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BC를 떠나면서.....                                                                                             

전 수출입부 부지점장 정창관  
 


  생(生)하면 사(死)하고, 만나면 헤어지고, 들어오면 나가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태어나면 죽을 때 좋은 얘기를 들어야하고, 만나면 헤어짐이 아쉽고 그리워야하고, 들어간 뒤에는 명예롭게 떠나야 한다.

  1984년 한일은행(지금의 한빛은행)을 그만두고, 그 해 11월 10일 HSBC은행 서울지점 개점직원으로 입행하여, 이제 HSBC를 떠나니 16년하고도 4개월이 되었다. 내 나이 33세에 입행하여 50에 들어서면서 떠나게되니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HSBC와 함께 한 셈이다. 그 동안 어려운 고비 고비가 있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 대과 없이 이제 그만 둘 수 있어 좋다. 제일 아쉬웠던 고비는 부산지점 사건이다. 밑의 직원의 고민을 듣고 지점의 비리를 상부에 보고했지만, 나는 그 직원들을 지켜주지 못했고, 해당되는 분을 영어의 몸이 되게 한 결과가 되었다. 지금 다시 그 상황이 와도 그렇게 하겠기에, 후회는 없지만, 제일 안타까웠던 사건이었다.

  입행할 때에도 수출입부의 책임자였으며, 떠날 때에도 수출입부의 책임자고, 한일은행에 있을 때에도 주로 수출입업무에 종사했다. 나는 진정으로 수출입 업무를 즐기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직장생활을 했다고 감히 말 할 수 있다. 허지만 올라갈수록 일이 많은 HSBC의 업무스타일과 목표를 달성해야한다는 압박감, 부하직원의 원하는 바를 풀어줄 수 없는 무력감들이 항상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HSBC에서 제일 고맙게 생각하면서 지낸 일은 휴가가 많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많은 시간을 나의 취미생활-국악-에 투자할 수 있었다. 한국고음반연구회를 결성하여 국악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해 왔으며, 국악CD음반에 관해서는 이 땅에서 제일 많은 자료를 확보하여 필요한 사람들에게 홈페이지(www.kukakcd.pe.kr)를 통해서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2월에는 SBS 8시 뉴스에 '국악지킴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또 국립국악원이 주최하는 국악교육 공모제를 HSBC와 연결시켜준 것도 나로서는 보람된 일 중의 하나였다. 이 공모제가 계속되어 일반인에게 HSBC하면 "아! 국악에 투자하고 있는 외국은행"이라고 기억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또 HSBC 직원들의 후원에 힘입어 "정창관국악녹음집"을 3집까지 출반할 수 있었던 것도 나에게는 보람이었다.(현재 4집을 준비하고 있다.)    

  나이 50세에 가까이되자, 한번뿐인 나의 인생을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자주 떠오르는 차에 생각지도 않았던 기회가 온 것이다. 55세 정년퇴직 때 고민 할 것, 5-6년 빨리 고민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에, 그 때보다는 지금이 5-6년 빠르다는 생각에 단숨에 결정을 내렸다. 마눌님이 전혀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잘 결정했다는 격려에 내심 놀랐다. 또 아이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설명을 하는데, 10살 된 딸아이가 "아빠, 왜 그만 두어야 해?", "윗사람이 그만 두라고 해." "더 다니면 안 돼."라는 말에 가슴이 미어, 한 때 주춤했지만, 이미 길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위에서 정해져 있었다. 그만 두는 이 시점에 미련도 남아있고, 앞길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마는, 모든 짐을 벗었다는 시원함과 후련함이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살 날보다 산 날들이 훨씬 많은 이 때에, 내 남은 인생을 국악에 관련된 일에 전념할까? 그래도 20년 넘게 수출입 업무에만 종사해왔고, 그것도 수출입에 강한 HSBC에서 근무했는데,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잊고 국악으로 발을 돌리기에는 아깝기도 하고,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우선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어왔던 '국악음반에 대한 길잡이' 책을 한 권 쓰고, 생각하고 싶다.(나중에 한 권씩 사주세요.)

 이제 정든 HSBC를 떠나게 되니, 아!...... HSBC여, 길이 길이 영광 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