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테마뮤직   음악 속의 전쟁                                                                                      

정창관/ 음악컬럼니스트


  해마다 6월이 오면 우리는 이 민족의 최대 수난사이며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를 회상하게 되고, 조국을 수호하다 전사한 호국영령들의 높은 뜻을 기리게 된다. 인간에 또 다른 인간을 죽이는 전쟁이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모두들 기원하고 있지만, 전쟁은 인류역사상 끊임없이 발생되어 이웃사람들에게 슬픔만 안겨주면서 소멸되어 갔다.

  가깝게는 중동전쟁, 월남전쟁,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전쟁이 그러했고, 지금도 성전(聖戰)이라는 미명하에 꽃다운 젊은이들을 희생시키면서 끝도 보이지 않는 소모전을 보이고 있는 이란·이라크의 전쟁이 그것이다. 전쟁의 가장 큰 죄악은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데 있고, 단지 그 인간이 우리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살상행위가 죄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찬양까지 받고 있는데 그 비극이 있다.

  문학에서는 전쟁의 내막을 신랄하게 파헤치고 전쟁의 참혹성과 비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작품들이 많이 나와 있지만, 음악은 그 표현성의 한계로 인하여 그리 많지가 않다. 그래서 6월을 맞이하여 전쟁과 관련되어 작곡된 작품을 살펴보고 감상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맨 먼저 우리의 6·25 전쟁을 테마의 일부분으로 내포 묘사하고 있는 안익태의 '한국환상곡(SYMPHONIC FANTASIA KOREA : 교향적 환상곡 한국)을 들어야겠다.

  합창과 관현악으로 구성된 이 곡은 우리 민족의 발자취와 수난을 그린 역사적 대 서사시다. 약소민족으로서의 울분과 저항, 그리고 민족적 긍지가 이 작품을 낳게 하였다. 1938년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더블린의 아일랜드 국립교향악단에 의해 세계 초연되었을 때는 8·15 광복까지만을 취급했지만, 6·25후에 다시 민족수난인 한국전쟁의 역사적 과정을 추가로 삽입하여 전곡을 완성한 것이다. 곡은 단군시조의 개국으로부터 시작해서 우리민족의 역사적 발자취를 그리고 있다. 독립의 기쁨과 평화로운 분위기도 길지 못하고 우리 강산은 다시 공산군의 남침으로 민족비극의 암운속에 시달리게 된다.

  옛날의 평화스러운 노래가 나오다가는 끊기고 만다. 이 민족비극의 6·25에서 조국수호를 위해 희생된 영령들의 진혼을 위한 무거운 장송곡이 나오고 전체 민족의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종결부에 이르러 곡이 끝난다.

  그런데 왜 우리의 목소리와 우리의 관현악단으로 연주되는 <한국환상곡>을 들을 수가 없을까? 우리가 유일하게 접할 수 있는 <한국환상곡>은 안익태씨가 1961년 로스앤젤스필하모니 관현악단과 합창단을 지휘하여 헐리우드 볼 야외음악당에서 현장녹음한 것 뿐이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시향에서 한정판으로 제작하여 배포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느 특정인만을 위한 선심에 불과한 것이지, 일반 음악대중을 위한 것은 아니어서 뜻있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전쟁과 음악하면 으레히 소개되는 곡이 베토벤 '웰링톤의 승리'와 차이코프스키 '1812년 서곡' 그리고 '슬라브 행진곡' 이 아닐까 싶다. 빅토리아의 싸움이라고 일컬어지는 베토벤의 '웰링톤의 승리'는 1813년 6월 영국과 프랑스의 싸움인 빅토리아 전투에서 영국군 장군인 웰링톤의 승리소식이 전해지자 메트로놈의 발명자인 멜쨀은 당시의 유명한 작곡가인 베토벤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베토벤은 이미 '전원교향곡'까지 완성한 후여서 갑자기 이런 류의 작품을 쓴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경제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던 베토벤은 결국 상당한 금액을 사례로 받고 전혀 베토벤적이 아닐 수도 있는 이 곡을 완성시켰다.

  1813년 12월 8일 빈의 대학강당에서 전쟁 상이용사 구제를 위한 자선 연주회에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둔 이 곡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는 전쟁의 장이고 2부는 승리의 교향곡으로 되어 있다.

  먼저 영국군의 팡파르가 울려퍼지며, 이어서 프랑스군의 팡파르가 힘차게 울려퍼진다. 다음 프랑스군의 전투나팔과 영국군의 전투나팔에 이어 싸움이 치열해지며, 프랑스군의 포성은 약해지고 영국군이 포성만이 남게 된다.

  장송곡이 잠깐 흐르면서 프랑스의 패전을 표현하고, 제 2 부로 넘어간다. 승리의 교향곡답게 처음 8마디는 금관악기의 우렁찬 팡파르가 울려퍼지고, 영국국가가 연주되면서 승리의 개가를 노래한다.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은 일종의 묘사음악이다. 1812년은 나폴레옹군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러시아를 침공했으나, 러시아군의 반격과 추위와 굶주림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패하고 만 역사적 이야기를 오케스트러로 묘사한 것이다.

  차이코프스키가 이 곡을 작곡하게 된 동기는 당시 모스크바음악학교 교장이었던 니꼴라이 루빈시타인이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의 복원을 기념하기 위해 그 축전곡을 의뢰했기 때문이었는데 이 대사원이 1812년 당시 나폴레옹 군대에 의해 불태워졌기 때문에 1812년이란 이름과 더불어 전쟁을 묘사한 작품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 곡이 1882년 중앙 대사원광장에서 연주되었을 때, 대포소리 부분에서는 포병들이 대포를 쏘아 실감을 더했다고 한다. 곡은 5개의 주제를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하나는 프랑스 국가의 '마르세이에즈'이고 나머지 4개의 주제는 모두 러시아의 오래된 성가와 민요, 그리고 제정러시아의 국가를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4개의 주제가 번갈아 나온 후, '마르세이에즈'를 침묵시킴으로써 러시아의 승리를 묘사하고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슬라브 행진곡'도 1812년 서곡과 마찬가지로 니꼴라이 루빈시타인이 1876년 세르비아와 터키의 전쟁에서 부상한 부상병의 위문 기금모금을 위한 자선연주회를 위하여 위촉된 것이다. 러시아의 남쪽 지방인 세르비아의 무곡을 사용함으로써 동양풍의 이국적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이 곡은 처음에는 <러시아 세르비아행진곡>으로 이름붙였으나 출판에 즈음하여 '슬라브행진곡'이라고 제목이 바뀌었다. 1876년 11월 모스크바에서 루빈시타인의 지휘로 초연되어 열광적인 성공을 거둔 곡이다.

  세계 제 1 차 대전중에 오른 팔을 잃은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인 파울 비트겐시타인의 남은 왼손을 위하여 협주곡 작곡을 의뢰했기 때문에 완성된 곡이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이다.

  라벨은 이 곡을 작곡함에 있어 왼손 뿐이라는 제약을 과감하게 개성적인 연주스타일로 전개시킴으로써 그의 G장조 협주곡에 못지 않은 걸작이 되었다.

  재즈의 효과를 다분히 지니고 있는 1악장으로 된 이 협주곡은 작곡 위촉자인 비트겐시타인의 독주와 작곡자인 라벨 자신이 지휘하는 파리교향악단에 의해 1933년에 초연되었다.

  영국의 작곡가인 홀스트는 모음곡 행성(The Planets : 7곡)을 작곡한 후 "만약 이 곡에 대한 어떤 안내서가 필요하여 각 곡의 서브 타이틀이 넓은 의미로 사용되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라고 1920년에 이곡이 초연되었을 때 어떤 기자에게 말했다.

  홀스트는 행성의 제 1 곡으로서 화성을 가져다 놓으면서 이 곡의 서브 타이틀을 전쟁의 신(THE BRINGER OF WAR)이라고 명명했다.

  전쟁을 가져오는 화성이 제 1 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14년 8월 바로 전에 작곡되었음은 기묘한 인연이자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겠다.

  혼전(混戰)의 긴박감이 넘치며 노도처럼 밀어닥치는 클라이막스에 강렬한 리듬의 연타가 계속한다음, 포화같은 요란한 소리로써 곡은 끝나고 있다.(이 곡은 홀스트의 '혹성'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혹성은 일본말이고 우리말로는 '행성'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마드리갈은 14세기 및 16세기에 성행하였던 이태리의 성악곡이다. 14세기의 마드리갈은 음악의 한 종류인 동시에 시의 형태이기도 했으나, 16세기에는 그와는 상관없이 예술적인 노래가 되었다.

  몬테·베르디는 그의「마드리갈집」에서 사랑을 전쟁으로 묘사하여 그러한 가사들로 노래하고 있다. 전쟁 마드리갈에서의 전쟁은 실전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의 사랑을 느낀 이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분열이며, 열정이며, 젊음인 것이다.

  하이든은 만년에 6곡의 미사곡을 작곡했는데, 그 첫 번째곡이 1796년에 완성한 전시미사곡이다.

  이 곡은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 침공때에 작곡된 것으로 베네딕투스와 아뉴스데이에서의 예기치 못한 드럼의 두드러진 활동 때문에 '큰북미사'라는 독일식 별명이 붙여졌다.

  물론 이 큰북은 전쟁을 암시하는 것이다.

  세 번째 미사곡은 1798년에 완성된 넬슨 미사곡이다. 1798년 영국의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함대가 나일강 하구의 아브킬만에서 프랑스함대를 전멸시켰다는 뉴스를 전해 듣고, 두 번이나 영국을 방문하여 영국에 대해서 호감을 갖게 된 하이든은 이 뉴스를 듣고 크게 감동을 받아 이 미사곡의 베네딕투스의 장에 나타나는 트럼펫의 팡파르를 넬슨제독의 승리를 고하는 나팔소리로 표현하였다.

  1800년에는 넬슨제독부부 앞에서 하이든 자신의 지휘로 이 곡이 연주된 적이 있다.

  또 하이든의 교향곡 중에는 군대라는 애칭이 붙은 교향곡이 있다. 이 곡의 제 2 악장이 군가조(軍歌調)이고, 제 1 악장이 그러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하이든교향곡의 부제는 같은 조의 곡이나 유사한 곡이 많으므로 조그마한 특징을 취하여 혼돈을 피하려는 편의로 붙여진 것이 많다.

  따라서 이 교향곡의 부제인 '군대'도 특별히 군대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레퀴엠'은 죽은 사람을 위한 미사곡이지만, 원래의 종교적인 의미에서 바뀌어 일반적으로 '죽은이를 애도하는 음악'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브리튼의 전쟁레퀴엠은 형식과 내용상으로 전통적인 레퀴엠과는 상당히 다른, 음악사상 유례가 없는 이색작이다.

  가사로서는 본래의 레퀴엠과 같이 라틴어의 전례문을 사용하고 있으나, 그것과 대등한 비중에 있어서 영국의 시인 윌프레드 오우웬(1893 - 1918) 에 의한 반전적 내용의 영시(英詩)를 사용하고 있다.

  이 작품에 담겨져 있는 내용에는 사자(死者)를 애도하는 뜻도 물론 있으나, 그 사자는 특정의 고인이기 보다는 전쟁(주로 제 2 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이며, 그 애도를 통하여 전쟁의 불합리함을 노래하고,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세계평화를 염원한다는 매우 독특한 곡이다.

  단순히 죽은 자를 애도하고 진혼하는 것만이 아니고 그것을 통해서 강하게 평화를 원하고 있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코어의 첫머리에는 오우웬에 의한 다음과 같은 문귀가 적혀 있다.「나의 주제는 전쟁이며, 또 전쟁의 비애이다. 그리하여 시는 슬픔속에 있으며, 시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경고하는 것이다.」

  최근에 월남전쟁을 한 병사의 눈으로 조명한 플라톤(PLATOON ; 보병소대)이 1987년도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수상했다. 감독상을 받은 올리버 스톤 감독은 직접 원람전쟁에 참가한 월남전 참전용사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다시는 전쟁이 이 땅에서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뜻에서 이 상이 나에게 주어진 것 같다."는 수상소감을 발표하여 모두들에게 갚은 감동을 주었다.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제작할 수 없는 사실적이고, 솔직하며, 대단히 감동어린 작품이다. 이 영화에는 사무엘·베버(SAMUEL BARBAR , 미국의 현대 작곡가)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처음부터 끝까지 유일한 배경음악으로 흐르고 있다.

  전쟁을 직접 체험해 가는 주인공의 눈동자와 조화를 이루며 강한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다.

  원래 이 곡은 바버의 3악장으로 된 현악 4중주곡의 제 2 악장 아다지오를 현악 오케스트러용으로 편곡한 곡이다.

  1938년 토스카니니가 지휘한 NBC교향악단이 뉴욕에서 초연한 이래, 오히려 원곡보다는 이 곡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70마디가 채 못되는 소곡이지만 아다지오의 침통한 서정성은 듣는 이로 하여금 강한 비극성에 다가서게 하고 있다.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우리의 바램과는 달리, 이 땅은 지금 전쟁의 위협 속에 놓여있다. 전쟁이 다시는 이 땅에서 재발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는 지혜를 모아 가면서 충혼의 달이기도 한 6월을 경건하게 보내야 되겠다.

(여기에 소개된 곡중에서 하이든의 '넬슨미사'와 브리튼의 '전쟁레퀴엠'은 국내에서는 아직 레코드로 발매되지 않은 곡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