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아끼는 한 장의 음반   명인명창선집(1) [판소리 5명창]                                                    

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회원.홍콩샹하이은행 부장)

앞면

 송만갑 1. 단가 진국명산           2. 춘향가 중 십장가          3. 춘향가 중 남원 오입쟁이

 이동백 4. 잡가 새타령              5. 단가 백발까                  6. 적벽가중 동남풍 비느데

뒷면

 김창환 1. 민요 성주푸리.농부가       김창룡 2. 단가 대장부한     3.심청가 중 범피중류

 정정렬 4. 춘향가 중 박석티.어사와 장모     창  극 5. 심청가 중 잦 빌러 가는데(이동백, 김창룔, 정정렬 외)


내가 가지고 있는 4,500여장의 음반 중에서 누가 나에게 가장 아끼는 음반 한 장을 선택하라면, 그것은 푸르트뱅글러가 1947년 5월 25일 나치 협력자라는 누명(?)을 벗고 베를린의 티타니아 궁에서 2차 대전 후 처음 베를린필과 연주한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도 아니고, 이태리의 실내악단 이 무지치가 1959년 5월 비엔나에서 펠릭스 아요와 스테레오로 녹음한 비발디의 [4계]도 아닌, 1988년 서울올림픽에 맞추어 발매된 국악 LP음반 '명인명창선집(1)' [판소리 5명창]이다. 여기에는 얘기 하고픈 사연이 있다.

  나는 현재 국악을 무척 즐겨 듣는다. 지금도 고전음악을 가끔 듣고 있지만, 한때는 광적으로 고전음악을 들은 때가 있었다. 이 세상에 최고로 고상하고, 지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고전음악, 적어도 지성인이라면 고전음악을 들어야 된다는 당위성에 음반을 수집하고,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출퇴근 길에서도 고전음악을 들었으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로얄 발레, 볼쇼이 오페라 등 세계의 유명 연주단이 내한하면 예매하는 첫날에 표를 구입하고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때가 허다했으며, 유진 올만디, 야노스 스타커, 콜린 데이비스, 로스 로메로 4형제 등의 싸인을 받아 놓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 때가 있었다. 국내에 나온 라이선스 LP레코드의 모든 레퍼토리를 집에서 들을 수 있는 음반도 가지고 있고, 실제 모두 들어보았으며, 20여년전 재대 후 고전음악에 입문할 때 처음 구입한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운명]은 푸르트뱅글러가 지휘한 11장을 포함하여 지휘자 별로 현재 170장이나 가지고 있고, 비발디 [4계]는 이 무지치가 연주한 5장을 포함하여 국내에서 발매된 라이선스 LP레코드로 30장이나 수집했다.  고전음악에 대한 책도 제법 읽었으면, 성음오디오음악클럽에도 열심히 나가 고전음악에 대해 정보와 지식을 얻기 위해 무척 노력했던 시절도 있었다.

  1987년 가을 어느 날, 국악(판소리)이나 한번 들어볼까하는 마음에 항상 고전음악 음반을 구입했던 종로에 있는 신나라레코드가게에서 국악음반을 찾았을 때, 나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수천종의 음반 중에 국악음반 10종류가 없었다. 더구나 내가 찾는 판소리 레코드는 한 장도 보이지 않았다. 청계천에 있는 여러 레코드가게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듣고 있었는가? 심한 자성과 함께 고전음악으로부터 국악으로의 귀향이 시작되었다. 일반레코드가게에서 새음반을 구입할 수 없었기에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중고 국악음반을 사기를 시작으로, 닥치는 대로 국악을 듣고, 국악 관련 책을 읽고, 국악 연주회도 열심히 다녔다.

  당시에 카루소, 질리 같은 성악가들의 유성기음반이 복각되어 호평리에 판매되는 것을 보고, 우리의 판소리도 일제시대에 유성기음반으로 많이 발매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우리 것도 복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뜻이 같은 몇사람과 줄이 닿아 돈을 각출하여 사가반으로 만들려고 일을 추진했다. 제목은 [판소리 5명창]으로 명명하고, 5명창의 사진으로 음반자켓을 꾸미고, 해설서는 5명창의 설명, 가사와 주석을 달고, 유성기음반의 출처를 꼭 기재하는 것 등으로 윤곽을 잡았다. 복각사업을 계속한다는 결의하에 부제를 '명인명창선집(1)'로 붙였다. 판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살 수 있게 판매용으로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에 고전음악 레코드를 구입하는 신나라를 찾아갔다. 내가 제의를 했다. 만약 음반이 팔리지 않으면 우리가 모두 인수를 할 테니 [판소리 5명창]을 판매용으로 발매하는데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신나라에서 흔쾌히 승낙을 해서 명실공히 우리 나라 유성기음반 복각반 제1호 [판소리 5명창]이 빛을 보게 되었다. 한 타이틀에 1,000장의 음반을 판매하기 어렵다던 시기에, 우리가 받은 로얄티가 5,500장(장당 200원이니 1,100,000원임)에 달하였으니 대단한 성과였다. 기차가 지나가는 길 옆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것 같은 열악한 음질이지만, 책에서만 보던, 송만갑, 이동백, 김창환, 김창룡, 정정렬같은 대명창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에, 예상 외로 국악애호가로부터 성원을 받았으며, 또한 들을만한 판소리 음반 한 장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후 우리는 <한국고음반연구회>를 결성하여 유성기음반에 담겨져 있는 국악을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복각사업을 지금도 하고 있다. 신나라가 그때 도와준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고마워하고 있다. 허나 신나라가 이 일 때문에 얻은 명성과 광고 효과는 대단했다. 이 일로 계기로 신나라는 국내 국악음반 제작의 제 1인자로 많은 국악음반을 발매하고 있다.

  [판소리 5명창]음반이 나온 이 후 국악음반의 발매가 줄을 이어, 현재까지 국악 CD음반은 사가반을 포함하여 550매가 넘었다. 서양의 고전음악 음반을 제외하고 그 국가의 민족음악이 이와같이 많이 발매된 국가는 찾기가 어렵다. 이렇게 직접적인 동기가 된 음반이 이 [판소리 5명창]이고, 내가 온 정렬을 기울여 만든 음반이다. 현재 발매되고 있는 국악음반의 대부분에 자세한 해설서가 첨부되는 것도 [판소리 5명창]이 효시였으며, 훌륭한 전례가 된 것이다. 고전음악 음반, 한국가곡 음반, 국악 LP음반, 국내외에 나온 거의 모든 국악 CD음반, 모두 4,500여장의 음반 중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음반이 [판소리 5명창]인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가 만든 '명인명창선집(1)' [판소리 5명창]은 그 후 '신나라 국악 SP명반 시리즈 001' [판소리 5명창]으로 부제가 바뀌어 출반되드니, -일제시대의 유성기음반은 저작권 문제가 없으므로 아무나 복각할 수 있다- 신나라는 곡을 몇 곡 바꾸어 '한국의 위대한 판소리 명창들(1)' [판소리 5명창]을 만들었으니, 자연히 '명인명창선집(1)' [판소리 5명창]은 폐반된 것이다.

  [판소리 5명창]음반이 나온지 10년이 되는 1998년에는 개발된 디지탈리마스트링 기술로 음질을 잘 다듬어 [판소리 5명창 그 후 10년]이라는 제목으로 폐반된 음반을 살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