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판소리>                                        
  


(1) 판소리란 무엇이가?

판소리란 고수의 북 반주에 맞추어 한 사람이 몸짓(발림)을 섞어가며 말(아니리)과 노래(소리)로 춘향가, 심청가 등의 이야기를 청중에게 전달하는 공연예술로 소리하는 사람이 혼자서 여러 역할을 해내는 일인 다역극(多役劇)이다. 소리하는 사람은 이야기를 청중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꾼, 이야기 속에 나오는 해설자, 그리고 이야기 속에 나오는 각 등장인물의 역할 등을 번갈아 가며 맡게 된다.

조선조 후기부터 문헌에 나타나는 판소리는 원래 12바탕이었으나 외설스럽고 조잡한 내용을 가진 바탕은 차차 도태되어, 고종 때에 판소리 연구가 신재효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타령>, 6바탕을 새로이 정리한 후 현재는 <변강쇠타령>을 제외한 5바탕만이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으며, 이 5바탕 판소리를 '바탕소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승과정에서 탈락한 7바탕은 <옹고집타령>, <배비장타령>, <강릉매화타령>, <장끼타령>, <무숙이타령>, <가신신타령>, <변강쇠타령>이다.

(2) 판소리의 제(制), 바디, 더늠

판소리는 기록된 음악이 아니라 구두전승(口頭傳承)의 과정을 거쳐서 발전해 온 민속음악이다. 구두전승의 판소리는 전승지역, 전승계보, 음악적 특성에 의하여 크게 동편제(東便制), 서편제(西便制), 중고제(中古制)라는 3개의 유파로 구분된다. 동편제란 섬진강 동쪽 지역인 구례.운봉.순창.남원.흥덕 등지에서 전승된 소리로서, 가왕(歌王)으로 불리는 운봉 출신의 송흥록의 소리 양식을 계승한 소리이다. 우조(羽調:씩씩한 가락)의 표현에 중점을 두고, 감정을 가능한 절제하며, 장단은 대마디 대장단을 사용하여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발성은 통성(배속에서 바로 위로 뽑는 소리)을 사용하여 엄하게 하며, 구절 끝마침을 되게 끊어 낸다. 이에 비하여 서편제는 섬진강 서쪽 지역인 광주.나주.화순.보성 등지에 전승된 소리로, 순창 출신이며 보성에서 말년을 보낸 박유전의 소리 양식을 계승한 소리이다. 계면조(界面調:슬픈 가락)의 표현에 중점을 두며, 발성의 기교를 중시하며 다양한 기교를 부린다. 소리가 늘어지는 특성을 지니며, 장단의 운용면에서는 엇부침이라 하여 매우 기교적인 리듬을 구사한다. 또한 발림이 세련되어 있다. 중고제란 송흥록과 동시대 사람인 강경 출신의 김성옥으로 부터 출발되어 충청도와 경기도 지역에 전승된 소리로 음악적 특성은 동.서편의 중간으로 일제 강점기 이후 전승이 끊어졌다.

조선 말기 이후부터 판소리 명창들의 지역 이동이 심하고 교습지역 및 스승의 변동으로 판소리에 이런 유파의 특성도 희석되고 지역적 연고성이 끊어지게 되어 지금은 다만 전승계보에 따라 그런 특성이 일부 판소리에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현재의 판소리를 이해하기 위한 개념으로는 판소리 유파는 적절하지 않으며, 김연수 명창은 판소리 유파를 따지는 것은 무용한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일제시대만 해도 판소리의 이런 유파적 특성을 지닌 판소리가 전승되고 있는 것을 유성기음반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판소리 유파 즉 '제(制)'의 하위개념으로 '바디'가 있는데, '제' 속에 여러 가지 '바디'가 존재하는 양상으로 이해된다. 이 역시 전승계보와 관련이 있는데, 창시자의 이름을 따서 동편제의 계보 중에서 유성준 바디 <수궁가>, 송만갑 바디 <적벽가>라고 부르는데, 판소리는 전승예술이어서 누구든지 일단은 전승 받은 것을 토대로 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창출하기 때문에 같은 '바디'라도 다르게 불리워지기도 한다. 또 판소리에는 어느 소리꾼이 특별히 잘 부르는 대목이나 작품을 가르키는 '더늠'이 있다. 예컨대 <쑥대머리>는 임방울의 '더늠'이다. <제비노정기>는 김창환의 '더늠'이다라고 했을 때는 임방울 명창이나 김창환 명창이 특별히 멋있게 고쳐 불러서 인기를 얻은 대목이 <쑥대머리>, <제비노정기>라는 뜻이다.

(3) 판소리의 추임새

판소리는 소리판을 이끌어 가는 주체인 소리꾼(창자 또는 광대)과 북 장단을 치는 고수와 소리를 듣는 청중으로 구성되지만, 판소리판의 청중은 헛기침도 제대로 못하고 거의 부동자세로 감상해야하는 서양음악의 청중과는 다르다. 판소리 공연에서의 고수와 청중은 '얼씨구', '좋다', '으이' 등의 추임새를 통하여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며, 창자와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판을 이끌어 간다. 이 음반은 실황녹음이 아닌 스튜디오 녹음이라 청중의 추임새는 들어있지 않지만 고수의 추임새는 끊임없이 들을 수 있다.

(4) 판소리의 조(調)/길, 성음(聲音)

판소리의 '조(調)/길'에는 화평하고 담담하고 여유 있는 평조(平調), 점잖고 품위 있고 우아한 우조(羽調)와 슬프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계면조(界面調)가 있다. 또 판소리에는 목소리의 특질을 가르키는 '성음'이 있는데, 거친 소리에서 맑은 소리로 순차적으로 적어보면 떡목-수리성-천구선-양성이 있다. 가장 좋은 성음은 높은 소리와 슬픈 선율의 소리를 표현하기에 알맞은 천구성으로 여자 소리꾼들의 소리는 대개 다 천구성이고 남자 소리꾼으로는 5명창의 한 사람인 충청도 서천출신의 이동백 명창과 임방울 명창이 이에 해당된다. 소리가 너무 맑으면 양성이라 하는데, 깊이가 없기 때문에 가치 있는 성음으로 치지 않는다. 목이 너무 거칠어 높은 소리를 잘 내지 못하는 떡목도 가치 있는 성음이 못 되지만, 5명창의 한사람인 정정렬은 떡목에 가까운 목소리를 지녔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저음으로 갖은 기교를 부리는 아기자기한 창법으로 대명창이 되었다.

(5) 판소리의 아니리와 도습(道習)

판소리의 가사 중에서 노래로 부르는 부분을 '소리'라고 하고, 말로 하는 부분을 '아니리'라고 한다. '소리'는 장단에 맞추어 계면조, 평조 등의 조(調)에 따라 부르지만, '아니리'는 이야기 중에 나오는 인물에 따라서 그 성격, 성별, 사회적 신분에 맞는 목소리와 말투로 구사해야 된다. 이 '아니리' 중에서 자유리듬으로 노래하는 조로 읊은 부분도 있고, '소리' 중에서도 장단과는 상관없이 자유리듬으로 부르는 부분이나 말(이야기, 재담)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을 '도습' 또는 '도섭'이라고 한다. '아니리'에 나오는 '도습'은 '창조(唱調)라고도 하며, '소리' 중에 말로 하는 '도습'을 '말조'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리'는 '소리'에 비해 융통성이 많아 즉흥적으로 만들어서 넣기도 하고 재치 있게 고치기도 한다. 소리보다는 아니리를 잘하는 소리꾼을 '아니리 광대'라고 하고, 소리는 잘하나 아니리가 딱딱하고 재미가 없는 소리꾼을 '소리 광대'라고 한다. 박동진 명창은 실제 연주에서 들어보면 '아니리'에 굉장히 뛰어난 광대이다. 대부분의 명창은 광대라고 불리는 싫어하지만, 박동진 명창은 자신이 광대라고 불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진정한 광대이다.

(6) 판소리의 장단(長短)

판소리에는 서양음악의 박자의 개념에 해당되는 것이 '장단'이다. '장단'에는 크게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엇모리, 엇중모리가 있다. 허나 서양음악의 박자의 개념과는 달리 이 장단에는 주기성, 속도, 리듬의 형태, 강약 등의 의미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고수가 장단을 칠 때 소리의 흐름에 따라서 그것에 알맞는 방법으로 장단을 치게 되는데, 악절의 첫머리에는 북채로 북의 오른편 가죽을 세게 치고, 소리가 밀고 나갈 때에는 북채로 북통의 앞 부분을 조금 세게 치고, 창자가 소리를 달고 나갈 때에는 북채로 북통의 꼭대기 오른편 모서리를 가만히 잔가락이 들어가게 굴러 치고, 소리를 맺을 때에는 북통의 꼭대기 한 가운데를 매우 세게 내려치고, 소리를 풀 때에는 왼손 바닥으로 북의 왼편 가죽을 굴러 친다.

장단 [진양]은 판소리 장단에서 가장 느린 것으로, '진양'이란 말의 뜻이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진'을 '긴'의 사투리로 보고, '양'을 소리라는 뜻으로 보면, '긴소리'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진양]은 3분박 6박자(18/8박자)인데, 이 6박자를 한 각이라고 부른다. [진양] 장단은 2내지 6각을 주기로 하여 변주되는데, 흔히 4각을 주기로 변주한다고 하여 4각 24박자를 한 장단으로 꼽기도 한다. [진양]은 사설의 극적 상황이 유장하고 여유 있거나 서정적인 대목에서 주로 쓰인다.

장단 [중모리]는 판소리 장단에서 [진양] 다음으로 느린 것으로, '중모리'라는 말은 중간 빠르기로 몰아간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중모리]는 2분박 보통 빠르기 12박자(12/4박자)로, 어떤 사연을 담담히 서술하는 대목이나, [진양] 장단과 마찬가지로 서정적인 대목에서 흔히 쓰인다.

장단 [중중모리]는 [중모리]와 박이 거의 비슷한데, [중모리]보다 더 빠른 장단이다. 매우 빠른 12박이나 이것을 넷으로 나누어 박을 세기 때문에 3분박의 좀 느린 4박자(12/8박자)로 친다. 춤추는 대목, 활보하는 대목, 통곡하는 대목일 때 쓰이는 장단이다.

장단 [자진모리]는 빠르게 소리를 몰아가는 빠른 장단이다. 3분박의 빠른 4박자(12/8박자)로, 긴박하거나 격동하는 대목에서 사용된다.

장단 [휘모리]는 판소리에서 가장 빠른 장단으로 말 그대로 휘몰아 가는 장단이다. 2분박 매우 빠른 4박자(4/4박자)로 어떤 일이 매우 바쁘게 벌어지는 대목에 많이 사용된다.

장단 [엇모리]는 절름거리는 박자로, 판소리의 다른 장단은 박이 일정한 느낌은 주지만, [엇모리]는 긴박과 짧은 박이 섞여 절름거리는 주는 색다른 장단이다. 매우 빠른 10박(10/8박자)으로 신비한 인물이 나오는 대목이나 격동하는 대목에 쓰인다.

장단 [엇중모리]는 판소리에서 매우 드물게 쓰이는 장단으로 [중모리]의 절반 길이다. '중모리의 절반되는 엇나간 장단'이란 뜻에서 [엇중모리]라고 부르는 듯하다. 2분박의 보통 빠르기 6박자(6/4박자)로 판소리의 끝 부분인 뒤풀이에 많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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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음반 :
  박동진명창의 바탕소리로 듣는 <판소리 길잡이>

1987년 4월 국내 최초의 국악 CD음반이 (주) SKC에 의해 발매된 후, 1988년 6월-7월에 인간문화재 박동진 명창이 부른 판소리 5바탕이 CD음반으로 발매되었다. 이 후 창작판소리 <예수전>과 <배비장전> 등이 발매되었다. 판소리 5바탕이 대전집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지만, 완창은 [흥보가](SKCD-K-0252:5CD)와 [수궁가](SCCD-K-0253:3CD) 2바탕이고, [춘향가](SKCD-K-0250:2CD)는 '어사또 방자 만나는 대목'부터 '수도안(囚徒案) 상고(詳考)대목'까지, [심청가](SKCD-K-0251:2CD)는 '심봉사 물에 빠지는 대목'부터 '심청이 세상에 다시 나오는 대목'까지, [적벽가](SKCD-K-0249:CD)는 '조조진영 잔치하는 대목'부터 '조조 패주하는 대목'까지이다.

이 음반은 박동진 명창의 판소리 바탕소리(판소리 5바탕),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중에서 장단별로 눈대목(중요한 대목)을 발췌하여 일반인과 학생들이 판소리 장단을 이해하기 쉽게끔 필자가 기획한 음반으로, 해설서에는 판소리에 관한 개괄적인 설명도 들어있다

곡은 5바탕에서 골고루 선택하여 장단(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엇모리, 엇중모리)별로 배열하고, <아니리>도 포함하였으며, 마지막에는 <아니리>와 <진양조>부터 <휘모리>의 장단이 나타나는 <흥보가> 중의 한 대목을 발췌하여 '판소리 길잡이'로 명명한 음반이다.

녹음일자가 다른 5바탕에서 발췌하였기 때문에 곡(트랙)이 바뀔 때에 음색에 약간씩 차이가 있다. 판소리 5바탕의 눈대목도 감상하고, 판소리 장단도 이해할 수 있는 교육적인 음반으로 국악 입문자에게 자신있게 권할 수 있는 음반이다.(200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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