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빅터 유성기 음반]                                                                                  
 

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회원.홍콩샹하이은행 부장)

  1907년 3월에 한국 최고(最古)의 유성기 음반(SP음반:STANDARD PLAYING RECORD)이 미국 콜럼비아 레코드회사에 의해 발매된 이래 광복 이전까지 약 5,000매가 넘는 방대한 양의 한국 음악이 발매되었지만 이는 주로 일본의 자본과 기술로 녹음되었기 때문에 국내에는 마스터 테잎이나 금속성 원반(이하 원반)이 한 장도 없다. 유성기 음반은 실제 녹음에 의한 기록이기 때문에 음악학이나 국문학, 기타 관련 학문에 막중한 문헌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시간의 경과에 따른 유성기 음반 자체의 소멸과 마모, 음질열악으로 인란 감상의 부적절, 전통 음악의 대중적 기반상실과 그에 따른 무관심, 민속악 연구에 소홀했던 학계의 경향 등으로 인하여 우리의 전통 음악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유성기 음반은 그 동안 잊혀져 있었다.

  1988년 9월 국내 최초의 유성기 음반 복각반 <판소리 5명창>이 나오기 전까지는 유성기 음반은 몇몇 호사가의 수중에 미공개로 사장되어 있었지만, <판소리 5명창>이 발매된 이래 '한국고음반연구회', '신나라 레코드', '한국민속음악연구회', '한국 축음기애호가 협회'가 복각사업에 독자적으로 참여하여 현재까지 25종의 복각반이 발매되어 시중에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이 복각반들은 유성기 음반으로부터 직접 음을 녹음하여 만들기 때문에 음질이 열악하여, LP나 CD의 깨끗한 음질에 익숙해 있는 대중들에게는 쉽사리 접근될 수 없었다.

  현재까지는 유성기 음반의 원반은 일본 콜럼비아회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을 KBS에서 복각할 수 없는 조건으로 복사테입으로 들여온 것 외에는, 2차 대전의 혼란기에 일본 레코드회사의 관리의 공백으로 인한 분실과 공습으로 인하여 원반이 거의 소실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헌데 작년 봄 (주)서울음반의 일본 협력사인 일본 빅터사에서 그들의 요코하마창고를 정리하던 중 다량의 한국음악 원반을 발견했다는 낭보가 들어왔다. 어느 레코드회사보다 관심을 가지고 유성기 음반 복각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서울음반은 여러 요로를 통하여 이 원반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계시는 이 보형선생은 "이 원반은 우리의 문화재다. 이 원반을 인수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재를 되찾아 오는 것이다."라고 한 마디로 표현했다.  이에 (주)서울음반은 직접 일본으로 가서 실물을 확인하고 전량을 인수하기로 하고, 작년 8월에 588장(SP레코드 294장)의 원반만이 돌아오게 된 것이다. 비교적 깨끗하게 보존되어 돌아온 빅터 유성기 원반은 한마디로 경사스러운 전통음악 사료의 발굴이며,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빅터 유성기 원반은 취입 당시의 음질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 그 가치가 실로 크며, 방대한 분량과 충실한 음악적 내용도 갖추고 있으므로 유성기 음반의 가치의 재인식과 함께 훌륭한 감상의 자료의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또 음질의 열악으로 인한 복각반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을 전환시켜 5-60년전의 우리의 전통 음악의 실체를 감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빅터 원반은 아쉽게도 금속반만 남아 있고 다른 일체의 문헌기록이 없으므로, 금속반에 새겨져 있는 음반번호와 현재 찾아낸 실물음반과 대조하여 정확한 곡목과 연주자를 확인할 수 있는 형편이다.

  1928년부터 일본 빅터축음기회사는 전기식 취입음반을 VICTOR라는 레이블로 약 600종 발매한 것으로 보인다. 빅터는 당시 최고의 녹음기술을 자랑하는 회사로, 'ORTHOPHONIC RECORDING'이라는 특허기술로 양질의 음반을 제작했다. 빅터 음반은 저음이 풍부하고 각 연주자나 반주자 간의 위치와 음량의 균형이 잘 잡혀있어 안전감이 뒤어나다. 그러나 음반의 재질면에서는 견고하지 못하여 빅터 음반은 상대적으로 현존음반이 희귀한 실정이다. 빅터는 몇 가지의 상표로 음반을 발매했는데, 이번에 돌아온 원반은 <빅터 주니어반>(저가음반으로 발매한 대중반) 556면(278장)과 <빅터 아동반>(17Cm의 소형반) 32면(16장)으로 약 30시간에 해당하는 588면이다. <빅터 주니어반>은 판소리, 가야금병창, 기악, 경기민요, 서도민요, 종교음악, 유행가  및 연극 분야를 포함하고 있는 1930년대 중반의 빅터 주력상표였던 만큼 빅터의 중요 녹음을 거의 포함하고 있고, 양으로나 내용으로나 다른 음반에 비해서도 결코 손색이 없으므로 음반사에서도 차지하는 비중이 실로 크다.

  상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하기 어려운 이 원반을 거금으로 인수한 (주)서울음반의 용기와 사회적 문화적 책무에 대해 깊은 찬사를 보내는 바이며, 문화재같은 원반을 선뜻 인계해 준 일본 빅터회사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여기에는 일본 빅터의 국제부에 근무하는 요시히사 혼다선생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하니 매우 고마운 일이다. 서울음반은  복각 전문 부서를 신설하여 체계적으로 복각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에 자뭇 기대가 크며,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일본 콜럼비아레코드회사에 남아 있는 원반에 대해서도 복각과 관련하여 접촉하고 있다고 하니 금상첨화임에 틀림없다.

  빅터 유성기 원반 복각은 78회전 턴테이블을 사용하고, 일본의 오디오 테크니크사에서 제작한 SP전용 카트리지와 바늘로 재생하여  DAT에 담아 LP와 CD로 제작하였느데, 현재 <빅터 유성기 원반 시리즈>라는 연속물로 3종류 발매되었다.   

1. 춘향전 전집

  판소리 5명창의 한 사람인 정정렬이 짠 이 춘향전 전집은 '정정렬이 나고 춘향전 다시 났다.'는 속설이 생길 정도로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판소리사에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명반이다. 이 음반은 김소희선생의 회고만으로 녹음이 1936년 9월로 알려져 있었는데, 원반으로 복각함에 따라 원반의 중간에 써 놓은 비망록으로 1937년 (4월30일-5월4일)빅터 서울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원래 이 전집은 유성기 음반 19매(38면)이지만 현존 원반은 36면으로 농부가 2면이 누락되어, 농부가는 유성기 음반으로 복각되었다. 이 춘향전은 그 당시에는 한수 아래인 명창으로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역을 적절히 설정하고 소리를 정교하게 짜면서 극적 구성도 치밀하고, 여태까지의 판소리 창극 녹음에 따른 경험이 집약되어 녹음도 훌륭하여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라 평가되고 있다.

2. 가야금 병창의 명인들

  가야금 병창의 효시는 가야금 반주에 판소리 대목을 얹어 부른 것이다. 가야금 산조를 연주하던 산조인들이 취미로 불러왔던 것이 가야금 병창이다. 연주곡목도 기존의 단가나 판소리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지만 산조와 같은 추상성이 아니라 익히 들어온 단가나 판소리에 아기자기한 가야금 반주로 듣는 가야금 병창은 대중적인 인기가 높아 일제시대의 유성기 음반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외로 높다. 이 음반에는 가야금산조의 대가인 심상건, 가야금 병창의 중시조로 불리우는 오태석, 여자 가야금 병창의 스타인 이소향의 가야금 병창 11곡이 실려 있다.

  빅터의 전기녹음으로 취입된  1928년에서 부터 1939년까지의 원반에는 10년동안 녹음기술의 차이로 588면의 원반 자체도 음질에 차이가 있고, 5-60년동안 보관하는 가운데 일부 손상된 원반도 있다. 같은 원반에서 복각했지만 음질에 차이가 날수가 있으며, 아무리 원반에서 복각했지만 현재의 LP나 CD의 음질에 비교해서는 안되며 유성기 음반에서 복각한 음반과 상대적으로 비교해 월등히 깨끗하다고 할 수 있다.

3. 배뱅이 굿

  배뱅이 굿은 주로 평안도를 비롯한 서도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소리로 남도의 판소리와 더불어 극적인 소리로 꼽힌다. 판소리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소리꾼이 소리와 아니리와 발림으로 엮어 공연한다. 배뱅이 굿하면 우리는 이은관선생이 부른 것 외에는 음반으로 들을 수 없지만, 이 음반에는 평양 용강 출신으로 배뱅이 굿을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김관준의 아들 김종조의 배뱅이 굿, 서도소리 명창으로 이름을 떨친 김주호의 배뱅이 굿과 김종조와 박농옥이 취입한 평양 다리굿이 실려 있다. 이 음반은 현재 전승이 위태로운 서도소리의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될 것이며, 또한 서도소리의 깊은 맛을 즐기는 애호가에게도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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