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 명곡 비교 순례   베토벤 교향곡 제 5 번 운명                                                            

글: 정 창 관 (홍콩샹하이은행 부장)

  1803년에 시작하여 5년 후인 1808년 초에 완성한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다단조 작품번호 67, 일명 운명교향곡이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인 후, 185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운명에 감동을 받아을까? 1913년 니키쉬가  녹음한 최초의 음반을 필두로 많은 지휘자와 관현악단이 운명교향곡의 음반을 출반하여 오고 있다. 여기에 즐겨 듣는 음반을 소개한다.

  3개의 8분음표와 그것에 잇따르는 페르마타가 붙은 2분음표로 시작되는 제 1악장의 서두의 주제가 무엇을 뜻하느냐고, 베토벤의 제자인 신틀러가 물었을 때 "운명은 이와 같이 문을 두드린다."라고 대답한 데서 부터 교향곡 제5번은 '운명교향곡'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혹자는 운명교향곡이라고 부르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와 일본 뿐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간혹 독일에서 출간된 음반에 'Schicksals-Sinfinie'(독일어로 운명교향곡)이라고 표기한 것을 보면 서양에서도 운명교향곡이 일부 통용되는 것 같다.

  운명교향곡은 모든 교향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이며, 주제 전개의 기법과 전곡의 긴밀한 구성 등으로 가장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관현악 편성에 있어서는 보통의 2관 편성에 피콜로, 콘트라파 곳, 트롬본 등을 더하여서 음량의 증가와 음색상의 새로운 효과를 내고 있으며, 악식상으로는 제1악장 첫머리의 운명의 동기가 1악장 전체를 지배함과 동시에 전곡 통일의 바탕을 이르며, 제3악장과 제4악장이 끊임없이 연주되고, 4악장의 재현부 직전에 3악장이 회상되는 점 등, 작곡 기법상의 갖가지 기교가 쓰여지고 있다. 슈만은 이 곡에  대하여, '아무리 듣고 또 들어도 마치 자연의 현상처럼 외경과 경탄이 새로워진다. 이 교향곡은 세상에서 음악이 없어질 때까지 영원히 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1808년 12월 22일 안 데어 비엔나 왕립극장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제6번 교향곡 전원과 함께 초연된 운명교향곡은 지휘자들에게 있어서는 한번은 넘어야 할 장벽이다. 지휘자가 지휘봉을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심중에는 운명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라는 과제가 부여된다. 지휘자와 운명의 만남은 불가피한 일이고 이로 인하여 그 지휘자의 능력여부를 시험받는다. 일반적으로 오케스트라의 역량을 저울질해 볼 수 있는 가장 적당한 곡으로도 운명을 꼽는다. 지휘자나 관현악단이나 운명교향곡과의 조우는 역시 <운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원전악기와 대관현악단으로 연주하는 운명,  브라스 밴드와 피아노로 편곡된 운명을 포함하여, 현재 200여종이 넘는 운명이 전세계적으로 출반되어 있는 것 같다. 국내에서도 음반사상 가장 많은 약 40매의 운명이 출반되어 있다. 필자가 소장한 154매의 음반 중에서 아래에 소개하는 니키쉬 것을 제외하고는 국내에 출간된 음반 중에서 선택하였다.    

* 아르투르 니키쉬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녹음:1913년 11월 20일(MONO)

*시간:6:41 9:44 5:30 8:54 (30:49)

*도이치 그라마폰(DG) PODG-2126(수입CD)

  아르트르 니키쉬의 이 음반은 명반이기에 앞서 역사적인 음반이다. 1877년 에디슨이 말하는 기계, 유성기를 발명하고, 1887년 독일인 벌리너가 미국에서 현재의 디스크 방식의 개량형 유성기를 완성한다. 그 당시의 녹음방식은 나팔로 소리를 모으는 기계적인 수단(어코스틱 녹음 소위 나팔통식 녹음)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이 녹음방식에서는 300Hz에서 1,500Hz(대부분의 사람의 음성)을 넘는 광역의 녹음이 불가능하였다.       나팔 앞에서 소리를 내는 것이 제일 소리를 모으는 데 유리했기 때문에 어코스틱녹음 시대의 음원으로는 성악이 가장 적합했다. 관현악곡은 어코스틱 녹음으로는 가장 적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서 경원시당했던 장르였다.

  지휘자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1913년 독일의 오데온회사가 현악만으로 편성한(오데온 현악 오케스트라) 베토벤의 교향곡 제5,6번 전곡을 녹음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1913년 11월 20일 니키쉬가 베를린에서 베를린 필과 녹음한 포리돌 레이블의 4매, 8면의 78회전(SP) 레코드가 가장 오래된 운명교향곡이다.

  1855년-1922년에 생몰한 아르트르 니키쉬는 처음에 바이올린 주자로 시작하여 1876년 라이프찌히 가극장의 지휘자로 데뷔한 전문 지휘자이다. 베를린 필은 니키쉬에 이르러 최초의 황금기를 구가하면서 이 관현악단으로 하여금 드높은 자부심을 갖게 해 주었다.

  최초의 교향곡 녹음임과 동시에 운명교향곡인 이 음반은 현악 부분에서는 콘트라베이스나 첼로가 생략된 바이올린 6개, 비올라 2개의 편성이 말해주듯, 현대의 운명에 비해 참으로 가날픈 음악이지만, 후세에 전해지는 귀중한 음악문화 유산이다. 이 음반은 니키쉬의 진가를 발휘한 녹음이 아니다라는 비평이 있으나, 빠른 템포(이는 SP시대 녹음의 공통적인 속성인지도 모른다)속에 적당히 밀면서 당기는 지휘에는 근대 지휘법의 선각자로서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이 수입 CD는 SP음반의 복각반으로 복각반 특유의 지글거림이 귀를 거슬리게 하지만 80년 전의 거장의 지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한 일이다. 자세히 들어보면 악장 중에서 연결부분을 감지할 수 있다.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녹음:1954년 2월 28일-3월 1일(MONO)

*시간:8:33 11:18 6:03 9:42 (35:36)

*오아시스 LP OLAC-0005/6(EMI ANGEL)

  1922년 니키쉬가 서거한 후 베를린 필의 바톤을 이어받은 푸르트뱅글러만큼 운명 교향곡에 혼신의 정열을 기울인 지휘자는 아직까지 없다. 그는 2차 대전을 기점으로 전쟁전에는 148회, 전후에는 73회의 운명을 지휘했다. 1926년 베를린 필과의 연주(포리돌 SP녹음)부터 1954년 5월 23일 베를린 필까지  무려 11종의 음반이 출반되어 있다. 그의 연주에는 주관성과 즉흥성이 함께 존재한다. 악보에 충실한다는 구실로 기계적으로 연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고로 그의 11장의 운명은 맛이 다르다. 어느 것이 객관적으로 훌륭한 연주인가를 판단하기 보다,  푸르트뱅글러가 연주한 시점의 주관적인 해석과 감정으로 표출된 음반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는냐의 문제이다.

  1936년 독일의 나찌스는 푸르트뱅글러를 국내에 계속 묶어두기 위해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 총감독에  임명한다. 이러한 전력으로 인하여 2차 대전이 끝나자 전범으로 몰려 추방되었으나 1947년 1월 그의 무죄가 밝혀지고 5월에 베를린 필로 복귀한다. 5월 25일부터 4일간(25, 26, 27, 29일) 미군병사를 위한 쇼극장으로 변해 있었던 티타니아 궁에서 역사적인 그의 베를린 필의 복귀 기념 연주회가 개최된다. 가혹한 운명과 투쟁하여 그 운명을 굴복시키는 베토벤의 생애같이, 푸르트뱅글러는 북받치는 열정으로 5번 교향곡을 4일 연속 연주한다. 이때의 연주는 어떤 연주회보다 감정에 벅차 있었고 열기에 넘쳐 있었다. 25일의 연주도 이태리의 포니트 체트라 레이블로 발매되어 있으나, 27일의 연주(DG 성음 SEL-RG911)가 명연으로 알려져 있다.

  1953년 비엔나 필과의 연주도중 실신상태에 이르러 잠시 연주활동을 중단하다가 이듬해 54년 비엔나 필과 스튜디오에서 이 운명을 녹음했다. 죽기 9개월 전의 이 연주는 47년의 연주와 비교해 그의 감정과 박력이 무서울 정도로 절제되어 있고, 너무나도 온건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운명에 여유가 있으며 스케일은 장대하다. 비엔나 필의 음향은  생동감에 넘쳐있고 잘 조화되어있다.

  오아시스의 이 음반은 추천 할 만큼 음반상태가 양호하지 않으나, 동종의 녹음이 컴팩트 디스크로 수입되어 발매되고 있다.

*아르투로 토스카니

NBC 교향악단

*녹음:1952년 3월 22일(STEREO)

*시간:7:05 8:43 4:32 8:16(28:36필자측정)

*서울음반 LP SRCR-099(RCA VICTOR)

  토스카니니는 푸르트뱅글러와 함께 20세기의 지휘계를 양분하는 거장으로 평가된다. 지휘자의 주관적인 해석에 대한 반항으로 나타난 지휘자가 토스카니니인데 이에 대한 반동으로 푸르트뱅글러의 지휘가 시작되니 이 두 지휘자는 상반된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된다. 푸르트뱅글러는 즉흥성, 즉 연주의 1회성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토스카니니는 즉흥성을 완전히 배제해버린다. 운명교향곡의 1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는 푸르트뱅글러에게는 때에 따라 알레그로 그 이상일 수도 있고 그 이하일 수도 있지만, 토스카니니에게는 알레그로 콘 브리오 그 자체다. 그의 연주는 언제 들어도 메트로놈으로 재듯 똑 같다고 한다. 하지만 토스카니니 자신는  "사람들은 나의 연주가 항상 똑같다고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야. 난 결코 똑 같이 연주하는 법은 없어. 연이어 두번을 지휘한다고 해도 똑 같이는 연주하지 않아."라고 부정하고 있다.

  1867년 이태리의 파르마에서 출생한 토스카니니는 첼로 연주자였다가 스코어를 암보한다는 우연한 계기로 1886년 리오데자네이로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성공적으로 지휘하게 되어 지휘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뉴욕에서 토스카니니를 위해 조직된 NBC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1937년부터 1954년까지 17년동안 활약하면서 많은 녹음을 남기고 있다. 그는 신고전주의적인 연주방식에 바탕을 둔 명석한 연주 양식을 확립하였다.

  토스카니니는 운명을 4번 녹음했다. 뉴욕 필과 2번, NBC교향악단과 2번으로, 1939년 11월 11일과 1952년 카네기 홀에서의 방송연주 실황녹음이 이 음반이다.

  곡은 처음부터 군두더기 없이 일사천리 진행된다. 3악장에서 4악장으로 이행되기 전 절제된 동기가 전개되면서 차차 음량을 더해가며 C장조의 4악장으로 돌입하면서 전합주로 진행되는  부분에서는 과연 토스카니니가 스코어대로만 연주하는 지휘자일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39년 연주의 녹음시간 30:25초를 52년 28:36초로 변한 것만 보아도 음악에 대한 그의 견해가 수정되면서 새로운 해석으로 진행되었다는 증거이다.

  88년 9월 서울음반에서 라이센서로 출간되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녹음:1974년 3-4월(STEREO)

*시간:7:15 9:54 5:08 10:48 (33:05)

*성음 LP SEL-RG795(DG)

  과연 명반이 존재하는가? 누구의 운명이 최고인가? 미학은 주관적이며 감상하는 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다수의 감상자가 뛰어난 연주라고 느끼고 비평가들이 명반이라고 칭한다면 그 음반은 명반이라고 불리워질 수 있을  것이다.

  푸르트뱅글러의 운명이 여전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을 즈음, 1974년 왕년의 명지휘자 에리히 클라이버의 아들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비엔나 필과의 연주로 운명교향곡을 선보인다. 이 음반은 출반되자 마자   메스콤은 센세이션한 반응을 보였으며 음반은 날개 돋친 듯 판매되었다. 베스트 셀러가 다 명반은 아니지만 그의 운명은 스테레오시대의 최상의 운명이 되어있다.

  그는 1930년 7월 3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카를이라고 명명되었는데, 그의 부친이 38년 나찌스와의 불화로 아르헨티나로 귀화함에 따라 스페인풍으로 카를로스라고 개명되었으며, 1980년 1월에 오스트리아 국적을 얻었으므로 현재는 오스트리아 지휘자라고 말할 수 있다.    

에리히는 아들이 음악가가 되는 일에 반대하였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특별한 음악교육은 받지 않았으며, 부친의 권유로 스위스 연방공업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지만, 핏줄은 속일 수 없는 듯, 53년 부친의 반대를 물리치고 뮌헨의 오페레타 극장인 겔트너 프라츠 극장의 무급 견습지휘자로 그의 지휘자의 일생이 시작된다.

  클라이버는 음반을 만드는 데에 소극적이었을까, 혹은 신중했을까. 그의 나이 43세인 1973년 데뷔반인 베버의 마탄의 사수가 드렌스덴에서 녹음되어 도이취 그라마폰 레이블로 발매된 후, 이듬해인 74년 이 운명이 녹음된다.

  1악장 주제부의 템포는 빠르다. 전개부는 개성적이어서 강한 추진력 속에 세밀한 표정이 나타나고 있으며 또한 흐름의 자연스럼이 보전되어 있다. 3악장의 부드럽게 울리는 비에나 필의 현의 소리는 지휘자의 신선한 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연주에 즉흥성이 내재되어 반복을 단순한 반복으로 그치지 않고, 두번째는 첫번째 연주의 발전적 성격을 부여하고 있다. 4악장에서는 지휘자의 즉흥성이 반복을 포함한 제시부와 재현부에 여실히 나타나 있는데, 특히 재현부의 대담한 움직임에는 이론적인 면을 뛰어넘는 번득이는 재치를 느끼게 한다.    

  86년에 국내에 라이센스로 출반된 이 음반은 음질도 양호하며 현재 CD(성음 DG 0397)로도 출반되어 있다.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고대음악 아카데미 합주단

*녹음:1986년 8월

*시간:6:44 10:28 8:15 11:40(37:17)

*성음 LP SEL-RD1051(L'OISEAU-LYRE)

  현대의 운명의 연주는 개량된 악기와 대관현악단의 편성과 지휘자의 주관적인 해석으로 말미암아 베토벤이 작곡했을 때에 의도한 운명과는 거리가 멀다. 정격음악이 여기에서 출현한다. 정격음악이란 음악이 쓰여진 그 시대의 기법과 악기형태를 재현하고, 작곡자가 의도했던 바를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연주함으로써 오리지널한 맛을 살려내고자 함에 목적이 있다. 이러한 운동은 특히 영국의 젊은 학구파 음악인들이 주축이 되어 열성과 창의를 보임으로써 본격화되기 시작했으나, 이 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먼로우가 일찍 죽음에 따라 크리스토퍼 호그우드가 선두주자가 되어 이 운동의 육성발전에 전력하게 된 것이다.

  1941년 9월 10일 영국에서 출생한 호그우드는 쳄발로 연주자로 명성을 얻은 후 1973년 정격음악의 연주를 위하여 고대음악 아카데미 합주단을 창설하여 지휘자 겸 쳄발로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대지휘자 못지 않은 관심을 받으며 세계 음악무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주로 17-18세기에 만들어진 원전악기로 46명의 연주자(여기엔 1대의 포르테 피아노도 포함되어 있다)와 호그우드가 86년 8월 런던에서 만들어낸 녹음이다. 이 음반의 3, 4악장은 다른 음반에 비해 유난히 길다. 이는 베토벤이 작곡한 원래의 스코어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원래 3악장은 5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첫번째 판의 발행업자의 곡해로 3부 형태로 축소되었다. 1년이 경과한 1910년 8월에 베토벤은 그 실수를 발견했으나 5부형태로 다시 복구한다는 것이 복잡한 일이기에 베토벤은 발행자의 실수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대부분의 지휘자들은 3부형태의 3악장을 연주하고 있다.

  호그우드의 운명은 온화하고 우아하다. 현의 소리는 부드럽게 뻗치며, 관악기의 움직임이 현과 적당히 조화를 이루어 편안한 앙상블로 진행된다. 베토벤이 의도한 그 운명을 연출하기 위해 호그우드는 혼신의 정열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 정열이 지나쳐 과장된 운명이 아니다. 주관적이고 즉흥적인 운명은 더욱 아니다. 강하고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는 호그우드의 운명에 실망할지 모르나 베토벤의 운명은 이런 음반이 아닐까 싶다.  

  1988년 4월 성음에서 라이센스로 출반되어 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