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들읍시다. 국악 CD음반   [우리 판소리 5바탕]                                                               

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회원.홍콩샹하이은행 부장)

1. 판소리란 무엇인가?

  판소리란 고수의 북 반주에 맞추어 한 사람이 몸짓(발림)을 섞어가며 말(아니리)과 노래(소리)로 춘향가, 심청가 등의 이야기를 청중에게 전달하는 공연예술로 소리하는 사람이 혼자서 여러 역할을 해내는 일인 다역극(多役劇)이다. 소리하는 사람은 이야기를 청중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꾼, 이야기 속에 나오는 해설자, 그리고 이야기 속에 나오는 각 등장인물의 역할 등을 번갈아 가며 맡게 된다.

  조선조 후기부터 문헌에 나타나는 판소리는 원래 12바탕이었으나 외설스럽고 조잡한 내용을 가진 바탕은 차차 도태되어, 고종 때에 판소리 연구가 신재효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타령>, 6바탕을 새로이 정리한 후 현재는 <변강쇠타령>을 제외한 5바탕만이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으며, 이 5바탕 판소리를 '바탕소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승과정에서 탈락한 7바탕은 <옹고집타령>, <배비장타령>, <강릉매화타령>, <장끼타령>, <무숙이타령>, <가신신타령>, <변강쇠타령>이다.

2. 판소리의 제(制), 바디, 더늠

  판소리는 기록된 음악이 아니라 구두전승(口頭傳承)의 과정을 거쳐서 발전해 온 민속음악이다. 구두전승의 판소리는 전승지역, 전승계보, 음악적 특성에 의하여 크게 동편제(東便制), 서편제(西便制), 중고제(中古制)라는 3개의 유파로 구분된다. 동편제란 섬진강 동쪽 지역인 구례.운봉.순창.남원.흥덕 등지에서 전승된 소리로서, 가왕(歌王)으로 불리는 운봉 출신의 송흥록의 소리 양식을 계승한 소리이다. 우조(羽調:씩씩한 가락)의 표현에 중점을 두고, 감정을 가능한 절제하며, 장단은 대마디 대장단을 사용하여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발성은 통성(배속에서 바로 위로 뽑는 소리)을 사용하여 엄하게 하며, 구절 끝마침을 되게 끊어 낸다. 이에 비하여 서편제는 섬진강 서쪽 지역인 광주.나주.화순.보성 등지에 전승된 소리로, 순창 출신이며 보성에서 말년을 보낸 박유전의 소리 양식을 계승한 소리이다. 계면조(界面調:슬픈 가락)의 표현에 중점을 두며, 발성의 기교를 중시하며 다양한 기교를 부린다. 소리가 늘어지는 특성을 지니며, 장단의 운용면에서는 엇부침이라 하여 매우 기교적인 리듬을 구사한다. 또한 발림이 세련되어 있다. 중고제란 송흥록과 동시대 사람인 강경 출신의 김성옥으로 부터 출발되어 충청도와 경기도 지역에 전승된 소리로 음악적 특성은 동.서편의 중간으로 일제 강점기 이후 전승이 끊어졌다.

  조선 말기 이후부터 판소리 명창들의 지역 이동이 심하고 교습지역 및 스승의 변동으로 판소리에 이런 유파의 특성도 희석되고 지역적 연고성이 끊어지게 되어 지금은 다만 전승계보에 따라 그런 특성이 일부 판소리에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현재의 판소리를 이해하기 위한 개념으로는 판소리 유파는 적절하지 않으며, 김연수명창은 판소리 유파를 따지는 것은 무용한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일제시대만 해도 판소리의 이런 유파적 특성을 지닌 판소리가 전승되고 있는 것을 유성기음반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판소리 유파 즉 '제(制)'의 하위개념으로 '바디'가 있는데, '제' 속에 여러 가지 '바디'가 존재하는 양상으로 이해된다.  이 역시 전승계보와 관련이 있는데, 창시자의 이름을 따서 동편제의 계보중에서 유성준 바디 <수궁가>, 송만갑 바디 <적벽가>라고 부르지만 판소리는 전승예술이어서 누구든지 일단은 전승 받은 것을 토대로 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창출하기 때문에 같은 바디라도 다르게 불리워지기도 한다. 또 판소리에는 어느 소리꾼이 특별히 잘 부르는 대목이나 작품을 가르키는 '더늠'이 있다. 예컨대 <쑥대머리>는 임방울의 '더늠'이다. <제비노정기>는 김창환의 '더늠'이다라고 했을 때는 임방울이나 김창환명창이 특별히 멋있게 고쳐 불러서 인기를 얻은 대목이 <쑥대머리>, <제비노정기>라는 뜻이다.

3. 판소리의 추임새

 판소리판는 소리판을 이끌어 가는 주체인 소리꾼(창자 또는 광대)과 북 장단을 치는 고수와 소리를 듣는 청중으로 구성되지만, 판소리판의 청중은  헛기침도 제대로 못하고 부동자세로 감상해야하는  서양음악의 청중과는 다르다. 판소리 공연에서의 청중은 '얼씨구', '좋다', '으이' 등의 추임새를 통하여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며, 창자와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판을 이끌어 간다.

4. 판소리의 장단(長短), 조(調)/길, 성음(聲音)

  판소리에는 서양음악의 박자의 개념에 해당하는 '장단'에는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엇모리, 엇중모리가 있으며, 판소리의 '조(調)/길'에는  화평하고 담담하고 여유 있는 평조(平調), 점잖고 품위 있고 우아한 우조(羽調)와 슬프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계면조(界面調)가 있다. 또 판소리에는 목소리의 특질을 가르키는 '성음'이 있는데,  거친 소리에서 맑은 소리로 순차적으로 적어보면 덕목-수리성-천구선-양성이 있다. 가장 좋은 성음은 높은 소리와 슬픈 선율의 소리를 표현하기에 알맞은 천구성으로 여자 소리꾼들의 소리는 대개 다 천구성이고 남자 소리꾼으로는 5명창의 한 사람인 충청도 서천출신의 이동백명창과 임방울명창이 이에 해당된다. 소리가 너무 맑으면 양성이라 하는데, 깊이가 없기 때문에 가치 있는 성음으로 치지 않는다. 목이 너무 거칠어 높은 소리를 잘 내지 못하는 떡목도 가치 있는 성음이 못 되지만, 5명창의 한사람인 정정렬은 떡목에 가까운 목소리를 지녔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저음으로 갖은 기교를 부리는 아기자기한 창법으로 대명창이 되었다.

6. 창극(唱劇)과 창작 판소리

  20세기 초 서구문화의 유입은 판소리 존립의 기초가 되는 전통사회를 그 근저에서부터 위협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판소리도 생존을 위한 변화를 모색하기 되는 과정에서 판소리를 무대화한 창극이 나타나며, 변화하는 시대적 요구를 판소리에 담아내기 위한 노력으로 창작 판소리가 발생한다.  창극은 연극처럼 여러 명의 인물이 등장하여 각기 배역에 따라 연기를 하면서 판소리를 부르는 연극적 판소리이다. 1933년 조선성악연구회가 결성되고나서부터 본격적인 창극이 공연된 후 1950년대의 여성 창극의 전성기인 국극을 거친 후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1904년 이인직의 신소설 [은세계]를 각색한 창작 판소리 <최병두타령>을 시초로 <열사가>, <성웅 이순신>등, 최근에는 임진택의 <소리내역>, <똥바다>, <5월 광주> 등이 만들어졌지만,  일반대중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보급되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전통 판소리 5바탕이 그만큼 뛰어나며, 대중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7. 판소리음반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란 말이 있듯이 "백독(百讀)이 불여일청(不如一聽)"이라, 즉 백번 읽는 것이 한번 듣는 것만 못하다. 음악은 책을 통해서 알기 보다는 연주회나 음반의 감상을 통해서 이해해야 한다.

  본고는 국내에 발매되어 현재 구할 수 있는 [판소리 5바탕 CD음반]을 소개함으로서 우리의 판소리를 알고자하는 대학생들의 길잡이가 되고자한다. 국악음반 중에서 비교적 많이 출반된 분야가 판소리이다. 이는 판소리를 애호하는 일반인의 층이 다른 국악분야에 비해 두텁다는 말이 된다.

  판소리음반은 전통 판소리음반과 창극음반을 포함하고 있으며, 전바탕을 수록한 [전곡반(全曲盤)]과, 일부를 담은 [발췌반(拔萃盤)]이 있고, 또 여러 형태로 담은 [기획반(企劃盤)]과 명창이 부른 중요한 대목만을 수록한 [선곡반(選曲盤)]이 있다. 지면관계로 선곡반은 해설을 생략하였다. 판소리음반중 상당부분이 SP복각반이라는 전제(前題)를 달고 있는데 이는 33 1/3회전의 LP시대 이전에 나온 78회전의 유성기음반을 재생하여 LP 내지는 CD로 만든 것으로, 음질은 열악하나 음악사적으로나 음악성만을 염두에 둔다면 필청(必聽)의 음반들이다. 일부 CD는 LP의 단순한 재발매로 보통의 CD 음질에 미치지 못한다.

1 전곡반(全曲盤:창극포함)

  인간문화재 박동진 판소리 대전집

    <춘향가>(SKC SKCD-K-0250:2CD)    <심청가>(SKC SKCD-K-0251:2CD)    <흥보가>(SKC SKCD-K-0252:5CD)

    <수궁가>(SKC SKCD-K-0253:3CD)    <적벽가>(SKC SKCD-K-0249:2CD)         창:박동진   북:주봉신

   1973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박동진명창은 1916년 충청도 공주 출신이다. 16세에 김창진에게서 <심청가>를 사사했고, 정정렬 문하에서 <춘향가>, 유성준 문하에서 <수궁가>를, 조학진으로부터 <적벽가>를, 박지홍 문하에서 <흥보가>를 사사했다. 박동진의 수업과정에서 보면, 비교적 짧은 기간에 다양한 소리를 배웠으나, 어느 것 하나도 세밀하게 익히지 못했다. 구두전승인 판소리는 대강만을 배워가지고는 명창이 될 수 없으나, 피나는 독공과정을 거쳐 명창의 대열에 우뚝 섰다.  박동진은 아니리와 즉흥성에 뛰어나며, 고도의 기량을 지닌 창조적인 소리꾼으로 청중들을 휘어잡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판소리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이 시대의 위대한 광대(보통의 판소리꾼은 광대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하지만 박동진은 자신을 굳이 광대라고 부른다)이다. 그의 판소리는 그만의 판소리로 5바탕의 창법이 비슷비슷하며, 78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 활동하는 이 시대의 대가임에 틀림없다.

  국내 판소리음반 사상(史上) 최대의 음반을 발매한 명창이다. 1988년에 녹음한 이 <5바탕> 외에도 <배비장타령>, <변강쇠타령>과 본인이 창작한 <예수전> 등이 있는데, 이것은 음반사상 좀처럼 깨어지기 힘든 기록이 될 것이다..

 

  강도근 창  <흥보가>    고수:이성근

             (신나라 SYNCD-027/29:3CD)

  <흥보가> - 동편제의 거장 강도근 고수:정철호               (삼성나이세스 SCO-101/3SST:3CD)

   강도근명창는 현재 계승되고 있는 소리 중에서 가장 전형적인-이는 상대적이다- 동편제 창법을 구사하고 있다. 송만갑의 수제자인 김정문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면서 약 2년 동안 <흥보가>를 완전히 배웠다. 또 서울 조선성악연구회에서 송만갑으로부터 <춘향가>, <적벽가> 등을 직접 배웠고, 유성준으로부터도 <수궁가>를 2개월 정도 배웠다. 1918년 전남 남원 태생으로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강도근은 크고 높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천성의 목을 타고 났으며, 자기의 소리에 대한 자존심이 대단하며 자기가 스승으로부터 배운 소리만을 고수하는 고집스러운 소리꾼이며, 고향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농사를 짓는 농사꾼인 그의 소리에는 남원 사투리가 살아 있으며, 우리 조상의 촌스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신나라의 <흥보가>는 1990년 녹음이고, 삼성나이세스의 <흥보가>는 1992년 녹음이다. 비교해서 들어봄직 하다.

  한국전통음악시리즈 제4집  

    판소리명창 박록주 <흥보가>  고수:정권진              (지구레코드 JCDS-0435/6:2CD)

  경북 선산에서 태어난 인간문화재 박록주(1905 -1979)명창의 장기인 <흥보가>의 완창은 이 음반과 중앙일보에서 출간한 국악의 향연에 포함된 1973년 녹음의 <흥보가> 두 종류이다.  박록주의 창법은 송만갑, 김정문에서 이어진 동편제의 전통이기 때문에 극도로 절제되어 소리 어느 한 구석 빈틈이 없다. 깡마르고 작달막한 체구에서 질러내는 소리는 대꼬창이처럼 빳빳하며, 힘들이지 않고 수월하게 나오는 소리 같지만 거기에는 엄청난 공력이 들어 있으며, 애원성같은 소리는 아예 내지 않는다.

  1967년에 녹음된 이 음반은 당시 3매의 LP로 소량이 제작된 희귀반으로 국악음반 수집가의 표적이 되어 왔는데, 이번에 CD로 발매된 국악음반의 명반이다.    

  신나라 판소리 명인시리즈 006

    정권진 창 <심청가>    고수:이정업              (신나라 SYNCD-030/2:3CD)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인간문화재 정권진명창(1927-1985)은 보성소리의 두 번째 계승자인 정응민의 외아들이다. 부친 정응민은 이른바 보성소리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는 정재근의 조카이다. 정재근은 서편제 소리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박유전으로부터 소리를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정권진은 박유전-정재근-정응민으로 이어진 보성소리 정통 가문의 후계자로 태어난 것이다.정권진은 정응민의 수제자인 박기채로부터 소리를 배웠다.

  정권진 소리의 특징은 저음의 멋이다. 고음이 별로 잘 나지 않는 탁한 목을 가진 정권진은 고음의 부족을 다양한 성음의 변화로 극복했다. 또 소리에서 바르고 맑은 마음을 가장 중요시하여 비속한 행동이나 천박한 장면이 없다. 서편제 소리에서 출반된 보성소리는 동편제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음악적으로 훨씬 다양하고 뛰어난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보성소리를 한국 판소리의 보고라고 하는 이유의 하나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현재 보성소리를 이어가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은 조상현, 박춘성, 성창순, 성우향 등이다.

  정권진의 자손이 보관하고 있던 1970년대(?) 녹음자료를  CD로 만든 음반이다. 명연이다.      

  국창 임방울 창극 1. 2. (대한국악원발행)

    <적벽가>   창:임방울   고수:한일섭             (아세아레코드 ACD-144/145:2CD)

  판소리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치고 임방울명창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임방울은 우리 나라 판소리사를 통틀어 최대의 슈퍼스타였다.

  전남 광산 출신의 임방울(본명 임승근:1904-1961)은 근대 5명창 중의 한 사람인 김창환이 그의 외숙이다. 임방울은 동네 부근에 살고 있던 박재실에게 서편제의 특성을 지닌 <춘향가>, <흥보가>를 배우고, 유성준에게 전형적인 동편제 소리인 <수궁가>, <적벽가>를 배웠는데, 임방울은 이때 배운 <수궁가>와 <적벽가>를 장기로 삼았다.

  임방울은 이름에 이미 '방울'이 달려있듯이 목구성이 뛰어난 예인이다. 구수하게 곰삭은 맛을 풍기는 수리성이 그의 특징인데, 수리성이면서도 지르는 대로 올라가서 다른 이들이 쉽게 흉내낼 수 없는 목질을 가졌다. 계면조의 애원처절한 느낌이 베어 있는 그의 목소리가 하나의 흠으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이와 같은 경향은 당시의 식민지시대 상황에서 민족이 겪은 가슴아픈 경험과 밀접하게 관련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1977년에 발매된 LP음반의 재발매인데 녹음관련 자료가 전혀 표기되어 있지 않다. 녹음상태와 음질은 좋지 않으나, 임방울의 장기인 <적벽가>에서 시원하게 불러내는 그의 창법과 성음만은 새겨 들을 만 하다.

  우리민속의 전통음악

    <춘향전1.2.3> (문화레코드MMHCD-7035/7:3CD)     <심청전 1.2>  (문화레코드 MMHCD-7033/4:2CD)

    <흥부전1.2> (문화레코드 MMHCD-7038/46:2CD)       창:박동진, 김소희, 박후성, 오정숙, 김수연, 성창순

  창극이다. 1980년대에 출반된 LP음반의 재발매인데 녹음관련 자료도 없고 해설서도 없고, <우리민속의 전통음악>이라는 부제도 이상하다. 이 시대의 국창 인간문화재 김소희명창이 참여했다고 되어있지만 김소희의 소리는 한 소절 밖에 들을 수 없다. 반주는 전통적인 북 반주가 아니고 기악반주이다. 음질은 들을 만 하다.

  빅터유성기원반시리즈 1

    <춘향전 전집>창:정정렬, 이화중선, 임방울 박록주,김소희,고수:한성준                     (서울음반 SRCD-1087:3CD)

      빅터판 <춘향가>  창.고수:위와 같음                     (신나라 SYNCD-009:3CD)

  유성기음반시대에 출반된 판소리 전집음반은 9종류이나, 이 전집음반들은 한사람의 완창음반이 아니고 창극형태의 음반이다.

  유성기음반으로 출반된 빅터반 <춘향전 전집>은 19(38면)매, 2시간 분량으로 1937년 녹음이다. 빅터반<춘향전 전집>은 제한된 인원으로 배역이 중복된 곳이 많으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창극이라기보다는 입체창에 가깝고, 여태까지의 판소리 창극 녹음에 따른 경험이 집약되어 있고 녹음 기술 또한 다른 음반에 비해 탁월하다. 당시에 기량이 한 수 아래인 명창들로 짜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역을 적절히 설정하고, 소리를 정교하게 짜면서 극적 구성도 치밀하여 단순한 도막소리가 아니라,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근대 5명창의 한 사람인 정정렬이 판을 짠 이 <춘향전 전집>은  LP음반으로도 몇 번 복각되었음은  이 음반의 인기를 말해주고 있다.

  신나라에서 복각한 음반은 유성기음반에서 녹음했기 때문에 음질이 열악하지만, 일본 빅터사에서 발견되어, 서울음반이 금속성원반으로 인수하여 만든 <춘향전 전집>은 믿지 못할 만큼 음질이 깨끗하다. 60년전의 우리 조상들의 소리를 이 시대에 이렇게 깨끗하게 듣는다는 것은 국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행복이다. 판소리 애호가에게는 필청의 음반이다.

  폴리돌판 <적벽가> 창:정정렬, 이동백 김창룡, 조학진 김소향 고수:한성준     (신나라 SYNCD-007:2CD)

  명인명창선집 (4)  (5)    <화용도 전집 2. 3.>  창.고수:위와 같음    기획:한국고음반연구회 (서울음반 SRCD-1127/1128:2CD)

  위의 두음반은 동일 유성기음반의 복각반이다. 유성기음반의 원래 제목은 <화용도 전집>이다. 이는 <적벽가>와 같은 말이다.

  1935년 전후해서 발매된 폴리돌판 <적벽가>는 근대 5명창에 속하는 사람이 3사람이나 출연함으로써, 한 명의 대가와 몇명의 신진이 출연하는 다른 전집에 비해 그 가치가 월등히 높으며, 판소리사 연구에도 대단히 귀중한 자료이다. 구성상의 특징은 앞 부분이 길게 부연되어 있다는 점과, 후반부에 소리의 백미로 알려진 <새타령>이 없다는 점이다. 이동백, 김창룡, 조학진이 모두 <적벽가>에 능했지만 이들이 <적벽가>를 취입한 음반은 없는 실정이다. 더구나 이들의 <적벽가>는 저마다 개성을 달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승이 끊어져버려, 어찌보면 잃어버린 소리이다.

  신나라에서 복각한 <적벽가>는 유성기음반 18(36면)매 전바탕 녹음이고, 서울음반의 <화용도 전집>은 전반부 6매가 빠진 12매의 녹음이다. 음질은 상대적이지만 서울음반의 것이 낫다.   

  콜롬비아판 <춘향가> 창:김창룡, 이화중선, 오비취, 권금주 북:한성준       (신나라 SYNCD-013/4:2CD)

  1935년 콜롬비아 축음기회사에서 유성기음반 16매에 담아낸 <춘향가 전집>의 복각반이다.

  이 <춘향가 전집>은 5명창으로 이름을 떨친 김창룡의 <춘향가>를 이해하는데 둘도 없는 귀중한 자료이다. 송만갑, 정정렬과 같은, 치밀하고 표정적인 당시의  '신제(新制)' 판소리 명창의 그늘에 가려 '고제(古制)' 판소리는 잊혀지고 있지만 김창룡의 고박하고 정대한 소리제는 '고제' 판소리의 향기를 발하고 있다. 이화중선의 소리는 음색과 음량으로 보나 기량으로 보나 전무후무한 명창임을 역력히 보여주고 있다. 콜롬비아의 <춘향가 전집>은 소리의 음악성이나 사설의 문학성이나 '고제' 판소리를 이해하는데 귀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 판소리의 완창은 3-8시간이 소요되지만 2매이상의 CD로 발매된 판소리음반은 전곡반은 아니지만 연주시간으로 보아 전곡반으로 분류하였다.

2. 발췌반(拔萃盤)

  박동진 판소리 다섯 마당

    <춘향가>(지구레코드 JCDS-0126)    <흥보가>(지구레코드 JCDS-0127)   <심청가>(지구레코드 JCDS-0128)

    <수궁가>(지구레코드 JCDS-0129)    창:박동진    북:한일섭

  1968년 국립국악원 강당에서 국내 최초의 5시간에 걸친 <흥보가>를 박동진명창이 완창한다고 발표했을 때 장안이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사람이 어떻게 5시간을 계속해서 소리를 할 수 있는가? 헌데 상성과 하성을 마음대로 구사하고, 몸짓과 발림이 재미있어 5시간이 금방 지나가버리자 구경꾼들이 모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듬해에는 8시간의 <춘향가>를 완창하였다. 이 후 판소리의 완창 발표회가 유행처럼 늘어나게 되었다.

  그 당시 판소리 5바탕을 발췌녹음하여 LP음반으로 발매한 것을 CD(<적벽가>는 제외됨)로 재발매한 것이다. 원로 소리꾼의 전성기 소리를 이 음반을 통해서 접할 수 있다.

  국창 임방울 창극 3.(대한국악원발행)     <수궁가>  창:임방울  고수:한일섭    (아세아레코드 ACD-143)

  <수궁가>는 임방울명창의 장기이다. 앞서 설명한 <적벽가 1.2>와 같이 발매된 음반이다. 앞 부분에 단가 <호남가>가 실려 있다. 단가란 소리꾼이 판소리를 시작하기전에 목을 풀기 위해서 부르는 전주곡으로 보통 중모리 장단이다.

  임방울은 1961년 3월 7일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은 3년 뒤 무형문화재 제도가 생겼다. 판소리는 자생력을 잃었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리고 보면 임방울은 자생력을 가진 마지막 소리꾼이었다.

  녹음실에서 행한 녹음이 아니라, 청중의 추임새가 있는 실황녹음이다. 하지만 녹음을 전제로 한 실황녹음은 아닌 것 같다. 임방울의 열창을 만끽할 수 있다.

3) 기획반(企劃盤)

  한국의 위대한 판소리 명창들 (1)

    <판소리 5명창>-김창환.송만갑.정정렬 이동백.김창룡 (신나라 SYNCD-004)

  1988년 9월에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유성기음반 복각반인 명인명창선집 (1) <판소리 5명창>이 한국고음반연구회의 회원들이 신나라와 협조하여 LP로 발매한 것은 우리 나라 국악음반 사상 하나의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1,000매 팔기 힘들다는 국악음반이 5,000매가 넘게 팔렸다. 이는 제대로 기획만 한다면 국악음반도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현재 약 300매가 넘는 국악 CD가 발매되어 있다.

  유성기음반 복각반은 저작권에 문제가 제기되지 않기 때문에 누구든지 제작이 가능하다. 신나라의 <판소리 5명창>은 명인명창선집 (1) <판소리 5명창>과 제목과 소리꾼은 같지만 수록곡의 내용이 조금 다르며, CD로 제작되었다.

  근대 판소리 5명창으로 꼽는 5명창의 이름은 학자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보통은 이 음반에 나타난 5명창을 근대 판소리 5명창이라고 일컫는다.

  김창환의 <제비노정기>, <고고천변>, 송만갑의 <진국명산>,  이동백의 <새타령> 등 명창들의 주옥같은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1920-30년대 녹음이다.

  명인명창선집(6)

    <동편제 판소리>창:송만갑, 송기덕, 이선유 장판개, 김정문, 박중근   기획:한국고음반연구회(서울음반 SRCD-1064)

  판소리의 동.서편에 관한 최초의 문헌은 정노식이 쓴 <조선창극사>이다.  

  임권택이 감독한 <서편제>영화에 삽입된 김수철이 작곡한 음악은 판소리에서 나타나는 서편제와 전혀 관련이 없다. 동편제 판소리는 다행히 전승 받은 명창들의 유성기음반이 많이 남아 있어 한 장의 CD로 복각되어 있지만, 서편제 판소리는 별로 남아 있지 못하다. 이는 우리의 조상들은 애조를 띤 서편제보다는 씩씩한 가락의 동편제 판소리를 선호했기 때문에, 많이 팔리는 동편제 판소리음반을 많이 제작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편제 판소리의 가객으로 당대 최고의 목과 예술성을 지닌 송만갑, 그의 소리가 처음 공개되는 송만갑의 아들 송기덕, 송만갑과는 다른 계통의 동편제 소리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이선유, 송만갑의 수제자인 고수 출신의 장판개, 그리고 김정문, 박중근이 부른 14곡(191301935년 녹음)의 동편제 판소리의 진수가 담겨져 있어 이 음반을 통해서 동편제 판소리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최고 (最古)의 동편제 소리들이다. 음질은 양호하지 못하다.

  <SP시대의 판소리 여류 명창들1.2.3.4>    창:배설향 외 11명   (신나라 SYNCD-066B/9:4CD)

  판소리계 최초의 여류 명창 진채선이 1867년 경복궁 내 경희루 낙성식에서 소리를 할 때까지만 해도 판소리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진채선 이후로 예기(藝妓)출신의 허금파, 강소향에 이어진 여류명창의 판소리는 애호가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였으며, 창극 부흥에도 크게 이바지하여 창극이 우리 고유의 예술 장르로 독립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현재는 오히려 남자명창보다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일제시대의 콜롬비아와 리갈 레이블에서 발매한 유성기음반에서 여류명창 12명이 부른 판소리와 단가를 4장의 CD에 실고 있다. 음질은 좋지 않다.

  빅터유성기원반시리즈 7 <자매명창>  창:이화중선.이중선/김초향.김소향(서울음반:SRCD-1124)

  일본빅터회사에서 인수한 600여면의 금속성원반으로  기획하는 과정에서 이화중선.이중선 자매와 김초향.김소향 자매가 부른 판소리, 단가, 민요를 묶어 <자매명창>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이중선은 이화중선의 동생으로 언니가 판소리로 큰 인기를 모으자 판소리의 길로 들어 섰으나, 언니의 그늘에 가려 큰 빛을 보지 못 했다. 김초향은 "1900년 대구 출신으로 김창환, 송만갑, 정정렬 문하에서 판소리를 배웠고, 김해 김록주와 어깨를 겨루며 활동한 명창"이라고 조선창극사에 기록되어 있다. 김소향은 김초향의 동생이지만 별로 알려진 자료가 없다.

4) 선곡반(選曲般)

  <정정렬 판소리선집>(서울음반 SRCD-11026)

  근대 판소리 5명창의 한 사람인 정정렬(1876-1938)은 전라도와 충청도의 경계인 전북 익산에서 무계(巫

계)이며 재인 출신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정정렬은 당시 국창으로 이름이 높던 정창업 문하에서 소리공부를 처음 시작했으며, 정창업이 세상을 떠나자 박유전의 법제를 계승한 이날치로부터 소리를 배웠다.

  그의 목소리는 탁성인데다 상성이 부족한 성량이지만 판소리 사상 전무후무한 목을 굴리어서 발성한다는 그의 특유의 방울목을 즐겨 사용했다.

  오늘날 명창들이 즐겨 부르는 <춘향가>는 정정렬이 원숙한 멋으로 재완성해 놓은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정렬 나고 판소리 춘향가가 생겼다.'는 말이 유행한 것 처럼 정정렬의 <춘향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오늘날 명창들이 <춘향가>를 부를 때는 정정렬 바디의 <춘향가>를 부른다.

  이 음반에 복각되어 실린 곡도 대부분 <춘향가>의 대목이다.

  한국의 위대한 판소리 명창들(3) <이화중선>   (신나라 SYNCD-012)

  <명창 이화중선 판소리 선집>  (서울음반 SRCD-1072)

  1989년 부산 동래에서 출생한 이화중선 명창은 박기홍, 이동백, 송만갑 등의 소리제를 물려 받았다. 이화중선은 20대 초반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비교적 뒤늦게 소리판에 뛰어들었음에도 당시 최고의 여류명창으로 평가를 받았고, 일제 때 판소리계에서 임방울과 함께 더불어 가장 인기를 모았다. 이화중선이 혜성처럼 나타나 인기를 얻자 제2의 이화중선을 꿈꾸는 여류 명창들이 나와. 이 후 여류명창이 숫적으로나 인기면에서 남자명창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이화중선은 쇄옥성으로 불리우는 맑은 목청을 지녔고 듣는 이에게 부담을 전혀 주지 않는 자연스러운 창법을 구사하고 있다. 덤덤하게 전혀 힘을 들이지 않고 부르는 것 같지만 거기에는 공력이 들어 있으며, 화창하고 발랄한 느낌을 준다.

  신나라 복각반에 실린 이화중선의 <추월만정>를 김소희 명창이 학교에서 돌아오다 듣고는 반하여 판소리에 입문하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한국의 위대한 판소리 명창들(2) <임방울>  (신나라 SYNCD-010)

  <명창 임방울 판소리 선집>  (서울음반 SRCD-1071)

  임방울명창은 25세 때 상경하여 외숙 김창환의 소개로 동아일보에서 주최하는 [전국명창대회]에서 부른 <쑥대머리>가 입상하면서 유명하게 되었다. 이전에 있었던 <쑥대머리>에 당시 사람들의 기호에 맞게 창조성을 더하여 부른 이 <쑥대머리>는 일제대에 가장 많이 팔린 SP음반이다. <쑥대머리>는 판소리계에서는 노랑목이라하여 금기시하는 육자배기목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이?.

  임방울은 얼굴이 살짝 얽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리를 너무 잘했기 때문에 여자들에게 대단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한 여인과의 사랑이 그의 뛰어난 예술혼과 만나 아름다운 판소리로 창작된 <추억>이라는 곡은 <쑥대머리>에 버금갈 만큼 판소리 애호가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두 복각음반 모두 <쑥대머리>, <추억> 외에 그의 주옥같은 곡들이 담겨져 있다.

  빅터유성기원반시리즈 6  <김연수 초기녹음 선집>(서울음반 SRCD-1115)

  동초 김연수(1907-1974)명창은 전남 고흥 출신으로 중동중학교를 졸업한 국악인으로는 이례적인 지성인이었다. 유성준에게 <수궁가>를, 송만갑 문하에서 <흥보가>와 <심청가>를, 정정렬로부터는 <적벽가>와 <춘향가>를 배웠다. 뒤늦은 학습으로 인해 뻣뻣한 목구성을 지닐 수 밖에 없었지만 신학문으로 논리정연한 판소리 이론을 정립하였으며, 판소리 근대화에 불후의 업적을 남겼다.  

  김연수의 소리는 치밀하게 계산된 소리이다. 극단으로 말하면 그의 음반은 그의 창본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다. 그가 추구했던 것은 분명한 성음과 정확한 사설, 뚜렷한 발음, 적절한 발림이다.

  김연수의 맞수는 임방울이었다. 임방울은 목은 좋으나 일자무식이라 열등의식을 가졌다고 한다. 판소리는 한문 인용구가 유달리 많아 학식이 모자라면 사설의 전달이나 감정의 표현에 제약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임방울은 내세울 수 있는 제자가 없으나, 김연수는 오정숙명창을 통하여 그의 판소리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이 음반에는 김연수가 30대에 부른 곡들이 금속성원반으로 부터 깨끗하게 복각되어 있다.  

  빅터유성기원반시리즈 10  <김여란.김소희 초기녹음 선집>  (서울음반 SRCD-1135)

  전북 고창 출신의 인간문화재 여류명창 김여란(1907-1983)은 부치의 뜻에 따라 어릴 때부터 가곡, 가사, 가야금 등을 배웠다. 20세 되던 가을 정정렬을 독선생으로 모시고 경북 영천에 있는 은혜사에서 100일 동안 <춘향가> 전바탕을 배우고, 계룡산 갑사에서 200일 동안, 금강산에 들어가 2년여 동안 공부해서 5바탕을 모두 배웠다. 독선생 밑에서 밀도있는 수련으로 박록주, 김초향과 같은 명창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김여란의 녹음은 무척 적고 접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이 음반에 실린 2곡의 판소리 대목은 귀명창에게는 매우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전남 고창 출신의 인간문화재 김소희(1917- )명창은 이 시대의 최고의 명창으로 국창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화중선의 영향으로 판소리계에 들어선 후 1930년 7월부터 송만갑에게, 34년 3월부터 정정렬에게, 일제 말기에 박동실에게 판소리를 배웠고, 광복 후에는 정응민에게 보성소리를 배웠다.

  김소희는 고운 목을 타고 났으며, 옛 더늠을 자신의 목에 맞게 다듬어 깔끔하게 구사하기 때문에 그의 소리는 부담이 없다. 슬픈 대목을 감정적으로 부르지 않고 서정적이고 청아한 느낌이 나게 부른다.

  이 음반에 복각된 김소희의 초기 녹음을 들어보면 당시의 나이를 감안해 볼 때 그 기량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고, 미완의 청순함이 느껴진다.

  김소희의 판소리는 LP로는 많이 출반되었으나 CD로 재발매된 것이 없고, 최근에는 녹음도 하지 않아 CD로 들을 수가 ?다. 하루 빨리 그의 LP 판소리음반이 CD로 재발매되기를 기대한다.

  <성창순 판소리모음:심청가.춘향가>    (오아시스레코드 ORC-1117)

   1934년 전남 광주 출신의 인간문화재 성창순은 김소희와 정권진으로부터 소리를 배웠으며, 63년에 정권진의 부친인 정응민에게 사사했다.

  보성소리의 맥을 잇고 있는 그의 소리는 우아미와 품격을 지녀 독특한 성음이 빼어난 것으로 손꼽힌다.

  1980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같은 실황녹음으로 심청가 중의 <눈 뜨는 대목>, 흥보가의 <박타령>, 춘향가의 <적성가>,수궁가의 <약성가>가 실려 있다.     

   위에 소개한 음반이 현재 국내에 출반된 우리 판소리 5바탕 CD음반 모두이다. 지면 관계상 음반중에 판소리가 일부 포함된 것은 제외하였으면, 현재 구할 수 있는 판소리 LP로는 뿌리깊은 나무에서 출반한 <5바탕>과 중앙일보에서 출반한 국악의 향연 50매중에 포함된 <5바탕>이 있으며, 이미 폐반이 되었지만 LP로 발매된 성창순 창의 <심청가>(오아시스레코드), 김성수 창의 <흥보가>(신나라), 강도근 창의 <수궁가>(신나라), 폴리돌판의 <심청전>(신나라:SP복각반) 등을 재고로 가끔 구할 수 있음을 밝혀둔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