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잊지못할 무대   세브란스 홀에서 들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 야노스 슈타커, 로린마젤과의 만남 -  

정 창 관 (홍콩샹하이은행 부장)


  세브란스 홀(Severance Hall)은 미국 동북부, 5대호(五大湖)의 하나인 이리호(Lake Erie) 남단에 위치한 공업도시 클리블랜드(Cleveland)에 있는 2천석 규모의 전문 연주회장이다. 1931년 존 세브란스가 건립한 이 홀은 유럽 전통의 우아한 건축미와 더불어 완벽한 음향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1931년 2월 5일 첫 연주회를 가진 이래 지금까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Cleveland Orchestra; 이하 C. O. 라고 약칭함)의 전용 연주회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957넌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단행하여 세계 굴지의 오케스트라로 성장한 C. O. 의 본거지로써, 조금도 손색없는 연주회장으로 그 면모를 일신했다. 조지 쉘에 의해서 주도된 세브란스 홀의 개수작업은 더욱 완벽한 음향 시설을 갖추게 되어 아직까지도 그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1968년 7월 19일 블로섬 음악센터(Blossom Music Center)가 개관됨에 따라 세브란스 홀은 C. O. 의 동계 연주회장으로, 블로섬 음악센터는 하계 연주회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카고 교향악단, 뉴욕 필하모닉 관현악단,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관현악단, 피츠버그 교향악단과 더불어 빅 파이브(Big Five) 오케스트라 중의 하나인 C. O. 는 1918년 소련 태생으로 미국에 귀화한 니콜라이 소콜로프(Nikolai Sokoloff)에 의해 창단되어,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아르투르 로진스키(Artur Rodzinski ; 1894∼1958), 오스트리아 출신의 에리히 라인스 도르프(Erich Leinsdorf ; 1912∼ ), 헝가리 출신의 죠지 쉘(Gerge Szell ; 1897∼1970), 프랑스 출신의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 ; 1925∼ ), 프랑스 출신의 로린 마젤(Rorin Maazel ; 1930∼ )을 거쳐 현재는 독일에서 태어난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Christoph Von Dohnany ; 1929∼ )가 이끌어 가고 있다. C. O. 는 1970년 5월 죠지 쉘과, 1978년 9월에는 로린 마젤과 함께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연주한 적이 있으며, 국내에서도 라이센스 레코드를 통해서 C. O. 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6년 전, 해외 연수관계로 클리블랜드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처음 외국을 여행한다는 두려움과 함께 C. O.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설레였었다. 도착하자마자 구해 본 C. O. 의 프로그램은 1년간의 연주 스케줄이 거의 1주일(2회 공연) 간격으로 나와 있었으며, 주옥같은 레퍼토리와 명연주자들의 명단에 나는 그저 놀랍기만 했다. 당시의 음악 감독은 로린 마젤이었고, 보조 지휘자는 우리나라의 곽승이었으나 스케줄이 맞지 않아 곽승의 연주회를 듣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클리블랜드에 머무는 동안 관람한 연주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첫 연주회와 마지막 연주회였다. 첫 연주회 날 정장을 하고 세브란스 홀로 향했다. 건물은 아담하고, 고색 창연하게 넓은 주차장으로 에워 싸여, 우뚝 솟아있는 전형적인 미국 동북부 지역의 석조 건물이었다. 보석으로 휘감은 야회복 차림의 중년 여성들을 제외한다면 정장을 한 청중은 그리 많지 않았으며, 거의 자연스러운 캐쥬얼 차림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여인들은 C. O. 의 여성위원회의 회원으로 C. O. 에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는 부유한 사람들로 매주 연주회의 초대를 받는다고 한다. 연주회 곡목은 도흐나니 지휘의 바르토크의 첼로 협주곡, 독주에는 헝가리 출신의 야노스 슈타커(Janos Starker ; 1924∼ ), 그리고 드보르작의 교향곡 제8번이었다. 연수은행의 배려로 A석 좌석에 앉아서 듣는 바르토크의 첼로 협주곡(비올라 협주곡의 개작 : 클리블랜드에서의 초연)은 처음 듣는 곡으로 음악 그 자체보다, 활과 줄이 스치는 마찰음과 연주자의 손이 지판 위에서 미끄러지는 소리와 가쁜 숨소리만이 들리는 것 같았으며, 지그시 눈을 감고 땀을 뻘뻘 흘리는 연주에서, 음악이라는 행위는 육체적으로도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1부가 끝나고 세브란스 홀의 2층, 3층 및 무대 뒤편 등 여기저기를 구경하였다. 연주회장 옆의 전시실 및 휴개실에는 역대 C. O. 의 지휘자의 사진과 그 홀을 거쳐간 유명한 독주자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전시실 입구의 반대쪽 문이 열리더니 조금전 연주회에서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던 야고스 슈타거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마침 손에 들고 있는 팜플렛에 사인을 받고 한참이나 얘기할 수 있었다. 이렇게 쉽고 자연스럽게, 유난히 첼리스트로만 남기를 고집하고 있는 야노스 슈타커를 만나 얘기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상하게만 생각될 정도였다.

  마지막 연주회는 로린 마젤의 지휘의 드보르작의 <교향곡 제9번「신세계로부터」>가 하이라이트였다. 좌석표가 매진이라 입석을 사게 되었다. C. O. 는 염가로 입석을 판매하고 있었으며 세브란스 홀의 좌석 뒤편에는 넓은 공간을 마련하여, 입석표를 사가지고 입장한 사람들에게 배려해주고 있었고, 스탠딩 룸(Standing Room) 의 가장자리에는 몇 개의 의자도 놓여 있었다. 연주회가 시작되기 전에, 안내로부터 빈자리에 앉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지휘자가 입장하는 순간 빈자리를 찾아 간 것이 맨 앞자리, 지휘자와 제일 가까운 자리였다.「신세계로부터」교향곡은 자주 듣고 좋아하는 곡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음을 따라갈 수가 있었다. 2악장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Going Home」의 선율보다 플루트와 오보에게 셋잇단음표로 시작하는 부주제가 좋았으며, 저음으로 연주되는 콘트라베이스의 단조로운 소리는 일품이었다. 하지만, 마젤은 2악장을 너무 빠르게 해석하여 드보르작 특유의 애틋한 선율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 불안스럽게 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몰토·비바체의 3악장과 알레그로·콘·푸오크의 4악장은 일반적으로 듣는 템포보다 약간 빠르게 연주한 마젤의 해석이 신선하게 들렸다.

  공연이 끝난 뒤, 안내는 지휘자를 만날 수 있는 방을 알려주었다. 그곳에서 마젤을 만날 수 있었고, 사인도 받을 수 있었다. 자신의 연주가 어떠했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내가 듣기로는 2악장이 조금 빠른 것 같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간직한 연주자의 사인 가운데 가장 소중히 여기는 싸인이 레코드 자켓에 받은 마젤의 것이다. 이 레코드는 서곡 명연집(名演集)으로 세브란스 홀의 전경이 실려 있다. 그의 레코드의 자켓에 나와 있는 건물안에서 그의 사인을 받았다는 사실은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내겐 큰 기쁨이었다. 로린 마젤과 C. O. 의 완벽한 앙상블에서 그들의 콤비의 위력을 볼 수 있었던 클리브랜드의 세브란스홀에서의 공연, 그리고 그 지휘자에게서 직접 받은 사인은 연주회 자체의 음악성과 연주자가 들려 주는 음악적 감동과 함께, 고전 음악에 접한지 얼마되지 않은 음악 애호가가 유명한 오케스트라와 연주자를 만났다는, 무대외적인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여 지금도 그 무대가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