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배뱅이굿>                                       
  


배우 한 사람이 등장하여 여러 사람의 역을 도맡아서 창(唱)을 불러 새신초혼(賽神招魂)하는 서도(西道) 지방의 연극적인 굿 놀이다. 조선시대 영조 ·정조 이래 구전된 것을 한말에 평안남도 용강의 김관준(金官俊)이 개작하여 아들 종조(宗朝)가 계승하였다. 김종조의 동료인 최순경(崔順慶) ·이인수(李仁洙) 등이 부르면서부터 널리 전파되었다.

배뱅이 굿의 구성은 황해도 민요인 산염불. 잦은 염불을 중심으로 해서 경기민요, 강원도 민요, 함경도 민요와 또한 경, 서도창이 다 들어 가는데 창자가 직접 아니리 식으로 설명을 해 가면서 부르는데 어떻게 보면 서도 창극화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나오는 노래를 보면 긴 염불, 잦은 염불, 뱃노래, 사설 난봉가, 회심곡, 장님의 독경, 장타령, 황해도 굿소리 상여소리. 서울의 왕십리 굿소리 등이 많이 나오고 있다. 오늘날 부르는 것은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훨씬 이후의 것으로 추측된다.

배뱅이굿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숙종 때에 경상도 태백산 아래 9대째 내려오는 무당 최씨라는 부자가 살았다. 어느 해 나라에서 귀천을 가리지 않고 과거를 보였으므로, 그도 이에 응시하여 급제하고 경상 감사 벼슬을 받았다. 그러나 부임 얼마 후 무당임이 탄로나 쫓겨나고, 황해도로 가서 최정승으로 행세하며 그곳에 사는 김, 이 두 정승과 형제의 의를 맺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모두 혈육이 없었다. 어느 날 세 사람은 절에 가서 백일기도를 하여 각각 딸 하나씩을 낳았는데, 최정승은 딸의 이름을 ‘백의 백갑절’이라는 뜻으로 ‘배뱅[百百]이’라고 지었다.

이 셋은 어느덧 자라서 처녀가 되었다. 하루는 금강산 어느 절에서 나온 탁발승이 최정승 집에 왔는데, 배뱅이는 그 중에게 첫눈에 반하여 그를 불러들여서 벽장에 숨겨두고 함께 지냈다. 중은 머리를 기른 뒤 오겠다고 기약하고 떠난 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중을 기다리다 지친 배뱅이는 끝내 상사병을 앓다가 죽고 말았다. 최정승 내외는 딸 배뱅이의 넋이나마 불러보고 싶어 이를 이루어주는 사람에게는 재산의 절반을 나눠주겠다고 하였다. 이에 팔도의 이름난 무당들이 몰려들어 굿을 하였으나, 아무도 넋을 불러오지 못하였다. 그 때 지나가던 평양의 젊은 건달 부랑자가 무당 행세를 하여 넋을 불러들여 주었으므로, 최정승은 그에게 약속을 지켜 재산의 절반을 주었다는 것이다.

극의 구성은 산천기도 ·현몽 ·배뱅이의 출생 ·성장 ·연애 ·배뱅이의 죽음 ·장사 ·무당의 굿 ·주막집 ·배뱅이의 마지막 굿날 ·귀로 등의 순서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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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음반 :
  <박준영의 배뱅이굿과 서도소리>

배뱅이굿하면 생각나는 소리꾼은 이은관 명창이다. 90세가 넘었지만 지금도 무대에서 배뱅이굿을 열창하고 있다. 이은관 명창의 제자이지만, 박준영 소리꾼의 이번 배뱅이굿은 조금 다르다. 혼자 부르는 것이 아니고, 유지숙 명창과 입체창, 합창도 들어있다. 반주도 관현악 반주라 훨씬 듣기가 편하고 흥겹다.

배뱅이굿 전 과정을 ‘서곡’, ‘탄생내력과 성장’부터 마지막 대목인 ‘평양건달 엉터리 굿하여 돈벌어 떠나가는 대목’까지, 14대목으로 나누었다. 두번째 음반에는 관현악반주로 ‘긴난봉가’, ‘자진난봉가’, ‘초한가’ 등 모두 17곡의 서도민요가 수록되어 있다.

박준영 소리꾼은 강원 삼척 출신으로 1989년에 이은관 선생 문하에 입문하여 현재 서도소리 배뱅이굿 전수교육조교로 지정되어 있다. 2008년에는 KBS 국악대상 민요부문을 수상하였다. 배뱅이굿과 서도소리는 황해도, 평안남북도 지방의 전통적인 소리로 이 지역의 소리꾼이 아니면 제대로 부르기 어려운 노래로, 대동강물을 먹어야만 서도소리를 제대로 한다는 말도 있다. 월남한 1세대 명창들은 거의 타계한 가운데, 그 명맥을 이어가는 남자소리꾼은 박준영이다. 오래간만에 제대로 듣는 서도소리 음반이다.( 2011. 1월. 객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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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관의 <배뱅이굿>(지구레코드:JCDS-0447) (관련곡이 수록된 음반)


이은관(李殷官)은 1917년 11월 27일 강원도 이천군 이천면 회산리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이천공립보통학교까지 다니고 외지로 나갔다. 18세(1935년) 무렵에 황해도 황주에 가서 재인들과 함께 어울려 떠돌이 공연 단체에서 잠시 음악 활동을 했다.
그러다가 그가 소리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황주에서 생활하던 바로 그 시절, 10대 후반 때 일이다. 그 당시 나는 황주권번에 소리 선생으로 있던 이인수(李仁洙) 명창의 문하에 들어가서 배뱅이굿을 비롯한 여러가지 서도소리를 배웠다.

그리고 그는 이인수 문하에서 나온 20대 초반에 장연권번에서 잠시 소리 선생을 했고 종로권번에서 서너달 가량 활동했다. 그 무렵 그는 최경식 문하에서 경기민요와 시조를 사사했다. 그 후 잠깐 고향에 갔다가 다시 서울로 왔다. 그 뒤에 가설 무대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1940~1945년 무렵에 ‘신불출 일행’에 입단하여 활동하였다.

광복 후에는 대한국악원 민요부에 소속되어 활동하였고 1947년에는 이병성 문하에서 시조를 배웠다. 또 1960년대까지 박천복, 장소팔, 고춘자 등과 함께 유랑 극단을 만들어 활동했다. 그리고 방송 활동, 해외 공연 등을 하며 바쁘게 활동해 왔다.
이은관은 1982년에 KBS 국악대상을 받았고 1984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29호 서도소리(배뱅이굿)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1990년에는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의 장기는 역시 배뱅이굿이라고 하겠는데 그가 지금까지 가장 많이 부른 소리가 배뱅이굿이고 가장 신경써서 독공한 소리 또한 배뱅이굿이다.

그의 대표적인 제자로는 박준영, 인정임, 엄재경, 최병문, 김경열, 박경옥, 김경선, 박기옥, 조금희 등이 있다. 이 음반은 노래 기량 면에서나 음질 면에서나 이은관의 무수한 녹음집 가운데 가장 명반으로 평가된다. 이를 통해 이은관의 전성기 녹음을 감상할 수 있다. 이는 1976년에 지구레코드에서 녹음, 제작된 장시간음반(LP)을 1994년에 CD음반으로 재발매한 것이다. 표지 인쇄물을 통해서는 이은관의 젊은 시절 모습을 대할 수 있고 배뱅이굿 사설이 친절하게 수록되어 있다. (200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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