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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창관(홍콩샹하이은행 부장) |
나는 <도(道)>란 어디에도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느 분야에나 전문가의 수준을 넘어서면 <도>의 경지가 보이면, 무척 어렵겠지만 <도>를 터득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만약 내가 <도>의 경지에 들어서면 그것이 내가 생각했던 그 <도>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음악의 도>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어사전에는 <도>란 '종교상으로 교의에 깊이 통하여 알게 되는 이치, 또는 깊이 깨달은 지경'이라고 기술하고 있고, 신일철교수는 그의 '낚시 소요유(逍遙遊)'에서 '<도>란 항상 고상한 데서 구하려는 것이 탈이다. 구두 수선공이 한 바늘에 새 구두같이 구두를 고치는 능숙한 기예를 닦으면 그것도 <도>요, 청소부가 고약한 냄새 하나 피우지 않고 뒷간을 말끔히 쳐 가는 기술도 역시 <도>다.'라고 하였다. 장자는 "스승님이 말하는 <도>는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그의 제자의 물음에 "똥과 오줌에도 <도>가 있다."라고 답했다. 독일 소설가 헤르만 헷세의 소설 <싯다르타>에서 주인공 싯다르타는 방황 끝에 결국 평범한 강물의 흐름에서 <도>를 깨닫는다. 이 모두 마음의 문제이다. 여기서 나의 음악의 <도>가 출발한다. 2. 원음이란 무엇인가? 70이 넘은 음악애호가가 원음(?)을 찾기 위해 지금도 청계천, 충무로거리를 헤메어 다니시는 모습을 지금도 본다.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원음을 찾았다, 아니 나의 소리를 찾았다 쉽지만 그것도 한 순간, 또 찾아 나선다. 그러기를 40년이 지나간 것이다. 원음이란 무엇인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회를 들어보라. 1층 앞줄에서 듣는 소리와 3층에서 듣는 소리는 분명히 다르다. 소프라노 가수가 좌측에 앉은 나를 향해 부르는 노래소리는 반대편 우측을 향해 부르는 노래소리와도 다르다. 같은 실내악단의 연주라도 아담한 호암아트홀에서의 소리와 큰 세종문화회관에서의 소리가 다르며, 예술의 전당 연주회장의 앞에서 듣는 오케스트라의 소리는 뒷좌석에서 듣는 소리와도 분명히 다르다. 어디에서 듣는 소리가 원음인가? 나란히 같이 앉아서 듣는 소리라도 과연 내 귀에 들리는 소리와 상대방 귀에 들리는 소리가 같을까? 원음이 최종적으로 스피커를 통해서 우리의 귀에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수 많은 과정을 거친다. 어떤 마이크를 사용하여, 몇 개의 마이크를 어느 위치에 놓는냐? 어느 회사의 녹음장치를 이용하는가? 아나로그인가 디지털인가? .... 수 많은 과정을 거친 한장의 음반은 또 수 많은 재생장치의 과정-바늘 혹은 레이저, 선, 앰프(여기에도 수 많은 부속품이 있다), 선, 스피커-을 거쳐 재생되는데 똑 같은 소리를 재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1943년 6월 30일 독일의 지휘자 푸르트뱅글러는 베를린필하모니오케스트라와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운명]을 실황 녹음했다. 이 녹음테이프를 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인 구 소련이 독일로부터 몰수해 가지고 갔다. 오리지널 테이프가 구 소련의 레코드회사의 레이블인 멜로디아에 의해 LP로 발매된 적이 있고, 이 오리지널 테이프의 아나로그 복사본을 일본 TOSHIBA EMI에서 LP와 CD로 발매했다. 1988년 독일의 레코드회사인 DG는 구 소련으로부터 테이프를 돌려 받아 CD로 발매했다. DG와 THOSIBA EMI의 [운명]교향곡은 같은 녹음이지만 2개의 CD를 들어보면 소리가 다르다, 연주시간(DG:8:09, 10:57, 5:56, 8:06/TOSHIBA EMI:8:13, 11:35, 6:13, 8:30)도 완전히 다르다. 같은 녹음이지만 다른 경로를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소리가 완전히 달라졌다.
"원음이란 한 순간 한 장소에 한 사람에게 한번만 존재한다." 원음은 두번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재생장치를 통해 원음을 듣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럼 원음에 가까운 소리란 무엇인가? 누가 두 소리를 듣고 "이 소리가 원음에 가까운 소리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내가 들은 원음과 상대방이 들은 원음이 다를 수가 있는데. 단지 우리는 "이 소리가 나에게는 원음에 가까운 것 같고 좋게 들린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 마음의 귀로 음악을 들어야 한다. 나는 음악모임(서울 지음회)에서 DG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10번을 오리지널레코드와 성음의 라이센스 레코드로 비교시청한 적이 있다. 오리지널레코드의 소리가 좋다(6명)는 회원도 있었고, 라이센스 레코드의 소리가 좋다(4명)는 회원도 있었다. 가격차이가 심하게 나는 CD PLAYER에서의 비교시청에서도 값비싼 기계의 소리가 반드시 좋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우리(요음회)의 경험이 말해 주듯이 소리의 좋고 싫음의 문제는 HARDWARE-오디오-나 SOFTWARE-LP, CD-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다. 같은 음악을 듣고도 평이 다르게 나오는 것은 음악을 수용하는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릴 때에 들었던 유성기의 소리를 지금도 못내 그리워 하는 사람이 있고, 학창시절에 조그만 라디오를 통해 들었던 고전음악에 관한 추억의 소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있고, 첫 월급을 투자해서 산 독수리표 전축의 소리를 아직도 못 잊어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 나도 몇 번의 오디오를 바꾸었지만 본격적으로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거금을 투자해서 1980년에 구입해서 4-5년동안 들은 마란츠 리시버 2285와 AR3a의 소리를 아직도 못 잊고 있다. 이 소리들을 다른 사람에게 지금의 오디오소리와 비교해서 들려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의 소리를 좋게 평하겠지만,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옛날의 그 소리를 못내 그리워하는 것은 그 소리가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소리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어느 오디오로 듣더라도 어느 음반으로 듣더라도 거부감없이 마음에 새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경제적으로도 절약할 수 있다. 하지만 가진 것이 돈 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오디오 바꿈질을 자주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싶다. 왜냐하면 바꾸는 그 자체가 그에게는 즐거움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오디오로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다면 내가 말하는 <음악의 도>의 길에 접어 들은 것이다. 4. 모두에게 좋은 음악이란 없다.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 나의 경험으로는 대중가요나 팝송보다는 고전음악이 훌륭한 음악이고,
고전음악보다는 우리의 전통음악이 "인간을 감흥케하여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는 음악은 훌륭한 음악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대중가요 중에서 이재호가 작곡하고 진방남이 부른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곡이 있다. KBS에서 방영하는 가요무대에서 이 곡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만큼 많은 사람이 우는 것을 나는 어떤 고전음악회에서나 국악음악회에서도 보지 못했다. 그 사람들에게 베토벤이나 판소리 운운 하면서 대중가요를 비하하지는 못할 것이다. 한참 고전음악에 빠져 가방에 카세트를 가지고 듣고 다닐 때, 택시를 타고 가방에서 듣는 드볼작의 교향곡 제5번 [신세계]를 기사양반에게 건네주어 들려주라 했다. 2악장이 흘러나와 감격해하면 목적지에 도착했다. 카세트를 돌려주면서 기사양반이 나에게 한 말은 "이런 음악을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라는 한 마디다. 그 사람에게는 드볼작의 신세계는 지겨운 음악이다. 그 사람에게는 주현미의 음악이, 심수봉의 음악이 좋은 것이다. 여기에 무슨 자로 가치를 따질 수 있는가? 5. 자연의 소리가 좋다. 현재 나는 고전음악보다 우리의 전통음악을 더 많이 듣고 좋아한다. 하지만 전통음악보다 더 좋은 음악은 자연의 소리이다. 나무 잎에 스치는 바람소리, 갈매기소리 속에 들려오는 파도소리, 그 소리에 밀려가는 조약돌의 소리, 잔잔히 흘러내리는 시냇물소리, 가을밤에 들리는 풀벌레소리, 향긋한 풀냄새와 함께 들려오는 새들의 노래소리,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 인간의 손 길이 가미되지 않는 자연의 소리는 어떤 음악보다도 훌륭하다. 나는 경기도 가평군 외딴곳에 간이천문대를 세운 적이 있다. 회원들 가운데는 학생들이 많기에 그들에게 국악을 들려주기 위해 국악음반 몇 장을 비치해놓았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국악음반을 틀었다. 바로 옆에 있는 산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국악이 파묻히니 국악을 끄지 않을 수 없었다. 밤하늘에 흐르는 은하수를 바라보면 듣는 시냇물의 졸졸졸 거리는 소리는 어떤 국악도 견줄 수 없었다. 나는 자연의 소리 음반을 12장 가지고 있다. 자주 듣는다. 빗소리, 새소리, 파도소리, 갈매기소리, 풀벌레소리, 바람소리, 물 흐르는 소리 등 허지만 우리의 소리가 아니고 일본의, 독일의 소리가 되어 안타깝다. 우리 나라에서도 자연의 소리를 녹음한 음반이 발매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자연의 소리를 안다. 자라면서 들었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안다. 허나 도시에서 자란 지금의 세대들이 성장했을 때 과연 이들이 자연의 아름다운 소리를 느낄 수 있을까? 분명히 나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6. 무성지악(無聲之樂)
물리적인 음악의 울타리를, 소리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 오디오에 얽매여서도 안되고, 음반에 애착을 가질 필요도 없다.자기보다 더 좋아하고 더 갖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자기가 소중하게 간직한 음반을 줄 수 있을 때 <음악의 도>의 경지에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다. 마음으로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을 때 나는 <음악의 도>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음악의 도를 깨닫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