조국』중 "몰다우강"은 비로 떨어진 하나의 물방울이 시냇물이 되고 굽이 굽이 돌아 강물이 되고 햇빛을 받아 거울이 되고 달빛을 받아 요정이 되어 체코의 수도 프라하를 가로 질러 폭포로 흘러 내려가는 한 편의 영화를 보게 한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싫은『멘델스죤』의『바이올린협주곡 E단조』, 우리의 역사와 애환이 담겨 있는 안익태의『한국환상곡』(SYMPHONIC FANTASIA KOREA : 교향적 환상곡 한국), 언제들어도 부담없는 비발디의 음악들, 장님소녀를 위해 달밤에 작곡했다는 일화가 교과서에 나와 있었던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월광』등 수 많은 클래식 음악을 듣지만, 이 모든 음악은 나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주지만, 나의 눈에 눈물을 맺히게는 못한다.

  김초월이 부르는 판소리『춘향가』의 이별대목, 박동진·김소희·오정숙·성창순등이 열창하는 창극 "심청전", 성금연, 김죽파의 "가야금산조", 신쾌동의 "거문고산조", 남도민요의 "보렴"과 "육자백이"등은 언제나 나의 눈가에 눈물을 맺히게 한다. 단순한 가락과 장단으로 연출되는 "사물놀이"는 언제나 흥겹다. 어릴 적에 동구 밖에서 돌아올 때 들리는 징소리는 무언가 흥겨운 일이 있을 것 같아 걸음을 재촉한다. 황병기의 가야금작품 "비단길"은 어디에 있을 내 님이 모시옷으로 곱게 차려입고 보선발을 사뿐히 세우고 나에게 다가오는 착각을 일으킨다. 나의 가슴 저 밑에는 우리가락의 피가 흐르고 있으며, 더 깊은 곳에는 자연의 소리가 고여 있다.

  야간보초를 서면서 듣는 시냇물 소리, 밤새도록 별을 보면서 듣는 개구리의 울음소리와 간간히 들리는 부엉이 소리, 광안리의 모래바닷가에서 듣는 파도소리, 아버지를 따라 사냥 다닐 때에 산 속에서 듣는 새소리와 소나무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 이 소리들은 단순하고 계속적인 소리이지만, 몇 시간을 듣고 있어도 지겹지가 않다. 음악이 생기기전에 인간이 들었던 태초의 소리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클래식음악보다 우리의 가락을, 우리의 가락보다 자연의 소리를 더 좋아한다.

부름을 갈 때는 광활한 들판을 지나가야 한다. 어느날 확 트인 들판을 걸어 가다가 너무나 놀라서 뛰어가다가 멈추고, 또 들어보고는 달려간 적이 있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멀리 민가에서 들리는 유선방송의 스피커소리도, 들판의 벼를 스치는 바람소리도, 울퉁불퉁한 국도를 달리는 차소리도,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다. 나  외에는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광활한 평야에서의 무성(無聲)은 몹시 무서웠다. 아무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귀를 기울이니 어디선가 윙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재작년에 이 소리, 무성을 듣기 위해 옛날의 그 길에 가 보았지만, 아스팔트 위를 쌩쌩 달리는 택시의 소리, 들판에서 들리는 경운기소리들이 계속 나의 귀를 진동시켰다.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야 무성을 들을 수 있겠지만, 확 트인 광활한 공간 속에서 무성을 듣기는 정말 어려울 것 같다. 내가 정말 듣고 싶은 소리는 이 무성(無聲)이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갈 때, 우리는 오랫동안 편력하던 소리와 음악에서 벗어나 무성인 곳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선인(先人)들은 무성지악(無聲至樂),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소리가 없다."라고 했다. 살아 생전에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한 번 더 들을 수 있을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