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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2) 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 · HSBC은행 부지점장 정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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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흐르는 공간 사이로 어둠이 살며시 찾아온다. 어둠이 짙어 가면 음악은 깊어가나 소리는 낮추어진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알레그로보다는 모데라토의 음악이, 모데라토보다는 아다지오의 음악이 더 어울린다. 깊은 밤에 듣는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의 아름다움이 나를 슬프게 한다. 어둠 속의 빨간 진공관 불빛과 어울러 흘러드는 알비노니의 [현과 오르간을 위한 아다지오]의 선율이 또한 나를 슬프게 한다. 판소리 [심청가] 중에서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석에 몸이 팔려, 선인들을 따라 임당수로 떠나기 앞서 부친과 이별하는 대목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계면조로 한 바탕 듣고 있노라면 눈물이 떨어지도록 슬프다. 소리, 그리고 음악은 우리의 귀까지는 같게 들려오지만, 고막의 질이 개인마다 다르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모두들 다르게 느낀다. 음악은 공간을 넘어 청각으로 들어와 우리 마음 속에서 용해된다. "어떻게 느낀다"는 것은 청각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한 장의 유성기음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는 사람, 처음 월급을 털어 산 오디오의 그 소리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음악이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깨우치지 못하고,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도 아직 음악을 기계에서 찾기 위해 끊임없이 오디오를 바꾸는 사람을 보면 나는 슬프다.
볼쇼이 발레단(좌측사진:1989년 볼쇼이발레단 공연 팜플렛 표지)의 표를 살려고 길게 늘어선 행렬이 나를 슬프게 하며, [하루만에 매진]이라고 쓴 예매처의 광고문이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우리의 국악 음악회는 무료인데도 사람을 채우지 못해 애태우고 있는데. 말러의 연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워하는 노래]를 들을 때, 그 숙연하고 냉혹한 그리움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보모가 제 아이를 사랑하고 제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만큼 깊은 사랑과 깊은 슬픔이 있을까? 이것은 시인 고은이 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한 구절이다. 허나 이 곡을 작곡했을 때는 말러에게는 아이가 태어나지도 않았으나, 후에 말러는 아이를 얻었으나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는 정말 나를 슬프게 한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나를 슬프게 한지만,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아니다. 어제 나를 슬프게 한 것이 오늘도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아니고, 오늘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 내일도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아닐지어다. -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